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世通, 제주 읽기] (63) 니콜 아브릴 『얼굴의 역사』 /고영자 박사

bst-63.png
▲ 니콜 아브릴 (원서: 2000년)《얼굴의 역사》, 강주헌 옮김, 작가정신, 2001년.

우리말 ‘얼굴’은 한자로 顔(안) 또는 面(면), 또는 이 둘의 합성어 안면(顔面)이라 한다. 여기서 面은 목과 면상(생김새)을 본뜬 글자이고, 頁(머리 혈)이 들어간 顔은 얼굴 중에서도 특히 머리를 강조한 말이다. 頁은 갑골문에서 사람의 머리를 형상적으로 그린 것에서 유래한다.

170724-01.jpg

얼굴을 구성하는 요소 중 頁이 들어간 글자로는 頭(머리 두), 頂(정수리 정), 頰(뺨 협), 鬚(수염 수) 등이 있다. 한편, 머리(頁)와 관련된 속성의 글자로는 頌(기릴 송, 머리를 조아리며 칭송한다), 預(미리 예: 머리를 이리저리 흔들어 생각하며 예상한다), 煩(괴로워 할 번: 머리에 열(火)이 남아 괴롭고 번거롭다), 順(순할 순: 머리를 조아림이 물의 흐름(川)처럼 순조롭다), 碩(클 석) 등이 있다. 즉 바위(石)처럼 ‘큰’ 머리, 즉 碩學(석학)이란 말에서처럼 슬기롭고 총명함을 뜻한다.


이렇듯 동양사상에서 ‘얼굴’은 면상(생김새)의 차원과 더불어 정신의 차원(심리상태가 나타난 형색, 명예 또는 체면)을 아우르는 신체부위임을 기억해두자.

그런데 시대가 변하고 과학 기술이 발전하고 가치관이 변함에 따라 ‘얼굴(顔面)’에서 顔(안) 보다는 面(면) 즉, 외모에 대한 관심이 폭발적으로 늘고 있다. 이제 얼굴(외모)이 모든 것이다. 이에 따른 화장술, 성형수술, 동안 피부 회복, 모발 관리 산업이 활황을 띠고 있다. 우리들 자신 또한 얼굴에 관한한 무한히 아름다워지고 싶어 하는 욕망과 그것을 향한 지칠 줄 모르는 노력에 암암리에 동참하고 있지 않은가!

이번 호에 소개할 니콜 아브릴의《얼굴의 역사》는 인간의 얼굴을 둘러싼 종교적·철학적·예술적 고통과 희망의 역사를 추적하고 있다. 그의 글쓰기에는 고대 이집트 문명을 비롯하여 고전 그리스와 로마문명, 기독교·이슬람 문화, 르네상스 자화상의 시대, 근대 사진술의 등장, 아방가르드 예술 그리고 영화의 클로즈업 시대를 밝히는 인문정신이 녹아있다.

얼굴은 신체 가운데 등을 제외하고 거울의 도움을 받지 않고서는 그 형상을 제대로 포착할 수 없는 유일한 대상이다. 얼굴은 상대방의 시선을 통해서만 확인된다. 따라서 얼굴은 나와 상대방이 교감하는 통로이다. 거기다 “얼굴은 내 신분증이며 내 등대이다. 내가 자랑하는 것인 동시에 부끄러워하는 것이다. 내가 겉으로 떳떳이 드러내는 것이며 감추고 싶은 비밀이기도 하다. 내가 세상에 보여주는 것인 동시에 내 가면이다. 또한 내 깃발이면서 내 고통이기도 하다.” (19쪽)

얼굴의 역사는 깊다. 저자는 우선 기원전 2600년부터 2200년 사이로 추정되는 고대 이집트 남자 <가부좌의 서생>(루브르 박물관 소장)에게 우리를 안내한다. 물론 ‘서생’ 이전 시대에도 조각으로 재현된 형상들이 더러 있었다. 하지만 그것들은 삶과 죽음 사이, 인간과 신의 중간에 머문 형상으로 더 이상 이 세상의 일부가 아니었다. 설령 그것이 사람이라고 해도 얼굴은 몸과 분리되지 않았고 숭고한 것도 아니었다. 육체는 하나의 덩어리였고, 탄탄하고 건강한 것으로 충분했다. 
170724.jpg
▲ <가부좌의 서생>, 고대 이집트, 기원전 2500년경.

이에 반해 <가부좌의 서생>은 매의 머리도 아니고 신의 모습도 아닌 인간의 얼굴을 온전히 보여주는 조각상이다. 그는 글을 읽거나 쓰는 사람이었다. 비록 그가 생전 기록한 역사가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역사의 비밀을 알고 있을 것으로 추정되기에 더욱 존귀하다. 그는 어떤 조각가의 도움 덕분에, 석상의 변하지 않는 재질 덕분에, 부처처럼 편안하고 안정된 자세 덕분에, 기후와 장소 덕분에, 신들의 가호로 도굴꾼들의 눈을 피할 수 있었던 덕분에, 그리고 그를 발견한 오귀스트 마리에트(1821~1881, 프랑스 출신 이집트 학자) 덕분에 시대를 거슬러 다시 살아날 수 있었던 것이다.

지금으로부터 4500년 전의 조각상의 모습은 오늘날 우리들 얼굴과 별반 다르지 않다. 오히려 인류의 역사를 지켜준 조상의 얼굴처럼 고집스러우면서도 총기가 넘치고 다정다감하다. 시선을 마주치면 그가 마치 우리에게 눈인사를 보내는 듯하다. 나만 일방적으로 그를 보는 것이 아니라 그도 나를 지켜보고 있다. 그것이 바로 얼굴이다. 인간적인 얼굴말이다.

“얼굴이란 단어의 원뜻이 ‘보다’라는 것을 기억하자. 내가 타인에게서 보는 것이며, 타인이 나에게서 보는 것이다. 그런 교환은 외설적인 것이 아니었다. 타인을 인정하는 애타정신이었다.” (91쪽)

“타인의 얼굴이 나를 쳐다본다. 결국 나에게 관심을 갖는 것이다. 그에게서 내 유일성을 보장받고자 하듯이 나도 그에게서 그의 유일성을 인식할 수 있어야 한다.”(313쪽)

하지만 이 책이 다루는 ‘얼굴의 역사’는 <가부좌의 서생> 조각상 이후, 인간적인 얼굴을 잃게 되는 수난의 시대를 다룬다. ‘인간적인’이라는 자리에 ‘종교적’, ‘철학적’, ‘미학적(예술적)’ 이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니면서 피비린 내 나는 다툼의 역사가 전개된다.

이 책에서 우리는 얼굴(형상)을 둘러싼 서양문화사가 종교적인 다툼과 정치적인 다툼, 그리고 철학적인 다툼과 미학적인 다툼이 얽히고설키면서 펼쳐졌음을 확인할 수 있다.

지금 우리에겐 당연한 말로 들릴지 모르지만, 모든 인간의 얼굴에는 유일성과 편재성이 있다는 명제는 19세기에 들어서야 마침내 인정받게 된다. 비로소 개개인의 특징과 표정이 중시된 것이다. 이때서야 과거 성상파괴론자가 얼굴에게 어떤 고통을 주었는지 얼굴은 잘 알고 있었다. 이 시기는 사진술이 발명된 시기와도 맞물려, 얼굴은 사진과 회화에 교차하며 활발하게 등장한다.

그리고 20세기가 도래했다. 사실 20세기는 최악이라 손꼽을 것들이 너무도 많던 시대였다. 저자의 표현을 빌리자면 “덧없이 죽어간 수많은 얼굴들을 생각지 않고 20세기를 이야기”할 수는 없을 정도다. “엄청난 지식을 자랑하는 세기였지만 왜곡된 세기”(20쪽)였던 것만큼 그에 따른 새로운 얼굴들이 대거 등장한 시대이기도 했다.

제1·2차 양차 세계대전으로 수많은 희생자와 부상자가 속출했다. 이들 역사적 사건에서 살아남은 자들은 평생 으깨진 얼굴로 살아야했다. 포탄의 파편으로 곰보가 된 이도 있었다. 집에서 버림받고 거울이나 타인의 눈동자를 통해 자신의 모습을 감히 들여다볼 수 없었던 그들은 국영복권회사에서 지원받는 공동체생활을 택했다. 제1차 대전의 참호에서 시작된 교정수술은 성형수술로 이어졌다. 괴물처럼 흉측한 가면 뒤에서 20세기를 목격했던 예술가들은 얼굴의 아름다움의 추구에서 공포와 상실감을 상징하는 얼굴을 그리기 시작했다. 

피카소는 삶의 중요한 시기마다 자화상을 그렸다. 불행이 그를 세차게 채찍질할 때마다 자화상을 그렸다. 피카소의 초기(1901년경) 자화상이 패기만만했던 <나, 피카소>였던 것에 반해, 1972년 마지막 자화상을 남길 때까지 점점 일그러지고, 난해하고 겁에 질린 자화상들로 둔갑했다.

20세기 초 말레비치(1878~1935, 러시아 출신 화가) 또한 인물을 해체하면서 “죽음을 <하얀 바탕 위의 검은 사각형>을 상징화시켰다. 그에게 원근법은 죽은 표현법이었다”(127쪽).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작품 앞에서 대하는 것은 ‘인간적인’ 사람의 얼굴이 아니라 차갑게 추상화된 기하학적 면일 따름이다.  

“나는 타인의 죽음에 응답해야 했다. 타인을 죽음 같은 고독 속에 내팽개쳐둘 수는 없었다. 나에게 그런 책임감을 깨닫게 해준 것은 바로 얼굴이었다. 누가 나를 부르는가? 누가 나에게 묻는가? 누가 나에게 애원하는가? 타인은 이런 의문을 갖게 해준 직접적 동기이다.”(레비나스, 이 책 313쪽에 인용)

이 책은 프랑스 현대철학자 엠마뉴엘 레비나스가 주창한 ‘얼굴의 윤리학’이 행간에 살아 숨 쉬고 있다. 레비나스는 타인의 얼굴을 그의 철학에서 가장 중요한 소재로 삼았다. 이런 맥락에서 우리의 얼굴은 그 자체로 하나의 ‘무상명령’이다(레비나스). 

나치 독일의 만행(어디 참사가 이뿐이었겠는가!)으로 야만이 회귀하는 이 시대에 철학이 우리를 지켜주지 못하더라도 우리는 존재의 야만성에 인간다움을 심어줄 수 있어야 것이 이 책의 핵심 즉 ‘얼굴의 윤리학’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이 지향하는 ‘얼굴의 윤리학’은, 작금 유행인 顔(안) 보다는 面(면) 즉, 외모에 대한 폭발적인 관심과는 거리가 있다. 가령, 이 책에서 성형수술의 역사를 짚는 대목만 해도 우리가 생각하는 ‘멀쩡한 얼굴 뜯어 고치기’와는 차원이 다르다. 성형수술의 역사는 고대 이집트의 리노콜마라는 마을 기록에서 확인할 수 있다. 잔학한 만행이 저질러진 후, 코가 베인 도형수들이 이 마을에 집단으로 모여 살면서, 비록 아름답지 않지만 똑같은 모양의 코를 붙여 살았다고 한다. 

기원전 5~6세기 경 인도에는 잘려나간 코를 대강 수선해주는 도공들도 있었다. 16세기 영국에서 또한 만행이 벌어져, 형벌의 한 형태로 강도의 코를 베었는데, 이후 이 형벌을 수습하기 위해 코 성형수술을 시도했다는 기록도 전해진다. 그리고 20세기에 들어와 제1차 세계대전의 참호에서 팔다리가 떨어져나가고 턱이 으깨진 부상자들을 대상으로 성형이 시도되었다는 사실이다. 이런 과정에서 마취술에 따른 통증의 정복과 살균에 의한 감염의 정복이 이루어진 것이다. 

이러한 진보에 힘입어 지금은 진정 아름답게 보이기 위한 성형수술이 본격적으로 활개를 치고 있다. 물론 이것이 얼굴 面(면)의 외피적 개조와 재탄생을 부추기는 반면, 안(顔)에 깃든 성스러운 가치로부터는 멀어지고 있음은 자명하다. 역사의 짖궂음과 아이러니를 느끼지 않을 수 없다. 

 ▷ 고영자(미학자·번역가)

KakaoTalk_20160214_091204364.jpg
제주대학교 탐라문화연구소 및 재일제주인센터 특별연구원

일본 오사카대학 대학원에서 미학(예술학) 전공으로 석사 및 

박사학위 취득.
프랑스 파리사회과학고등연구소(EHESS) 연구원 역임.
부산대학교 예술대학 대학원 강사(미학) 역임.

현재, 근·현대 문화매체론, 제주미학론, 제주 ‘이미지’ 생성 및 변천사 등을 연구하고 있으며, 번역서로는 크리스틴 조디스 저《미얀마 산책》(2008년), 데이비드 네메스 저《제주 땅에 새겨진 신유가사상의 자취》(2012년),《서양인들이 남긴 제주견문록(1845~1926)》(2013년),《서양인들이 남긴 제주도 항해·탐사기(1787~1936)》(2014년), 《구한말 佛語·英語 문헌 속 제주도(1893~1913)》(2015년)가 있다.


저작권자 © 제주의소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