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2) 개헌보다 선거제도 개혁이 먼저다 / 하승수 변호사(비례민주주의 공동대표) 

1000만 촛불의 함성과 함께 정유년 새해를 열었다. 세계가 대한민국 국민의 위대한 위력을 주목하고 있다. 촛불민심이 원하는 바가 아바타 대통령을 몰아내고 그 부역자들을 처벌하는 것이 전부일까. 촛불민심은 그보다 민의를 제대로 반영하기 위한 정치개혁, 선거개혁이 우선이라는 것이 중론일 것이다. 또, 국가권력이 아닌 국민권리를 강화하는데 있을 것이다. 30년 만에 가동한 개헌논의가 생산적이어야 하는 이유다. 여기에 대통령 탄핵이 구체화되면서 국가개조의 골든타임을 희석시키기 위한 협잡과 음모로 ‘개헌’을 만지작 하는 세력이 있어선 안된다는 것이 국민의 목소리임을 명심해야 한다. 이번 개헌은 국민들이 참여하는 개헌이 되어야 한다는 원칙 아래, 하승수 변호사의 ‘선거제도 개혁과 개헌, 어떻게 볼것인가’라는 글을 세차례로 나눠 싣는다. <편집자>

#  연동형 비례대표제의 장점과 뉴질랜드의 사례

전 세계에는 온갖 다양한 선거제도가 존재한다. 그런 선거제도 중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것은 두 가지이다.

하나는 미국, 영국, 캐나다 등이 택하고 있는 소선거구제이다. 지역구에서 1등을 하면 당선되는 이 제도에서는 득표율과 의석비율간의 불일치(불비례성)이 발생하고, 자연스럽게 거대 정당중심의 양당제 구조가 형성되기 쉽다. 지역구에서 1등을 하려면 거대정당의 공천을 받아야 하기 때문에, 돈, 권력, 인맥 등에서 유리한 사람들로 국회가 채워지기 쉽다.

다른 하나는 정당득표율과 의석을 최대한 일치시키는 제도이다. 이런 방식의 선거제도도 세부적으로 들어가면 다양한 방식이 있다. 지역구 선거를 하지 않고 정당이 얻은 득표율로만 정당별 의석을 배분하는 방식을 택하는 경우도 있고, 지역구 선거를 하면서도 전체 의석은 정당득표율에 따라 배분하는 방식도 있다. 어떤 방식이든 결론적으로 정당득표율과 의석비율을 일치시키는 선거제도를 ‘연동형 비례대표제’라고 부른다면, 대부분의 복지선진국들은 이런 식의 선거제도를 갖고 있다. 덴마크, 스웨덴, 핀란드, 노르웨이, 독일, 벨기에, 네덜란드, 스위스, 오스트리아, 뉴질랜드 등 세계최고 수준의 복지를 누리는 국가들이 여기에 해당한다. 

이렇게 비례성이 보장되는 선거제도를 택하고 있는 경우에는 자연스럽게 다양한 정당들이 경쟁하고, 어느 한 정당이 과반수를 차지하기 어려운 ‘다당제’ 구조가 정착된다. 그리고 여러 정당들이 연립정부를 구성하는 것이 불가피하게 된다. 이를 ‘합의제 민주주의’라고 부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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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제도를 통해 형성되는 정치구조는 그 사회의 행복수준에 큰 영향을 미친다. 민주주의가 잘되는 나라 12개 국가를 뽑아보면, 노르웨이, 아이슬란드, 스웨덴, 뉴질랜드, 덴마크, 스위스, 캐나다, 핀란드, 호주, 네덜란드, 룩셈부르크, 아일랜드같은 나라들이 나온다(EIU 발표 민주주의 지수). 이 12개 나라는 ‘삶의 질’이나 행복에 관한 조사에서도 세계 최고수준을 보이는 국가들이다.

그런데 이 국가들의 대부분은 정당득표율에 따라 의석이 배분되는 선거제도(이하 ‘연동형 비례대표제’라 한다)를 택하고 있고, 다당제 정치구조를 갖고 있다. 대표적으로 UN세계행복보고서에서 행복1등 국가로 나오는 덴마크의 경우에는 175석의 국회의석이 정당득표율에 따라 배분되는 선거제도를 갖고 있다(페로제도와 그린란드에 배정되는 4석은 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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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국제투명성기구가 발표하는 2015년 부패인식지수 조사에서 1~7등까지 한 국가들을 보면, 덴마크(1위), 핀란드(2위), 스웨덴(3위), 뉴질랜드(4위), 네덜란드(5위), 노르웨이(공동5위), 스위스(7위)이다. 이 나라들의 공통점은 정당 득표율에 따라 국회 의석이 배분되는 선거 제도(연동형 비례대표제)를 택하고 있다는 것이다.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택한 국가에서는 어느 한 정당이 독주를 할 수가 없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정당간에 견제와 감시가 이뤄질 수밖에 없다. 최고권력자인 총리라고 하더라도 다른 정당들의 협력이 없으면 정권을 유지할 수 없다. 최순실의 숙주가 되는 '박근혜'가 원천적으로 불가능한 것이다. 그래서
‘박근혜-최순실 예방법’은 선거제도 개혁일 수밖에 없다.

흔히 다당제는 정치가 불안정하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정치안정성에 대한 조사결과는 그렇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세계은행에서 발표하는 정치안정지수(Political Stability Index)에서 다당제 국가들은 오히려 정치안정성이 높은 국가들이 많은 반면 오히려 양당제 국가들이 불안하게 나타났다. 2014
년 발표된 순위에서 양당제 국가인 대한민국은 191개국 중에 84위, 미국은 60위에 그쳤다.

한편 1993년 선거제도 개혁을 한 뉴질랜드의 사례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것이 많다. 뉴질랜드는 단순 다수 소선거구제로 선거를 치러왔지만, 정당득표율과 의석비율이 불일치하는 문제 때문에 선거제도를 개혁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범국민적으로 형성되었다. 그 결과 뉴질랜드는 독일식 ‘연동형 비례대
표제’로 선거제도를 획기적으로 바꿨다.

아래에서 보는 것이 뉴질랜드의 바뀐 투표용지이다. 대한민국처럼 정당투표 1표, 지역구 투표 1표를행사한다. 다만 뉴질랜드는 하나의 투표용지로 정당과 지역구에 각각 투표를 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아래의 투표용지에서 왼쪽 란은 정당투표 란이고, 오른쪽은 지역구 후보에게 투표하는 란이다. 왼쪽이 정당투표 란인 것은, 그만큼 정당투표를 더 중요시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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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권자가 할 일은 왼쪽의 정당투표 란에서 지지하는 정당을 골라서 찍고, 오른쪽의 지역구 후보 란에서 지지하는 지역구 후보를 골라서 찍으면 끝이다.

대한민국과 근본적으로 다른 점은 뉴질랜드는 왼쪽의 정당투표 란에서 얻은 득표율을 기준으로 전체 국회의석을 배분한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지역구가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오른쪽의 지역구 후보들이 얻은 표를 계산해서 지역구 당선자를 정한다. 그리고 각 정당이 득표율에 따라 배분받은 의석 숫자에서 지역구 당선자는 먼저 확정이 되고, 나머지 당선자는 각 정당이 작성한 비례대표 후보자 명부의 순서대로 확정하는 것이다.

2014년 총선의 예를 들어보면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 있다. 뉴질랜드의 전체의석은 120석이고, 지역구는 71개였다. 지역구에서는 1등이 당선되는 방식이다. 그렇지만 비례대표 49석이 일종의 ‘조정장치’로서 역할을 한다.

아래의 <표5>에서 보는 것처럼, 정당들의 전체 의석은 투표용지 왼쪽 란의 정당투표에서 얻은 득표율에 따라 배분된다. 예를 들면 제1당의 지위를 얻은 국민당의 경우에는 47.04%를 얻어서 121석 중에 총 60석을 배정받는다. 그리고 그 60석 중에 자기 정당의 지역구 당선자 41명에게 먼저 국회의원 자리를 주고, 나머지 19석은 국민당의 비례대표 후보 명부에 올라 있는 순서대로 국회의원 자리를 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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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노동당의 경우에는 25.13퍼센트를 득표해서 득표율에 따라 총의석 32석을 배정받는다. 그런데 지역구 당선자가 27명이나 되므로 지역구 당선자에게 배정하고 나면 남는 의석이 5석뿐이다. 그래서 노동당 비례대표 후보 명부에 이름을 올린 사람 중에서는 5명만 국회의원이 되는 것이다.

제3당인 녹색당의 경우에는 지역구 당선자가 아예 없다. 그렇지만, 정당득표율이 10.70퍼센트이기 때문에 14석을 배정받고, 14명의 국회의원 모두를 비례대표 후보 명부에 이름을 올린 사람이 맡게 된다.

이처럼 뉴질랜드는 1인 2표 중의 1표를 지역구 후보자에게 투표하고 지역구 당선자를 정하지만, 전체 국회 의석은 정당득표율에 따라 배정되는 시스템이다. 각 정당은 자기 정당의 득표율에 따라 배정된 의석수 내에서 지역구 당선자에게 우선권을 주는 셈이다.

간혹 정당별로 배정되는 총 의석 숫자보다 지역구 당선자가 더 많은 경우도 나온다. 예를 들면 득표율에 따라서는 10석을 배정받았는데, 지역구에서 선전한 곳들이 많아서 지역구 당선자가 11명이 나올수 있는 것이다. 그럴 경우에는 ‘초과의석’을 인정하는 제도를 뉴질랜드는 채택하고 있다. 앞서 든 예
로 보면, 지역구 당선자 11석을 전부 인정해주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본래 배정된 총 의석수에서 1석이 추가되게 된다.

사실 뉴질랜드 국회의 본래 총 의석은 120석인데, 2014년 총선에서 121석이 된 이유는, 득표율에 따르면 의석을 배정받지 못하는 ‘유나이티드 퓨처’가 지역구에서 당선자를 내는 바람에, 초과의석이 1석 발생했기 때문이다.

뉴질랜드는 이처럼 선거제도를 바꾼 후에 자연스럽게 다당제 국가로 전환했다. 그리고 연립정부가 구성되었다. 정책의 변화도 일어났다. 인구의 다수를 차지하는 노동자, 사회적 약자, 소수자들을 위한정책들이 채택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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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정당들도 국회로 진입했지만, 기존의 거대정당들도 노동자들이나 사회적 약자들의 목소리가 귀를 더 기울이게 되었다. 그 결과 최저임금이 인상되었고, 소득세 최고세율을 33%에서 39%로 올리는 고소득층에 대한 증세가 단행되었다. 공공주택 임대사업이 개선되었고, 민영화되었던 산재보험이 국유화되었다. 노조의 설립을 장려하고 노조의 지위를 강화하는 고용관계법이 제정되었다. 그에따라 노동자들의 실질임금은 올라갔고, 고용안정성도 증대되었다. 2004년에는 가족수당 제도가 도입되어, 어린 자녀가 있는 저임금 노동자들에게 혜택이 돌아가기 시작했다.(최태욱, 한국형 합의제 민주주의를 말하다, 책세상, 2014, 321-322쪽) / 비례민주주의연대 공동대표, 변호사

 하승수 변호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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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호사였지만, 10년째 휴업중입니다. 국립제주대학교 교수를 지냈습니다. 참여연대, 풀뿌리자치연구소 '이음', 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같은 단체에서 활동했고, 2011년 가을부터 5년간 녹색당 사무처장, 공동운영위원장을 맡았습니다. 지금은 비례민주주의연대 공동대표를 맡고 있고, 득표율대로 의석을 배분하는 '연동형 비례대표제'로 선거제도를 전면개혁하는 운동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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