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무병의 제주, 신화 2] (25) 차사본풀이 9-차사본5 강림차사3
강림차사본풀이 下

차사본풀이 마지막 이야기를 시작하며  

신화담론 25회로 차사본풀이를 마치게 된다. 너무 오래 연재를 쉬었던 것 같다. 두 번째 하늘 열두시왕 이야기, <시왕맞이>에서 저승이야기 차사본풀이를 풀며 10회를 이어오는 동안 많이 헤매었다. 그리고 인간에게 죽음의 문제는 쉽게 해답을 얻을 수 없는 것이란 진리를 얻었다. 죽음의 이야기는 죽음을 통하여야 얻을 수 있는 깨달음이기 때문이다. 사람이 죽어 저승차사를 따라 저승 가는 길은 또 다른 삶 저승의 삶의 시작이었다. 차사가 망자를 끌고 가는 이야기는 끝이면서 다시 시작인 것이니 결국 죽음을 통해 죽음에 대한 예절을 배우는 과정이 차사본풀이를 이해하는 일이었다. 빨리 두 하늘 이야기를 마치고, 이어서 26회 명감 사만이본풀이, 27회 지장본풀이, 28회 문전본풀이, 29회 칠성본풀이, 30회 도깨비본풀이로 제주의 일반신화 이야기를 끝내야겠다. 그러면 오늘은 차사본풀이 마지막 글, 죽음에 대한 마지막 명상 시간이다.

사람은 죽어서야 배우게 되는 이야기가 있었다. 이 세상 ‘이승’이 끝에 나타나는 곳, 황량하고 아득한 이승의 땅 끝 ‘미여지벵뒤’를 지나야 나타나는 저 세상 ‘저승’을 배우다가 아직은 죽지 않았기에 다시 이 세상에 돌아와 죽으면 지켜야 할 죽음의 법칙, 맑고 공정한 저승법을 배우고 돌아왔다. 그리고 나는 죽음은 한 마디로 정리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죽음은 죽어야 완성되는 법이기 때문이다.  나는 죽음에 대한 이야기는 정리하지 못한 채 마치고, 목숨에 관한 이야기, 단명한 삼십년(三十年)의 목숨을 삼천년(三千年)으로 바꾼 명감 사만이 본풀이를 끝으로 하늘 이야기를 마쳐야겠다. 그리고 차사본풀이 마지막 이야기는 죽음에 대한 예의, 장례법이 생겨난 의미, 그때부터 인간은 죽음에서 벗어날 수 없게 되었던 이유, 저승차사 강림이는 염라왕을 잡아 오면서 자신의 영혼을 맡기고 돌아왔기 때문에 영생을 가질 수 없었다는 이야기. 그러한 강림차사가 저승 갔다 온 얘기에서 만들어진 저승의 역법, '저승의 3일은 이승의 3년'이라는 새로운 사실, 강림이 저승 갔다 3일 만에 돌아와 보니, 이승의 달력은 3년이 지나, 강림이 부인은 남편의 3년 상을 다 치르고, 강림이 첫제사 하는 날 강림을 만났다는 마지막 이야기를 시작하겠다. 

마지막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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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차사본풀이 중 질치기. 저승가는 길을 닦는 장면이다. 제공=문무병. ⓒ제주의소리

저승차사 강림은 몸에 삼혼이 들자 오들렝이 일어났다. 정신이 들자 강림은 저승 올 때 두고 온 큰 각시가 생각이 났다. 강림은 먼저 큰 부인을 찾아갈 생각을 하며 길을 떠났다. 찾고 찾아 가다보니 캄캄한 밤이 깊었다. 어떤 비주리초막(오막사리)에 불이 배롱하게 켜 있었다. 저 집은 누가 사는 집인지 오늘밤엔 저 집에 잠시 유숙하고 날이 밝으면 큰 부인을 찾아가야지, 생각하며 집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이 초막은 바로 강림이가 저승가기 전에 두고 온 큰 부인이 집이었다. 부인은 강림의 첫 제사를 막 끝내고 올레 밖에 나와 걸명 잡식(雜食)해 ‘훅’ 하고 젯밥을 던지고, 모든 문을 다 든든하게 잠그고 안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문 열라, 문 열어. 나여 나.”

“예? 앞집 김 서방이면 내일랑 옵서. 제사 음식은 그때 드리쿠다. 뒷집의 이 서방도 내일 옵서. 내일 오면, 제사 음식 드리쿠다.”

“아이구, 이 사람, 나라 나. 이녁 서방 강림이.”

“오늘은 예? 우리 서방님 저승간지 연 삼년 되는 날이라 마씸. 이제야 막 첫 제사 끝냈수다” 하고 말하는 걸 보니, 큰 각시가 분명했다. 

이 날은 바로 강림이가 저승 갔다 3일을 살고 3일 만에 돌아온 날이었고, 강림이 각시는 이승에서 3년 상을 마치고, 남편의 첫 제사를 맞이해 막 제사를 끝내고, 걸명 잡식을 하고, 방안으로 들어가려는 바로 그 때였다. 

이를 보면 강림이 저승 갔다 3일 만에 돌아왔는데 보니 강림이 큰 부인은 이승에서 초상, 소상, 대상 다 치르고, 3년이 돼 첫 제사를 끝냈을 때 였던 것이다. 강림이 부인은 외쳤다. 

“쳇식게(첫제사)가 넘었수다. 낭군님아.”

이 말은 저승의 하루는 이승의 1년이라는 저승의 역법(시간법)을 말하는 대목이었다. 당신 첫제사가 끝났으니 3년이 지났다는 말이었다. 

강림은 “나 이녁 서방 강림이라” 외쳤고, 

무뚱에(창밖에)선 부인은 “당신 쳇식게 넘었수다” 외쳐가며, 큰 부인은 방안에서 “내 낭군이 분명하면 창구멍으로 관대 섶이나 내보입서” 하였다. 

강림이가 관대 섶이라 창구멍으로 내 보낸 것을 보니, 삼년 동안 입고 다니다 보니 바늘은 본메본장(증거물)으로 관대 섶에 한 쌈 놓아두었던 바늘이 모두 삭아서 남아 있는 건 녹 하나 남아있었다. 

“당신은 우리 서방이 틀림엇수다. 들어오십서.”

부인은 강림을 모시고, 부모형제를 모두 불러들였다. 

“봅서. 모두들 문을 엽서. 우리 낭군이 오랐수다. 아버님도 집에 오십서. 어머님도 오십서. 형제간들도 모두 들어들 옵서.” 

아버지가 들어왔다. 아버지는 들어오시자 오른쪽 손목을 잡고, 비새같이 울기 시작했다. 강림은 아버지를 오른쪽(右便)으로 모셨다. 

어머니가 들어오자 어머니는 왼쪽 손목잡고 비새같이 우시다가 왼쪽(左便)에 와 살짝 앉으셨다. 강림은 비새같이 울며 아버지와 어머니를 맞아했다.  

“설운 아버지. 내가 어시난 어떵헙디가?”

“설운 내 아들아. 느 어시난 마디마디 마디마다 생각나더라.” 

“아버지. 아버지랑 성주성편(姓主姓便) 마련하고, 오른쪽 손목 잡았으니, 아버지가 살다가 돌아가시게 되면, 왕대방장대(六項喪杖竹 : 여섯 마디로 된 왕대 상장喪杖) 마디마디 아버지를 생각하며, 연 삼년을 ‘아이고 아이고’ 하며 아버지 공을 갚아 드리쿠다(드리겠습니다).” 

“설운 어머님. 내가 어시난(없으니) 어떵헙디가?” 

“아이구. 설운 아기야. 네가 없으니, 여기 가도 가슴이 먹먹, 저기 가도 가슴이 먹먹하더라.” 

“어머니에겐 외주외편(外主外便) 마련하고, 왼쪽 손목 잡았으니, 어머님은 살다 살다 인간 세상을 하직하면, 동쪽으로 뻗은 머구낭방장대(머귀나무梧桐) 상장(喪杖) 막대를 해다가, ‘아이고, 아이고’하면서, 어머님 공을 갚아 드리겠습니다.” 

“설운 내 동생들아. 이 형님이 어시난 어떵해냐(어떻더냐)? 아이고. 형님. 모른 소리 맙서. 우리가 잘 먹고 잘 쓸 때는 형님 몫은 우리가 먹게 되니 더 많이 먹고, 형님 쓸 건 우리가 쓰니 더 많이 써서 기분은 좋았지만, 어디 다니다 남에게 매나 실컷 얻어맞을 때는, 아이고. 우리 형님이 계셨다면 권력이 좋아서 우리 편을 들어 도와줬을 걸 하면서, 형님 생각 절로 나옵디다.” 

“아이고. 그러니 형제간은 옷 위에 바람이라 풀어헤친 것만도 못하구나.”

이구는 십팔(2×9) 열여덟 각시들 어디 다 갔는지 살펴보니, 그 날 그 시간에 모두 동서로 서방 얻어서 다들 가버렸구나. 큰 각시만 우두커니 앉아 있으니, 강림이가 물었다. 

“설운 정녀야. 내가 어시난 어떵해냐?” 

“아이구. 모른 소리 맙서. 있을 땐 하도 기생 첩년들만 데리고 다니며 나를  저들롸도(괴롭혀도), 어시난(없으니) 한 마음 한 뜻인가 생각하면서, 소상(小喪)이나 넘기면 어디로 재가할까, 대상(大喪)이나 넘기면 어디로 가볼까 하던 것이 첫제사까지 앉아 있었수다.”

“그러니, 열 각실 얻어봐도 큰 각시가 큰 각시로구나. 아버님도 돌아갑서. 어머님도 돌아갑서. 형제간들도 다 돌아가라. 소용없다” 하고 모두 보내버리고 시집가고 장가갈 때도 사랑 한번 못 풀었던 그날 밤에 열두 사랑을 다 풀었구나. 그렇게 열두 사랑 다 풀다 보니, 동 새벽이 하얗게 밝았구나. 

신 새벽이 밝으니 앞집의 김 서방, 뒷집의 이 서방은 엊저녁 강림이 첫제사 넘었으니 퉤물(제사지낸 뒤에 남은 음식)이나 얻어먹자고 강림이 큰 각시 사는 집에 가서 보니, 문은 돌아가며 탄탄하게 잠가버렸구나. 이거 이상한 일이로다. 밝기 전부터 일어나서 다니던 사람이 어째서 문을 다 잠갔을까? 이건 아무래도 수상하다. 우리가 창구멍이라도 뚫어서 보자. 손가락에 침을 적셔 창구멍을 뚫어 거기로 눈을 쏘아보니, 머리는 두 개가 되는데, 몸은 하나가 됐더라. "아이고. 우리 가서 밀고라도 해버리자" 가서 보니, 강림이는 저승 간다 해놓고. 낮엔 보니 평풍 뒤에다 살림을 차리고, 밤이 오면 큰 각시랑 한 이불 속에서 살림을 살고 있었다고 원님한테 가 밀고를 하였다. 밀고를 해버리니, 강림을 잡아다가 연단 위에 세웠구나. 

큰 칼을 씌운다. 자객(刺客)놈을 부른다. 칼춤을 춘다. 앞밭에는 벌통(형틀)을 걸고, 뒷밭엔 작두(斫刀) 걸어 강림을 죽이려 하였다. 

강림은 “아이구. 원님. 내일 모래 사오 시(巳午時)까지만 기다렸다가 1분 1초라도 늦어져 저승 염라왕이 오지 않는다면 나를 죽여도 좋습니다. 그때까지만 기다려 주십서” 하니, 

원님은 “어서 그건 그렇게 하라” 하였다. 

아닌 게 아니라 사오 시(巳午時)가 되니, 동쪽으로 검은 구름이 둥글둥글 떠 오고, 서쪽으로 검은 구름 둥굴둥굴 떠 왔다. 굵은 빗발 가는 빗발 엄신둠신 내려왔다. 삽시간에 날씨가 궂어 비 날씨가 되었다. 너른 목에 번개 치고, 좁은 목에 벼락 쳤다. 아침이 되니, 염라왕이 동헌(東軒)마당 연단 위로 턱하고 올라섰다. 벼락 천둥이 치자, 모두 다 달아나 숨어버렸다. 우두커니 서 있는 건 강림인데 큰칼을 씌워버리니 뛰지도 기지도 못해 서있었다.  

“강림아. 너 지금 뭘 하고 섰느냐?” 

“아이구, 염라대왕님. 모르는 소리 하질 맙서. 1분 1초만 늦게 염라왕님이 내리셨다면, 난 목숨을 바치게 돼 있었습니다.”

“야. 저 집은 누가 지었느냐?” 

“강태공서목시(영등산 덕든 나무를 베어다 집을 짓는다고 하는 목수 신神)가 지었습니다.” 

“어서 강태공서목시를 불러라” 불러 오니, 

“너 저 집 지을 때 기둥은 몇 개를 세웠느냐?” 

“스물 네 기둥을 세웠습니다.” 

“그럼 네가 세운 기둥을 세다가 네가 세우지 않은 기둥이 나오면, 톱을 가져다가 켜버려라” 하였다. 굴묵(온돌 아궁이)에 공짓(控柱)기둥은 세다 가, “이건 네가 세운 기둥이 아닙니다” 하니, 어서 켜라 하여 톱을 가져다가 켜다보니 기둥에서 자주피(紫朱血)가 벌컥하고 쏟아졌다. 그때는 염라왕이 보고 있을까 봐 관댓섶으로 북하고 닦아버렸다. 그때부터 홍포관대도 붉은 것을 입는 법이 생겨나게 됐던 거다. 

그리고 상량식(上樑式)을 하려면 닭 모가지 끊어 네 귀에 피 묻히는 법도 생겼습니다.

원님이 나오니 염라왕이 물었다. 

“원님. 원님은 어째서 나를 청하였소?” 

“아이구, 염내왕 님. 그게 아닙니다. 사실은 이러고저러고 하여 이 고을 사는 과양생이지집년이 아들 삼형제를 낳고, 아들 삼형제가 한 날 한 시에 과거를 하고 돌아오는 날, 아들 삼형제 다 죽었으니, 얘기를 하다하다 지쳐서 염라왕님을 청하였습니다” 하니, 

“그러면, 어서 가서 광양생이지집년을 불러들이거라.” 과양생이지집년을 불러다가, “너는 무슨 죄를 지은 일이 없느냐”, “아이구. 저는 죄란 건 아무런 죄도 지은 일이 없습니다.” 

“너희 아기들 어디 묻었느냐?” 

“앞밭에 뒷밭에 가매장(假埋葬) 하였습니다”, 

“어서 파 보라” 하여, 파 보니, 아무 것도 본메본장(證據物)이 아무것도 없었구나.

“너에게 정말 아무 죄도 없느냐.” 

“아이구. 죄라는 건 아무런 죄도 지은 일이 없습니다.” 

“이래도 바른 말을 못하겠느냐? 어서 말을 하라.” 

그래도 아무 죄가 없다고 끝까지 우겼다. 

고을에는 어른 아이를 막론(莫論)하고 거리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물바가지를 들고 나온 사람들은 다 그릇을 들고 나와 주천강연내못을 다들 퍼내기 시작했다. 연못은 푸다 봐도 물은 갑돌고, 푸다 봐도 갑도니, 염내왕 님은 이 송악낭 막대기를 내놓아 물을 한 번 탁하고 후려치니 물은 저절로 바짝 말라버렸다. 물아래를 보니 동경국 버물왕 아들 삼형제가 죽어서 좋은 살은 썩어 시냇물에 흘러버리고 뼈만 솔그랭이(고스란히) 남아있었다. 

“야. 과양생이지집년아. 어서 와서 눈으로 보거라. 이래도 바른말 못하겠느냐?”, “아이구. 염내왕님. 죽을 죄를 졌습니다. 살려줍서” 하며, 열 손가락 삭삭 비볐다. 그때는 피 오를 꽃, 살 오를 꽃, 도장놀 꽃, 말을 하는 꽃을 염내왕이 가져다 차례차례 놓고 송악낭 막대기로 연 세 번 후려치니 봄잠이라 너무 잤습니다 하며 와들랭이 일어나는 것이었다. 아이구. 설운 아기들아, 물아래 누워 얼마나 고생하였느냐? 아이구. 보고픈 아버지도 찾아가려무나.  보고픈 어머니도 찾아가려무나. 이 아기들 삼형제는 보내었다.  

일곱 생인 아홉 장남 거느린다. 말꼬리에 쇠꼬리에 묶어 놓고 형틀에 달아매어 거리거리를 다 돌았다. 나무 갈피마다 어느 골짜기마다 하도 지릉지릉 끌고 다니다 보니 과양생이네 두갓이 갈리갈리 찢어져 뼈만 남았구나. 

도고(掉臼) 방아에 놓고 열 칠팔 세 난 청비바리 아기씨들 힘 때 좋다. 어서 오라하여 닥닥 부숴 허풍(虛風)바람에 불려버리니 모기(蚊) 각다귀로 환생하였더라. 여름 되면 귀에 와서 과양과양 아이구 나 죽어갈 때 아무렇든 말려주지 않았다고 하며 이녁대로 이녁 귀차지(따귀)도 착하게도 때리는 법이 되었수다. 

염내왕님이 올라서려니 일곱 생인 아홉 장남들 와서 아이구. 염내왕님. 우린 사람 죽였던 죄 있다고 어디가면 끼워주지도 않으니 이 노릇 어쩌면 좋습니까 하니 너희들은 그러면 사람이 죽어서 귀양 낼 때 사젯상(使者床) 밑으로 일곱 신앙(新) 아홉 구양(舊)으로 들어서 상을 받는 법을 마련해 놓고 가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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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차사본풀이 중 혼씌움. 저승가는 망자의 혼을 부르는 장면. 제공=문무병. ⓒ제주의소리

“원님. 원님. 강림인 하도 영리하고 똑똑하니, 강림인 나를 줍서. 나 저승에 데려 가 긴히 쓰겠습니다.” 

“아이구. 안 됩니다. 우리 인간에도 영리하고 똑똑한 강림이가 있어야 합니다. 이거 보시오. 우리 그리 말고 원님과 나, 하나씩 나눠 가집시다.” 

“어떻게 사람을 하나 놓고 둘로 나눌 수 있습니까?” 

“좋은 수가 있습니다. 날랑 혼(魂)을 빼어 갈 테니, 김치(金緻) 원님이랑 몸천(身體)을 가져 갑서” 하였다. 

염내왕의 제안을 듣고 김치 원님은 한 일은 알고, 두 일은 생각 못하여, 

“어서 걸랑 그렇게 합시다” 하고 대답을 해버리니, 

염내왕은 저승으로 올라가며 강림의 삼혼(三魂)을 빼어 저승으로 가져가버렸다. 

염내왕이 강림의 삼혼을 빼 저승으로 가져간 자리에 강림사자 육신만 연단 위에 우두커니 서 있었다. 

“야, 박 파도(牌頭)야. 저기 가 들어 보거라. 저승길은 어디며, 저승 갔다 온 말을 한번 들려 달라” 하니, 

가서 강림에게 이리 말해도 잠잠, 저리 말해도 침묵, 이렇다 저렇다 말이 없으니, "저것 봐라. 저 강림이 저승 갔다 왔다고 거드름피우며 대답도 않는 거 보게. 우리 말하는 게 말 같지 않은 모양이지. 그놈의 새끼 잘난 체 큰 양 하고 있으면, 오그랑작대기(오그라진 막대기)로 떠밀어 불라” 하니, 

작대기를 들고 툭하고 건드리니, 헷드랭이(뎅글랑이) 쓰러지며, 코로도, 입으로도 쉬파리만 웽웽 날고 있었다. 

강림이 큰 부인은 백발이 될 때까지 강림이가 돌아오면 오래오래 살 수 있겠지 하며 구둘에 앉아 손으로 바느질해 옷을 만들다가, 무슨 기쁜 소식이 왔는가 휙 하고 나가보니 사람이 죽었다는 부고(訃告)로구나. 아이고. 이거 큰일 났네. 구들 구석을 다 누어 뒹군다. 내 일이여, 내 일이여. 마당 구석 누어 뒹구는구나. 뒹굴다 언뜻 생각을 하니, 옛날도 ‘귀 소문 말고 눈 소문 하라’ 했는데(귀로 듣는 것보다 눈으로 직접보라고 했는데), 이거 누가 거짓말을 하는지, 내 눈으로 가 확실하게 가서 보고 와야겠다고 확 일어나 가보니 머리는 맷방석이 되었구나. 아이고, 이 머리 언제 들어가 고루고 빗을 까 하며 확하고 손으로 어름 쓸어 마당 눌 구석에 보니, 마침 산디짚(山稻) 눌(노적)이 쌓여있으니 나락을 확하고 당겨 그걸 조금 질긴 걸로 묶어서 동헌 마당으로 달려갔다.  

그때 낸 법으로, 지금도 성복하기 전에 산듸짚(밭벼짚)으로 머리 묶는 법이 생겨났다. 가서 보니, 아닌 게 아니라 강림은 죽어 있었다. “이게 어떤 일입니까. 아이고. 어떤 판서가 우리 낭군 죽였습니까? 어떤 사또가 우리 낭군 죽였습니까? 아이고. 무신 일을 못했다고 죽였습니까? 저승을 갔다 오라하니 저승을 갔다 오지 않았다 죽였습니까. 염라대왕을 잡아오지 못했다고 죽였습니까?” 이르라 하여도 어느 누구 대답을 하지 않았다. 그때 강림이 큰 부인 하도 원대로 못살아 인간세상을 떠나버리니, 지금도 사람이 죽으면, 차례차례 차리는 법은 강림이 큰 부인이 낸 법이다. 

초소렴(初襲殮) 하여도 섭섭했다. 중소렴(中襲殮) 하여도 섭섭했다. 아아, 대소렴(大襲殮) 하여도 섭섭했다. 호상 차려 차례로 입혀 관(棺)은 짜보아도 섭섭했다. 입관(入棺)하여 천지판을 덮어도 섭섭했다. 그때엔 성복(成服)하여 보아도 섭섭했다. 동관(動棺)하여 허혼행차(虛魂行次)_#1하며 염불소리 불러서 못살았던 소원으로 좋은 소리, 세경땅에 가 엄토감장(掩土勘葬)하여도 섭섭했다. 집에 돌아와 하루에 세 번 상식차려도 섭섭했다. 초하루 보름 삭망삭제(朔望朔祭)하여도 섭섭했다. 대소기(大小忌) 해도 섭섭했다. 담제(禫祭)를 넘겨도 섭섭했다. 팔월 15일 돌아오면 산소에 갔다 와도 섭섭했다. 산담을 둘러도 섭섭했다. 차례차례 강림차사 큰 부인 낸 법이 됩니다. 

▲ 염라대왕이 차사에게 주는 임명장을 나타내는 적폐지. 제공=문무병. ⓒ제주의소리
저승에서 염라왕 하는 말이, 

“야, 강림아. 강림아. 내가 적폐지(赤牌旨)를 내어줄테니, 적폐지를 가지고 인간(人間)세상에 가서 백 살 먹은 하르방, 백 살 먹은 할망으로 가서 차례대로 어서 데려오너라.” 

“어서 걸랑 그리 헙서.”

그때는 차사 차림을 차렸구나. 차사 차림을 다 차려 인간세상으로 내려서려 하니, 적폐지는 품에 품었다. 관장폐(官長牌)는 등에 지고 소곡소곡 내려오고 있는데, 일곱 까마귀가 강굴락깍 강굴락깍 강림차사 다녀올 일이면 저희가 날개에 붙여 날아갔다 올 테니 그 적폐지 우리에게 주라고 하도 강굴강굴 울어가니, 강림차사는 하도 좋은 마음이라 어서 그러면 너희가 가지고 다녀오라고 적폐지를 내어주었다. 일곱 까마귀는 적폐지를 품에 품고 오다가 보니, 말(馬)잡는 밭이 있었다. 까마귀는 거기 가 “우리 말피나 한 목음씩 얻어먹고 가자” 하여, 담 우의 가 빙 둘러 앉아 오똑오똑 앉었는데, 말잡는 ‘피쟁이’(백정)가 발통을 훅하고 던지자 까마귀들은 저들을 맞히는 줄 알고 홧딱하고 날다 보니 앞날개에 품었던 적폐지는 아래로 탁하고 떨어졌고, 말 잡던 피쟁인 그 적폐지를 확하고 주워 보니 사람 잡으러 가는 적폐지였다. 피쟁이는 말잡던 칼을 쓱싹 쓸어 휙 던지니, 마침 던지거니 맞히거니 바깥 돌아래 구렁이가 나왔다가 음찍하고 들어먹고 글 쓴 걸 먹어버리니 구렁이는 알록달록 하게 됐고 일곱 까마귀는 인간에 내려와 보니 적폐지는 잃어버렸구나. 다시 그곳에 돌아오다 보니 구렁이는 적폐질 삼키려는 찰라, 아이고, 나 적폐지를 다고. 나 적폐지를 주라하여도 구렁인 바깥 돌 아래로 슬금슬금 들어가 버렸다. 그때 낸 법으로 지금도 구렁이와 까마귄 살부지 원수가 됐다. 

그때엔 인간에 돌아와서 어른 갈 데는 아이 가라. 아이 갈 데는 어른 가라. 동쪽으로 돌아앉아도 강골강골 서쪽으로 돌아앉아도 강골강골 울고 있자니, 17~8세 난 청비바리 아기씨가 물허벅을 지고 물 길러 왔구나. 아이구. 아기씨야. 빨리 가자. 우리랑 저승가자. 빨리 가자. 아이구. 왜 나에게 가자고 하세요. 그리 말고 우리 집에 가 보면, 백 살 먹은 할아버지도 있고, 백 살 먹은 할머니도 있으니 빨리 가서 내보내라 하니, 아기씬 들어가며, 

“할아버지 할머니 나 대신 저승 갑서” 하니, 

“아이고. 난 싫다. 더 살당 가켜.”

아무도 아니 가겠다니, 그때는 17~8세 난 청비바리 아기씬 쉰 댓자 감태머리를 일문전으로 돌아앉아 빗어가니 삼혼정(三魂情)은 일곱 까마귀가 달려들어 빼어 저승 초군문으로 들어가 버렸다. 

하루는 염라대왕님이 하도 심심하니 저승 초군문을 돌아보려고 초군문을 돌다보니, 17~8세 난 청비바리 아기씨가 열 손가락으로 눈을 덮고 비새같이 앉아 울고 있었다. 애야. 넌 누구냐. 얼굴을 보니, 17~8세가 난 청비바리 아기씨가 와 있으니, 

“아이구. 강림아, 강림아. 이거 큰 일 났다. 어째서 난 백 살 난 하르방, 할망을 차례대로 데려오라 했지, 저렇게 새파랗게 젊은 아기씰 가서 데려오라 했느냐.” 

“아이구, 염내왕님아 그게 아닙니다. 내가 적폐질 가지고 가고 있는데, 일곱 까마귀가 적폐지를 저들에게 주면 날아갔다 오겠다고 하도 내 뒤를 쫓아다니며 조르기에 줘버렸습니다” 하였다.

▲ 문무병 제주신화연구소장, 시인.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어서 잡아 드려라” 잡아다가 하도 부화가 나니 듣지도 묻지도 않고 염라대왕님은 당장 귀잡고  둘러매어친 게 귀도 오끗 빠져버렸다. 하도 부화가 나니 송악나무 막대기로 다리 거두 세워 다리도 때리고, 대가리고 어디고 잡히는 대로 하도 때리다 보니 까마귄 맷독으로 새카맣고 머리도 둔해 구름 가늠하면서 먹을 것을 지붕 위에 묻어뒀다. 그 구름 넘어가버리면 이 지붕, 저 지붕 가서 다 파고, 밭고랑 넘으려면 앙글주침 앙글주침하며 넘는 법이 생겼습니다. 지금도 까마귀 울면, 반 차사(半差使)가 됐습니다. 차사님 전 난산국도 풀었습니다. 본산국도 풀었습니다. 

만간 중에 앞의 이를 말 뒤에 하고, 뒤에 이를 말 앞에 이를지라도 흉이 있더라도 사해 주십시오. / 문무병 제주신화연구소장, 시인

▲각주
#1 
제주도의 장례 풍속에 장례 전날은 빈 관을 매고 마을을 돌며, 망자의 이승에서의 삶을 추모하는 허혼행차가 있는데 이 때 부르는 상여노래를 ‘염불소리’라 한다. 이 노래는 비극적이기 보다는 오히려 흥겹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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