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 전인 2011년까지만 해도 유럽 국가들이 국채를 발행하려면 5% 전후의 높은 금리를 제공해야 했다. 그런데 요즘은 시장이 이들의 국채에 대해 요구하는 금리가 미국의 그것에 비해 오히려 낮다. 10년 만기물의 경우 독일과 프랑스는 1% 이하, 스페인과 이태리는 2% 이하인데 미국 국채에 대해서는 2% 이상의 금리를 요구한다.

그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일찍이 유럽연합이 정한 "안정과 성장 협약"은 각국의 연간 재정적자와 누적 부채가 각각 그 나라의 GDP 대비 3% 및 60%를 넘지 않을 것을 규정했었다. 그러나 이 원칙을 준수한 것은 유럽연합 28개국 중 스웨덴, 룩셈부르크, 에스토니아 등 세 나라뿐이었고 나머지는 이를 오래도록 위반해 왔다.

유럽 재정위기가 정점에 달했던 2011년, 유럽 국가들의 GDP 대비 재정적자는 아일랜드가 13.0%, 스페인과 그리스는 9.6%, 영국 7.9%, 프랑스 5.2% 등 그 위반의 정도가 지나쳤다.

그러나 위기의 한 가운데에서 이들은 2011년 12월 재정협정(Fiscal Pact)을 통해 이 오래된 원칙을 재확인했고 불이행국에 대해서 벌금을 부과할 수 있도록 했다. 그 결과 금년도 예상으로는 이 원칙을 위반하는 나라의 숫자가 크로아티아, 프랑스, 스페인, 그리스, 영국 5개 나라로 줄어들고 재정적지의 크기도 크로아티아(4.8%)를 제외하고는 4% 이내로 줄어들 것이라고 하니 가히 놀랄만하다.

괄목할만한 재정건전성 회복

유럽연합 28개국 중 유로 화를 단일통화로 사용하는 유로 존 19개국 사이에 거론되어 오던 은행연합(Banking Union)과 재정연합(Fiscal Union)의 창립은 아직 미완성이다. 그러나 은행연합의 전 단계로서 '레졸루션 펀드'(Resolution Fund)라는 것을 만드는데 까지는 성공했다. 대형은행의 위기 발생시에 해당국 정부를 경유하지 않고 직접 뛰어 들어 해결하는 기구를 말하는데 그 방법에 관하여 최초로 베일 인(Bail-in) 개념을 도입한 것이 주목할만한 성과로 평가된다.

이는 외부로부터의 구제, 즉 베일 아웃(Bail-out)을 하기 이전에 필요한 금액의 일정 부분을 내부에서 떠안아야 한다는 원칙을 말한다. 여기서 말하는 내부에는 기존의 주주, 채권자 및 예금자가 포함된다. 베일 아웃을 함에 있어서도 전체의 5%는 해당국의 정부가 부담하도록 하고 그 나머지만을 레졸루션 펀드가 부담한다는 것이다.

재정연합은 개별국의 주권의 일부를 양도하는 것으로서 더 어려운 숙제로 남는다. 그러나 유로 채권 발행에 대한 합의라는 큰 진전을 이루었다. 레졸루션 펀드 등의 재원을 마련하기 위한 채권을 발행하는데 있어 유로 존 19개국 정부가 그 채권의 상환을 연대하여 보증한다는 합의다. 공동으로 보증책임을 지게 되는 이상 개별국의 재정에 대해 공동으로 감독하는 근거가 자연스럽게 정당성을 띄게 된다.

지난 4일 이태리에서 벌어진 개헌 국민투표 부결 사건은 그 배경에 대한 좀 더 깊은 이해가 요구된다. 언론재벌 출신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총리의 불명예 퇴진 후 들어선 마리오 몬티의 '비정치인' 테크노크라트 내각(2011-2013)은 뜻했던 개혁의 과제를 다 이루지 못했다.

유럽 역사상 최연소 총리, 마테오 렌지가 그 과제를 이어 받았는데 그는 "부당해고 되었던 자는 재고용해야 한다"는 취지의 노동법 18조에 대하여, 고용주 입장에서는 이 규정 때문에 더 많은 사람들을 정규직으로 채용하는 것을 꺼려할 수 밖에 없다는 점을 이유로 들어 노동계와 정치권의 반대를 극복하고 의회의 최종 승인을 이끌어 내는 데 성공했다.

재정위기가 불러 들인 많은 개혁들

국민투표에 부친 개헌의 목적은 상원의 권한을 대폭 축소하는 것이었다. 이태리는 양원제를 채택해 왔는바 630명의 하원 의원과 315명의 상원 의원은 연령제한에 있어 각각 25세 이상 및 40세 이상으로 차이가 있을 뿐 하는 역할은 큰 차이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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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국주 곶자왈공유화재단 이사장(전 제주은행장).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개헌안의 쟁점은 상원 의석을 95명으로 대폭 줄이고 하원이 통과한 법안에 대해서 상원의 동의가 필요한 법령의 종류를 극히 일부로 제한하는 것이었다. 의욕이 넘쳤나 보다.

미국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가? 유로화의 대 달러 환율이 약세인데도 불구하고 유로 화 표시로 발행되는 유럽 주요국들의 중장기 채권들이 세계 기축통화인 달러 화 표시로 발행되는 미국의 국채보다 다 낮은 금리로 시장에서 소화되고 있는 현상에 대해서 보다 심각한 관심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 김국주 곶자왈공유화재단 이사장(전 제주은행장)

* 이 글은 <내일신문> 12월 14일자 ‘김국주의 글로벌경제’ 에도 게재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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