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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본성 VS. 타불라 라사(Tabula Rasa)

2017년 05월 01일(월) 10:12
고영자 박사 news@jejusori.net

[BOOK世通, 제주 읽기] (53) 스티븐 핑커 『빈 서판』 /고영자 미학자·번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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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티븐 핑커(2002년) 《빈 서판》 김한영 옮김, 사이언스북스, 2004년.
온 나라가 떠들썩하다. 대한민국 헌정 사상 초유의 대통령 탄핵과 구속으로 조기대선이 코앞에 다가왔다. 대권주자들 저마다 개혁 진보, 보수 적자, 중도 보수, 애국 보수를 자처하며 나라를 살리겠다는 TV토론과 유세 연설을 접하면서, 이번에도 예외 없이 진보 대 보수 간의 세몰이 선거라는 기시감(데자뷰 현상)을 떨쳐 버릴 수가 없다. 유권자들도 마찬가지로 보수와 진보로 양분된 양상을 띠면서, 자신과 반대 진영에 속하는 세력에게 각각 ‘좌파’ vs. ‘수구 꼴통’이라 욕하고 헐뜯으면서 서로에 대한 반감이 최고조에 달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 행해지는 보수 vs. 진보 논쟁은 북한과 대치된 상황이다 보니 안보 차원의 정치적 현안으로 치닫는 경향이 짙다.

사실, 서구에서 말하는 보수주의 vs. 자유주의 논쟁은 수천 년 전 고대 그리스의 정치 논쟁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때 사람들마다 각각 정치적 자유주의와 보수주의적 태도는 완전히는 아니지만 대체로 유전적이라는 견해와 함께 궁극적으로는 역사와 지식의 산물로 받아들인다. 이것이 바탕이 되어 서구사회에서는 수많은 혁명과 봉기가 일어났고, 현대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치열한 선거전으로 전개되고 있다.

진화 심리학적인 입장에서 생각해볼 때, 사람들은 언제부터, 왜 보수주의자 또는 자유주의자가 되는 것일까? 그 태도 또는 기질이란 것은 인간 본성(타고나는 것)일까? 아니면 후천적으로 양육(학습)되는 것일까?

이는 사람의 사람됨은 "인간 본성인가, 양육인가”라는 질문으로 바꿔 말할 수도 있다. 이 물음은 아주 옛날부터 동서양을 막론하고 많은 사람들이 현재 ‘그 사람됨’의 요인은 타고나는 것인지, 환경에 의한 것인지 논란을 벌여왔다. 외모나 운동 신경이 거의 선천적인 것임은 누구나 분명히 알 수 있으나, 그러나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사람됨의 존재 여부다.

과거 신분이나 가문, 성별로 그 후의 인생의 선택 범위가 대폭 제한됐던 시절이 있었다. 아무리 뛰어난 능력을 가지고 있어도 농민은 농민, 노예는 노예, 여자는 여자, 거기서부터 다른 장소로 갈 수 없었다. 그러나 그 금기를 깬 19세기부터 20세기에 걸친 사회 과학은 기회의 평등을 사람들에게 보이는 한편, "타고났다"라는 생각을 편견과 차별의 원인이 된다는 이유 때문에 공식 입장에서 제거했다.

이런 맥락에서 이번호에서는 스티븐 핑커의《빈 서판(Blank Slate)》라는 책을 소개하고자 한다. 저자는 캐다나 몬트리올의 영어권 유대인 집안 출신으로 실험심리학을 전공하고, 이후 언어심리학과 인지심리학의 세계적인 권위자라는 학문적 명성과 함께 미국 과학 아카데미와 미국 심리학회에서 수상한 경력이 있다.  우선 책 제목인 ‘빈 서판’의 의미부터 보자. 

빈 서판은 ‘깨끗이 닦아낸 서판(scraped tablet)'이라는 뜻의 중세 라틴어 ‘타불라 라사(tabula rasa)'를 의역한 말이다. 이 말은 17세기 영국 철학자 존 로크(1632-1704)가 한 말로, "사람은 처음에는 백지 상태이며 이 백지에는 환경으로부터 습득한 것들이 차차 쓰이게 되고 채워지면서 사람됨이 완성된다"는 사상이다. 당시 로크의 ‘빈 서판’ 개념은 당시 세습 왕권과 귀족 신분의 정당성을 뒤흔드는 기폭제가 되었다. 이후, 이 사상은 불합리한 차별 철폐 및 교육 정비 등에 큰 역할을 해왔다. 하지만 이 사상에는 큰 문제가 있다는 것이 이 책의 논지다.

스티븐 핑커는 이 책 전체에서 '빈 서판' 이론의 거대하고 오랜 구조를 논박하고 있다. '빈 서판' 이론을 옹호하는 한편 '인간 본성'을 부정하는 사상은 다양한 분야에서 이미 수도 없이 전개되었다. ‘빈 서판’ 옹호자들에게 있어 인간 본성을 인정한다는 것은 곧 인종 차별, 성 차별, 전쟁, 탐욕, 집단 학살, 허무주의, 정치적 반동, 아동과 소외 계층에 대한 무관심을 시인하는 것으로 여겨졌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핑커는 그렇지 않다고 단언한다. 인간 본성의 존재를 인정하고 그것에 대해서 올바른 인식을 하는 것이 사회를 풍요롭게 하고 현실의 문제에도 새로운 시야가 열릴 것이라 저자는 확신한다. 거기서 폭력과 강간이야말로 진화 속에서 나온 것으로 이해한다면, 그 방지를 위해서 진화의 과정을 밝히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이런 이유로 저자는 사람들이 인간 본성을 위험한 개념으로 보게 된 역사를 추적하고, 그 과정에서 인간 본성의 개념을 얽매고 있는 도덕적, 정치적 올가미를 이 책에서 벗겨내고 있다.

우리는 모두 같은 동기에 의해 고무되고,

같은 오류에 속고, 

희망에 활력을 얻고, 

위험을 만나 주춤대고, 

욕망에 뒤얽히고, 

즐거움에 이끌린다.


-새뮤엘 존슨-

(스티븐 핑커《빈 서판》255쪽 인용)


‘인간 본성’이라는 말은 특히 진보주의자에게 인기가 없다. 우리가 무언가를 선천적으로 타고 난다는 이 말에서 진보주의자들은 인종주의, 우생학, 성차별, 아우슈비츠, 유전자 결정론, 가난 혐오, 파시즘, 기타 상상 가능한 온갖 무시무시하고 사악한 태도를 떠올린다. 빈 서판설을 믿고 가장 대규모로 사회실험을 행한 것은 사회주의 국가였다고 저자는 말한다. “백지에는 어떤 얼룩도 없기 때문에, 그 위에 가장 새롭고 가장 아름다운 말들이 써질 수 있고 가장 아름다운 그림이 그려질 수 있다”는 마오쩌둥의 말을 인용(279쪽)한 것도 그러한 맥락이다. 

마르크스 또한 “대규모의 인간 개조가 필요하다”고 했듯이 인류를 개조하려는 욕망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그 이론은 훌륭하였지만, 인간 본성을 파악하지 못했기 때문에 결과는 독재와 많은 학살, 경찰국가, 수용소 국가, 감옥 국가라는 끔찍한 것으로 전락했다. 인간 본성을 오인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런 입장에서 저자는 인간 본성에 대한 과학과 좌우익 정치철학의 정치적 균열 사이에 어떤 지적인 연관성이 있는가를 밝히고 있다.

‘빈 서판’이론은 어린이 양육 문제에도 크게 관여하고 있다. 저자는 부모가 자녀의 인격을 형성할 수 있다거나, 아이들에게 적절한 양육과 기회가 주어진다면 모든 아이들은 성공할 수 있다거나, 개인의 경험을 바꾸면 학업 부진은 개선될 수 있으며, 성이나 인종 집단 등 이른바 선천적 특성들을 근거로 삼아 아이들을 차별하는 것은 전적으로 불합리하다고 믿는 주류 양육법을 소개하고 있다. “교육은 빈서판에 무언가를 쓰는 것도, 아이들의 고상함이 활짝 피어나게 하는 것도 아니다. 교육은 인간의 마음에 선천적으로 부족한 능력을 보충하려는 과학기술에 가깝다.”(393쪽)

그러면서 저자 핑커는 육아에 관한 훌륭한 책으로 J.R. 해리스《양육 가설》(1998년)을 언급하면서, 지금까지 전문가와 일반인들 사이에 인습적으로 통용되는 양육에 관한 지식이 틀렸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그러면서 인도의 벽지 마을의 어머니의 말을 해리스가 인용하고 있는 곳을 저자는 소개하고 있다. 아이가 어떤 사람이 되었으면 하느냐고 묻자 그 어머니는 어깨를 으쓱하더니, "그것은 이 아이의 운명으로 내가 바란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라고 대답한다. 

한편, 20세기 예술(모더니즘에 이어 포스트 모더니즘) 출현 앞에서 버지니아 울프가 말한 “1910년 12월을 전후로 해서 인간본성이 변했다”는 ‘인간본성에 대한 부정’ 발언을 놓고 저자가 접근·분석하는 대목도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빈 서판’은 20세기 후반까지 널리 퍼져 사람의 마음에 대한 개념의 상징으로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이를 믿고 있다. “어떤 이들은 사람들이 유전적으로 다르다는 것을 우리가 확신한다 해도 여전히 사람들이 서로 같다는 허구를 세상에 퍼뜨려야 한다고 믿는다. 그것이 보다 바람직하고 안전하다는 이유에서”다. (270쪽)

사람은 ‘빈 서판’이 아니다. 그렇다고 '본성 대 양육' 사이 어느 한쪽으로 치우쳐서 생각하는 것도 설득력이 부족하다. 저자는 이 두 관점을 균형 있게 다룰 수 있는 지혜를 제시하면서 자연 과학과 인문 과학이라는 방대한 두 문화의 융화, 즉 앞으로 펼쳐짐직한 종합 학문 체계를 이 책에서 선보이고 있다. 


 ▷ 고영자(미학자·번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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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대학교 탐라문화연구소 및 재일제주인센터 특별연구원

일본 오사카대학 대학원에서 미학(예술학) 전공으로 석사 및 

박사학위 취득.
프랑스 파리사회과학고등연구소(EHESS) 연구원 역임.
부산대학교 예술대학 대학원 강사(미학) 역임.

현재, 근·현대 문화매체론, 제주미학론, 제주 ‘이미지’ 생성 및 변천사 등을 연구하고 있으며, 번역서로는 크리스틴 조디스 저《미얀마 산책》(2008년), 데이비드 네메스 저《제주 땅에 새겨진 신유가사상의 자취》(2012년),《서양인들이 남긴 제주견문록(1845~1926)》(2013년),《서양인들이 남긴 제주도 항해·탐사기(1787~1936)》(2014년), 《구한말 佛語·英語 문헌 속 제주도(1893~1913)》(2015년)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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