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밥상 이야기> (27) 아강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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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강발국. ⓒ 김정숙

아강발은 돼지족을 이르는 제주어다. 좀 더 정확하게 말하면 발목 아랫부분이다. 곧 아강발국은 돼지족탕이다. 어떻게 해서 ‘아강발’이라는 이름을 얻었는지 모르겠지만 어딘지 모르게 오독오독 씹히는 맛이 느껴지지 않는가. 재료에 어울리지 않게 귀엽고 고운이름 아강발국. 여인들을 위한 음식이라고 그런 이름이 붙었다면 억지일까?

아강발국은 배려의 음식이다. 동네에서 돼지추렴을 하면 아강발은 젖먹이가 있는 집으로 간다. 먹는 게 부실한 산모를 위한 음식이기 때문이다. 제주의 산모들은 출산을 하고 나서 메밀수제비를 넣은 미역국을 먹는다. 그리고 수유를 하는 동안에는 아강발국을 먹을 수 있었다. 아강발국을 먹으면 모유가 풍부해진다.

경험에 의하면 아강발국 뿐만 아니라 국물음식은 모두 모유 양을 증가 시킨다. 산모가 먹는 음식은 곧 젖이 된다. 그러니까 아강발국은 아기를 위한 거 같지만 실은 산모를 위한 음식이기도 하다. 애를 낳고 키우느라 허 할대로 허 해진 여인의 몸을 어떻게든 추스려주고 싶은...

제주 여인들에게 양육이나 집안일은 일도 아니다. 애 낳고 그 젖먹이를 업고 지고 다니며 밭일, 바다 일을 예사로 해야 했다. 애기는 마른 젖을 물어 보채고, 어디 몸이 몸이겠는가. 대놓고 보양식을 해 먹을 수도 없다. 눈이 몇 갠데 그 좋은 음식을 아낙만 먹을 수 있었을까. 부모와 남편, 아이들을 두고 좋은 음식을 혼자 챙겨먹을 그 배포 또한 가지지 못했다. 그러니까 아강발국은 고기도 아니고 돼지족 쯤이니 맘 편하게 먹으라는 배려까지 담겨있는 것이다.

아강발국은 칼슘과 단백질이 풍부해서 산모나 애기 모두에게 좋은 음식이다. 젖먹이’라는 강력한 보호 장치를 하고 먹는. 애기 때문에 산모만 먹어야 하는 약 같은 음식이 아강발국이다. 돼지추렴 끝에 신서란 짚으로 묶은 아강발을 흔들며 건들건들 걷는 남자들은 행복해 보였다. 지금 상상해도 멋지다.

아강발은 자잘한 뼈와 그 뼈를 감싸고 있는 연골, 심줄, 껍질이 대부분이다. 그 모든 조직들이 따로 따로 분리될 때까지 푹 끓인다. 무, 배추, 파 등 채소를 곁들이기도 한다. 소금으로 간하면 기본은 한다. 냄새를 잡으려면 생강을 넣고 끓이다가 건져낸다. 다진 마늘이나 후추를 넣기도 한다. 아강발국은 젖먹이를 둔 여인의 음식에서 모두를 위한 음식으로 진화하고 있는 중이다.

동네에 돼지족탕을 하는 음식점이 있다. 메뉴판을 볼 때마다 아강발국이라고 고쳐 쓰고 싶은 강한 충동을 느낀다. 아강발국이라면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니 어쩔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이름이 주는 의미는 사뭇 다르다. 없는 스토리도 만드는 판이다. 속 깊은 아강발국! 그 이름을 오래 부르고 싶다. / 김정숙(시인)

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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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 시인은 제주시 애월읍 납읍리 출신이다. 2009년 매일신문 신춘문예 시조부문에서 당선됐다. 시집으로 <나도바람꽃>을 펴냈다. 젊은시조문학회, 한국작가회의, 한국시조시인협회, 제주작가회의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30여년 동안 제주도농업기술원에서 일하다 2016년 2월 명퇴를 하고 서귀포시 남원읍 수망리에서 귤 농사를 짓고 있다. <제주의소리>에 ‘제주 밥상 이야기’를 통해 제주의 식문화를 감칠맛 나게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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