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이면 제주4.3이 발발한 지 70주년이 된다. 1948년 미군정 하의 제주도에서 일어난 4.3참극은 3만 명에 가까운 인명이 희생된 사건이다. 세계사에서 전쟁 지역이 아닌 좁은 공간에서 이처럼 엄청난 인명 피해가 발생한 사건은 없었다. 2003년 10월15일 ‘제주4.3사건진상조사보고서’가 채택되고, 대통령이 희생자와 유족, 제주도민에게 공식 사과를 하면서 4.3문제는 전기를 맞게 된다. 그럼에도 아직 갈 길이 멀다. 해결해야 할 과제도 많다. <제주의소리>가 △진상규명 △명예회복 △미국 책임 규명 △배·보상 △정신계승 등 4.3문제의 완전 해결로 나아가기 위한 과제들을 점검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4.3 70주년 D-1년> 연중기획을 진행한다. [편집자 주]

[4.3 70주년 D-1년] (8) 보편성과 독창성 동시 입증해야...'원본' 수집 등 범도민 협력 필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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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3 관련 토지대장 등 관련 공문서부터 집기류에 이르기까지 5456점을 보관하고 있는 제주4.3평화재단 수장고. ⓒ 제주의소리

2017년 4월 3일. 제69주년 제주 4.3 희생자 추념식에서 원희룡 제주도지사는 4.3 진상규명을 위한 다양한 노력을 약속했다. 이 중에는 4.3 기록물의 유네스코(UNESCO) 세계기록유산(Memory of the World) 등재 준비를 본격화하겠다는 내용도 있었다.

원 지사는 “4·3기록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하기 위한 준비도 올해부터 본격 추진하겠다”며 “4·3기록의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는 4·3의 가치를 인류와 함께 공유하고, 아픈 역사를 슬기롭게 해결한 대한민국을 성숙한 인권국가로 세계에 인식시킬 수 있는 소중한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최근 제주도는 4.3기록의 세계기록유산 등재를 위한 준비를 본격화했다. 행정자치부에 4·3 전문인력 채용과 기록물 수집 조사 등 등재 준비를 위한 국비 2억원을 신청했다.

2018년 전문인력을 채용한 뒤 2019년 상반기까지 자료들을 모으고 같은 해 7~8월쯤 문화재청에 신청서를 제출한다는 계획이다. 문화재청 문화재위원회의 국내 심의를 통과하면 유네스코 사무국에 제출되고 심사를 거쳐 2021년 최종 등재여부가 결정된다. 물론 이는 제주도가 구상하는 로드맵에 따른 것이다. 

등재까지 넘어야 할 산 많다

유네스코는 1997년부터 2년마다 세계적 가치가 있는 기록물을 세계기록유산으로 선정하고 있다. 2021년 등재를 위해서는 적어도 2020년 상반기에는 유네스코에 신청서를 제출해야 한다. 소위원회 심의를 거쳐 이듬해 국제자문위원회가 등재 여부를 결정하게 된다.

유네스코에 앞서 국내 지자체 간 경쟁을 통과해야 한다. 한 국가에서 2년에 한 번 유네스코에 제출할 수 있는 것은 2건. 문화재청은 국내 각 지자체, 단체들이 신청한 내용을 공모·평가해 최종 2건을 유네스코에 제출한다. 이 국내 예선을 통과하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

등재 기준을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세계적인 중요성’이다. 최초성과 독창성, 인류 역사에 미친 영향력이 가장 중요한 부분으로 꼽힌다.

유네스코 한국위원회 관계자는 “세계기록유산은 사건 그 자체보다도 그 기록물이 어떤 가치를 가지는가가 핵심”이라며 “사건보다 기록물에 초점을 맞춰서 그 중요성을 입증하는 게 관건”이라고 말했다.

4.3이 제주 지역사회에서는 엄청난 역사성을 지녔다 하더라도 그 기록물을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하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등재 여부는 4.3이 ‘세계인의 역사’로 인정받고, 그와 관련된 기록물이 ‘비대체적이고 독창적이고 중요한 가치를 지녔는지’를 입증 될 때 가능하기 때문이다. 4.3기록물들을 보편적 의미로 엮는 과정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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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3 관련 토지대장 등 관련 공문서부터 집기류에 이르기까지 5456점을 보관하고 있는 제주4.3평화재단 수장고. ⓒ 제주의소리

세계기록유산 등재에 성공한 광주 5.18민주화운동

실제 등재된 기록물 중 주목할만한 사례가 5.18민주화운동기록물이다.

2009년 9월 5.18기록물을 유네스코에 등재하자는 논의가 나왔을 때 광주지역사회에서조차 반응이 차가웠다. 세계기록유산은 수백년에서 수천년의 역사를 지닌 기록물만 가능할 것이라는 생각에서였다. 그러나 실제로는 1980년대 남미 군부독재하의 인권 관련 문서들, 남아공 만델라 대통령의 사형선고문서와 같은 기록물도 등재돼 있었다.

공감대가 형성되자 등재추진위원회가 꾸려져 본격적인 로드맵을 진행했다. 5.18기록물들이 비교적 온전하게 보존됐다는 점이 다행이었다. 2010년 3월말 유네스코로 신청서가 제출됐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극우보수단체 인사들이 5.18기록물의 유네스코 등재를 반대하며 프랑스 파리 유네스코 본부까지 방문해 청원서를 제출한 것이다. ‘논쟁이 되고 있는 사안’이라는 이유로 한 차례 심사가 보류되기도 했고, 이후에도 극우보수단체들이 반대 서신을 보내는 등 견제가 끊이지 않았다.

추진위원회는 정면돌파를 선택했다. 5.18관련 법률, 국가기념일, 국립묘지가 있을 정도로 국가로부터 공히 인정을 받았다는 점 등 근거를 탄탄히 만드는 데 주력한 것. 마침내 2011년 5월 영국 맨체스터에서 진행된 최종 심사에서 5.18기록물은 등재가 결정됐다. 

시민들이 어두운 시대 상황 속에서도 5.18 관련 자료를 보존해왔다는 점, 5.18 진상규명과 명예회복, 피해보상 등을 많은 이들이 꾸준히 요구해왔다는 점이 큰 힘이었다.

앞으로 4.3기록물의 유네스코 등재 추진 과정에서 어떤 어려움을 겪을 지 예상되는 대목이다.

5.18과 달리 4.3은 수십년 동안 수면 아래 묻힌 채, 공식적으로 진상규명 운동이 이뤄지기 전까지 단절된 시기가 존재한다. 당장 자료를 종합적으로 수집하고 체계적으로 정리할 필요성이 제기되는 이유다.

안종철 전 5.18민주화운동기록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 추진단장은 제주4.3과 관련해 “현재 남아있는 4.3기록물 중 유네스코가 중요히 여기는 ‘원본’이 많지 않다는 게 가장 걱정스런 부분”이라며 “지금부터 그 기록들을 최대한 많이 확보해내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그는 “전 도민이 4.3과 관련해 갖고 있는, 장롱 속에 넣어만 두고 있는, 숨겨져 있는 일기, 메모부터 찾아내는 범도민적 운동부터 시작해 지자체 차원에서 미국 등에 공식문서를 요청하는 등의 작업이 필요하다”며 “이론적으로 아무리 좋게 엮으려고 해도 자료가 없으면 의미가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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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4월 후보 시절 제주4.3평화공원을 방문한 문재인 대통령. 당시 그는 “4.3에 대한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을 책임지고 완결시키겠다”고 밝힌 바 있다. 5.18민주화운동기록물의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가 추진되던 시기가 이명박 정부 시절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제주4.3이 놓인 정치적 상황은 더 긍정적이라고 볼 수 있다. ⓒ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제주만의 ‘비대체성’ 도민들이 함께 담아야

2021년 등재를 위해서는 적어도 2020년 상반기에는 유네스코에 신청서를 제출해야 하고, 그에 앞서 2019년 하반기에는 문화재청에 제출돼 각 지자체 간 경합을 거쳐야 한다. 현실적으로 자료 수집, 조사 기간이 2018년초부터 2019년 상반기 까지 1년 남짓이다.

자료 수집 과정에서부터 도민 사회의 총체적인 역량을 모으는 일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각 단체, 기관 별로 자료들을 집대성하기 위한 움직임들을 하나로 연결시킬 필요가 있다는 얘기다.

현재 4.3평화재단은 수장고에 4.3 관련 토지대장 등 관련 공문서부터 집기류에 이르기까지 5456점을 보관 중이고, 별도로 미디어와 문헌자료 1만6000여점을 디지털화 하는 ‘4.3아카이브’를 구축 중이다. 제주민예총도 문화예술분야와 진상규명 과정을 다룬 아카이브와 유족생애사 조명 등 여러 가지 작업을 준비하고 있다. 이밖에도 4.3 관련 단체나 연구기관 등이 나름대로의 자료를 구축하는 작업들도 이어져왔다.

내년부터는 다양한 주체들이 힘을 합쳐 함께해야 할 필요성이 제기된다.

제주4.3평화재단 김재형 학예사는 “5.18은 바로 직후에 단체가 꾸려져서 진상규명이나 자료수집을 이어온 반면 4.3은 40년간의 공백기가 있다”며 “세계기록유산 등재에 있어서 4.3이 거쳐야할 방향은 5.18과 분명히 다른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이어 “5.18은 어떤 피해가 있었고, 이를 어떻게 극복해 역사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에 초점을 맞췄다”며 “4.3의 경우에는 관련 기관, 단체, 시민사회, 학계, 도민들이 모두 함께 ‘제주도 차원의 일치된 움직임’이라는 의미를 부여하는 게 중요한 과제”라고 강조했다.

제주도 관계자는 “지금으로선 등재 여부를 단정할 순 없다”며 “냉정하게 학술적 시선에서 최대한 자료를 준비하고 등재를 위해 부족한 것이 무엇인지 찾아본 뒤 설득력 있게 준비할 것”이라고 말했다.

[인터뷰] 안종철 전 5.18민주화운동기록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 추진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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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종철 전 5.18 기록물 유네스코 등재 추진단장. ⓒ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5.18민주화운동 기록물의 유네스코 등재 과정을 지켜 본 사람이라면 안종철이라는 이름을 모를 수 없다. 정치학 박사로 한국현대사사료연구소와 국무총리실 민주화심의위원회, 국가인권위원회를 거친 그는 세계기록유산 등재를 공론화 한 뒤 반신반의하던 지역사회를 설득시키고,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등재를 이끌어낸 핵심 인물이다.

“어떻게 그게 가능하냐”는 의문에 답하고, 지자체와 정부 차원의 관심을 이끌어낸 것도 그였다. 모든 과정을 중심에서 생생히 겪은 만큼 기록유산 등재를 준비하는 제주4.3에도 할 말이 많았다.

- 유네스코 기록유산으로 등재된다는 게 구체적으로 어떤 의미인지 와닿지 않는 국민들도 있는 것 같다.

“유력한 국제기구에서 인정했다는 의미다. 승인보다는 인정에 가깝다. 많은 사람들에게 5.18을 알리는 데 엄청난 부가가치가 있었다. 4.3의 입장에서도 국제화를 위해서는 최고의 채널이라고 볼 수 있다. 영향력이 엄청난 기관에 등재됐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공신력 있게 4.3을 알릴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다. 5.18의 경우도 유네스코 등재를 통해 5.18이 정당한 민주화와 인권 운동이었다는 걸 세계시민들에게 알리고, 5.18을 깎아내리려 무리한 주장을 하는 이들도 주춤하게 됐다”

- 4.3의 경우 5.18과 다소 차이가 있는 것 같다. 둘 다 현대사 속 중요한 사건이지만 4.3의 경우 훨씬 시간이 오래 경과했다.

“4.3 기록 중 원본이 많지 않다는 게 가장 큰 걱정이다.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은 원본으로서의 가치를 많이 강조하고 있다. 지금부터 이런 자료들을 많이 확보해내는 작업이 필요하다. 여기서 지방정부의 역할이 중요하다. 미국 정부의 5·18 기밀문서를 공개한 미국 저널리스트 팀 셔록은 최근 ‘개인이 일일이 요청하는 것보다 지방정부 차원에서 요청하면 훨씬 더 빨리 효과적으로 자료를 얻을 수 있다’고 말한 바 있다. 이를 잘 참고해야 한다”

- 5.18도 그랬지만 4.3의 유네스코 등재 추진 과정에서도 일부세력의 극심한 반대가 예상된다. 이를 돌파하려면 어떻게 해야하나.

“당시 5.18관련 법령이 3개나 있다는 점, 국가기념일로 지정됐고 국립묘지도 있다는 점, 이런 근거들을 확실히 다졌다. 제주 역시 대통령이 공식사과하는 등 국가 차원에서 인정한 부분들에 초점을 맞춰 객관적인 자료로 만들어야 한다. 이렇게 정면돌파해야 한다고 본다”

- 제주도가 정말 유념해야 될 점이 있다면.

“세계사적 의의를 유네스코에 잘 전달할 수 있는 전문가들이 직접 참여해서 작업을 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줘야 한다. 전문가가 중심이 될 수 있도록 뒷받침 해주는 게 정말 중요하다.

그리고 전 국민이 장롱이나 문서고 속에 숨겨져 있는 4.3 관련된 일기, 메모 등 기록물들을 찾아내는 운동을 진행해야 한다. 4.3 자료 찾기 범시민 운동이라도 벌였으면 좋겠다. 구슬을 꿰야 보배가 된다고 하지만, 애당초 그 구슬이 없으면 어떻게 하나. 자료가 없으면 이론적으로 아무리 좋게 말해도 안되는 것이다”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이란?]

유네스코(UNESCO)는 세계 평화와 인류 발전을 목표로 하는 국제기구다. 교육, 과학, 문화 등 지적 활동이 주 영역이다.

이들이 선정하는 유산(Heritage)은 크게 세계유산, 인류무형문화유산, 세계기록유산으로 나뉜다. 세계유산은 자연유산, 문화유산, 복합유산으로 나뉜다. ‘제주 화산섬과 용암동굴’은 2007년 세계자연유산으로 등재됐다. ‘제주 칠머리당 영등굿’과 제주해녀문화는 각각 2009년과 2016년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된 바 있다.

세계기록유산은 인류의 문화를 계승하고, 인류사적으로 큰 의미를 갖는 중요한 기록물의 가치를 조명하고, 영구적으로 보존한다는 취지에서 1995년 본격화됐다.

현재 세계기록유산에는 107개국에서 348건이 등재돼있다.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책으로 알려진 그리스의 ‘데르베니 파피루스’부터 1963년 남아공 넬슨 만델라의 공소문 등 다양한 기록물들이 올라있다.

한국에서는 훈민정음(1997년), 조선왕조실록(1997년), 직지심체요절(2001년), 승정원일기(2001년), 해인사 대장경판 및 제경판(2007년), 조선왕조의궤(2007년), 동의보감(2009년), 일성록(2011년), 5.18 민주화운동 기록물(2011년), 난중일기(2013년), 새마을운동 기록물(2013년), 한국의 유교책판(2015), KBS 특별생방송 ‘이산가족을 찾습니다’ 기록물(2015) 등 총 13건이 등재돼있는데 이는 세계에서는 네 번째,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는 가장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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