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잡하고 다양한 사회문제를 비즈니스 모델로 해결하려는 ‘사회적경제’가 새로운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이윤 창출을 넘어 사회적 가치를 최우선으로 하는 사회적경제 기업들이 속속 등장하면서 지역경제 생태계도 조금씩 바뀌고 있다. 제주형 사회혁신이 조금씩 기지개를 펴는 지금, 새로운 방식으로 ‘더 나은 세상’을 위해 실험에 나선 이들을 직접 만나봤다. <편집자 주>

[제주 바꾸는 혁신] (1) 관광약자 전문 여행사 예비사회적기업 ‘두리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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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리함께는 장애인 관광의 장벽을 낮추는 '평등한 여행'을 목표로 한다. 두리함께를 통해 제주를 여행하는 경험을 얻게 된 장애인들은 긍정적인 반응을 내놓는다. /사진 제공=두리함께 ⓒ 제주의소리

이 여행사 직원들의 필수품은 ‘줄자’다. 호텔 방, 관광지 통로, 화장실, 입구 등 곳곳의 사이즈를 재고 꼼꼼히 기록한다. 제주지역 호텔과 유명 관광지의 숫자가 어마어마한만큼 보통 작업이 아니다. 비행기 좌석을 구하고, 이동수단을 마련하고, 코스 전체를 구상하는 과정부터 여느 여행사의 몇 배의 품이 든다. 자본의 논리로, 수익성으로만 따지면 여러모로 ‘이상한 기업’이다.

그럼에도 이들이 이 도전을 손에 놓을 수 없는 이유는 한 사람, 한 사람의 인생을 바꾸는 일이라는 사명감 때문이다.

관광약자를 위한 전문 여행사 두리함께는 2015년 탄생한 소셜벤처다. 두리함께의 출발은 장애인직업재활시설에서 일하던 이들을 중심으로 ‘왜 장애인들을 위한 여행사는 없는가’라는 물음을 던지면서 비롯됐다. 세계적인 관광지라 불리지만 이동약자들에게 제주관광은 그림의 떡일 뿐이었다.

2014년 고용노동부 주최 소셜벤처에서 전국대회에서 장려상을 수상하며 가능성을 봤고, 2015년 한국사회적기업진흥원 사회적기업가 육성사업과 만나면서 ‘여행으로 함께 만드는 행복한 세상’이라는 미션을 구체화하게 됐다.

첫 관문부터 쉽지 않았다. 당장 다른 여행사와 달리 코스 하나를 짜는 데에도 몇 배의 공력이 든다. 비행기를 예약하는 과정부터 쉽지 않다. 대합실에서 항공기까지 버스로 이동하는지 다리가 놓이는지, 수동휠체어가 아닌 전동휠체어도 탑승할 수 있는지를 꼼꼼히 따져봐야 하고 이용하는 공항마다 별도로 통보도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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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리함께는 장애인 관광의 장벽을 낮추는 '평등한 여행'을 목표로 한다. 두리함께를 통해 제주를 여행하는 경험을 얻게 된 장애인들은 긍정적인 반응을 내놓는다. /사진 제공=두리함께 ⓒ 제주의소리
숙소는 진입부터 화장실까지 무리없이 이용할 수 있는 지 세세하게 확인해야 하고, 방문하기로 점찍은 관광지를 이동약자들이 이용하는 데 걸림돌이 없는 지 상시 체크해야 한다. 이동수단을 마련하는 것도 쉽지 않다. 전세버스와 렌터카를 통틀어 제주에 전동휠체어들을 수용할 수 있는 리프트 차량은 4대 뿐이기 때문이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 제주가 이동약자들에게 얼마나 불친절한 관광지인지 절절히 체감하게 된다. 기존에 있었던 방식이 아니고 새롭게 하나씩 만들어가는 사업이다 보니 모든 걸 직접 부딪치고, 경험으로 극복해야 했다.

이런 어려움에도 이 ‘차별없는 여행, 차이있는 여행’을 계속 이어가는 것은 극적인 반응들 때문이다. 여행을 엄두도 내지 못했던 많은 장애인들에게 두리함께는 삶의 반전을 마련해주고 있다.

두리함께 직원들은 평생 여행을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다는, 서울에서 온 한 40대 여성장애인의 얼굴을 기억한다. 첫 날 ‘여행이 이렇게 불편한 것인지 몰랐다’고 말하던 그는 마지막 날 ‘이제 맘껏 여행하고 싶다. 사회에 나가고 싶다. 바깥 나들이를 하고 싶다는 용기를 얻게 됐다’며 연신 감사를 표했다.

한 남성장애인은 고등학교 때 교통사고를 당해 휠체어를 타야했고, 이후 가족여행이라는 건 포기하고 살아야 했는데 두리함께를 통해 꿈을 이뤘다. 그는 “너무나 행복했고, 감사하다”는 말을 남겼다.

이보교 두리함께 이사는 “비장애인들이 생각하는 여행은 ‘재미있는 곳에서 즐겁게 보내자’는 것이지만 장애인들에게 여행은 사회에 적응하는 길”이라며 “여행을 통해 치유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가끔은 지역사회의 무관심이 아쉽기도 하다. 장애인부서와 담당부서 간 미루기 속에서, 여러 제안에도 묵묵부답인 관련 기관의 냉담한 반응 속에서 힘이 빠질 때도 많다. ‘여행업으로 돈 한 번 벌어보자!’가 아니라 ‘차별없는 여행, 차이있는 여행’이라는 사회적가치를 실현하기 위한 여정인 만큼 종종 ‘이걸로 밥 먹고 살 수 있겠냐’는 냉소를 받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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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광약자 전문 여행사 두리함께의 직원들. /사진 제공=두리함께 ⓒ 제주의소리

이런 도전과제에도 이들의 노력은 서서히 빛을 보고 있다.

사업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한 해 이용객이 어느덧 1800명까지 늘어났다. 작년, 현대차 정몽구 재단과 현대자동차그룹이 주관하는 혁신적 사회적기업가 발굴 프로젝트 ‘H-온드림 오디션’에서 전국 대상에 이름을 올리는 성과도 얻었다.

올해는 고용노동부가 주최하는 2017년 사회적기업 특화 크라우드 펀딩 시민투자 오디션에서 1위를 기록하기도 했다.

두리함께는 올 하반기에는 실제 관광지 이동에 어려움이 있는 지 앉아서 확인할 수 있는 ‘VR투어’를 오픈할 예정이고, 개별 장애인 관광객들이 접근성이 높은 관광지를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는 이동약자 전용 관광지 시티투어 버스를 운영하려는 구상도 있다. 이 모든 시도의 중심에는 “세상 모든 여행은, 모든 이에게 평등하다”는 신념이 있다.

이보교 이사는 “두리함께는 여행을 통해 사회가 바뀌는 것을 꿈꾼다”며 “소외없이, 편견없이, 차별받지 않고 모두가 함께하는 여행이 일상화된 사회가 됐으면 한다”고 바람을 전했다.

[세상 바꿀 좋은 아이디어 있다면?]

제주사회적경제지원센터는 9월말까지 1500만원 상당의 창업비를 지원하는 제주형 사회혁신 아이디어 공모전 ‘클낭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제주사회의 문제를 해결할 아이디어를 등록하면 심사를 거쳐 특허와 창업비용을 지원한다. 또 다른 ‘두리함께’를 꿈꾸는 이들을 밀어주기 위한 새로운 형식의 소셜벤처 발굴 프로젝트다.

클낭 공식 플랫폼(www.keulnang.org)에서 자세한 내용을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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