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종우의 여럿이 함께] (3) 일자리를 만드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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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드라곤을 그리며...

1990년대 초로 기억합니다. 우연찮게 친구에게서 책 하나를 건네받곤 밤 새며 읽었던 때가.〈몬드라곤에서 배우자>, 스페인 변방 바스크지방에서 시작해 반세기만에 200여개 기업, 수만 명의 조합원이 일하는 노동자협동조합 복합체로 알려져 있는 몬드라곤에 대한 기록. 한 때 제주에서 하늘버스협동조합을 추진했던 김성오 씨가 오래전 번역한 책입니다.

퍽이나 인상 깊었던 모양입니다. 그 무렵 무정부주의자 크로포트킨을 동경했던 제가 그 친구와 의기투합, 제주형 몬드라곤을 만들어 보자며 너스레를 떨 정도였으니... 20여년이 지난 지금 그 친구는 소비자생활협동조합에서, 저는 자활관련 사업에 몸담아 왔으니 그래도 괜한 흰소리는 아니었나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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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업영역을 늘려나가고 있는 행복나눔마트협동조합.

노동환경 개선과 매출 상승 동시에? 행복나눔마트협동조합

제주에도 몬드라곤을 꿈꾸는 사람들이 생겼습니다. 행복나눔마트협동조합. 조합원들이 함께 소유하고 관리하면서 일 중심으로 분배하는 직원협동조합. 비정규직 일색에 저임금, 장시간 근로에 시달리던 마트의 노동조건을 개선하자며 몇 사람이 한데 뭉쳤습니다. 직원 대부분을 정규직으로, 8시간 근무로 바꾸는 대담한 실험은 비록 우여곡절을 거치긴 했지만 성공적이었습니다. 이전보다 되레 매출이 늘었고 게다가 직원들의 급여 또한 나아졌습니다.        

불과 5년 밖에 안된 사회적기업 행복나눔마트협동조합의 오늘은 말 그대로 격세지감. 마트 2개에다 로컬푸드 한식뷔페, 쇼핑몰로 사업영역을 숨가쁘게 넓혀 왔습니다. 10여명에 불과했던 직원은 70여명으로 불었고 매출규모도 연 100억원을 넘어선지 오랩니다. 게다가 올 7월경에 퓨전 동네 점방인 편의점을 런칭하느라 부산합니다. 청년회나 부녀회가 운영하는 소셜 프랜차이즈(Social Franchize)를 겨냥하고 있습니다. 한번 기대해 볼 만하지 않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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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년 구성원들을 중심으로 자리를 잡은 제주희망협동조합.

청년에게 희망 주는 제주희망협동조합

청년들이 하나 둘씩 모다듭니다. 2011년 자활사업으로 정부양곡배송을 시작한 이래 지금은 전도유망한 물류·유통기업으로 성장한 제주희망협동조합. 자활기업이자 사회적기업이기도 해서 그런지 모르겠네요. 수급자분들과 함께 청년들이 결합한 제주희망협동조합은 이제 취약계층 양곡배송 ‘희망나르미’를 비롯해 임산부의 건강을 챙기는 영양플러스, 이삿짐센터, 그리고 한살림과 지역농산물 물류운송사업까지 나날이 몸집이 늘고 있습니다.

매출도 올해 10억원을 훌쩍 넘겼습니다. 그리고 전체 12명 직원 중에 청년들이 8명이나 됩니다. 3명은 조합에 와서 결혼까지 했다니 이만하면 성공 아닐까요. 심지어 조합원 자녀들의 보육을 책임질 부모협동조합 어린이집도 염두에 두고 있다니 정말 가상타 싶습니다.

자활기업, 지역사회를 바꾸다

내친김에 오래전부터 자활사업에서 출발해서 수급자나 차상위 분들의 안정적 일자리를 만들어 온 사회적기업들도 잠깐 소개해 볼까 합니다.

위생청소전문 사회적기업 클린서비스 보금자리는 일용직이나 비정규직이 비일비재한 청소 업종이지만 보금자리 종사자 20여명 대부분은 정규직입니다. 저소득 근로빈곤층에게 사회보험에다 퇴직금은 물론이고 직함까지 있는 그야말로 직장다운 직장을 만들어 왔습니다. 자녀들 앞에선 그냥 아줌마가 아니라 팀장, 과장이라 불리는 것, 이것이 바로 일하는 사람들의 자존감 아닐까요. 전국에서도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외벽 타는 여성 자활명장도 있어 한동안 장안에 화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투자라는 건 감히 상상치도 못했던 저소득 여성들을 주주로 사회적기업을 운영하는 업체도 있습니다. 30만원 이상 본인 이름으로 주식을 보유한 직원이 20명 가까이나 되는 이른바 종업원지주회사, (주)제주이어도돌봄센터가 바로 그 곳입니다. 산모신생아건강관리지원부터 노인돌봄종합바우처, 재가장기요양서비스까지 전체 50여명이 근무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대표적 노동자협동조합인 해피브릿지와 몬드라곤이 만나서 HBM 협동조합연구소를 설립한 지 벌써 2년이 지났습니다. 지난 주 서울에 들른 김에 연구소에 계신 분과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면서 제주에서도 몬드라곤을 접할 기회를 갖고 싶다며 떼를 썼습니다. MTA(몬드라곤 팀아카데미) LEINN프로그램 같은 것들 말입니다.

스페인 몬드라곤대학교의 LEINN과정에는 학생이 없습니다.
교실도 없습니다. 교재도 시험도 없습니다. 교수도 없습니다.

LEINN에는 실제 사업을 운영하는 팀프로뉴어(Teampreneur)가 있으며,
이를 지원해주는 팀코치만 있습니다.

▲ 강종우 제주사회적경제지원센터장.
대학에 입학하게 되면 팀을 이루어 창업을 하고, 졸업할 때까지 100여 개의 프로젝트를 팀으로 진행하게 됩니다.

스스로 돈을 마련하고, 사업을 진행하고, 고객을 직접 만나게 됩니다.

사업 아이디어 개발에서 생산, 마케팅, 판매, 세금계산서 발행까지 모든 과정을 스스로 합니다.

-HBM 협동조합경영연구소

/ 강종우(제주특별자치도 사회적경제지원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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