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남희, 제주사름으로 살기] 새해, 또 다시 날은 밝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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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심히 살아야했다. 지난 한 해는 부지런해야 했다. 시국이 어떤 시국이라고 게으름을 피울 수 있었던가. 일하느라 남들 여름에 휴가 갈 때 휴가를 가지 못해 이러다간 올해 휴가를 못 갈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덜컥 들었다. 허둥지둥 혼자 갈 만한 곳을 찾아보다 11월 말 캄보디아 씨엠립으로 날아갔다. 

홀로 여행 갔으나 도착한 날 무료 와이파이가 제공되는 호텔 로비에서부터 ‘그 분’ 생각뿐이었다. 앙코르 유적지를 허위허위 걷다가도 그 분은 어떻게 되셨을까 궁금했다. 저녁 식당을 가득 채운 전 세계 관광객들이 캄보디아 전통 댄스를 관람하며 여행이야기를 꽃피우는 것을 보면서도 나의 손가락은 부지런히 그 분의 소식을 찾아보고 있었다. 혹시나 했으나 역시나 그 분은 그 며칠 사이에 내려올 기미가 안 보였다. 

제주로 돌아온 휴가의 막바지인 토요일은 여독이 풀리지 않은 몸을 달래 시청 앞으로 직행해야 했다. 제주음악인들의 시국선언콘서트 ‘설러불라’가 열리는 날이었다. 몇몇 이들과 함께 기획을 준비했으나 혼자 휴가를 다녀온 ‘죗값’을 진행을 도우며 몸으로 때워야 했다. 비가 오는데도 불구하고 부지런히 그 분을 생각하는 도민들이 이렇게 많구나 실감하면서 몸살기를 달래며 휴가를 마무리했던 그 날, 나는 SNS 포스팅에 이렇게 적었더랬다.

‘내 휴가의 마지막을 이렇게 보내다니. 두고 보자 박ㄹ혜’

현재까지도 도민들은 월화수목금을 생업에 종사한 후 찾아오는 주말마다 어김없이 시청 앞을 가득 채우고 있다. 집회가 끝난 후엔 행진 할 때 눈여겨보았던 식당을 찾아 함께 촛불을 든 친구들과 소줏잔도 기울이며 ‘창조경제’를 실현하여야 한다. 

‘일주일간 너는 어떻게 살았니’ 소식과 함께 일하는 동안에도 틈틈이 챙겨보았던 그분과 일당들의 어이없는 행태에 대한 최신뉴스도 모자란 안주에 보태고 말이다. 안타깝게도 우리들이 이렇게 부지런히 움직여야 했던 것은 위정자들과 비선실세들이 먼저 부지런했기 때문이었다.  

김종 전 문체부 차관은 일이 너무 많아 피곤에 절다보니 눈 밑에 다크서클이 심각해 최순실일당이 팬더라고 불렀다고 하지 않았나. 이 자들의 국정농단이 대체 어디가 끝인지 쏟아지는 뉴스를 좇아가기 힘들 정도로 부지런히 잘도 해먹고 있었다. 

우리들의 근면성실과 인내심 테스트는 여기에서 끝이 나질 않는다. 이젠 매일 정해진 종류의 쓰레기를 정해진 시간 안에 클린하우스에 갖다버려야 한다. ‘저녁이 되면 오늘 뭐 먹지’에서 ‘오늘 뭐 버리지’로 생활에 개혁이 일어났으니, 그야말로 ‘저녁이 있는 삶’이 ‘버림이 있는 삶’이 돼버렸다. 야근 후 녹초가 되기라도 하면 그날은 큰일이다. 1인가구인 나로서는 그날의 미션을 수행하지 않으면 1주일동안 집안에 쓰레기를 안고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실은 이미 집안에 가득하다.)

아침에 출근하면서 오늘의 주인공을 확인하곤 한다. 오늘은 어디보자 누구의 날이니 오늘은 마침 ‘캔님의 날’이시군요, 부엌에 가득한 맥주캔님들이 드디어 가실 때가 되었구나 하고 
자동차 트렁크에 실었다가, 퇴근 무렵엔 까맣게 까먹고 머리를 치며 다시 일주일을 싣고 다닌 나로서는 이 강요당한 부지런함이 불편할 뿐이다.

그래도 뭐든 부지런하게 하면 개선과 발전을 이끌어내는 것처럼 방법은 찾아지게 마련이다. 도내 집회 역사를 새로 쓰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모여 촛불을 들면서도 불상사 한번 없이 평화롭게 진행되고 있다.  시청 앞 도로를 막고 자동차의 통행을 제한하는데도 간혹 차들의 열려진 창문에서 LED촛불이 쏘옥 나오며 행진하는 시민들을 향해 촛불을 흔드는 것을 보며 나는 울컥하고야 말았다.

중학생, 고등학생들이 단상에 앞다퉈 올라가 당당히 자신의 생각을 토해내는 사자후에 우리 미래가 어둡지만은 않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말이다. 집회 천막 한 구석을 차지하고 일반 시민들이 모여 자발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516도로 명칭변경 서명운동은 이 사태가 뿌리깊이 남아있던 어두운 독재정치의 잔재를 없애자는 생활정치로 발전해가고 있는 것도 보여준다. 

단상에 올라가 외치는 말들은 이 정부와 국정농단범죄자들을 규탄하는 것에 끝나지 않고 쓰레기요일제배출제를 비롯하여 환경, 교육, 탈핵 등 생활정치의 영역으로 확장되고 있다.     이쯤 되면 국민으로서, 도민으로서 자부심을 고취시켜줘서 그들에게 고맙다고 해야 할까. 우리는 더욱 부지런해지고 단련되고, 훌륭해지고 있다고.

새해, 또 다시 날은 밝았고, 우리는 부지런할 준비가 되어있다. 이 부지런한 전쟁의 시작은 당신들이었을지라도 끝판왕은 아닐 것이다. 특검팀에 출석하던 최순실이 감히 민주주의를 입에 올리며 마지막 발악을 할 때, “염*허네”를 연속 발사한 비정규직 청소노동자나, 최순실 변호인인 이경재 변호사에게 분노해 집에서 빨래를 하다 말고 달려가 항의한 시민이 보여주질 않는가. 

우리가 ‘돈이 없지, 가오가 없나’말이다. 

 조남희 시민기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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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0년 넘게 쭉 서울에서만 살았다. 잘 나가는 직장, 꽤 많은 월급, 떠들썩한 도시의 삶은 그녀에게 허울 좋은 명함, ‘소맥’을 제조하는 기술, 만성적인 어깨 통증과 뱃살을 남겼다. 삶이 전혀 행복하지 않다고 느끼던 어느 날, 미치도록 좋아하던 제주로 왔다. 이곳에서라면 숨통이 트이고, ‘조남희’다운 삶을 시작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푸른 섬 제주에 정착한 지 4년이다. 제주살이에서 겪은 다사다난 좌충우돌 이야기를 ‘서울 처녀 제주 착륙기’라는 제목으로 <오마이뉴스>에 연재해 독자들의 뜨거운 관심과 응원을 받았다. 셰어하우스 ‘오월이네 집’을 운영하기도 했다. 제주에서 살아보려는 이들과 ‘개념 있는’ 정착을 꿈꾼다. 일하고 글 쓰고 가끔 노래하며 살고 있다. '푸른섬 나의 삶' 저자, 제주행복나눔마트협동조합 기획팀장, 온라인쇼핑몰 베리제주 점장을 맡고 있다. 2016년 <제주의소리>를 통해 ‘조남희, 제주사름으로 살기’를 연재하고 있다. *'사름'은 사람이란 뜻의 제주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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