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택훈 시인 모델 ‘시인의 사랑’, 토론토국제영화제 무대에 초청
제주정착 김양희 감독 “제주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영화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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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양희 감독의 ‘시인의 사랑’이 토론토국제영화제에 공식 초청됐다. 제주를 사랑하는 예술가가, 제주의 시인을 모델로 삼아, 제주 고유의 풍경을 배경으로 삼은 작품이 받는 환호에 제주섬은 모처럼 흐믓하다.

해외배급사 화인컷은 ‘시인의 사랑’이 다음 달 7일부터 17일까지 개최되는 제42회 토론토국제영화제 디스커버리 섹션에 초청됐다고 최근 밝혔다.

토론토국제영화제는 칸, 베니스, 베를린에 이어 세계 4대 국제영화제로 꼽힌다. 60여개국에서 300여편의 영화가 소개되는 북미 최대 규모 영화제다. 디스커버리 섹션은 신인감독들의 첫 번째, 또는 두 번째 장편영화들을 선보이는 자리다.

‘시인의 사랑’은 아름다운 시 세계와 팍팍한 현실 사이에서 괴로워하던 시인이 어느 날 도넛가게에서 일하는 소년을 만난 후 알 수 없는 감정을 느끼면서 겪는 이야기를 다룬다. 양익준이 배역을 맡은 주인공 현택기는 시를 쓰는 재능도, 먹고 살 돈도 없는 마흔 살 시인이지만 ‘진짜 시를 쓰는 일이 뭘까’를 고민하는 존재다.  

공식개봉일은 9월 14일이지만 벌써부터 반응은 뜨겁다. 앞서 작년 전주국제영화제 전주프로젝트마켓에서 극영화피칭부문 최우수상과 관객상을 받았다. SNS상에서도 회자되면서 관심을 끌고 있는데 특히 제주도민들이 느끼는 감회는 남다르다.

김양희 감독은 6년전 서울에서 제주로 터전을 옮겨 살고 있는 정착주민이고, 이 영화의 주인공 모델은 시인 현택훈이다.

현 시인은 1974년 제주에서 태어났고 제주에서 자라며 시를 썼다. 2013년 ‘곤을동’으로 제1회 4.3평화문학상을 수상했다. 2014년부터 지난 7월까지 <제주의소리>에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감각적으로 풀어낸 ‘눈사람레코드’라는 연재를 이어오기도 했다. 아내 김신숙 시인과 함께 제주시 아라동에 시 전문 서점인 ‘시옷서점’을 운영하고 있다.

▲ 현택훈 시인(오른쪽)과 아내 김신숙 시인. ⓒ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 영화 '시인의 사랑'의 한 장면. /사진 제공=제주영상위원회. ⓒ제주의소리

김 감독이 현 시인을 만난 것은 우연찮은 기회에서였다.

영화과 졸업 후 제주로 온 김 감독은 제주에서 영화를 가르치는 일을 하게 됐는데 현 시인의 아내인 김신숙 시인이 수강생으로 들어왔다. 아내는 남편이 시인이며 영화를 무척 좋아한다고 했고, 자연스레 밥을 한 끼 함께 먹게 됐는데 김 감독은 ‘곰같은 큰 덩치에 샛별같이 반짝이는 눈을 가진’ 현 시인에게 그대로 꽂힌다.

그의 생활유머와 독특한 세계관에 매력을 느낀 김 감독은 시인을 모델로 시나리오를 쓰게 됐다. 2015년 2월의 일이다.

김양희 감독은 “시인이 나온다고 해서 고리타분하거나 문학성에만 집중한 영화는 아니”라면서 “현실적인 감각을 느끼게 끔, 공감을 얻을 수 있는 이야기로 만들었다”고 밝혔다.

그러나 시나리오를 영화로 만들어가는 과정은 정말 어려웠다. 여러 고비를 넘어 작년 영화진흥위원회의 독립영화제작지원, 전주시네마프로젝트 등의 도움으로 가까스로 영화를 완성할 수 있었다.

이 영화는 이래저래 흥미로운 구석이 많다. 시사회에 참석했던 사람들은 제주의 일상을 담았는데도 뭔가 평소 알고 있던 ‘관광지 제주’와는 다른 모습에 신선함을 느낀다. 

출연진도 예사롭지 않다. 특히 현택훈 시인 역을 맡은 양익준은 배우이자 감독으로 잔뼈가 굵은데, 그가 연출하고 주연을 맡은 화제작 <똥파리>를 기억하는 이라면 ‘거칠고 강한 캐릭터가 어떻게 순수한 시인을 연기할 수 있었나’라는 의문을 들기도 할 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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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의 사랑'을 연출한 김양희 감독. ⓒ 김양희
김양희 감독은 “사실 배우로서는 캐릭터의 위험성도 있는데 뚝심이 있었던 양익준 선배는 ‘이 영화 재밌겠다’고 선뜻 나섰다”며 “현택훈 시인을 모티브로 시작했지만 영화는 별개의 것인만큼 원래 모델에 크게 개의치는 않았다”고 말했다.

김양희 감독은 제주에 감사한 마음을 전한다. 6년 전 제주로 이주해 온 그녀는 앞으로도 계속 제주에 살고 싶다는 마음을 밝혔다.

김 감독은 “제주에서 영화를 만드는 게 쉽지 않았는데, 제주에서 도와주시는 분들이 많았다”며 “제주에서 영화를 그 분들의 도움으로 만들었다는 게 가장 큰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김 감독은 거듭 “정말 고마운 마음으로 영화를 만들었다”며 “앞으로도 제주에서 살아가려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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