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밥상 이야기> (40) 성게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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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게젓. ⓒ 김정숙

먹는 걸 빼놓고 사는 재미를 말 할 수 없다. 그런 면에서 산과 바다, 그 양팔에 안겨 산다는 건 축복이다. 산해진미까지는 아니더라도 가끔 먹을 복을 누릴 수 있어서다. 저장기술이 나아져 아무 때나 먹자고 들면 못 먹을 바는 아니지만 제철의 날 것과는 비교할 수가 없다. 더군다나 그 산과 바다가 주는 풍경을 거느리고 먹을 수 있다면 말이다. 어쩌다 그런 횡재를 하는 날, 제주에 산다는 게 말 할 수 없이 좋다

봄나물이 마무리를 해 갈 즈음해서 바다는 살이 오르기 시작한다. 중산간 마을에서 나고 자란 나는 바다 먹거리와는 거리가 멀었다. 특히 전복, 성게 같은 고급 식품들은 이름과 생김새정도나 겨우 알고 자랐다.

사회인이 되고 삶이 나아지면서 알게 된 음식. 맛 보다는 몸에 좋은 식품으로 어른들이나 아이들을 위한 보양식으로 만남을 시작하였다. ‘몸에 좋은 것은 입에 쓰다’라는 말은 산에서 나는 것들에게만 해당되는 말이다. 바다 것들은 몸에 좋은 것만 아니라 맛까지 좋다. 동물성이어서 그런 것도 있고 숨겨진 감칠맛이 많아서이기도 하다. 전복은 양식기술의 발달로 쉽게 만날 수 있지만 자연에 의존하고 있는 성게는 공급의 한계로 값이 치솟고 있다. 옛날에도 귀한 식품이었는데 점점 더해간다.

제주 이외의 지역에서 또는 해외에서 들어오는 성게들도 있다. 하지만 사람의 입맛이란 지극히 개인적이면서도 익숙한 것만 찾게 된다. 제주산 성게와는 맛이 다른 건 어떻게 할 도리가 없다.

입맛이 떨어진 어른이나 아이에게는 성게 한 숟갈이면 되었다. 금방 지은 밥에 성게 한 숟갈, 참기름을 넣고 살살 버무려 놓으면 도망간 입맛을 확 잡아 온다. 소금과 참기름 외에 다른 아무런 양념도 필요하지 않다. 성게와 쌀밥, 참기름, 간장이나 소금이 만들어 내는 자연적인 맛은 가히 환상적이다.

철이 아닐 때는 성게젓을 활용한다. 성게젓은 성게 속에 있는 생식기와 알 따위를 분리해낸 것에 소금을 넣고 담근다. 성게가 워낙 고가의 식품이라 젓을 담기에는 부담스러운 게 사실이다. 그래서 조금 담그는데 제주에서는 ‘구살젓’이라 한다. 젓갈이라기보다는 소금양념 정도로 간간하게 담근다. 밥 비벼먹기 좋을 정도로. 오래 저장해야 한다면 먹을 만큼씩 포장해서 냉동한다. 한 때는 병치레가 많은 우리 아이들의 비상식품이었다.

좋은 재료는 조리를 하면 할수록, 양념을 하면 할수록 맛에서 영양가에서 멀어지는 법이다. 변질은 본질 적인 것에 섞인 것들로부터 시작되는 거니까. 단순한 건 오래되어도 질리지 않고, 오히려 단단하게 익어가면서 빛을 발한다.

그 단순한 음식, 초 간단 성게젓이 가진 매력이다. 한 두 숟가락이면 충분하다. 위로 받고 싶은 날은 눈 딱 감고 성게를 산다. 난 소중하므로. / 김정숙(시인)

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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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 시인은 제주시 애월읍 납읍리 출신이다. 2009년 매일신문 신춘문예 시조부문에서 당선됐다. 시집으로 <나도바람꽃>을 펴냈다. 젊은시조문학회, 한국작가회의, 한국시조시인협회, 제주작가회의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30여년 동안 제주도농업기술원에서 일하다 2016년 2월 명퇴를 하고 서귀포시 남원읍 수망리에서 귤 농사를 짓고 있다. <제주의소리>에 ‘제주 밥상 이야기’를 통해 제주의 식문화를 감칠맛 나게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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