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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론장의 탄생과 진화, 그리고 예술

2017년 05월 15일(월) 09:47
김준기 관장 news@jejusori.net

[BOOK世通, 제주 읽기] (55) 위르겐 하버마스 『공론장의 구조 변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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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르겐 하버마스 『공론장의 구조변동』 한승완 옮김, 나남출판. 2004.
모든 인류의 문화가 그러하듯 예술 또한 그 자체로 공공적인 기재이다. 문제는 예술의 자율성인데, 그것이 어떤 경로를 통해 자율적인 기재로 자리 잡았는지에 대해서는 깊이 생각해볼 기회가 그리 많지 않다. <공론장의 구조변동>을 통해서 우리는 예술이라는 제도가 어떻게 공공영역이 되었는지 역사적 관점에서 살펴볼 수 있다. 동시에 ‘부르주아 사회의 한 범주에 관한 연구’라는 부제에서 나타나듯, 근대와 함께 태동한 유럽의 부르주아 사회가 예술이라는 소통 기재를 통하여 공공영역을 만들어왔다는 점을 통하여 예술의 자율성이 그것의 공공성을 지탱하는 결정적 근거이자 단서라는 역설을 발견할 수 있다. 

하버마스의 명저, ‘공론장의 구조변동’은 근대사회에서 공론장이 출현한 배경과 과정을 상세하게 알려준다. 주목할 만한 공론장의 두 가지 경로는 언론과 예술이다. 카페, 서신교환, 독자, 관객 등과 같이 너도 알고 나도 알고 우리 모두가 알고 있는 공공적인 정보들을 통하여 시민사회의 공공영역이 확장하는 과정은 근대적 공론장의 탄생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특히 주목할 것은 예술이 근대사회, 혹은 근대적 공론장을 주도했다는 점이다. 공공(the public)이라는 말은 예술과 긴밀한 관련을 갖고 있기도 하다. 독자나 관람객과 같이 예술의 향유자, 수취인을 ‘공중(le public)’이라고 불렀다는 점을 상기해보면 알 수 있다. 

근대사회가 태동하면서 나타난 예술적 소통 기재들, 즉 소설이나 전시, 공연 등은 전근대 시기의 과시적인 공론장을 벗어나 근대적 공론장을 이끌었다. 하버마스의 언어로 그것은 ‘문예적 공론장’이다. 물론 근대사회의 발전에 따라 국가체제가 거의 모든 권력을 대표하면서부터 공공영역은 곧 국가의 일이 돼버린 듯하다. 공공영역의 주체들은 공론장의 주역이라기보다는 파편하한 개인으로 전락하고, 정치권력과 언론이 장악하고 있는 국가권력 수준의 공공성이나 여론 형태의 공론장을 수용하는 주체로 변화하고 있다. 물론 그러한 흐름을 거스르며 인터넷 문화를 통해 새로운 공론장을 만들고 있다는 점에서 마냥 비관적이지만은 않다.

공공예술(Public Art)은 비판예술과 대립쌍을 이루며 예술적 실천보다는 사회적 실천을 강조하며 자율생산이 아닌 주문생산에 가깝다. 기념비나 미술장식품의 개념에 머물렀던 기존의 공공미술을 극복하려는 발상에서 뉴장르퍼블릭아트로 불리는 새로운 공공예술은 2000년대 이후 현대미술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예술적 공론장을 둘러싼 오해가 있다. 그것은 자율성에 입각한 예술이 그 자체로 공론장이라는 점을 망각하고 있다는 점이다. 하버마스의 근대사회 연구가 알려주듯이 예술은 근대사회를 공공영역으로 견인한 공적인 기재다. 자율적인 주체로서의 예술가들이 예술을 제도화하는 과정 자체가 근대사회의 탄생이라는 점에서 그렇다.

공공예술은 주문생산에 의거한다는 점에서 자율예술과 구분한다. 그것은 예술가 주체의 자율적인 창작의지나 비판정신보다는 관객이나 주문자와의 상호작용이나 가치공유에 방점을 둔다. 공공예술은 근대미술의 자율성을 탈근대적 공공성과 결합하여 공공의 재원으로 공공의 장소에서 공공의 의제를 다루는 예술이다. 그것은 사사성에 경도된 20세기 예술제도의 관행과 한계를 극복하고 상호작용과 소통을 전제로 하며 협업과 공유의 방식으로 새로운 예술공론장을 형성하는 예술이며, 예술적 자율성을 전제로 하되 장소특정성과 의제특정성을 포괄하면서 사회적 요청과 조화를 이루는 새로운 공공영역으로 진화하고 있다. 

예술의 공공성을 강조하다보니 이제는 그것의 자율성이 침해당하고 있다는 심각한 반성과 성찰이 이어지고 있다. 지금까지 예술은 공공적인 소통 영역이라기보다는 자율적인 창작 영역이라는 점을 강조하기에 급급했다. 예술은 그 누구의 강요에 의한 것이 아니라 인간의 자율적인 의지에 따라 새로운 세계를 만들어나가는 자족적인 영역이라는 믿음 때문이다. 하지만 근대적 의미의 예술이 탄생한 배경에는 ‘공론장으로의 문예’라는 엄연한 사실이 있다. 이런 맥락에서 하버마스의 <공론장의 구조변동>은 근대와 탈근대 사회를 거치며 진화해온 예술의 존재 이류를 상세하게 알려주는 고전이다. /김준기 

▷ 김준기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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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준기 관장.
제주도립미술관 관장. 미술평론가

홍익대 예술학과 학부 및 석사 졸업 및 같은 학교 미술학과 예술학 전공 박사과정 수료. <2016 부산비엔날레> 전시팀장, 부산시립미술관 큐레이터, 대전시립미술관 학예연구실장, 예술과학연구소 대표 역임.

‘지리산프로젝트’ 예술감독(2014-2016), ‘프로젝트대전’ 총괄(2012,2014), ‘해인아트프로젝트 커미셔너’(2013) 등을 역임했다. 예술사회학적 관점으로 공공미술과 사회예술 등을 연구하고 있으며, 과학과 예술의 융합을 지향하는 과학예술과 우주예술을 연구 및 기획하고 있고, 올해 처음 열리는 ‘제주비엔날레’를 총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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