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벼움과 속도가 지배하는 요즘, 옛 것의 소중함이 더욱 절실해지고 있다. 더구나 그 옛 것에 켜켜이 쌓인 조상들의 삶의 지혜가 응축돼 있다면 금상첨화일 것이다. 차고술금(借古述今). '옛 것을 빌려 지금에 대해 말한다'는 뜻이다. 고문(古文)에 정통한 김길웅 선생이 유네스코 소멸위기언어인 제주어로, 제주의 전통문화를 되살려 오늘을 말하고자 한다. [편집자 주]

[김길웅의 借古述今] (17) 떡 짊어진 사람이 춤을 추니, 말똥 짊어진 사람도 덩달아 춤 춘다

‘떡 짊어진 사람’과 ‘말똥 짊어진 사람’, 곧 ‘떡’과 ‘말똥’의 대비가 흥미롭다. 떡은 가난한 시절의 먹거리요, 말똥은 그 시절 구들장을 지피던 땔감이다. 둘의 가치를 비교하려는 의도는 아닐 텐데, 양 극단에 올려놓아 눈 맛을 돋워 내고 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시학》에서 예술은 자연의 모방이라고 했다. 창조는 모방에서 비롯된다고 말한다.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쓰고, 조각을 새기고, 악상을 악표로 옮기는 일체의 예술 창작 행위에서도 이 말은 유효하다. 

전대(前代)에 착상(着想)해 새로운 작품이 탄생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일는지도 모른다. 비단 예술에 국한하지 않고 모든 문화의 창조적 발전이 궤를 같이 할 것이다. 문학에서 ‘영향 받은 작가’라 함은 이런 경우에 다름 아니다. 

그런다고 ‘떡 짊어진 놈 춤추는 걸 보고, 말똥 짊어진 놈 춤추듯’ 덩달아 춤출 일이 아니다. 객이 주인 넘보듯, 자칫 진지하지 못함을 넘어 경솔하고 부박(浮薄)해 실없어 보일 수 있다. 남이 하는 걸 모방하는 데도 한도가 있어야 한다.

사람에게는 분수란 게 있다. 분수에 맞는 삶이라거나 분수가 없는 사람이라는 말을 자주 입에 올린다. 이 경우, 분수라 함은 자기의 처지에 마땅한 한도나 사물을 분별하는 슬기를 말한다. 안분지족(安分知足)은 제 분수를 알고 만족함을 앎으로, 생활인이 자신을 주체해야 할 덕목일 것이다. 탐심과 욕망에 사로잡히면 사소한 것에 불만을 터트리고 불평으로 투덜거리게 된다. 사람은 모름지기 자족할 때, 심신이 평안한 법이다.

뱁새가 황새 시늉하다 가랑이가 찢어진다고 하지 않는가. 할 일, 나설 자리가 따로 있는 법, 제 분수를 저버렸다 당하는 낭패는 결정적인 결과를 자초하게 된다는 빗댐이다.

흔히 허장성세(虛張聲勢)란 말을 한다. 실력이 없으면서 허세를 부림을 뜻하는 말이다. 없으면서 가진 것처럼, 하지도 못하면서 잘하는 것처럼 떠벌리는 것처럼 주책없는 일도 없다. 오죽 눈에 거슬렸으면, 젠 체하는 꼴이 영 시답잖더라고 할까. 부질없고 공허한 일이다.

제주사람들은 소박하고 순진해, 턱없이 자신을 미화하거나 뽐내며 나서려 하지 않았다. 행여 그런 사람이 눈에 들어오면 넌지시 꾸짖었다. 그것도 직설적으로 까발리지 않고 은근슬쩍 비유해 상대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으려 명심해 삼갔다. 

“가나귀 까옥 허민, 촘생이도 조조조 혼다” (까마귀가 까옥 하고 울면, 참새도 조조하면서 지저귄다)도 같은 속담으로 곱씹을수록 고개가 끄덕여진다. 덩치답게 소리도 큰 까마귀가 까옥하고 울자, 곁에 있던 꾀죄죄한 참새들이 짹짹댄다는 얘기가 아닌가. 세상에는 의외로 참새같이 재잘거리는 사람들이 많다. 입도 아프지 않은지 수다스레 지껄이는, 말 많은 요설가(饒舌家)들….

이게 내 분인가, 이래도 한세상 저래도 한세상 사는 것이라 치부하고 나면 나날이 평온하지 않을까. 생각 나름인 게 사람의 삶이다.

‘말똥 짊어진 사람이 떡 짊어진 사람을 본 볼’ 게건 무언가. 터무니없는 환상에 한눈팔지 말고 현실을 직시할 일이다. 바로 거기, 내가 설 자리가 있다. 김길웅 시인·수필가·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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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보(東甫) 김길웅 선생은 국어교사로서, 중등교장을 끝으로 교단을 떠날 때까지 수십년 동안 제자들을 가르쳤다.1993년 시인, 수필가로 등단했다. 문학평론가이자 칼럼니스트이기도 하다. 도서관에 칩거하면서 수필, 시, 평론과 씨름한 일화는 그의 열정과 집념을 짐작케한다. 제주수필문학회, 제주문인협회 회장을 역임했다. 대한문학대상, 한국문인상 본상, 제주도문화상(예술부문)을 수상했다. 수필집 <모색 속으로>, 시집 <그때의 비 그때의 바람> 등 다수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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