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속기획-제주형 도시재생, 길을 묻다] (2) 야마자키 료 Studio-L 대표 인터뷰

도시재생, 마을만들기, 커뮤니티 비즈니스. 최근 화두인 새로운 지역 활성화 방식은 하드웨어 중심 개발에 대한 염증에서 비롯됐다. 단순히 예산을 쏟아붓고 각종 시설을 짓는 것만으로는 어떤 지역에 활력을 불어넣을 수 없다는 것을 행정당국도 깨닫게 된 것이다. 일본은 1990년대 장기불황 이후 지방들이 위기에 몰리면서 이런 새로운 지역 활성화 모델이 자리를 잡았다. 직접 일본 현지를 방문해 살펴본 그들의 삶의 모습은 제주에 주는 시사점이 분명했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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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1일 히로시마 시내 도요타 자동차 판매장에서 만난 Studio-L의 대표 야마자키 료. ⓒ 제주의소리
일본 토호쿠예술공과대학 교수이면서 studio-L의 대표로 유명한 야마자키 료(43). 그의 저서들은 대안적인 건축을 꿈꿔본 이들에겐, 마을만들기나 커뮤니티 비즈니스에 관심이 있는 사람에게는 바이블처럼 여겨진다.

행정에서 막대한 돈을 들여 만들었지만 사람들이 찾지 않아 방치됐던 공원을 주민들 삶의 중심지로 만들게 하고(아리마후지 공원), 마을의 주 산업이 사양길로 접어들면서 무너졌던 섬의 주민들의 일상이 회복되게 돕고(이에시마 섬), 댐 건설로 위기에 몰렸던 마을 공동체에 반전의 계기를 마련하는(요노 강 댐) 등 마법사 같은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대도시 외 지역의 인구감소와 쇠락으로 ‘지방소멸론’까지 나오던 일본사회에서 Studio-L의 프로젝트가 불러일으킨 반향은 상당했다.

그가 하는 일은 ‘커뮤니티 디자인’. 어떤 시설물을 디자인하는 게 아니라 인간관계의 교류를, 사람을 잇는 방식을 디자인한다. 주민들이 ‘하고 싶은 것’과 마을에 ‘요구되는 것’을 ‘할 수 있는 것’으로 조율해주는 조정자다.

그는 애당초 어떤 구상을 미리 정해놓고 마을에 들어가지 않는다. 마을주민들이 자발적으로 움직일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맡는다. 그들의 삶 속으로 들어가 지역의 문제가 무엇인지 파악하고, 주민들이 직접 해법을 선택할 수 있게 한다. ‘연결하고, 판을 깔’ 뿐이다. 현지 주민의 이야기를 먼저 듣고, 그들의 제안을 공공사업과 접목한다.

studio-L의 마을만들기는 ‘만들지 않는 것’이고, 거액을 쏟아 새로운 것을 만드는 디자인이 아니라 마을 커뮤니티를 통해 해법을 모색하는 ‘살리는 디자인’이라는 게 핵심이었다.

다음은 야마자키 료와의 일문일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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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1일 '2017 히로시마 사토야마 미래 박람회'에서 만난 Studio-L의 대표 야마자키 료. ⓒ 제주의소리

- 일본 마을 곳곳으로 들어가 다양한 프로젝트를 진행한 것으로 안다. 마을주민들 입장에선 처음에 의아하거나 반감을 가질 수도 있을 것 같다.

“우리가 먼저 ‘이런 사업을 하세요’라고는 하지 않는다. 가서 ‘무엇이 문제세요’라고 묻는다. 주민들이 문제를 얘기하면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여러 방향을 Studio-L에서 제시한다. 그리고 주민들은 문제해결 의식을 갖고 스스로 선택한다. 그렇기 때문에 반대하는 경우는 없었다.”

- 주민 중심의 지역 활성화 프로젝트를 진행하다보면 외부자본, 대형자본들의 위협도 있었을 것 같다.

“그런 문제는 없었다. 다만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대기업 자본이 마을에 무언가를 개발하려 했을 때 주민들이 그에 앞서 스스로 지역에서 하고 싶은 사업을 먼저 발견한다면, 그 대기업들의 공격에도 확고하게 반대할 수 있을 것이다.”

- Studio-L의 프로젝트에는 전국 각지의 대학생들이 몰려와 함께한다. 이들이 직접 마을로 들어가 주민들과 소통하고 같이 생활하면서 마음의 문을 열게 하는 과정이 놀랍다. 청년들을 커뮤니티 디자인으로 이끈 비결은 뭔가.

“(사토야마 미래 박람회 현장을 가리키며)여기 모이신 분들 중에는 나이 드신 분도 있지만 젊은 사람들도 보일 거다. 시청이나 공공기관이 이런 행사를 만드는 게 아니고 주민 스스로가 ‘전시된 자동차들을 밖으로 옮겨놓고 거기서 한 번 피크닉을 해보면 어떨까’하고 기획한 것이다. 재미있는 기획을 하면서 젊은이들이 좋아할만한 일을 하는 거다. 젊은이들이 호기심이 생겨서 오게끔 하는 감각이 필요하다. 흥미를 느끼게 되면 그 다음부터는 자연스레 ‘그런 행사라면 재밌겠는데? 한 번 가볼까?’라는 생각을 하게 될 것이다.”

- 주민들 일상에 함께 녹아드는 과정이 필요한 것 같다. 커뮤니케이션을 시작하는 방식이 따로 있나.

“단순하게 홍보물을 뿌리는 식으로 홍보하고 모집하려 하지 말아야 한다. 먼저 그 지역에 가서 공무원들에게 ‘어떤 사람이든 좋으니 이 지역에 재미난 사람을 10명 정도 소개시켜달라’고 말한다. 그 사람들을 다 만나러 간다. 그 분들과 얘기를 하고 서로 알아간다. 그리고 그 분들에게 다시 ‘이 지역에 재밌는 분 3명만 소개시켜달라’고 한다. 그럼 30명, 또 하면 90명... 계속 늘려간다. 늘려가면서 어떤 워크숍 등을 통해 서로 엮어지면 자체적으로 자발적인 분위기가 형성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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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1일 '2017 히로시마 사토야마 미래 박람회'에서 만난 Studio-L의 대표 야마자키 료. 그가 손에 든 팥빙수는 히로시마 중산간 지역 주민들이 마을에서 직접 재배한 블루베리 등 천연 식재료로 만들었다. ⓒ 제주의소리
- Studio-L이 꿈꾸는 미래, 궁극적인 지향점은 무엇인가.

“커뮤니티 디자인이라는 일을 이 세상에서 없애고 싶다.”

- 당신들의 일을 없애고 싶다고?

“보통 커뮤니티가 있고 그들이 마을을 어떻게 만들어갈 것인지 생각하면서 커뮤니티를 발전시키는 방식이 일본사회에 많으면 좋겠지만, 지금은 잘 진행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외부에서 온 우리가 커뮤니티 얘기를 하고 있는 거다. 언젠가 우리가 가지 않더라도 지역민들이 스스로 마을을 변화시켜 나갈 수 있다면, 나는 바로 커뮤니티 디자인을 그만두고 팥빙수 가게를 하겠다.(웃음)”

- 결국 중요한 건 주민들이 스스로, 자발적으로 지역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라는 얘기로 들린다.

“물론 아직은 그렇지 못한 경우가 많다. 가장 높은 사람이 안쪽 자리에 있고, 남자들 대부분이 모여 ‘나는 이렇게 생각하는데 너희들은 어때’라고 하면 전원이 ‘의견 없음’이 돼버리고 ‘대표님의 말씀대로’ 해버리니 새로운 것을 시도하지 못하고 지역이 피폐해져만 가는 것이다.

우리들이 불려가는 곳은 대부분 ‘방법을 바꿔볼까?’라고 생각하는 지역이다. 돈을 벌기 위한 게 아니라 지역사람들이 서로 이어져 함께하면서 한 사람 한 사람이 ‘재밌어’라고 생각할 수 있는 인생을 실현하고 싶다.

우리의 미션은 우리와 같은 외부 사람이 참견하지 않더라도 모든 지역이 자신들의 일을 추진할 수 있는 상태로 만드는 것이다. 내가 살아있는 동안 커뮤니티 디자인이라는 직업을 없앨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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