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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주 출신으로는 처음으로 주교에 임명된 문창우 제주교구 부교구장. ⓒ제주의소리
[인터뷰] 제주 출신 첫 주교 문창우 제주교구 부교구장..."세상과 적극 소통하는 종교 돼야"

이번 여름, 제주도 천주교계를 떠들썩하게 만든 사건(?)이 있었다. 제주 출신으로는 사상 처음으로 주교(主敎) 성직자가 탄생했기 때문이다. 주교는 국내에는 43명 밖에 없는 천주교 고위 성직자이다. 개신교와 비교하면 지역 단위 노회장, 불교로 치면 교구 본사 주지 정도의 위상으로 보면 되겠다.

광복절인 15일, 제주시 한림읍 금악리 이시돌 삼위일체대성당에서 서품식을 가지고 주교로 정식 임명된 문창우(비오·55) 제주교구 부교구장(신성여중 교장)은 16일 <제주의소리>를 비롯한 도내 언론과 인터뷰를 가졌다.

프란치스코(Franciscus) 교황의 임명장과 주교 선배격인 강우일 제주교구장에게 주교관을 받으며 눈물 흘린 하루 전의 감동이 아직 가시지 않은 듯 보였다. 그러나 “교회는 제주를 위해 한 번은 죽어야 한다”, “교회는 제주4.3에 대한 관심을 놓쳐서는 안된다”며 종교의 적극적인 역할에 대해 힘주어 강조했다.

문 주교는 1963년 제주시 출생으로 제주동초등학교, 제주제일중학교, 오현고등학교(29회)를 졸업했다. 그의 주교 임명이 주목 받는 이유는 단순히 제주 출신이라기보다는 여느 종교인과는 사뭇 다른 길을 걸어왔기 때문이다.

세례를 비교적 늦은 고등학생 때 받았고, 신학 공부를 위한 ‘선진’ 유학이나 박사 학위도 없다. 1988년 대학 졸업 후, 이탈리아 포콜라레 영성학교에 다닌 1년 6개월이 전부다. 세상이 쓰는 말로 ‘비주류’인 셈이다. 서품식에서 벅찬 감정을 추스르지 못해 연신 눈물을 흘리고, 인터뷰 내내 “저 같은 사람은 (주교가 될) 자격이 없다”고 말한건 이런 배경에 기초한다.

문 주교는 자신의 주교 발탁을 현 세계 천주교의 수장, 프란치스코 교황의 ‘탈권위’ 행보와 무관하지 않다고 봤다. 

“프란시스코 교황이 오면서 지금껏 교회 안에서의 관계나 능력 위주로 주교로 뽑기 보다는 지역 사회와 지역민들의 여론을 중요시 하고 있다. 똑똑함이 아닌 양을 위해서 목숨 바칠 수 있는 사목을 강조한다. 교황은 교인과 함께 할 목자를 추천하고 찾으라는 메시지를 각론 때 마다 신신당부한다. 저 뿐만 아니라 프란치스코 교황 이후 임명된 다른 국내 주교들도 반응이 좋다. 소통과 공감을 추구하는 이 시대 사회 가치와 맞아 떨어진다. 조직사회가 그렇지 않느냐. 위에서 내려오면 아래는 그대로 움직이기 마련인데, 우리나라 정치·사회의 적폐도 이런 점이 무관하지 않다. 경제도 예전에는 삼성 같은 대기업만 잘하면 된다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다양한 여러 경제 주체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지 않냐. (스스로를 주교에) 적합한 사람이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는데 임명이 돼서 감회가 새롭다.”

문 주교는 1981년 제주대학교에 입학해 농화학을 공부했다. 가톨릭학생회장을 맡아 1987년 민주항쟁 당시 학생운동을 이끌었다. 당시 청년 문창우는 가두 농성 현장에서 학생들 곁을 지켜주던 가톨릭 신부들을 보면서 사제의 길을 결심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동시에 학생운동 안에서 실망감, 무기력함을 느끼며 졸업과 동시에 홀연히 이탈리아 포콜라레 영성학교로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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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주교는 “당시에는 진정성으로 함께 했다고 여겼는데, 시간이 지나니 변절을 넘어 관료 자리까지 차지한 사람도 지켜봤고, 과거에는 두려워서 학생운동을 함께하지 못한 친구들이 지금에서야 미안함을 푸는 모습도 함께 기억한다”고 밝혔다.

종교 안에 매몰되지 않고 세상을 바라보는 다양한 눈을 키운 덕분에, 그는 사회 안에서 교회가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잘 알고 있다. 종교를 위한 종교, 특정 개인·집단만을 위한 기복 신앙이 아닌 고통 받는 약자와 함께하는 게 교회의 역할이라는 것. 특히 제주 출신으로서 4.3, 해군기지 문제에 각별한 관심을 기울여 왔다.

그가 1999년 발표한 논문 <4.3에 대한 신학적 고찰>은 4.3을 신학적으로 조명한 첫 사례로 평가받는다. 2004년 '평화의 섬 제주'에 따른 '평화를 위한 종교인 협의회'에 참여했고, 제주해군기지 문제도 반대 의견에 꾸준히 힘을 보탰다. 

문 주교는 “교회는 제주를 위해 한 번 죽어야 한다”고 강도 높게 말했다.

“강우일 주교는 사회 현실 속 교회는 성당 안에서 거룩한 기도로 머물지 않고 세상 사람들의 아픔을 보듬는 것이 교회의 역할이라고 보셨다. 저는 제주 출신으로서 더하자면, 천주교회는 이제라도 제주를 위해 죽어야 한다. 선교사가 처음 들어오고 1899년 교회가 생길 때부터 제주에 천주교가 시작됐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하느님은 선교사 보다 먼저 제주에 들어왔다. 불교일수도 있고, 도교일수도 있고, 무속일 수도 있다. 하느님은 꼭 천주교가 아니어도 사람들에게 심성을 준비시켰다. 그런 제주를 하느님이 원하고 바라는 대로 드러내기 위해, 교회는 제주를 위하고 제주를 향해야 한다. 그동안 교회의 자비가 있었다고 했지만 여전히 세상 안에서는 많은 갈등과 폭력이 있지 않았나. 폭력과 갈등은 세상 문화를 천주교가 아우르지 못했기 때문에 벌어졌다고 본다. 이는 곧 교회가 스스로를 내던지지 않았다는 뜻이다. 이제라도 교회는 제주를 위해 죽어야 한다. 당장 어렵다면 죽는 연습이라도 필요하다. 제가 생각하는 제주 천주교는 제주를 위해 죽는 교회다.”

4.3에 대해서는 “교회는 4.3에 대한 관심을 놓쳐서는 안된다. 4.3이 하느님 때문에 생긴 일은 아니지만 인간의 탐욕과 이데올로기로 벌어진 큰 사건이다. 철저한 진상규명 위에 4.3이 제주 너머 대한민국 사람들에게 어떤 메시지를 주는지 읽어내야 진정한 위령이 가능하다”고 여전한 관심과 소신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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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정해군기지에 대해서는 “강정주민을 이해하는 일상 속에서의 실천 운동을 다각화해야 한다. 끼리끼리 심포지엄이 아닌 여러 사람들이 생각하는 평화의 시각도 더해야 한다. 그래야 강정 평화 운동이 진심이자 헌신으로 여겨진다. 지금 강정 문제와 관련해서 많은 이들이 지쳐있다. 삶의 차원에서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피력했다. 

특히 동서냉전 시대 유럽 각지에 평화 마을이 등장한 사례를 들며, 강정마을도 이를 참고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현재 문 주교는 제주교구 부교구장 겸 신성여자 중학교장을 맡고 있다. 주교 임명 이후 학교장으로 누가 올지도 많은 이들의 관심사이다. 그는 이번 겨울까지는 학생들을 지도할 예정이다. 그리고 강우일 주교의 남은 교구장 임기 3년 동안 부교구장으로서 제주 천주교를 이끌어간다.

문 주교는 “오늘날 하느님이 바라는 뜻은 종교집단끼리 좋아서 모여 살아가는 게 아니다. 교회 사람이면서 동시에 세상 사람인 지금은 서로가 열려 있는 소통, 세상 속의 교회가 필요하다. 교회가 거룩하고 세상과 다르다고 하지만, 어떤 사안을 보면 세상 사람들이 더 잘하는 점도 있다. 서로가 서로를 향해서 변화해 나가는 게 오늘날 교회가 세상 안에 있어야 하는 목적”이라며 자신이 생각하는 교회상을 다시 한 번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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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창우 주교의 주교 문장. ⓒ제주의소리

인터뷰 말미, 문 주교는 주교 문장이 그려진 일종의 명함을 기자들에게 꺼내보였다. 한 가운데 자리잡은 푸른 색 한라산과 파도가 한 눈에 들어왔다. 제주 토박이임을 당당히 드러낸 점이 무척 인상적이다. 

더불어 주교의 권위를 상징하는 모자는 주교 문장에서 보통 맨 위에 놓는데 반해, 문 주교는 아래로 배치했다. 스스로 주교 자격이 없다며 눈물로 주교관을 받아든 50대 신부의 탈권위 행보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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