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밥상 이야기> (38) 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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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먹음직스러운 야채쌈. 제공=김정숙. ⓒ제주의소리

우리음식의 또 한 가지 자랑은 쌈이 아닐까 한다. 쌈을 싸는 재료도, 싸 먹는 음식도, 싸는 방법도 가지가지다. 아마 한국음식 중에 제일 많은 재료와 방법을 가진 음식이 아닐까 한다. 게다가 제 마음까지 야물딱지게 넣고 싸서 상대의 입속에 넣어 줄 수 있는 게 쌈 아닌가. 세상에 이런 음식이 또 어디 있을까 싶다. 

우리는 어느 계절 어떤 자리와 장소를 막론하고 쌈을 즐긴다. 옛날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다. 재료나 방법이 무한 진화하고 있을 뿐이다. 쌈은 삶은 거, 구운 거, 볶은 것은 물론 날것도 싼다. 밥은 당연하고 고기와 생선, 하물며 비빔국수도 싼다. 

간을 하는 양념은 또 얼마나 다양한가. 된장, 고추장, 간장, 젓갈, 장아찌는 기본이고, 재료에 맞춤한 양념소스까지. 거기에 생강, 마늘, 풋고추와 같은 향신료를 얹어 한 입 크기로 싼다는 쌈은 결국 모두 제 입보다 크게 싸서 얼굴을 볼품없이 만들면서 먹지만 그 모습조차도 푸짐하다. 하긴 ‘쌈채’라는 이름까지 만들어 낸걸 보면 한국 사람들의 쌈 사랑은 특급 중에 특급이다. 

그렇게 많은 재료를 쌀 수 있으면서도 상황에 맞게 단출한 음식 또한 쌈이다. 가난했던 시절 반찬이라는 것이 고작 된장이나 젓갈이던 그 때, 우아하게 그 보리밥과 된장을 포장해주던 게 쌈이었다. 밥술에 된장 찍어 먹으면 한량없이 초라해 보이지만 콩잎이나 호박잎에라도 쌈을 싸면 풍성하고 좀 격이 있어 보였다. 그러고 보면 쌈은 서민들의 밥상에서 출발한 음식일 듯하다. 신선한 채소가 큰 그릇에 담겨 밥상 위를 떡 지키고 있으면 풍성하고 넉넉한 마음이 들었으니. 

그 중 제주사람들은 콩잎 쌈을 즐겨 먹었다. 특히 멸치 젓갈을 곁들여 먹는 콩잎 쌈을 사랑했다. 콩 농사를 많이 지어서 쌈 채소용으로 따로 콩을 갈지 않아도 콩잎은 여름 내내 넉넉했다. 콩잎은 클로버 잎처럼 한 가닥에 따로따로 잎이 세 개 씩 붙어있다 잎만 따 모으면 석 장이다. 사람들은 이런 잎을 포개서 쌈을 싼다. 밥 반, 콩잎 반. 입 안 가득 고인 풋내가 목으로 내려가고 나면 풋내 같기도 하고 감칠맛 같기도 한 뒤끝이 다시 콩잎을 부른다. 특별한 맛은 없다. 

맛은 정 같은 것이다. 부대끼면서 깊이를 알고, 문득문득 그리워지는 거. 먹거리가 풍성한 요즘은 밥보다 고기를 싸는 게 쌈이다. 아니다. 이제 고기를 먹기 위해 쌈을 싸는 게 아니라 채소를 먹기 위해 고기를 준비해야 할 거 같다. 

상추 위에 콩잎, 콩잎 위에 깻잎, 깻잎 위에 고기, 고기 위에, 쌈장, 쌈장 위에 마늘, 마늘 위에 고추... 순서가 조금 바뀌어도 좋다. 무엇이 주인공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어차피 한 덩이 아닌가. 자신을 지키면서 서로에게 녹아드는...아, 거룩한 쌈이여! / 김정숙(시인)

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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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 시인은 제주시 애월읍 납읍리 출신이다. 2009년 매일신문 신춘문예 시조부문에서 당선됐다. 시집으로 <나도바람꽃>을 펴냈다. 젊은시조문학회, 한국작가회의, 한국시조시인협회, 제주작가회의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30여년 동안 제주도농업기술원에서 일하다 2016년 2월 명퇴를 하고 서귀포시 남원읍 수망리에서 귤 농사를 짓고 있다. <제주의소리>에 ‘제주 밥상 이야기’를 통해 제주의 식문화를 감칠맛 나게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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