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길현 칼럼] I. 비례 축소의 5자 합의에 대한 비판

특별자치=풀뿌리자치이다. 이에 따르면, 특별자치의 성과는 어떻게 풀뿌리 자치를 많이 확대해 나갈 것인가로 귀결된다. 다른 차원에서 풀뿌리 자치의 미래 가능성을 풀뿌리 리더의 다양한 배출에서 찾는다고 보면, 기초자치단체 부활도 특별자치의 주된 안건으로 부족함이 없다. 또한 다양한 영역의 비례대표 의원을 많이 확보하는 것도 특별자치의 한 축이라는 생각에서, 최근 제주정치 중심부에서 자행되는 비례 축소에 심각한 우려를 금할 수 없다.       

지난 20일 원희룡 지사-신관홍 의장 -국회의원 3인(강창일-오영훈-위성곤) 5자 합의에 따라 도민여론조사를 거쳐 2018년 지방의회에서 비례대표를 축소하는 것으로 간다고 한다. 이 보도를 접하면서 비례대표 정수를 여론조사로 결정할 것이라면, 그 5자들의 역할은 무엇인가 하는 생각이 스쳐갔다. 슬쩍 도민여론조사에 기대어 비례대표 의원을 두는 취지가 크게 훼손되는 정치적 퇴행을 자행하면서도, 크게 죄송스러워 하는 표정이 없다. 

먼저, 제주도민들이 여론조사에서 비례 축소에 40% 넘게 찬성을 표하게 된 저간의 사정을 돌아 볼 필요가 있다. 지난 지방선거 때 비례의원 후보 순위를 두고 새누리당(현 바른정당과 자유한국당의 전신)과 민주당 모두에서 법적 공방과 심각한 내부 진통을 겪은 바 있음을 도민들은 잘 알고 있다. 비례 대표의 취지가 가장 크게는 약자 배려에 있음에도 정당 지도부의 입김이 크게 작용하면서 예를 들면 장애인이 한 명도 비례로 선발되지 못하는 비례 취지의 왜곡을 목도했기 때문이었다.

이렇게 비례 후보 선정에 대한 도민들의 냉소에 대해 일정 부분 책임을 져야 할 각 정당의 지도부 정치인들이, 오히려 그러한 비판적 도민 정서에 기대어 비례를 축소하는 일을 하고 있다. 어떻게 하면 내년에는 제대로 된 일꾼을 비례로 선발하여 도의회가 보다 다양한 목소리를 담아내는 공론과 감시의 장이 되도록 할 것인가에는 별 안중이 없어 보인다. 비례의원의 존재의의가 단순히 지역구 의원들을 위한 장식에 불과한 것으로 바라보는 제주의 대표적인 정치인들에게서 앞으로 특별자치의 어떤 미래를 기대할 수 있을는지. 

5자 합의에 따라 비례대표를 7인에서 5인으로 줄이는 내면의 계산은 무엇일까? 비례를 5개로 줄여 민주당, 바른정당, 자유한국당, 국민의당, 정의당 등이 비례 한 자리씩 나누어 갖도록 하자는 건가. 이렇게 되면 제주도의회 비례의원은 전원 여성이 된다. 왜냐하면 비례 1번은 여성으로 하도록 되어 있기에. 이렇게 5자 합의의 비례 축소는 여성 의원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의정 현실을 감안한 고육책인가. 

오히려 5자 합의란, 2017년 여름 현재 제주도의회에서 1당과 2당인 민주당과 바른정당이 내년 지방선거에도 지금과 같은 의석을 확보할 경우라면 충분히 각각 비례 2석을 가질 수 있다고 보는 민주당-바른정당 간의 이심전심의 야합으로 보는 게 더 진실에 가깝다. 만약 5자 합의의 이면에 이러한 흑심이 도사리고 있다고 한다면, 이는 두 유력 정당의 기득권 지키기를 위한 담합일 뿐이다. 소수 권익 증진을 위한다는 비례의원에서까지도 도의원 확보를 어떻게 해서든 유력 정당들에게 유리하도록 짜고자 기획된 폭거이다. 민주주의는 소수를 존중하는 전제 위에서의 다수결이다. 그런데도 다른 누구보다도 민주주의를 금과옥조로 삼고 있다고 볼 민주당-바른정당 지도부가 말로만 소수 존중을 외치고 실제로는 다수결로 기득권 지키기에 나서는 비례 축소의 행태는 크게 비판 받아 마땅하다. 

약자 배려와 전문성 확보 등 왜 비례의원이 있어야 하는지를 새삼 여기서 장황하게 논의할 필요는 없어 보인다. 그래도 한 가지, 도민 가운데 누구든 본인이 정치사회적 약자나 소수자라면, 다수결이 횡행하는 민주주의 장에서 본인의 생각이나 이해관계를 대변해 줄 누군가를 필요로 할 터이다. 그리고 생태라든가 다문화와 같은 미래지향적 가치를 추구하는 정치 집단에게도 어떻게든 정책결정 과정에 목소리를 낼 기회를 제공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비례대표의 취지는 이렇게 소수 권익 옹호와 미래가치 추구를 그 생명으로 하고 있다. 그런데도 이를 확대하지는 못할망정 여론조사에 기대어 도민의 이름으로 쉽게 줄여나가는 제주 주요 정치인들의 횡포에 어이가 없을 뿐이다. 상대적으로 개혁적이라 여겨왔던 민주당의 초선 의원 둘이나 거기에 이름 올리는 걸 보면서, 1년이 지나면서 그들도 기득권에 안주하려는 것 같아, 안타깝다.  

바라건대, 오영훈 의원은 여기저기서 사진 찍는 거 그만 두고, 하루라도 빨리 사과하시라. 비례 축소의 도민여론조사를 참고만 하겠다고 하면서 발을 빼는 게 남는 장사다. 아직 중앙정치 무대에서 할 일이 많은, 촉망되는 제주 정치인이 아닌가. 그러니 괜스레 별 이득도 없어 보이는 비례의원 정수 축소에 가담함으로써 개혁적 정치인으로의 행보에 상처를 입지 말길 간곡히 부탁 드린다. 이미 지난 2월 제주도의회의원 선거구획정위원회가 의원 정수를 41인에서 43인으로 증원하는 권고한 바를 받아들여 그에 따르면 될 일을, 왜 모두가 반대하는 비례 축소에 열 올리는 지 이해하기 어렵다. 많은 사람들이 반대하면 소신도 한 번 되돌아보아야 하는 게 정치인의 덕목이다. 더운 여름에 혹 시간이 있으면, 차라리 국민의당, 자유한국당, 정의당 등 주요 정당 지도부와 만나 제주특별자치의 미래 찾기에 열과 성을 다해 주길 바란다.

강창일 의원은 현재 제주의 어른 정치인이다. 그러니 4선 의원에 걸맞게 중앙정치 무대에서 내년 분권형 개헌 때 어떻게 하면 제주특별자치도가 헌법적 지위를 부여받을 수 있도록 할 것인지의 큰 그림을 그리는 일에 집중하시라. 제주에 와서 고작 하는 일이 7명밖에 안 되는 비례의원을 줄이는 데 앞장서는 그런 행보는 그만 멈추시라. 그럴 시간이면 서울서 여야 국회의원들을 만나 올 하반기 제주특별법 개정안을 주도하면서 제주특별자치도의 비례의원 정수를 현행 20%에서 30%로 늘려가는 일을 성사시키는 게, 4선 의원의 관록에 어울리는 정치 행보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다. 

다시 한 번 강조하는 바, 비례는 줄이는 것이 아니라 늘리는 것이 특별자치에 어울린다. 제주도의회에 타 시도와는 달리 비례의원이 많다면, 그만큼 보다 많은 계층과 정치사회적 세력이 풀뿌리의 활기와 아이디어가 넘치는 그런 의정 활동을 보여주지 않을까 하는 그런 기대가 크다. 물론 매사마다 이러한 기대가 다 충족되는 것은 아니겠지만, 그래도 그런 기대를 갖고 제주특별자치가 출범할 때에도 타 지역에 비해 비례의원 수를 늘리도록 하는 특별법 조항을 부여받았을 것이었다. 그래서 필자는 보다 많은 다양성과 미래가치 확보라는 차원에서 비례의원인 경우는 임기를 2년으로 하여, 제주특별자치도 의회에는 비례의원들이 2배가 되는 그런 남다른 특별한 의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그러면 예를 들어 비례의원직 한 자리에 청년과 장애인이 각각 2년씩 하도록 하면, 그만큼 풀뿌리의 의정 참여폭도 커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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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길현 제주대 교수.
2년간 각자 나름의 역량과 개성으로 의정 역할을 잘 해 나가는 그런 비례의원으로 특별자치의 새 지평을 열어보는 실험이 제주에서 시작되길 기대해 본다. 2년 의정을 평가 받아 보통은 1회로 끝나버리는 비례대표 의원직을 다음에도 또 2년 더 할 수도 있고. 2년간의 의정 경험을 토대로 하여 제주지역사회에서 남다른 사회적 역할과 책무를 맡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를 통해 각계 영역의 잠재적 리더들을 발굴하는 데도 도움이 되는 부차적 이점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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