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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화 시대, 예술과 사회

2017년 03월 20일(월) 09:01
고영자 박사 news@jejusori.net

[BOOK世通, 제주읽기] (49) 오스틴 해링턴 『예술과 사회 이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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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스틴 해링턴(Austin Harrington) 『예술과 사회 이론』(원제 : Art and Social Theory) 정우진 옮김, 이학사, 2014.
독일의 소설가 토마스 만의 중편소설 <토니오 크뢰거>(1903년)의 줄거리가 새삼 눈길을 끈다. 소설 속 주인공 토니오는 북독일적 이성과 도덕관을 가진 아버지와, 남국적인 열정과 예술적 재능을 가진 어머니에게 물려받은 토마스 만의 분신들 중 하나다. 토니오는 가업을 잇기를 바라는 부모 밑에서 자라지만 부모의 기대를 거스르고 장차 예술가가 되려는 청년이다. 

토니오는 자기 자신의 진정한 ‘소명’, 천직으로 생각한 예술을 그의 가족이 당연시한 천직인 사업과 화해시킬 수 없다는 내면적 갈등에 시달린다. 이야기 속 그는 시민세계의 속물성에 대한 멸시와 평범하고 건강한 생활에 대한 동경 사이에서 동요하는 “길을 잘못 든 시민”이자 “길을 잃고 헤매는 시민”으로 묘사된다. 

이번 호에 소개할 『예술과 사회이론의 저자 오스틴 해링턴의 표현을 빌리면, 주인공 토니오는 ‘사업과 예술의 화해 불가능한 긴장’(317쪽) 속에 방황하는 예술가 지망생이다. 

크뢰거(토마스 만)가 산 시대는 예술풍조로서 ‘세기말(世紀末)’에 해당하는 시기다. 19세기 말부터 베를린, 빈, 파리, 런던 등의 유럽 도시는 자본주의의 성숙과 더불어 모든 신앙과 권위가 추방되고, 우상(偶像)도 모조리 파괴되기 시작하면서 한편으론 도덕적인 불안·동요(動搖)가, 또 한편으론 절망·허무·퇴폐·회의(懷疑)등의 암담한 이미지로 묘사된다. 

『예술과 사회이론의 저자는 이 시대를 두고 “철저하게 기계화된 질서인 과학, 산업, 기술, 경제, 효율에 성스러운 형이상학적 믿음 체계가 정복되어 버린 시대”(253쪽)라고도 부른다. 그런가 하면 이 시대야말로 문화와 예술이 번창할 수 있었고, 거리와 카페에는 우아한 복장을 한 신사 숙녀들이 넘쳐흐르기도 했다. 도시의 거리를 이리저리 헤매는 예술가도 탄생했다. 보들레르가 말한 도시의 산책자(flaneur)로서 그는 세상사를 구경하는 관람객으로 남아 군중들 속에서 불안정하고 멜랑콜리하며 고독하다.

예술과 사회이론』은 이러한 새로운 형태의 도시 공간, 도시인, 예술운동, 예술매체, 예술가들의 출현과 발맞추어 등장한 문화사상가들을 주목한다. 막스 베버, 게오르그 짐멜, 루카치, 크라카우어, 보들레르, 아도르노, 벤야민, 부르디외, 보드리야르, 하버마스 등이 대표적이다. 

가령, 당시 ‘문화의 비극’을 외친 게오르그 짐멜(1858~1918)을 소개하는 대목을 보자. “짐멜은 현대의 사회적 행위자들은 충족될 수 없는 욕망의 거침없는 흐름이라는 삶에 대한 쇼펜하우어의 가르침과, 전체성과 동일성 없는 반복·차이·영원회귀에 관한 니체의 생각에 영향을 너무 많이 받은 후예라서, 인격의 조화가 중심에 있는 르네상스적인 비전을 되살릴 수 없다고 논한다. 공장노동자와 공무원만큼 많은 예술가와 지식인을 포함하는 오늘날의 거대한 일반 대중에게 삶은 그 어떤 중요한 질서도 결여한 채 균열된 정체성과 강박으로 뭉친 모호한 덩어리다. 이러한 곤경을 ‘문화의 비극’이라 일컫는다.”(235쪽)

그런가하면 『예술과 사회이론』은 ‘문화의 비극’과 함께 탄생한 모더니즘, 모더니티, 매스컬처(대중문화), 문화산업 등도 다루고 있다. 예술의 미적 자율성과 상업적 식민화라는 대립과 긴장의 양극단 사이에서 사회학적 분석의 경험적 주제로서, 예술생산·예술소비·예술평가의 실천을 다룬 사상가들의 핵심적인 쟁점들이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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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기말 파리의 화려한 패션 거리를 그린 콩스탕탱 기스 (Constantin Guys, 1802~1892)의 그림.
‘모더니티’에 대해 기술한 보들레르의 에세이 ‘모던한 삶의 화가’에서 콩스탕탱 기스의 작품들을 옹호했다.

우리는 20세기 대중예술의 미학사적 사건으로 제7의 예술, 즉 ‘영화’의 탄생을 꼽을 수 있다. 특히 유럽 예술계에서 ‘영화가 예술인가’에 관해 본격적으로 질문하기 시작한 191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와 관련해서 『예술과 사회이론』은 지그프리트 크라카우어(Siegfried Kracauer, 1899~1966)의 영화를 둘러싼 예술론을 소개하기도 한다.

저자는 크라카우어야말로 ‘영화’라는 예술이 전성기 모더니티를 정의하는 매체라고 보았다면서 크라카우어의 말을 인용하고 있다. “영화 특유의 방법으로 포착하는 것이 형식, 움직임, 깨지기 쉬운 시각, 체험된 시간의 일시성과 불연속성, 일상의 소음과 물질성이라는 점에서 그러하며, 특히 영화가 익명의 군중, 기계, 공장, 도시 공간의 세계에서 외형화 된 감정과 심성의 차가운 성격을 특유의 방법으로 포착한다는 점에서도 그렇다.”(252쪽)

한편, 이 책에서 1940년대 로스앤젤레스를 무대로 아도르노와 호르크하이머의 『계몽의 변증법』에서 다룬 ‘문화산업’ 비판론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여기서 그들이 분석하는 문화산업이란 미국 할리우드의 상품화된 ‘쇼 비즈니스’ 산물들로서, 텔레비전, 영화, 라디오 매체를 통한 예술 생산과 예술 소비를 일컫는다. 이 대목에서 이들의 핵심적인 논점은 “오늘날 ‘고급문화’라 일컬어지는 것도, ‘대중문화’라 일컬어지는 것도 모두 품질·차이·자유를 위협하는 상업적 행정관리의 자본주의 원리 아래 있다”고 간파하는 지점이라고 저자는 언급하고 있다. 그러면서 동시에 저자는 그들이 젠더·인종·연령·계급별 상이한 사회적 소비 습관의 차이를 변별하지 않았다며 비판한다(263~267쪽). 

1940년대 아도르노와 호르크하이머의 문화산업 비판론은 ‘글로벌화’ 시대 예술의 ‘맥도널드화’(조지 리처, 1993년)라는 조롱과 불만이 뒤섞인 논변으로 이어지고도 있다.

이른바 우리시대는 ‘글로벌화’ 시대다. ‘경제의 글로벌화’(신자유주의의 자유무역 국가정책을 통한 자본주의 시장의 세계적인 신장과 통합을 지칭), ‘정치의 글로벌화’(국제법의 여러 구조를 보편적으로 묶는다는 의미), ‘문화의 글로벌화’(사회소통의 세계적인 네트워크를 상호 연결한다는 의미)로 세계는 지금 사회 세력의 변화와 더불어 자본, 제도, 문물, 사람들의 이합집산이라는 드라마를 연출하고 있다. 이러한 ‘글로벌화’의 물결 위에 예술의 정의, 예술가의 지위, 예술의 미적 자율성 및 사회적 역할, 예술취향의 문제, 후원조직, 문화예술제도 등이 예외 없이 주요 쟁점으로 부상했다.

나아가 ‘글로벌화’ 시대, 저자는 사회 분석의 관점에서 볼 때 예술이란 무엇이며 어떻게 정의될 수 있는가? 어떤 것이 예술인지 아닌지 어떻게 아는가? 예술은 어떻게 재원을 마련하고 생산·소비되는가? 사회계층·지위·교육은 어떻게 예술 취향을 구별 짓는가? 예술은 더 나은 사회를 불러올 수 있는가? 예술은 오락 및 대중문화와 어떤 관계를 맺는가? 예술은 모더니티 및 포스트모더니티 아래 어떻게 변형되고 있는가? 등을 진지하게 묻고 있다.

여기서 저자가 야심차게 던진 질문들은 얼핏 보면 사회적 관계나 이해들로부터 완전히 거리를 둔 기존 ‘순수미학’이란 견고한 성벽에 마치 빗발치듯 쏟아져 꽂히는 화살들 같다. 그렇다고 이들 질문이 꼭 단일한 학문으로서 ‘순수미학’을 향한 공격의 도전장이라 오해해서는 안 된다.

그렇다고 ‘예술사회학(the Sociology of art)’이 이들 질문에 대응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저자는 기존 예술사회학은 단일한 학문분야의 권위를 연상케 할 뿐만 아니라, 예술이 사회과학의 대상으로 지나치게 축소되고 수용되는 경향이 있다면서 책에서 예술사회학이란 명칭을 언급하는 일은 가능한 한 피하겠다고 밝힌다(11쪽). 

이는 다시 말해,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예술을 순수 과학적 합리주의에 기반을 두어 논리정연하게 분석한다든가, 또는 예술을 대상화해서 예술을 그 시대의 사회학적 기능으로 환원한다든가, 또는 예술을 오로지 현재의 이해관계의 견지에서만 읽는 태도 등에 비판적 거리를 둔다는 저자의 의지표명이기도 하다. 

‘글로벌화’라는 사회변화의 맥락에서 오스팅 헤링턴의 저서 『예술과 사회이론』은 미학과 예술학의 고전적인 문제들(예술 개념, 미적 가치, 미적 자율성 등)을 사회이론에 비추어 새롭게 조명하고 있다. 특히 책의 부제, ‘Sociological Arguments in Aesthetics’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책은 ‘미학의 사회학적 의의에 대한 논쟁’에 관한 책이다. ‘사회학적 미학의 길잡이’라는 한국어판 부제 또한 이 책의 전반적인 기조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된다.

그렇다고 이 책은 “미학의 문제에 사회학의 방법을 들이대는 것도 아니요, 사회학을 수단으로 하여 미학의 인식 대상에 실증적으로 접근하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사회학적 미학은 미학과 사회학의 ‘경합’을 통한 ‘공조’에 의거하고 있으며, 미학에 도전하는 사회학, 사회학에 대항하는 예술, 예술에 부응하는 미학의 복합적인 관계망으로 이루어진 지적 실천으로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404쪽)

책 제목이기도 한 ‘예술과 사회이론(Art and Social Theory)’이라는 명칭은 이런 배경에서 탄생한다. 저자는 ‘예술에 대한 사회학적 연구들’을 이야기하면서 “예술과 사회이론이 세계 인식이라는 협동 벤처 사업의 대등한 동반자 관계”(12쪽)를 이루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예술은 사회에 대해 사회과학이 말해줄 수 없는 것을 대답해 줄 수 있어야하고, 사회과학 또한 예술이 말할 수 없는 사실을 대답해 줄 수 있어야 한다. “예술들의 사회학은 미적 가치에 대한 물음을 사회적 사실에 대한 물음으로 환원시켜서도 안 되며, 미적 가치에 대한 물음을 정치적 가치에 대한 물음과 완전히 동화시켜서도 안 된다.”(15쪽)는 점을 되새길 필요가 있다. 궁극적으로 ‘글로벌화’ 시대, ‘미학을 근본적인 특징으로 전제한’ 사회학적 글쓰기, 나아가 미학적 실천으로서 다름 아닌 예술생산·예술소비·예술평가가 제대로 이루어져야할 것이다. /고영자 미학자·번역가

 ▷ 고영자(미학자·번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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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대학교 탐라문화연구소 및 재일제주인센터 특별연구원

일본 오사카대학 대학원에서 미학(예술학) 전공으로 석사 및 

박사학위 취득.
프랑스 파리사회과학고등연구소(EHESS) 연구원 역임.
부산대학교 예술대학 대학원 강사(미학) 역임.

현재, 근·현대 문화매체론, 제주미학론, 제주 ‘이미지’ 생성 및 변천사 등을 연구하고 있으며, 번역서로는 크리스틴 조디스 저《미얀마 산책》(2008년), 데이비드 네메스 저《제주 땅에 새겨진 신유가사상의 자취》(2012년),《서양인들이 남긴 제주견문록(1845~1926)》(2013년),《서양인들이 남긴 제주도 항해·탐사기(1787~1936)》(2014년), 《구한말 佛語·英語 문헌 속 제주도(1893~1913)》(2015년)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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