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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조 비엔날레' 베니스는 어떻게 성공했나?

2017년 06월 12일(월) 14:03
양은희 yangeunhee@yahoo.com

제주도로 터전을 옮기는 이주민의 숫자가 한해 1만명을 훌쩍 넘어서고 있다. 특히 이들 중에는 적지 않은 문화예술인들이 청정한 자연환경에 매료돼 바다 건너 제주로 향한다. 여기에 제주사회는 자연, 사람, 문화의 가치를 키우자는 분위기가 그 어느 때보다 뜨겁다. 유례 없던 이런 변화 속에 제주문화의 미래를 고민하는 목소리 역시 높다. 전통과 변화 사이에서 제주문화의 정체성을 지켜내면서 끊임없이 진화해야 하는 상황이다. 이런 고민을 녹여내기 위해 제주출신 양은희 건국대학교 글로컬문화전략연구소 연구교수가 [제주의소리]를 통해 '양은희의 예술문화 이야기'를 연재한다. <편집자 주>


<양은희의 예술문화 이야기> (28) 변화, 세계, 그리고 자본 받아들여 명맥 잇는 베니스

2017년 여름 베니스에 다시 비엔날레가 열리고 있다. 지아르디니(Giardini, 공원)와 아스날(Arsenale)에서 열리는 비엔날레 외에도 각 재단과 문화기관이 주최하는 수십 개의 방계 전시가 베니스 전역에서 열리고 있는데, 이미 여름 관광객으로 넘치는 물의 도시가 예술로 달아오르고 있다. 

올해 비엔날레의 본전시는 프랑스 여성 기획자인 크리스틴 마르셀이 감독을 맡고 ‘예술 만세’라는 주제 하에 120명의 작가를 소개하고 있는데, 한국의 이수경 작가를 비롯해 올라퍼 엘리아슨과 같은 글로벌 스타 작가도 포함되어 예술이 허용하는 모든 주제와 예술이 쓸 수 있는 모든 재료를 선보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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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7 베니스 비엔날레 주전시장. 제공=양은희. ⓒ제주의소리

기획자가 맡는 본전시와 달리 개별 국가가 관리하는 국가관은 베니스 비엔날레의 또 다른 핵심축이다. 올해는 86개의 국가가 독립적으로 또는 인근 국가와 연대한 전시장을 운영하고 있다. 세계의 주요 국가들이 이미 지난 122년간 차근차근 자국 국가관을 설립해왔고, 올해 처음 선보이는 나라도 있다. 

한국은 1995년 한국관을 확보하여 지아르디니의 한켠을 차지하고 있는데, 올해 코디 최와 이완, 두 명의 작가를 선보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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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7년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관 전경, 코디 최 작가의 네온 작업. 제공=양은희. ⓒ제주의소리

지아르디니의 전시장을 둘러보다 공원 중앙에 있는 카페에 앉아 오가는 관람객을 보자면 부러움이 앞선다. 86개국이 저마다 자비를 들여 국가관에 참여하고, 자국의 화랑, 문화부, 문화재단의 적극적 지원 속에 작가들이 참여하기 때문이다. 개막식을 전후로 베니스의 호텔가에 전 세계에서 온 아트 딜러, 큐레이터, 평론가, 언론 등을 포함한 미술계 인사들이 북적거리며 인맥을 쌓고 축하하며, 베니스의 경제 사정상 예산이 축소되어도 외부에서 후원을 찾기가 어렵지 않은 곳이다. 2013년 글로벌 경제위기로 힘들었을 때에도 베니스에서 25억 정도를 준비하자 외부 후원으로 22억 정도를 확보했다고 하니 그 위상을 확인할 수 있다. 

백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하는 비엔날레의 원조라는 사실만으로는 이런 성공을 다 설명할 수 없다. 오는 9월 20여년 만에 새로 시작하는 제주 비엔날레를 앞두고 베니스 비엔날레의 성공 역사에서 타산지석으로 삼을 것은 없을까? 

베니스 비엔날레는 처음부터 이탈리아의 정치적, 문화적 지형이 만들어낸 산물이었으며 따라서 정치인들의 호불호에 따라 부침이 컸다. 1895년 제국주의 시대의 만국박람회 모델을 기반으로 처음 미술 비엔날레를 만든 이후 1990년대 글로벌 시대로 접어들 때까지 100여년간 국제 교류를 통한 자국 문화 소개에 주력했다. 

1회 대회 참가국은 프랑스, 영국 등 이탈리아와 가까운 나라였고, 1907년 최초의 국가관인 벨기에를 시작으로 영국(1909), 프랑스(1912), 러시아(1914), 스페인(1922), 미국(1930)이 문을 열었으며, 2차 세계대전 이후에야 남미, 아프리카 등 여러 국가들이 본격적으로 국가관을 건립하게 된다. 특히 무솔리니 치하에서 전략적으로 이탈리아의 국제적 위상을 알리는 행사로 크게 지원을 받았으나 무솔리니의 몰락 후 6년 동안 비엔날레가 열리지 않았었던 역사는 정치의 영향력에서 벗어나지 못했음을 보여준다. 1968년 학생운동 때문에 구체제에 대한 비판의 대상이 되면서 개최되지 못한 적도 있고 1974년에는 비엔날레의 유용성에 의심을 품은 정치권에 의해 취소되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베니스 비엔날레가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유럽통합주의라는 이데올로기 덕분이다. 1차 세계대전 이후 평화에 대한 갈망으로 논의되기 시작한 유럽통합이라는 사고의 씨앗은 1945년 2차 세계대전이 종결된 후 나치와 같은 극단적인 민족주의를 예방하기 위해서라도 꼭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형성됐고, 베니스 비엔날레는 문화라는 유연한 매체를 토대로 통합된 유럽을 그리는 장이자 국가관을 통한 국제적 연대가 가능한 장으로 부각됐다. 오늘날 EU의 뒤에 베니스 비엔날레가 어느 정도 역할을 한 셈이다. 

냉전시대에 유럽통합을 옹호하는 기조는 아방가르드 예술에 대한 개방으로 이어졌다. 히틀러가 퇴폐적으로 규정했던 실험적 예술 정신을 회복하고, 소련이 추구하는 사회주의 리얼리즘에 맞설 만한 추상표현주의, 아르 앙포르멜, 팝 아트 등을 옹호하며 유럽과 미주 중심으로 전개된 현대미술의 새로운 실험을 보여주는 창구역할을 맡게 된 것이다. 

또한 미술뿐만 아니라 음악, 연극, 영화, 건축, 무용 등 비엔날레의 분야를 확장해 온 것도 성공의 요인이다. 1932년 시작된 베니스 영화제는 세계 최초의 영화제이자 비엔날레의 한 분야로 해마다 열리고 있다. 1968년부터 비엔날레에 포함되기 시작한 건축은 1980년 베니스 건축비엔날레로 독립 개최되면서 미술 분야 못지않게 관객을 모으고 있다. 

무엇보다도 오늘날의 베니스 비엔날레의 성공은 1990년대 이후 변화된 세계를 수용한 덕분이다. 그동안 비엔날레 운영위원회의 위원은 모두 이탈리아인들이었고 예술감독 또한 자국인들로 채우곤 했다. 그러다 1995년 프랑스 출신의 장 클레어(Jean Clair)에게 감독직을 맡긴 후 비이탈리아계 인사들도 감독에 선정되고 있다. 1993년 한국출신 작가 백남준이 독일관 작가로 참여해 황금사자상을 받은 것도 예술의 초국가적, 초문화적 성격을 인정한 결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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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관의 전시장면, 2017 베니스 비엔날레. 제공=양은희. ⓒ제주의소리

21세기 들어 현대미술시장의 팽창은 베니스 비엔날레의 존재감을 더 높이고 있다. 2004년 이후 현대미술 거래에 중국이 큰 손으로 등장하면서 1990년대에 비해 시장규모가 2배 이상 성장했고, 사망한 작가뿐만 아니라 생존 작가의 작품 거래가 활성화되자 작가의 시장 가치를 높이는 요인으로 베니스 비엔날레가 무시할 수 없는 장이 된 것이다. 50만 명이 넘는 관람객, 수십억에 달하는 적극적인 외부 후원의 뒤에는 바로 이런 자본의 이해관계가 얽혀있다. 

 ▲필자 양은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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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은희는 제주에서 태어나 초·중·고·대학을 졸업했고 영문학·미학·미술사·박물관학을 공부했으며, 미술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미국과 한국에서 큐레이터와 미술평론가로 활동해왔다. 뉴욕을 현대미술의 눈으로 살펴 본 <뉴욕, 아트 앤 더 시티> (2007, 2010) 저자이자  <기호학과 시각예술>(공역, 1995), <아방가르드>(1997), <개념 미술>(2007)의 번역자이기도 하다. 서울과 제주를 오가며 살고 있다. 현재 건국대학교 글로컬문화전략연구소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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