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속기획-제주형 도시재생, 길을 묻다] (3) 이에시마 섬 미래 바꾼 주민들의 즐거운 선택

도시재생, 마을만들기, 커뮤니티 비즈니스. 최근 화두인 새로운 지역 활성화 방식은 하드웨어 중심 개발에 대한 염증에서 비롯됐다. 단순히 예산을 쏟아붓고 각종 시설을 짓는 것만으로는 어떤 지역에 활력을 불어넣을 수 없다는 것을 행정당국도 깨닫게 된 것이다. 일본은 1990년대 장기불황 이후 수많은 지역들이 위기에 몰리면서 이런 새로운 지역 활성화 모델이 자리를 잡았다. <제주의소리>가 최근 일본 현지 취재를 통해 살펴본 그들의 삶의 모습은 제주가 추진 중인 도시재생과 마을만들기 사업 등에 주는 시사점이 분명했다. 장기 연속기획으로 국내외의 다양한 도시재생 성패 사례들을 현장 취재해 소개한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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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에시마의 4개 섬 중 채석장 규모가 가장 큰 탄가지마 섬. 이 섬에 우뚝 솟아 있던 산의 한쪽 경사면이 채석작업으로 완전히 파헤쳐진 채로 흉물스럽게 바다 위에 떠있다. ⓒ 제주의소리

이에시마. 일본 혼슈 서부에 위치한 히메지 시에서 배를 타고 남쪽으로 30분 거리. 총 44개 섬으로 구성됐고, 이 중 유인도는 4곳이다.

여객선을 타고 섬에 도착할 때 쯤 독특한 실루엣이 다가온다. 섬 전체가 웅장한 숲으로 뒤덮인 산 하나로 이뤄진 곳인데, 산의 한쪽 사면이 완전히 파헤쳐져 처참하게 속살이 드러나 있다. 지금은 황폐해진 이에시마 채석장의 풍경이다.

채석산업으로 한때 활황을 맞았던 이 섬은 2000년대 들어 채석산업이 기울기 시작하면서 섬의 활력도 떨어지기 시작했다. 일본 내 공항, 항만, 다리 건설 등이 줄면서 골재 수요도 급감했기 때문이다. 1만명이 넘었던 섬의 인구는 반토막이 났다. 자연스레 활력이 떨어지고 인구 유출은 가속화됐다. 지방정부 입장에서도, 마을을 지켜온 주민들 입장에서도 난감한 일이었다.

위기에 처했던 섬의 반전은 2002년 즈음부터 시작됐다. 이 섬은 일본 내 커뮤니티 디자이너들이 모여 만든 'Studio-L'의 첫 번째 프로젝트 대상지이기도 했다. 전문가와 청년들은 마을로 들어가 섬의 문제가 무엇인지, 주민들이 원하는 게 무엇인지 파악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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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에시마 본섬의 거리. 평지가 적고 도로도 좁다. 이 때문에 외부인 차량 반입은 금지돼 있다. 주 이동수단은 자전거와 오토바이다. ⓒ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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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에시마의 주 교통수단은 자전거와 오토바이다. 자동차의 통행은 극히 제한적이다. 가지런히 주차되어 있는 자전거와 오토바이들. ⓒ제주의소리

섬의 일상은 도시의 비일상

주민들 스스로 장기간 탐색과 협력의 과정을 거쳐 나온 결론은 어떤 대단위 개발이나 관광객 유치에 올인하자는 쪽이 아니었다. 포커스는 섬의 활력, 커뮤니티 활성화에 맞춰졌다.

타 도시의 청년들과 섬이 고향이 청년들이 함께 ‘이에시마 고향만들기 청년대’를 결성해 지속가능한 섬의 미래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젊은 감각으로 섬의 색을 담은 특산품들을 만들기 시작했다. 

대도시의 '학교 밖 청소년들'과 '이에시마의 청소년들'이 함께 하는 요리 프로그램이 진행됐다. 섬에서 나온 풍성한 수산물 식재료는 이 청년들을 정서적으로 연결시키는 데 훌륭한 역할을 했다.

마을주민들이 운영하는 어린이를 위한 캠프, 아이들과 함께 만드는 지역신문 등을 통해서도 어린이들에게 이 섬이 충분히 매력적인 곳임을 알리려 했다.

관광업으로 전환은 불가피한 것이었지만 휴양지를 지향하는 대신 마을의 일상을 그대로 보여주기로 했다. 생선파는 가게, 어선들이 오가는 항구, 자전거가 오가는 골목길, 거기에다 파헤쳐진 채석장 풍경까지도 모든 섬의 일상은 좋은 자원이자 교훈이라 생각했다. 섬의 일상은 도시의 비일상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섬의 주민들은 리조트 개발이 아니라 주민들이 사용하던 빈 집을 게스트하우스로 리모델링하는 것 부터 시작했다. 이 게스트하우스는 외국인들만 대상으로 했고, 재방문 의사를 비치면 주민들이 운영하는 기존 민박집을 소개시켜 줬다.

명승지 중심으로 홍보하는 대신 섬의 골목, 도시와는 다른 방식으로 형성된 섬의 구석구석을 보여주는 데 집중했다. 이 섬의 원형을 알리는 관광 코디네이터도 육성했다.

행정 지원금으로 어떤 건축물을 만드는 대신 이를 신탁으로 맡기고 장기간 마을 만들기 조성금으로 사용하기로 했다. 지역 종합진흥계획이 주민들의 제안을 기초로 세워졌다.

또한 주민들은 당연한 풍경으로 여기는 것이지만, 외지인이 보기엔 매우 매력적인 것들을 정리해 책으로도 만들었다. 이 책은 외지인이 직접 탐사를 거쳐 만드는데, 그들이 섬을 통해 즐거움을 얻는 만큼 참가자 스스로가 비용을 부담했다. 이 ‘탐색되는 섬’ 프로젝트는 조금씩 조금씩 이에시마의 열렬한 팬들을 만들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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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섬 해설사 나카니시 카주야 씨. 그의 안내를 따라 섬 투어를 시작했다. 그가 주로 이끈 곳은 어떤 경승지가 아닌 이에시마의 생활문화가 그대로 남겨있는 마을의 원형이었다. 사진은 상수도 보급 전 사용되던 우물. ⓒ 제주의소리

주부들이 중심이 돼 탄생한 법인 'NPO 이에시마'는 이 섬에서 나는 싱싱한 수산물을 재료로 가공식품을 만들어 대도시에 판매하기 시작했다. 생산량에 따라 가격이 하락한 생선이나 규격 외 생선을 적정 가격으로 사들여서 가공한 뒤 판매했다. 이 중 김을 간장에 절여 만든 ‘노릿코’라는 제품은 전국적으로 대히트를 쳤다.

그렇다고 이들은 그 히트상품에 올인하지 않는다. NPO 에이시마의 이사장을 맡고 있는 주부 미사마 후미오(64)씨는 “우리는 프로젝트를 통해 엄청나게 돈을 많이 번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그래서 무리하게 생산량을 늘리지 않는다”며 “주민들이 즐겁게 일할 수 있고, 지속가능할 수 있도록 하는게 목표”라고 말했다.

그에게 NPO 에이시마가 마을에 설립되면서 일어난 가장 극적인 변화가 무엇이냐고 물었다. 그는 바로 옆에 있던 섬 해설사 청년 나카니시 카주야(32)씨를 가리켰다.

“이런 친구들이 섬으로 찾아와서 즐겁게 함께 사는 게 가장 분명한 성과 아닌가요?” 도시를 떠나 제발로 이 섬을 찾아오는 제2, 제3의 나카니시 카주야 씨들이 생겨나고 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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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에시마의 특산품 '노릿코'. ⓒ 家島관광사업조합

천천히 그리고 서서히

대학에서 건축을 전공하고 일본 제2의 도시 오사카에서 직장생활을 하던 나카니시 카주야 씨는 어느 순간 도시의 삶에 회의가 들었다. ‘인구가 감소하는 데 건축은 왜 필요할까?’, ‘빈 집이 늘어가는데 과연 건축을 새로 할 필요가 있을까?’. 저출산과 고령화로 인구가 줄어들고 있는 일본사회에서 자연스레 나올 수 밖에 없던 질문이었다.

그는 2009년 10월, 커뮤니티 디자이너들이 모인 Studio-L이 이에시마에서 빈 집을 게스트하우스로 바꾸는 프로젝트를 진행한다는 소식을 듣고 배를 탔다. ‘섬의 일상을 존속시키려는’ 많은 시도가 이어지고 있었다. 2년 뒤 그녀는 아내와 함께 이 섬으로 아예 이주한다. 섬의 생활문화를 세상에 알리는 프로젝트가 한창일 때였다.

“지역의 매력에 대해 얘기할 때 ‘섬의 일상은 도시의 비일상’이라는 말을 떠올립니다. 섬에게는 당연한 소소한 일상과 풍경이 도시에선 새로운 모습이자 자원일 수도 있습니다. 작고 아무것도 아닌 게 모여있는 게 바로 문화적 요소입니다. 그 뒤에 주민들의 삶이 있습니다.”

독특한 매력에 반한 사람들이 이에시마를 찾기 시작했다. 한 해 카주야 씨가 안내하는 방문객만 2000명이 넘는다. 그렇다고 해서 ‘물 들어올 때 노 젓자’며 관광객 유치에 몰두하지 않는다. 서서히, 그리고 천천히 관광지로서의 준비를 하고 있다.

무엇보다 가장 큰 가치와 핵심은 ‘지속가능한 공동체’에 있다. 카주야 씨가 관광에 대해 갖고 있는 사고도 흥미로운 대목이었다.

“이에시마는 이제 지속가능한 방식의 관광섬으로 변하는 중입니다. 그러나 관광객들의 소비행위에만 의존하는 산업은 오래 지속될 수 없고, 마을을 지속가능하게 유지하기도 힘듭니다. 어떤 ‘붐’이 끝나면 계속 이어갈 수도 없습니다. 다른 새로운 방안을 찾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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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을 안길에서 마주친 이에시마 주민들. 한국에서 왔다는 얘기에 환하게 웃으며 인사에 화답했다. ⓒ 제주의소리

84년된 섬 속의 서점을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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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후쿠시마 쿠케루(65) 씨가 운영하는 서점 '문희당'. 섬 속의 서점이다. 이 서점은 학생수가 급격히 줄면서 이제는 책 외에도 문방구와 완구류 등까지 팔고 있다. 이 서점은 후쿠시마 쿠케루 씨의 시할아버지가 1933년 처음 문을 열었고 지금은 손주 며느리인 그녀가 운영하고 있다. ⓒ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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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에시마 해설사 나카니시 카주야 씨가 '문희당' 서점에서 이 섬의 옛 사진을 보여주며 한때 어린이와 청소년들이 많던 시절을 설명하고 있다. ⓒ제주의소리

섬 곳곳을 구경시켜주며 가이드 역할을 맡던 카주야 씨는 취재팀을 골목길의 어느 문방구로 데려갔다. 실은 문방구가 아닌 서점이었다.  

1933년 개업해 3대째 이어져 온 '문희당(文姬堂)'이라는 섬 속의 서점은 현재는 창업주의 손자 며느리인 후쿠시마 쿠케루(65)씨가 주인을 맡고 있었다. 책들과 문구류, 각종 완구 등으로 채워져 있는 이 서점은 한국과 비슷한 듯 달랐다. 그에게 지난 몇 년간 이에시마의 변화를 물었다.

“처음엔 젊은 친구들이 이 섬에 와서 과연 뭘 할 수 있을까 생각했습니다. 우리는 이제 인생을 정리하는 세대라 특별한 의욕도 없었죠. 하지만 뭔가 시도하는 걸 보면서 ‘우리도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분명히 바뀌었습니다. ‘그냥 이대로 살다 가는구나’ 했다가 무언가 할 수 있다는 확신을 얻는 계기가 됐습니다.”

이에시마 주민들의 '즐겁고 신나는' 실험

▲ 이 섬에서 오래된 냉장고는 버려지는 대신 외부에 보관된다. 농기구나 소소한 장비들을 보관하기 위한 창고 역할을 한다. ⓒ 제주의소리

커뮤니티 디자인을 하는 Studio-L의 대표 야마자키 료는 그의 저서 <커뮤니티 디자인>를 통해 이에시마에서 벌였던 실험을 하나 공개한다. 섬 곳곳을 찍은 엽서 200종을 준비해 이에시마 섬과 대도시인 오사카 시내 두 곳에서 전시했다. 누구든 마음에 드는 엽서를 가져갈 수 있었다.

양쪽에서 품절된 엽서는 전혀 달랐다. 이에시마에서 품절된 엽서는 신사나 항구, 언덕 위에서 바라본 풍경 사진이었고, 오사카에서 품절된 엽서 사진은 밭에 덩그렇게 놓여있는 냉장고나 파도에 휩쓸려 방치된 거대한 채석용 철제 갈퀴였다. 

이 결과를 확인하고 나서야 이에시마 사람들은 ‘밖의 시점과 안의 시점’의 차이를 인식하게 됐다고 한다. 외부의 시선이 주민들의 자발성과 만날 때 시너지 효과가 엄청날 수 있다는 방증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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