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의소리>가 최근 조명한 서귀포시 남원읍 태흥리 환해장성의 실태는 비지정 문화재들이 어떤 처지에 놓였는지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사례였다. 제주의 대표 방어유적이라고 불리면서도 정작 보존·관리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었다. <제주의소리>는 환해장성이 위태로운 처지에 놓이게 된 배경과 앞으로의 해결 방안 등을 두 차례로 나눠 짚어봤다. [편집자 주]

[사각지대 놓인 제주 비지정문화재] (上) 태흥리 환해장성은 어쩌다 이렇게 됐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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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귀포시 남원읍 태흥리 해안도로에 위치한 환해장성의 모습. 인접한 펜션의 울타리로 사용되고 있었고, 한쪽에는 클린하우스가 설치돼 있다. 제주도의 공공시설물인 클린하우스가 환해장성과 맞닿아 있다는 것 자체가 당국이 문화유산 관리에 손을 놓고 있다는 반증인 셈이다. ⓒ 제주의소리

지난 24일 <제주의소리>가 현장취재를 통해 살펴본 서귀포시 남원읍 태흥리 환해장성의 실태는 심각했다.

인접한 펜션의 울타리로 사용되는 것도 모자라 공공시설물인 클린하우스까지 설치돼 있었다. 태풍이나 강풍으로 파손 시에는 펜션 주인이 직접 정비에 나서는 웃지 못할 일도 벌어지고 있었다.

어째서 당국이 건축 허가를 내주거나 공공시설물을 설치할 때 환해장성을 전혀 감안하지 않았는지 의문이 들 수 밖에 없다.

현행 문화재보호법은 국가 또는 도지정문화재로 지정되지 않은 문화재 중 시장이나 도지사가 향토문화 보존상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경우 도지정문화재에 준해 관리할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특히 제주도는 비지정문화재라 하더라도 가치가 있는 향토유산을 체계적으로 보호한다는 취지의 ‘제주도 향토유산보호조례’도 제정·운영하고 있다.

제주 곳곳에 남아 있는 환해장성은 유서 깊은 방어유적으로서 학술적 가치가 높다.

김일우 제주역사문화나눔연구소장은 작년 ‘한국사학보’ 를 통해 발표한 논문 ‘조선시대 제주 관방시설의 설치와 분포양상’에서 “환해장성은 제주의 관방시설 가운데 역사상 가장 오래된 것으로 확인될 뿐만 아니고, 가장 장기적으로 축조돼 왔었거니와, 현재도 도처에 잔존하고 있는 것”이라고 그 역사적 의의를 밝혔다.

이번 태흥리 환해장성 실태의 핵심은 허가 당시 당국의 행정절차 자체가 납득하기 어려운 구석이 많다는 데 있다.

문화재청이 1996년부터 2009년까지 10여년 간 제주를 비롯한 각 지자체에서 제공받은 ‘문화유적분포지도’를 바탕으로 제작한 문화재공간서비스에는 태흥리 환해장성이 등록돼있다.

문화유적분포지도는 각 지자체가 건축허가나 개발 시 주요참고자료가 되는데, 비지정문화재들도 비교적 상세히 나타나 있다. 행정 내부에서 개발이나 건축 허가 시 확인용으로 사용되는 GIS시스템도 이를 반영해 구축돼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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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화재청 문화재공간서비스에 나타나 있는 제주 태흥리 환해장성. ⓒ 문화재청

이 펜션 건물이 허가를 받은 것은 2011년 10월. 당시 허가를 내준 건축담당 공무원이나 이후 클린하우스 설치를 추진한 환경담당 공무원 모두 인근 유적 확인이라는 기본적인 절차를 이행하지 않았거나 혹은 이를 알고도 묵인했다는 얘기 밖에 되지 않는다.

취재 과정에서 접촉한 공무원들은 “비지정 문화재라 하더라도 건축행위나 개발 시 이와 인접할 경우 확인과 협의를 진행하는 게 맞다”고 했지만 태흥리 환해장성 옆 건축물에 대해 아무런 설명 없이 허가를 내주고, 이도 모자라 바로 옆에 생활폐기물 처리 공공시설인 클린하우스까지 설치했는지에 대해서는 “그걸(환해장성 존재 여부) 몰랐을리는 없었을텐데...” 또는 “당시 상황은 잘 모르겠다”와 같은 답변만 돌아왔다.

이번 사례는 태흥리 환해장성 뿐 아니라 많은 비지정 문화재들이 이 같은 사각지대에 몰려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문화재로 지정되지 않은 환해장성 대부분이 개인주택, 해안도로, 양어장 등으로 인해 허물어지거나 위태로운 지경에 놓여있다는 사실은 익히 알려져 있다.

사실, 태흥리 환해장성의 중요성이 주목된 것은 한참 전의 일이었다.

남제주군과 제주문화예술재단 문화재연구소가 2005년 펴낸 남제주군 문화유적 실태조사 보고서는 태흥리 환해장성을 두고 “간혹 돌들이 떨어져서 없기는 하나 원형에 가까운 형태로 남아 있기에 보존 상태가 양호하므로 보존 가치가 있어 보인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 보고서는 태흥리 환해장성의 보존상태에 대해서는 ‘양호’, 보존가치에 대해서는 ‘보존조치 필요’라는 판단을 내렸다.

그러나 10년이 더 지난 지금도 이 환해장성은 여전히 제대로 보호받지 못하고 있다. 앞으로 이 같은 사례가 얼마나 더 늘어날지 우려되는 대목이다.

제주도 세계유산본부는 <제주의소리>가 태흥리 환해장성 실태를 보도한 하루 뒤인 25일 현장을 찾아 뒤늦게 상황파악에 나섰다.

세계유산본부 관계자는 26일 <제주의소리>와의 전화통화에서 당시 허가 과정을 묻는 질문에 “현재 서귀포시와 함께 당시 어떤 경위로 건축허가가 나갔는지 파악하고 있다”고 말했다.

다만 근본적인 해법으로 보이는 체계적인 현황파악에 대해서는 “문화재로 지정되지 않은 환해장성에 대한 전수조사를 2018년에 진행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긴 하나 아직 착수 여부는 결정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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