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밥상 이야기> (37) 초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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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피. ⓒ 김정숙

자연은 저마다의 이름처럼 냄새를 가지고 있다. 우리 삶에서 향은 행복과 가깝고 냄새는 가까이 하고 싶지 않은 것들과 친하다. 냄새는 익숙해져서 향이 되기도 하고 향기는 또 질려서 냄새 따위가 되고, 또한 오랜 시간 사람들과 한데 어우러지면서 문화가 되기도 한다. 자연 그대로의 생명은 건드리지 않으면 아무냄새도 피우지 않는다. 그러니까 향은 자신을 보호하려는 자연본능의 산물이다. 초피의 자기 보호본능은 예술이다. 강한 향과 얼얼한 맛에, 날카로운 가시까지 달고 있으니 말이다.

제주사람들이 아끼는 ‘제피’가 표준어로 ‘초피’다. 지난봄에 하나, 올 봄에 하나 애지중지 키우던 초피나무를 도둑맞았다. 나처럼 초피를 좋아하는 사람이 또 있구나. 그 욕심을 이해한다. 과수원 구석에 귤나무 외에 맨 먼저 심은 게 초피나무다.

초피는 토종 향신료다. 약초이기도 하지만 제주사람들은 향신료로 즐겨 먹었다. 말로는 표현하기 어렵다. 먹어봐야만 아는 제주사람들의 향기다. 어릴 적 뒤뜰에도 초피나무가 있었다. 시내 살면서 가끔 간절했던 게 초피였다. 간혹 봄철에 구해다가 저장을 해 놓지만 그때그때 나무에서 따다 먹는 것에는 한참 못 미쳤다. 초피는 물회뿐 아니라 냉국에도 넣으면 맛이 근사해졌다. 음식의 힘은 향이다. 주 재료의 향이나 조리에서 생기는 향이나 기본양념 위에 얹어져 음식 맛을 좌지우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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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피. ⓒ 김정숙

봄엔 새순과 잎을 다져서 향신료로 먹다가 잎이 풍성해지면 어린잎을 따서 된장에 박아 쌈장으로 먹기도 하고 장아찌를 만들기도 했다. 말려서 가루를 만들어 두기도 하였다. 초피 장아찌는 생선회나 고기와 잘 어울린다. 생선회를 많이 먹는 제주사람들에게는 좋은 식품이다. 장아찌는 된장과 고추장을 반반 섞어서 초피잎을 버무려 두는 것이다. 간장양념을 해서 절여도 된다. 어린열매를 된장에 박아 먹기도 했었는데 그 맛이 고추와는 다른 매운맛이 있다. 장아찌는 냉장고에 두면 한여름은 먹을 수 있다.

대중적이지 않지만 초피는 세계 식재료 시장에서 유명하다고 한다. 한국, 일본, 중국에서 자라며 특히 일본사람들은 수입을 할 만큼 좋아한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도 중부이남에서 추어탕이나 매운탕에 쓴다. 제주에서처럼 잎을 쓰는 게 아니라 열매껍질을 말려서 가루를 내어 후추처럼 이용한다.

초피와 아주 닮은 약초로 산초가 있다. 모양도 닮을 뿐 아니라 초피처럼 특유의 향이 있어 제주에서는 ‘개제피’라고 불리기도 한다. 초피의 향을 기억 해두면 쉽게 구별 할 수 있다. 초피는 열매 껍질을 말려서 가루 내어 쓰지만 산초는 열매의 씨를 따로 모아 기름을 내어 쓴다. 산초는 열매가 무리지어 많이 열리지만 초피는 몇 방울씩 모여 달린다.

나무 떠난 자리에 어린 묘가 태어났다. 한두 해 잘 키우고 뒤뜰로 옮겨 심을 생각이다. 씨를 남기고 떠난 초피나무야, 어느 땅으로 옮겨갔든지 잘 살아라. 근성 버리지 말고 퇴화 하지도 말고 오래오래 우리 곁에 있어 다오. / 김정숙(시인)

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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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 시인은 제주시 애월읍 납읍리 출신이다. 2009년 매일신문 신춘문예 시조부문에서 당선됐다. 시집으로 <나도바람꽃>을 펴냈다. 젊은시조문학회, 한국작가회의, 한국시조시인협회, 제주작가회의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30여년 동안 제주도농업기술원에서 일하다 2016년 2월 명퇴를 하고 서귀포시 남원읍 수망리에서 귤 농사를 짓고 있다. <제주의소리>에 ‘제주 밥상 이야기’를 통해 제주의 식문화를 감칠맛 나게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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