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밥상 이야기> (18) 콩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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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콩국. ⓒ 김정숙

첫눈이 내렸다. 제주도에서 첫눈은 늦게 내릴수록 좋다. 대개는 감귤 수확 대목에 첫눈이 찾아온다. 익을 대로 익은 감귤이 동상을 입을 수도 있기 때문에 농부들은 눈이 내리기 전에 수확을 끝내려고 애를 태운다. 부족할 대로 부족한 일손을 도와주는 건 오로지 날씨뿐이다. 올 겨울은 들어서는 모습이 따듯했다. 가을보다 더 쾌청한 하늘까지 선보이며 보름가까이 좋은 날씨로 일손을 거들었다. 그리고 내리는 첫눈이라 더욱 반갑다.

중산간 마을에 산다는 건 첫눈을 일찍 맞이할 수 있어서 좋다. 눈 내리는 날은 콩국이 제일이다. 방앗간에서 갈아온 햇콩가루를 넉넉히 넣고 투박하게 끓인 콩국은 고소하면서 영양만점인 겨울별미다. 

콩을 장만하면 메주용 콩을 떼어 놔두고 방앗간에 가서 겨우내 국과 죽 끓일 콩가루를 내어 오는 것으로 또 하나의 겨울 준비는 끝난다. 콩국은 나무랄 데
없이 훌륭한 음식이다. 어떻게 이런 발견을 했을까 먹을 때 마다 감탄을 한다.

멸치, 다시마 등으로 국물을 낸다. 국물이 끓으면 배추나 무를 넣는다. 배추나 무가 살짝 익으면 불을 줄이고 물에 되직하게 갠 콩가루를 국에 풀어 넣는다. 그 위로 간이 될 만큼 굵은 소금을 뿌린다. 소금을 뿌린 다음엔 휘 젓지 말고 불을 약하게 하여 끓어 넘치지 않게 익힌다. 콩가루가 익으면서 순두부처럼 엉킨다. 배추나물도 좋지만 어린 무와 무청을 함께 넣어 끓여도 맛있다. 

어릴 적에는 그냥 먹었다. 나이 들면서 곰곰 따지다 보니 참 기특한 음식이다. 콩을 많이 먹어야 좋다기에 콩으로 만든 이런 저런 식품들을 장바구니에 챙겨 담는다. 겨울엔 그런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된다. 다이어트를 걱정하는 딸아이도 콩국만큼 좋은 식단이 없다. 무와 무청을 듬뿍 넣고 끓인 콩국은 국만으로도 배가 부르다. 아무 때나 끓일 수 있는 콩국이지만 눈 내리는 날 먹는 콩국과는 비교할 수 없다.

올 가을 겨울은 유독 감정 소모가 심하다. 눈을 감을 수도 귀를 막을 수도 없다. 가만히 있어도 나락으로 떨어지는 감정이 춥고 춥다. 잘 마른 솔잎이 차분히 타는 아궁이 앞에 앉고 싶다. 끓되 넘치지 않는 어머니 콩국처럼. / 김정숙(시인)

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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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 시인은 제주시 애월읍 납읍리 출신이다. 2009년 매일신문 신춘문예 시조부문에서 당선됐다. 시집으로 <나도바람꽃>을 펴냈다. 젊은시조문학회, 한국작가회의, 한국시조시인협회, 제주작가회의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30여년 동안 제주도농업기술원에서 일하다 2016년 2월 명퇴를 하고 서귀포시 남원읍 수망리에서 귤 농사를 짓고 있다. <제주의소리>에 ‘제주 밥상 이야기’를 통해 제주의 식문화를 감칠맛 나게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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