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밥상 이야기> (41) 깻잎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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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깻잎지. ⓒ김정숙

연일 폭염주의보, 경보가 내린다. 가만히 앉아만 있어도 땀이 줄줄 흐른다. 종일 에어컨 바람 밑에 있는 사람들은 나무 그늘이 그립고, 나무 그늘을 곁에 두고도 뙤약볕 쬐며 일하는 사람들은 냉방이 부럽다. 적당하게 섞을 수 있으면 좋으련만. 이제 여름은 안간힘을 다해 더위를 견디는 일만 남았다.

더울 때는 끼니도 귀찮다. 밥상머리 둘러앉은 가족들을 떠올리며 애를 써 보지만 하는 것은 물론 먹는 것조차 귀찮다. 아궁이 앞에서 땀 흘리며 끼니를 차려내시던 할머니 그리고 어머니, 새삼 눈물 나게 고맙다. 불 앞에서 하루를 시작하고 불과 함께 하루를 마무리하던 그 시절을 생각하면 천국이 따로 없다는 생각을 하다가도... 덥다. 그렇다고 자극적이고 찬 음식으로 매 끼니를 때울 수는 없다. 

어머니의 내림 비법은 ‘유잎지’다. 제주에서는 깻잎을 ‘유잎’이라 부른다. 더운 밥 숟갈 위에 얹어 먹으면 알싸한 깻잎과 고소한 참기름 향이 입 안 가득 퍼진다. 밥이 술술 넘어간다.

 ‘지’는 장아찌류를 말하지만 유잎지는 깻잎장아찌하고는 다르다. 유잎지는 저장음식이 아니다. 장아찌가 소금물이나 장류, 그와 비슷한 조미액을 만들어 절이고 삭히는 거라면 유잎지는 깻잎에 양념장을 살짝 발라 바로 먹는 음식이다. 더러는 밥솥머리에 얹어 쪄 먹기도 한다. 

냉장고가 없던 시절이라 하루 이틀 간격으로 깻잎을 따다가 만들었다. 깻잎을 씻어 물기를 빼고 한 장 한 장 일일이 양념장을 바른다. 간장에 다진 고추와 다진 마늘, 참기름. 깻가루, 고춧가루를 넣고 잘 섞는다. 숟가락 끝에 양념장을 조금 떠서 깻잎 위에 얹고 숟가락 등으로 쓰윽 문질러 바른다. 깻잎 일부분에만 조금 발린다. 많이 바르면 짜다. 

단순하고 시간을 들여야 하는 그 일은 대부분 내가 맡곤 했다. 지루한 작업이었다. 하루정도 지나면 깻잎은 숨이 죽고 지가 된다. 밥 위에 부드럽게 감긴다. 깻잎은 여름이 제철이다. 노지에서 자란 깻잎은 하우스에서 자란 것보다 다소 뻣뻣하고 향이 짙다. 찌면 또 다른 맛이다. 김이라는 걸 접하지 못했을 때 밥상 위 유잎지는 잘 구운 김 같은 존재였다. 매 끼니 밥상에 올라도 물리지 않는 음식이었다.  

유잎지를 만들었다. 냉장고에 저장하면 여러 날 먹을 수 있다. 개인적 취향일 수도 있지만 조금씩 만들어 신선하게 먹는 맛이 낫다. 뭐니 뭐니 해도 더위를 견디는 방법은 밥을 잘 챙겨먹는 것이다. 규칙이 허물어지고 일상이 흔들리면 지는 것이다. 여름이 가도 우린 여전히 건강하게 살아가야 할 것이므로. / 김정숙(시인)

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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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 시인은 제주시 애월읍 납읍리 출신이다. 2009년 매일신문 신춘문예 시조부문에서 당선됐다. 시집으로 <나도바람꽃>을 펴냈다. 젊은시조문학회, 한국작가회의, 한국시조시인협회, 제주작가회의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30여년 동안 제주도농업기술원에서 일하다 2016년 2월 명퇴를 하고 서귀포시 남원읍 수망리에서 귤 농사를 짓고 있다. <제주의소리>에 ‘제주 밥상 이야기’를 통해 제주의 식문화를 감칠맛 나게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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