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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모 사피엔스, 이야기하기 위해 진화하다

2017년 01월 02일(월) 08:30
노대원 교수 news@jejusori.net
[BOOK世通, 제주읽기] (42) 브라이언 보이드 『이야기의 기원』/노대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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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브라이언 보이드 『이야기의 기원』남경태 옮김, 휴머니스트, 2013.
세상엔 온갖 이야기들이 넘쳐 난다. 재미난 소설과 영화, 드라마와 웹툰은 오늘도 계속 창작되고 있다. 독자와 관객들은 이야기 없이는 인생도 없다는 듯이 이야기에 매혹된다. 물론 영화나 소설에만 이야기가 있는 것은 아니다. 짧은 광고 영상이나 뉴스에도 자세히 살펴보면 크고 작은 이야기가 있고, 무릎 위에 손자들을 앉힌 할머니, 할아버지의 소박한 옛날이야기도 있는 법이다. 그러고 보니 세상에는 정말 이야기가 없는 곳이 없다. 요즘에는 교육에도 이야기가 필요하다며, 스토리텔링 교수법이 서점가에서 큰 인기를 얻고 있다. 바야흐로 이야기의 시대가 온 것일까? 

그런데 이야기는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우리 삶에 본질적인 것일지도 모른다. 뉴질랜드의 영문학자 브라이언 보이드는 이야기는 인간의 본성과 진화와 관련이 있다고 말한다. 찰스 다윈이 『종의 기원』에서 진화론을 통해 인간을 이해하는 관점을 혁명적으로 제시했다면, 브라이언 보이드는 『이야기의 기원』에서 진화론적 관점에서 이야기와 문학을 설명하고자 했다. 진화론이 설명력이 탁월한 과학적 이론이라면 이것이 문학에도 적용되지 못할 까닭은 없다. 이야기와 문학 역시 인간 삶의 한 부산물이기 때문이다. 진화론은 생물학이나 과학 이론에 머물지 않고, 점점 영역을 넓혀 인간의 ‘생존과 적응’이란 열쇳말을 중심으로 인간 사회와 문화를 폭넓게 이해하려고 한다. 

과학과 기술이 우리 삶의 변화를 주도하는 시대에 문학과 인문학마저 과학의 영역에 침범당한다고 우려하는 일부 인문학자들도 있다. 하지만 통섭과 융합은 이 시대의 구호로 울려 퍼진 지가 오래다. 물론, 근거 없는 배척만큼이나 맹목적인 융합에 대한 옹호 논리도 어리석기는 마찬가지일 것이다. 학문과 사유의 경계를 허무는 동시에 통섭이 하나의 시각을 향한 단일한 방향으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닌지 의심을 늦추어서는 안 된다. 브라이언 보이드의 ‘진화비평’은, 그런 의미에서, 과학과 문학, 또는 과학과 인문학의 만남에서 하나의 시금석이 될 수 있다. 진화 이론이 문학과 인문학적 사유에 새로운 빛을 던져줄 것인지 궁금한 사람은 이 책을 서둘러 펼쳐보길 바란다.

먼저, 이 책은 문학과 문화에 대한 ‘생물문화적 접근’을 지향하고 있다는 점에서 ‘포스트모던’ 이론이라고 부르는 근래 인문학 전반의 경향과 다른 점을 보인다. 인간은 생물학적인 동시에 사회문화적 존재로서, 인간을 깊이 이해하기 위해서는 언제나 두 관점이 모두 필요하다. 그런데 놀랍게도 인문사회과학은 데카르트의 심신 이원론에는 언제나 반대해왔으면서도 정작 과학과 인문학적 사유를 철저하게 분리시켜 ‘영혼’과 ‘신체’를 따로 분리해둔 꼴이었다.

20세기 후반의 인문사회과학의 성과는 다양한 차이들을 존중할 만한 관점을 우리에게 제안했다는 것이다. 보편성과 획일성의 폭력에 맞서서, 혹은 서구와 남성, 기독교와 백인의 주류적이고 지배적인 시각에 맞서서 다양한 존재들의 다양한 견해들을 수용할 수 있게 된 것은 이론‘들’의 폭발과 무관하지 않다. 하지만 그만큼 지금의 인문사회과학자들은 차이와 정체성의 정치학에 사로잡혀 인간 본성이나 보편성을 간과해왔다. 생물문화적 접근은 과학과 인문학의 만남 속에서 인간의 보편적 측면 또는 본성에 관해서 관심을 갖는다.    

브라이언 보이드는 스토리텔링은 인간의 생존과 적응의 산물이라고 설명한다. 

“나는 바로 이것이 스토리텔링의 한 기능이라고 본다. 우리가 사회적 상황에 익숙해지면 다양한 사회적 정보를 처리하는 능력이 향상되고, 까다롭고 섬세한 선택으로 가득한 다른 정신이나 상황을 추측할 수도 있으며, 복잡한 시나리오를 전개하는 것도 가능하다. […] 스토리텔링은 지금 여기를 넘어 사고하는 능력을 발전시킴으로써 우리가 주어진 것을 무시하지 않으면서 그것의 제약을 넘어 더 유연하게 대처하고 우리 자신의 조건과 더 유사한 것에 천착할 수 있도록 해준다.” (78~79쪽)

우리가 어린 시절부터 이야기를 즐기는 이유는 우리 삶의 존속과 관련된다. 예술은 ‘인지 놀이’로서, 이야기는 추론과 같은 우리의 정신적 능력을 발달시킨다. 뿐만 아니라 이야기는 사회적 정보를 수집하고 타인을 이해하도록 도와준다. 이야기를 즐기는 것에는 생각보다 큰 이익이 있는 것이다. 이야기는 개별 존재들의 삶을 유리하게 하는 데만 기여하는 것은 아니다. 진화론은 ‘적자생존’의 법칙뿐만 아니라 ‘협력의 진화’에 관심을 갖는다. 사회적 존재로서 인간은 협력을 촉진하고 비협력적 행위나 부도덕한 행위를 징벌하고 감시하기 위해 노력해왔다. 이야기는 바로 그러한 사회적 협력에 크게 기여한다. 

기어이 ‘권선징악’이나 ‘시적 정의’가 실현되고야마는 수많은 소설과 영화의 결말에서도 그렇지만 실제 우리 삶의 이야기에서도 사회적 협력의 문제는 중요하게 다루어진다. 이를테면, 우리가 박근혜와 최순실의 국정 농단을 그토록 이야기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나아가, 우리가 남의 뒷담화를 그토록 좋아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한담(閑談)에도 사회적 의미가 있다고 한다. 한담은 주로 타인의 도덕적, 사회적 위반 행위에 관한 것이 대부분이며, 선행에 관한 한담은 10%에도 지나지 않는다. 협력을 위반하고 사회적 규범을 훼손한 자들의 평판을 통해서 우리는 집단과 공동체의 협력에 기여한다. 

브라이언 보이드는 예술과 이야기의 진화론적 이론을 제시한 뒤에, 이어서 고대 그리스의 서사시 『오뒷세이아』와 어린이를 위한 닥터 수스의 그림 동화책 『호튼』을 실제로 분석하면서 진화비평의 가능성을 타진해보고 있다. 진화론이 그저 생물학 이론만이 아니라 인간의 사회와 문화 전반에 걸쳐서 뛰어난 설명력을 갖고 있기에 인간 삶의 모든 국면들을 다루는 이야기 역시 진화론적 관점에서 살펴볼 수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진화론 역시 만능의 이론은 아니며, 비판 받아야할 여러 모순과 결함들이 존재한다. 

이를테면, 저자가, 진화심리학을 활용해서 남성 예술가들이 여성 예술가보다 더 많은 이유를 남성이 여성보다 번식의 변이가 더 크다는 점에서 찾는 것(277쪽)은 흥미롭지만, 그다지 설득력 있지 못하다. 번식에 실패한 남성과 성공한 남성의 자식 수의 차이가 여성의 경우보다 훨씬 크다는 것은 인정할 수 있다. 그러나 여성 예술가가 더 적은 이유는 남성중심주의적 사회 시스템의 압박이 더 크다고 보는 편이 더 타당할 것이다.

또한 성공한 예술가들은 예술 향유층의 관심을 받으며 여러모로 생존과 적응에서 유리하지만 모든 역사적 시기에 모든 예술가가 그랬던 것도 아니다. 또한 예술가들은 자식을 남기기보다는 문화적 자식을 번식시키는 데 골몰한다. 특히, 근대의 예술가는 오히려 실패한 사회 부적응자의 이미지가 더욱 강하다. 때때로 그들은 국외자(outsider)로서의 정체성에 크나큰 자부심을 느끼기까지 한다.

바로 이 점에서 우리는 진화비평의 강점과 약점을 포착한다. ‘인간 본성’에 관한 이론으로서 진화비평은, ‘통계적 평균’을 점유하는 다수의 인간들이 관심을 갖고 향유해온 전래 예술과 대중 예술을 잘 설명해낸다. 하지만 개성적이거나 예외적인 이야기와 예술, 또는 현대적 이야기에 대해서는 섬세한 설명이 어려워진다. 이러한 문제를 극복하면서 진화비평이 인간의 행위와 욕망을 이해하도록 돕는 흥미로운 관점으로 발전해나갈 수 있을지 지켜볼 일이다. 진화비평도 진화할 것이다. 

▷ 노대원 제주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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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강대학교 국어국문학·신문방송학 전공, 동대학원 국문학 박사과정 졸업

대산대학문학상(평론 부문) 수상 

2011년 『문화일보』 신춘문예 평론 부문 당선

제주대학교 국어교육과 조교수 재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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