[현대극장을 지켜야하는 이유] (7) 변성진 감독

옛 현대극장(제주극장) 매입 문제가 쉬이 해결되지 않을 조짐입니다. 일제강점기인 1940년대 지어진 이곳은 문화환경이 척박했던 제주에서 누릴 수 있는 최고의 문화공간이었습니다. 그뿐인가요, 제주 근현대사가 스며든 의미 있는 건축물이기도 합니다. 보존이냐, 철거냐 운명의 기로에 놓인 옛 현대극장을 두고 각계의 다양한 이들이 목소리를 내는 이유입니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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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변성진 감독(제주독립영화협회).
가끔 우리는 실수를 한다. 가령 뒤뜰에 낡은 항아리를 깨버렸더니 그것이 진품명품이었더라, 혹은 돌맹이인줄 알고 던져버렸는데 운석이었더라, 문 두드리는 불청객을 문전박대했는데 알고 보니 행운을 줄 귀인이더라. 저지를 수 있는 수많은 실수들이다. 얼마나 후회가 막심했으면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이야기 속에서 면면히 이어지는 단골 주제가 되었을까.

현대극장 철거에 대한 논란을 보면서 문득 든 생각은 이런 땅을 치고 후회할 실수에 관한 것이다. 이 안타까움은 영화인으로서 갖게 되는 유별난 게 아니다. 제주인으로서 지역의 정치, 문화, 예술의 집단기억을 형성했던 현대극장은 ‘한 뼘 곁에 있는 소중한 보물’이라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제주의 문화, 예술, 역사가 최고의 관광콘텐츠이자 소위 ‘돈 되는’ 산업의 원천이라고 확신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대극장은 단순히 오래되고 낡은 영화관이 아니다. 이 점은 ‘감식안’을 가진 수많은 전문가들이 지적하고 또 지적한 바이다. 그런데 어느 날 현대극장을 낡은 항아리 깨듯이 부숴버린다면 이것은 더 이상 실수가 아니라 직무유기며, 죄악이다.

부숴버리는 것은 새로 짓는 것보다 쉽다. 새로 짓는 것은 지켜야할 것을 잘 보전하는 것보다 쉽다. 지키고 보전하는 것이 어렵고 힘들다고 포기해버리면 나중에 땅을 치고 후회한들 소용없다. 

제주지역의 오래된 극장들은 현재 영화예술문화센터, 서귀포의 관광극장 등으로 변신해 문화예술 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 특히 서귀포관광극장은 새로 리모델링되어 이색적인 관광코스가 되고 있을 뿐더러 피곤한 일상을 잊게 하는 시민들의 휴식공간이 되어주고 있다. 이런 공간은 수치로 환산할 수 없는 막대한 가치를 갖고 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들 모두 매입이 아닌 임대 형식으로 계약이 되어 운영되고 있으며 소유주의 결정에 따라 언제 사라질지 모르는 운명에 놓여있다. 

이참에 도당국의 현대극장 매입추진은 제주지역의 성공적인 문화정책을 가늠하는 시금석이 되리라 믿는다. 법적 다툼, 행정적인 문제 등 산적한 문제가 있지만 당국의 능력은 어려움을 해결해 나가는 그 속에서 더욱 빛날 것이다. 

문 두드리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린다. 현대극장을 지켜달라고, 우리의 추억을 앗아가지 말라고, 소중한 보물을 지켜달라고 외치는 소리가 들린다. 영화인들은 더욱 간절한 심정으로 문을 두드린다.  지역에서 ‘짱돌로 영화를 찍으며’ 고군분투하던 독립영화인들에게 영화관은 성지이기 때문이다. 지역의 독립영화인들은 꿈꾼다. 내가 만든 영화가, 우리 친구와 동료들이 만든 영화가 현대극장에서 개봉되어 함께 즐길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올해부터 제주지역 독립영화계에 영화 제작 러시가 불고 있다. 장편 작품만 다큐 2편, 극영화 4편 등 우리의 이웃이 배우로 출연하기도하고, 제작에 참여하며 제주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단순히 수적인 측면에서 뿐 아니라 전국영화제에서 검증받아 사전제작지원도 휩쓸었다. 

그동안 고군분투하며 제주에서 영화제작 환경 개선의 기틀을 만들었던 제주독립영화협회도 바야흐로 창립 10주년을 맞았고, 지역 영화인들의 저력과 제주의 에너지를 보여주는 듯하여 감개무량하다.

아직 늦지 않았다. 굳게 닫은 문을 열고, 철거라는 ‘쉬운 길’을 버리고, 문전박대 했던 귀인을 맞이하여야 한다. 현대극장이 관객과 예술가들이 함께 울고 웃으며 오래된 미래를 만들어가는 새로운 성지로 부활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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