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S&P 500지수가 역사적인 고점 2400을 넘나들며 진퇴를 거듭하고 있는데 이를 자산가격 거품으로 보는 걱정은 어제 오늘 이야기가 아니다. 너무나 오래 지속되고 있는 저금리 사태의 후유증의 하나로 보는 것이다.

그러나 시카고 상품거래소(CBOT)가 주가지수와 관련해 형성되는 여러 파생금융상품의 거래 동향을 실시간으로 분석해 고시하는 VIX(변동성 지수)는 최근 10% 밑으로 내려갔다. VIX 지수 10%란 S&P 500의 일년 간의 변동성을 위 아래 10%로 보는 것이다.

이를 월 단위로 환산하면 향후 1개월 간의 변동성은 2.9%(연간 변동성을 루트 12로 나눔)가 된다. 이는 1993년 이후 가장 낮은 수준으로 시장 참여자들의 실제 시각이 얼마나 다른가를 여실히 보여 주는 현상이다.

미국 발 글로벌 금융위기를 누구보다 먼저 예언했던 뉴욕대학교의 누리엘 루비니 교수는 불길한 예언을 하는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 그래서 비운의 박사(Dr. Doom)라는 닉네임을 얻을 정도인데, 그가 금융자산의 가격 거품을 말하는 것은 새로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세계 최대 채권운용 전문회사 PIMCO의 설립자이며 현재 야누스 캐피털의 대표를 맡고 있는 빌 크로스 같은 사람까지 이러한 불안을 노골적으로 표현하는 것은 예사 일이 아니다. 그는 금융 자산의 거품을 '초신성'(超新星, supernova)에 비유했다(2016년 6월 파이낸셜 타임스 기고). 초신성은 소멸하기 직전 그 동안 가지고 있던 모든 에너지를 발산해버리는 별인데, 마치 새로 나타난 별과 같이 밝아서 붙여진 이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VIX 지수가 이처럼 낮아지고 있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프랑스 대선에서 중도파의 승리, 영국 브렉시트의 충격 완화 등 다른 변수들도 있지만 이것만으로는 설명이 안 된다.

새 별보다 더 밝은, 죽어가는 별

더 큰 이유는 <크라잉 울프>라는 이솝 우화에서와 같이 이들의 어두운 전망이 들어 맞지 않았기 때문이 아닐까! 한두번 속고 나면 점차 위험에 둔감해진다.

그 전망이 들어맞지 않은 이유는 무엇인가? 이에 관해서는 런던의 헤지펀드 '유라이즌 캐피털'의 스테픈 젠 사장의 "모든 고산 등반은 올라갈 때보다 내려올 때 더 위험하다. 치명적인 사고는 하산 중에 발생한다"라는 비유가 매우 적절해 보인다. 10년 전 미국발 서브프라임 사태를 이 정도나마 수습한 일등공신이 중앙은행의 돈 찍기였다면 이 돈을 회수하는 것은 등산으로 말하면 하산에 해당된다.

지금까지 미국, 유럽, 일본의 중앙은행들이 풀어놓은 돈의 크기는 약 13조 달러로 추산된다(Investopia 4월 27일 기사). 이 중 미국이 4조 달러인데, 이는 독일의 1년 국민총생산, 중국의 총 외환보유고를 넘어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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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직 하산이 시작되지 않았기 때문에 불안의 실체는 아직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다. ⓒ제주의소리

주목할 것은 이 돈의 규모가 한번도 줄어든 적이 없다는 점이다. 미국의 경우 2014년 10월 마지막으로 채권을 매입할 당시의 잔액이 현재까지 전혀 변동이 없으며 유럽이나 일본은 채권 매입이 아직 진행 중이다. 다시 말하면 아직 하산이 시작되지 않았기 때문에 불안의 실체는 아직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다.

미국의 경우 부풀어진 연준의 장부가 언제 정상 수준으로 복귀할 것인가 하는 질문은 기피대상이었다. 일명 '축소파동'(taper tantrum), 즉 채권매입을 단계적으로 축소하겠다는 전 연준의장의 발언이 불러일으켰던 금융 파동을 기억한다면 연준이 보유한 채권이 역으로 시장에 풀렸을 때의 상황은 상상하기도 싫다. 2013년 6월 버냉키 발표 후 주식은 3영업일 사이에 4%. 국채 가격은 3개월에 걸쳐 약 9% 하락했다.

하산(下山)은 아직 시작되지 않았다

미국에 비해 중국은 당국이 나서서 늑대의 출현을 앞당기고 있는 모습이다. 채권 매입이라는 비전통적 통화정책 수단을 동원한 적이 없는 중국은 시중은행 앞 대출창구를 옥죔으로써 통화긴축 상황을 유도하고 있다.

금년 들어 10년 만기 소버린 본드의 수익률이 2.7%에서 3,7%로 급등함으로써 거래가격이 10% 가까이 폭락했다. 중국 정부는 자산가격 거품을 제거하기 위해 수시로 찬물을 끼얹어왔다.

미국의 공화당계 의원들은 물론 트럼프 대통령은 연준의 거대한 장부를 수용하지 않을 태세여서 연준 장부 정상화 시기는 의외로 앞당겨질 수 있다.

이솝 우화의 끝에는 결국 늑대가 나온다. 위험한 것은 늑대 그 자체가 아니라 위험한 상황에 대한 무방비 상태다. / 김국주 곶자왈공유화재단 이사장(전 제주은행장)

* 이 글은 <내일신문> 5월 17일자 ‘김국주의 글로벌경제’ 에도 게재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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