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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해결 과제 산적...맥 끊기는 제주4.3연구, 지켜만 볼 것인가

2017년 06월 07일(수) 10:02
한형진 기자 cooldead@naver.com
내년이면 제주4.3이 발발한 지 70주년이 된다. 1948년 미군정 하의 제주도에서 일어난 4.3참극은 3만 명에 가까운 인명이 희생된 사건이다. 세계사에서 전쟁 지역이 아닌 좁은 공간에서 이처럼 엄청난 인명 피해가 발생한 사건은 없었다. 2003년 10월15일 ‘제주4.3사건진상조사보고서’가 채택되고, 대통령이 희생자와 유족, 제주도민에게 공식 사과를 하면서 4.3문제는 전기를 맞게 된다. 그럼에도 아직 갈 길이 멀다. 해결해야 할 과제도 많다. <제주의소리>가 △진상규명 △명예회복 △미국 책임 규명 △배·보상 △정신계승 등 4.3문제의 완전 해결로 나아가기 위한 과제들을 점검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4.3 70주년 D-1년> 연중기획을 진행한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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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70주년 D-1년] (7) 파편화 아닌 안정적인 연구조직 절실...평화재단·제주대도 바뀌어야

“4.3평화재단에 연구조직 신설을 지원하고, 희생자 상설신고 시스템을 법제화하겠습니다”

지난 2015년 제주4.3 67주기 추념식에 참석한 원희룡 제주도지사의 인사말 가운데 일부분이다. 원 지사는 “지속적인 추가진상조사와 더불어 미신고 희생자 및 유족 파악을 위해서도 세심한 노력을 기울이겠다”며 그 방안으로 이같이 약속했다.

4.3에 있어서 연구가 왜 중요한지는 많은 설명이 필요하지 않다. 제주4.3연구소의 증언집 《이제사 말햄수다》, 특별 취재 인력이 투입된 《4.3은 말한다》, 정부가 채택한 <제주4.3사건진상조사보고서> 같은 연구 성과가 없었다면 오늘의 4.3도 없었을 것이다. 

4.3이나 광주5.18처럼 부단한 노력으로 실체를 밝혀야 하는 아픈 역사에 있어서, 연구 영역은 일종의 버팀목이다. 진상규명부터 명예회복, 배·보상, 트라우마 치유까지 이루는 건, 드러나지 않거나 은폐된 사실을 밝혀내는 연구 없이 불가능하다.

내년이면 4.3이 일어난 지 70주년이 된다. 전문가들은 4.3 연구가 상당부분 성과를 이뤘지만, 여전히 많은 과제가 남아있을 뿐만 아니라, 체계적인 연구를 뒷받침하는 제도적 장치가 ‘이제는’ 마련돼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 4.3평화재단의 역할은?

2013년 제주대 평화연구소가 펴낸 《제주4.3연구의 새로운 모색》에서 허호준 한겨레신문 기자(당시 평화연구소 특별연구원)는 지금까지의 4.3연구를 ▲정부 영역 ▲군대, 경찰 ▲민간 ▲학위논문 ▲외국으로 구분했다.

1948년부터 1987년까지는 국가권력이 4.3을 절대 금기시하던 시기인 만큼 한계가 명확했지만, 6월 항쟁으로 인한 민주화 열기에 1987년 이후부터 민간 영역의 연구가 봇물처럼 쏟아졌다. 1980년대 후반부터는 학위논문을 통한 연구도 시작됐고, 이런 흐름 속에 2003년 제주4.3위원회의 <제주4.3사건진상조사보고서>가 탄생했다.

허 기자는 《...새로운 모색》에서 “이제 4.3연구는 기존 발굴된 자료와 연구 성과를 바탕으로 연구의 공간과 인력이 확대된 학문으로서의 연구단계에 접어들었다”고 진단했다. 책이 나온 지 4년이 흘렀지만 과연 의미 있는 진전은 있었을까? 특히 ‘공간과 인력이 확대된’ 기준으로 볼 때는 많은 아쉬움이 남는다.

연구 분야를 포함해 4.3에서 많은 역할을 수행해야 하는 주체는 제주4.3평화재단이다. 그러나 재단이 4.3 연구에 관심을 기울인 건 얼마 되지 않는데다, 비중도 크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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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주4.3평화재단이 있는 4.3평화박물관 건물. 한 단계 발전하는 4.3연구를 위해 평화재단의 역할이 필요하다는 의견이다.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재단은 2015년부터 4.3학술연구사업 공모를 진행하고 있다. 분야는 ▲학위논문 지원 ▲학술 연구논문 공모 ▲연구총서 출판 지원 등 세 가지다. 재단은 박사 논문에 300만원, 석사 논문은 150만원을 지원한다. 학술 연구논문 가운데 최우수상은 500만원, 우수상 300만원, 장려상 100만원을 지원하고 연구총서는 건당 800만원이다. 이 금액은 시작할 당시 그대로다. 학위논문은 지난해부터 도입했다.  

지난 2년 동안 사업에 선정된 인원은 단 3명에 불과하다. 첫해 유은희 씨가 학술 연구논문 ‘다크투어리즘의 여행 행동 특성에 관한 연구’로 100만원, 허상수 씨가 연구총서 ‘제주4.3과 미국’으로 800만원, 지난해 헝가리 출신 이즈나즈 아니타 씨가 석사논문 ‘제주4.3사건과 주민의 동굴피신 생활’로 150만원을 지원받았다. 

일각에서는 재단이 내세우는 신청 조건이 까다롭고, 일회성 연구에 그친다는 점에서 신청 자체를 외면한다는 의견도 있다. 2015년 학술 연구논문 공모에 응한 인원은 단 2명, 지난해는 3명에 그쳤다. 총서 역시 각각 2편, 5편으로 비슷한 수준. 재단은 지난해 신설한 학위논문을 최우수, 우수, 장려로 나눠 평가했지만 1년 만에 기준을 없앴다. 

재단 관계자는 “학위 논문은 평가에 있어서 구분을 두는 것이 무의미하다는 의견이 있어, 올해부터 인정 여부만 평가하도록 바꿨다. 전반적으로 신청 현황이 낮아 더 많은 연구자들이 지원하도록 방안을 찾겠다. 전국 대학에 홍보하는 등 참가를 독려하는 중”이라고 밝혔다.

# 연구소-연구원 둔 5.18기념재단, 제주4.3에 시사점은?

준을 바꾸고 홍보를 해도 일회성 연구에 그친다는 점에서, 재단의 현재 학술사업은 한계가 명확하다. 특정 사안에 보다 깊이 파고들 수 있도록 꾸준한 연구가 필요하다.

1994년에 창립한 5.18기념재단은 재단 내 연구소와 비상임연구원 제도를 운영하며, 지속적인 연구를 독려하고 있다. 비상임연구원들은 정해진 계약 기간 동안 매월 고정 급여를 받으며 연구에 매진한다. 이런 연구는 5.18의 진실을 찾는데 적지 않은 힘이 되고 있다. 

5.18기념재단 정수만 비상임연구원은 지난해 12월, 5.18 당시 계엄군이 시민을 겨냥한 헬기 사격을 요청했다는 군 보고서를 공개하면서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정 연구원의 연구 결과물은 다른 연구와 노력이 더해지면서 큰 성과를 이끌어냈다.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은 최근 5.18 헬기사격 진상규명을 위한 국회 차원의 노력을 공언했고, 국방부 역시 “객관적 진실규명의 필요성을 인식한다. 또 국회 입법을 통한 진상조사 추진 시 필요한 조치를 이행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물론 2008년 탄생한 4.3평화재단과 5.18기념재단은 직접 비교가 어려운 면이 있고, 4.3평화재단은 유족 복지 같은 역할까지 맡고 있다. 그러나 연속성 있는 연구의 필요성을 공감해 연구 분야 기능과 예산 비중을 늘린 5.18기념재단 사례는 4.3평화재단이 분명 참고해야 한다. 

2007년 <제주4.3 시기 아동학살 연구>로 제주대에서 한국학 석사 학위를 받은 허영선 제주4.3연구소장은 “솔직하게 말해보자. 4.3평화재단이 생기면서 연구소가 하던 업무 상당수를 재단이 가져가고, 사람까지 옮겨간 건 아는 사람은 다 아는 사실”이라며 “제주 안에서 4.3연구자가 먹고살 걱정을 크게 하지 않고 치열하게 연구에 전념할 수 있는 풍토를 만들지 못한 것도 분명하다”고 꼬집었다.

4.3평화재단은 연구 기능을 강화하는데 공감하면서도, 제주도와의 협의를 통한 ‘예산 확충’으로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입장이다. 

제주도와 재단 측에 따르면 원희룡 지사와 재단 관계자는 5월 중순 만나 연구부서 신설을 논의했다. 이건 원 지사가 2015년 4.3 추념식에서 약속한 내용이기도 하다. 재단이 제시한 연구부서 인력은 6명이다. 이에 대해 원 지사는 예산 문제를 들며, 연구 기능을 강화할 방안을 더 찾아보겠다는 취지로 언급한 것으로 알려졌다.

오승국 4.3평화재단 기념사업팀장은 “가능하다면 70주년이 되는 내년에 연구소 혹은 그 보다 작은 연구팀이라도 만들어지길 바란다. 이 문제는 아직 제주도와 더 협의해야 한다”고 말명했다. 원 지사도 임기 내 자신의 공약을 반드시 지켜야 하지만, 재단이 현재 가용 재원을 재조정해 보다 적극적으로 연구에 힘을 쏟아야 한다는 의견도 적지 않다. 

익명을 요구한 학자 A씨는 “지금 재단은 4.3사안에 있어서 성명서 하나 마음대로 못내는 처지 아니냐. 지금까지 자기 돈 내가며 고군분투한 제주4.3연구소와 연구 분야는 정작 제도화에서 배제됐다. 그렇다면 이제라도 재단이 연구 기능과 지원을 강화해야 하는 게 당연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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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2015년 4.3추념식에서 '4.3연구조직 신설'을 약속한 원희룡 지사. 이제 임기는 1년 앞으로 다가왔다.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 4.3하면 한없이 작아지는 제주대 "총장 의지 중요"

제주 지역에서 가장 중심이 되는 대학이라면 제주대이다. 그러나 4.3을 꺼내들면 한 없이 작아지는 곳도 제주대다. 

제주대 사학과 교수진 가운데 4.3을 논문으로 쓰거나 전공한 인원은 한 명도 없다. 지난해 9월 제주4.3연구센터가 제주대에 생겼지만 탐라문화연구원에 속해 있는 수준이고, 센터 소속 인원은 단 한 명에 불과하다. 4.3의 기본적인 개념을 다루는 강의가 있고 세미나 같은 행사가 종종 열렸다는 점을 고려해도, 대학측이 4.3을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지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4.3평화재단 만큼이나 제주대 역시 4.3 연구에 있어서 역할을 해야 한다는 점은 많은 전문가들의 의견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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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주대 전경. 그동안 4.3 연구에 소홀히 한 제주대를 비판하는 목소리가 높다.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2006년 <제주 4.3항쟁 연구>로 성균관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은 양정심씨는 “이제 4.3연구는 보다 (체계적인)구조를 갖춘 연구소나 학교 단위에서 이뤄져야 한다. 집단 연구가 아니면 파편화될 우려가 높기 때문”이라며 “이미 진행된 연구가 많기 때문에 4.3은 역사학에서 매력적인 요소라고 볼 수 없다. 다만 보편적인 사례, 세계사적 의미로 끌어올리는 노력이 있는데 이건 구체적으로 다루지 않으면 허망하게 흘러갈 우려가 있다. 비슷한 시기에 벌어진 다른 국가의 민간인 학살 등 사례들을 연계해야 하는데 개인은 힘들다. 개인이 해도 큰 성과를 내기 어렵다. 지금이야 말로 4.3을 집단 연구할 시기”라고 강조했다.

양 박사는 “최근 들어 외국에서 4.3을 연구하려는 움직임들이 있다. 다양한 시각에서 접근한다면 바람직한 일이다. 그러나 연구를 총괄적으로 알고 함께 할 조직이 필요하다. 심포지엄이나 세미나는 그것으로 끝나기 마련”이라며 4.3을 안정적으로 학습·연구할 공간을 주문했다.

광주5.18의 사례를 보면, 전남대는 1996년 일찌감치 대학 부설로 ‘5.18 연구소’를 만들었다. 정기적으로 학술지를 펴낼 뿐만 아니라 NGO분야 전문 인력을 양성하는 교육과정도 자체 운영하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연구자 B씨는 “객관적으로 제주대에서 4.3 연구 기능은 없다. 결국은 총장의 의지가 중요하다. 의지만 있다면 정책적으로 풀어나갈 방법은 얼마든지 있다. 4.3평화재단, 제주학연구센터 같은 외부 기관과 손잡고 연구 과제를 수행할 수도 있다”며 “중요한 건 대학이 중장기적으로 연구자를 키워낸다는 목표로 4.3을 인식해야 한다. 학교 안에 있는 제주4.3연구센터는 밖에서 볼 때 사실상 ‘만들었으니 알아서 살아남으라’는 면피용 수준에 불과하다. 과연 다음 총장이 얼마나 4.3을 생각할지 궁금하다”고 꼬집었다.

# "제2, 제3의 김종민 나오려면..." 척박한 연구풍토 개선 시급 

4.3평화재단, 제주대의 역할과 함께 4.3연구를 보다 활성화하기 위한 방안은 다양하게 제시되고 있다. 

허영선 4.3연구소장은 “재단 연구, 제주대 역할 모두 젊은 학자들을 흡수할 수 있는 방향으로 고민해야 한다. 역사를 연구하는 사람들은 연구 분야가 자신의 미래와 직결된다”고 강조했다.

2008년 <제주4.3사건 기념의례의 형성과 구조>로 전남대에서 사회학 박사 학위를 받은 현혜경 제주학연구센터 전문연구위원은 “4.3 연구 논문이 KCI(한국학술지인용색인)급 논문으로 인정받을 수 있도록 방법을 찾아야 한다. 그렇게 되면 더 많은 전문연구자들이 연구에 참여할 수 있다. 5.18연구소, 민주화기념사업회 학술지는 KCI로 인정 받는다”고 비교했다.

박찬식 4.3추가진상조사단장은 《제주4.3연구의 새로운 모색》에서 4.3을 한국현대사의 대표적인 ‘대중투쟁’으로 연구할 필요성을 제시한 바 있다. 

《4.3은 말한다》 취재·발간 작업을 주도한 김종민 4.3평화재단 이사는 “키워드 하나로 방대한 사료를 찾을 수 있는 조선왕조실록처럼 지금까지 세상에 나온 4.3 자료도 모두 디지털화 시켜서 다음 세대 연구자들이 보다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하자”고 제안했다. 

김 이사는 4.3과 관련한 학위는 없어도 현장 경험과 자료 수집을 바탕으로 4.3 최고의 전문가로 꼽힌다. 13년간 국무총리 소속 4·3중앙위원회 전문위원을 역임하며 ▲<제주4.3사건 진상조사보고서> 작성 참여 ▲도민 4만명 희생자 및 유족 인정 심사업무 ▲보수단체의 각종 송사 승소 등을 도맡았다. 

이런 의견을 모아 척박한 연구 풍토를 개선해 '제2, 제3의 김종민'이 나오도록 해야 한다는 지적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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