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로 터전을 옮기는 이주민의 숫자가 한해 1만명을 훌쩍 넘어서고 있다. 특히 이들 중에는 적지 않은 문화예술인들이 청정한 자연환경에 매료돼 바다 건너 제주로 향한다. 여기에 제주사회는 자연, 사람, 문화의 가치를 키우자는 분위기가 그 어느 때보다 뜨겁다. 유례 없던 이런 변화 속에 제주문화의 미래를 고민하는 목소리 역시 높다. 전통과 변화 사이에서 제주문화의 정체성을 지켜내면서 끊임없이 진화해야 하는 상황이다. 이런 고민을 녹여내기 위해 제주출신 양은희 건국대학교 글로컬문화전략연구소 연구교수가 [제주의소리]를 통해 '양은희의 예술문화 이야기'를 연재한다. <편집자 주>


<양은희의 예술문화 이야기> (21) 바다쓰레기를 작품으로 탈바꿈하는 김지환 작가

이성을 추스르기 힘들 정도로 요동치는 요즈음, 그래도 계절은 어김없이 바뀌고 있다. 역사의 장이 날마다 새롭게 바뀌는 중에도 손은 시리고 코끝이 찡해지며 따뜻한 차 한 잔을 찾게 된다. 문득 따뜻한 남쪽이 생각났다. 작년 겨울 지인의 전시를 보려고 서귀포에 갔다가 따사롭기 그지없었던 햇볕에 취한 적이 있었다. 남쪽엔 무슨 일이 있을까? 전시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오랜만에 버스터미널로 가서 시외버스 730번을 탔다. 내년 여름부터는 시외버스라는 명칭이 사라지고 모두 시내버스로 통용된다고 하니 왠지 역사의 한쪽으로 들어가는 느낌이었다. 새로운 제도가 도입되면 우리의 일상도 한동안 흔들릴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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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쪽으로 가는 730번 버스. 제공=양은희. ⓒ제주의소리

버스는 잠시 동쪽으로 달리다가 이내 남쪽으로 향했다. 초겨울 산기슭에는 드문드문 삼나무, 소나무가 보이고 이미 말라 베이지색으로 변한 초원이 펼쳐져 있었다. 버스 여행의 즐거움은 호젓한 겨울 풍경에만 있지 않았다. 정류장마다 붉은 오름, 사리물, 디삘레, 수망가름, 불미터 등 옛 명칭들이 당당히 남아 외래어와 표준어에 익숙한 이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고 있었다.  

필자가 간 곳은 과수원이 가득한 남원이다. 동백꽃을 비롯해 이름 모를 노란 꽃이 남원의 길가에 피어 있었다. 겨울인데도 겨울이 아닌 곳, 확실히 남쪽은 복잡한 세상과 잠시 거리를 두기에 좋은 곳이다. 이곳에 4개월 전 문을 열었다는 갤러리 카페 ‘남쪽창고’가 있다. 한적한 길가의 과수원 창고를 개조한 곳으로 지나는 차도 뜸하고 삼나무 사이로 빛과 바람이 스치는 곳이다. 카페 입구에 들어오는 볕을 맞으며 강아지 한마리가 늘어지게 자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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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쪽창고. 제공=양은희. ⓒ제주의소리

여기에 김지환 작가의 소박한 전시가 열리고 있다. 바다에서 주운 폐목을 활용해서 작은 작업들을 만들어 전시하고 있다. 언론인 출신의 작가는 쓰레기를 가져다 창작물로 만드는 소신 있는 행보로 아는 사람은 다 아는 인물이다. 대학에서 미술을 공부한 후 오랫동안 세상의 흐름을 보도하는 직업에 종사해서일까. 그의 예술에 대한 생각이 남다르다. 그는 창작도 중요하지만 바다쓰레기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것이 목표라고 말한다. 그래서 ‘바다쓰기’라는 그룹을 만들어 교육프로그램을 진행한다. 제주도 바닷가를 강타하는 쓰레기와 환경문제를 널리 알리는 창작가이자 전도사의 역할을 자처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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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지환의 작업들. 제공=양은희. ⓒ제주의소리

흔히 예술을 한다고 하면, 종이에 펜으로, 캔버스에 물감으로 뭔가를 만들어 내거나, 악기를 이용해 연주하는 것 등등을 연상한다. 학교가 가르쳐주는 범위 내에서 배운 예술들이다. 예술교육이 제도화되면서 정해진 커리큘럼에 따라 교육을 받다보면 예술의 범주가 고착되고 지켜야할 규범이 만들어진다.  

제도권의 안락한 예술교육을 졸업하고 차가운 현실로 들어오면 혼란스러워진다. ‘예술이란 무엇인가?’, ‘예술가로 산다는 것은 무엇인가?’, ‘어떻게 예술가로 생존할 것인가?’ 계속되는 질문에 좌절하는 이들도 있다. 왜냐하면 미술제도는 눈에 잘 보이지 않고 빠르게 소수의 작가를 앞에 세우며 제도를 강화하는데 그 속도에 어떻게 맞추어야 할 지 파악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제도는 문어발처럼 확장하면서 예술가를 키우고 골라내고 누군가를 유명작가로 만들고, 누군가는 가난한 작가로 만든다. 그런 혼란 속에서 먼 미래를 내다보며 예술가로서의 자신만의 정체성을 찾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정신을 연마하고 시대를 읽는 사고를 키우며 생계를 유지할 정도의 기술도 필요하다. 

하늘, 바다, 땅이 오염되고 있는 오늘날 제주에 사는 김지환은 제도권 예술과 다른 길을 간다. 자연보다 더 아름다운 것이 없는 제주에서 그에게 바다쓰레기는 필연적인 선택이었을 것이다. 바닷가를 거닐며 아름다운 풍광에만 몰두하기보다 발에 치이는 부유물과 쓰레기를 주워서 작업실로 들고 와 새로운 형태와 쓰임새를 부여하는 일은 고귀하게 보인다. 낡은 물건에 상상력을 더해 쓰임새있는 새로운 물건을 만드는 것을 업사이클링이라고 한다. 다들 알고는 있지만 쉽게 외면하는 현실 속으로 들어가 문제의 일부라도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되고 싶은 마음, 그 마음이 바로 업사이클링으로 이어진 것이다.  

그래서 그의 작업은 과대하게 드러나는 예술가의 자아나 성공을 위한 절박감과 거리가 있다. 파도에 닳고 닳아 뼈대만 남은 나무를 잇고 전구를 달아 생활용품으로 쓸 수 있도록 배려하고 작은 판자조각으로 앙증맞은 집들이 모여 있는 작은 마을 풍경을 만들어 행복하게 사는 세상을 그린다. 그런 겸손함을 담은 예술이 한적한 남쪽의 카페에서 지나가는 손님을 부른다. 

삶의 속도가 느려지는 과수원 동네, 지금의 삶뿐만 아니라 먼 미래의 삶까지 걱정하는 예술, 창고 카페에서 마시는 차 한잔. 남쪽은 그렇게 겨울의 냉혹함을 달래준다.   

 ▲필자 양은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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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은희는 제주에서 태어나 초·중·고·대학을 졸업했고 영문학·미학·미술사·박물관학을 공부했으며, 미술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미국과 한국에서 큐레이터와 미술평론가로 활동해왔다. 뉴욕을 현대미술의 눈으로 살펴 본 <뉴욕, 아트 앤 더 시티> (2007, 2010) 저자이자  <기호학과 시각예술>(공역, 1995), <아방가르드>(1997), <개념 미술>(2007)의 번역자이기도 하다. 서울과 제주를 오가며 살고 있다. 현재 건국대학교 글로컬문화전략연구소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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