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世通, 제주 읽기] (68) 존 듀이 『공공성과 그 문제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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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존 듀이 저, 『공공성과 그 문제들』, 정창호, 이유선 역, 한국문화사, 2014
‘촛불혁명’ 이후에 그 힘이 눈에 띄게 약해진 단어가 있다. 바로 ‘헬조선’이라는 단어이다. 이 단어는 우리 사회가 공정하지 않으며, 약자에게 잔인하고, 노력을 해도 희망을 가질 수 없을 만큼 부조리하다는 자조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 그러나 새로운 정부가 들어선 이후 적어도 인터넷에서 이 단어는 요즘 유행어를 빌려 말하자면 더 이상 ‘핫’하지도 ‘힙’하지도 않다. 정부가 바뀌었다고 해서 그 많은 문제들이 갑자기 사라졌을 리는 없다. 그렇다면 왜 젊은이들은 자신들의 처지가 갑자기 나아진 것도 아닌데 자신의 나라에 대한 자조적인 표현을 조심하게 되었을까? 그것은 아마도 대통령의 높은 지지도와도 관련이 있을 것이다. 사람들은 어렵게 성취한 정치적 성과를 무(無)로 되돌리게 될까봐 조심스러운 것이다. 말하자면 아직 사회적 조건이 바뀌지 않았지만 적폐를 청산하겠다고 하는 새로운 정부의 기획이 실패하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현실의 불평등과 부자유를 여전히 감내하고 있는 것이다. 

국민들이 혹한의 날씨에도 촛불을 들고 거리에 나선 것은 국가의 권력이 사유화되었다는 사실을 목도했기 때문이다. 아무런 공적인 직위에도 있지 않은 사람이 대통령의 연설문을 고치고, 일정을 계획하고, 공무원의 인사에 영향력을 발휘했다는 사실을 접한 국민들은 자신들이 선출한 대통령이 더 이상 자신들을 대표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국가의 권력은 국민들의 의사를 수행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사적인 개인의 의사와 이해관계에 따라 충실하게 움직였다. 국민은 정치적 의사결정 과정의 어느 위치에도 존재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때로는 개나 돼지처럼 취급되기도 했고, 적으로 간주되기도 했다.

지난 정권에서 작성한 문화계 블랙리스트는 사유화된 국가 권력이 국민을 어떻게 적으로 만드는지를 보여주는 단적인 예이다. 국가권력은 국민으로서 누려야할 공정한 기회를 박탈함으로써 자신들의 입맛에 맞지 않는 어떤 사람들을 ‘비국민’으로 취급한 것이다. 국민들을 서로 적대시하게 함으로써 정치적 이득을 챙기는 것은 나치 이래 모든 비민주적 정부의 공통적인 경향이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종북’이니 ‘빨갱이’니 하는 모멸적인 단어들은 특히 북한이라는 명백한 위협이 상존하는 상황에서 권력을 사유화하기 위한 매우 편리한 도구들이다. 

민주적인 국가에서 국민은 정치적 자유를 누릴 권리가 있고, 경제적인 활동에 참여함으로써 사회에 기여할 권리가 있다. 국가권력의 사유화가 무서운 이유는 국민을 정치적으로 소외시킬 뿐 아니라 부당한 이익을 편취하기 위해 경제적 불평등을 조장하기 때문이다. 정치적인 소외는 경제적인 소외와 무관할 수 없다. 사회적으로 유용한 노동 혹은 활동이 어떤 것이어야 하는지는 정치적으로 결정되어야 할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 누구도 민주적인 정치적 의사결정 과정에서 소외되지 않게 하는 것은 동시에 경제적인 사회적 기여의 기회를 공정하게 보장하는 문제와 관련되어 있다. 바로 이것이 공공성의 문제이다.

우리 사회의 적폐란 그동안 나쁜 일을 저질러온 사람들의 무리를 일컫는 말은 아닐 것이다. 국민들을 서로 적대시하게 하고, 정치적 경제적 활동의 기회를 제한하거나 박탈함으로써 국가 권력의 사유화를 도왔던 비민주적 관행, 제도, 관습, 신념들이 모두 적폐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적폐를 청산하는 일은 철저하게 공공성을 회복하는 일이 되어야 한다. 민주적인 국가를 만드는 일은 우리 모두가 서로를 적대시하는 대신 대화의 상대자로 인정하는 데서 시작할 수 있을 것이다. 

모두의 나라를 위하여

적폐를 청산하는 일은 비민주적인 관행을 없애는 것이므로 그 과정이 민주적이어야 하고 무엇보다 공공성을 회복시키는 과정이어야 한다. 1926년에 『공공성과 그 문제들』이라는 제목의 책을 낸 존 듀이는 국가의 역할을 공적인 것, 혹은 공공성을 관리 감독하는 공중의 역할과 관련짓고 있다. 흥미 있는 점은 듀이가 그 당시에도 공공성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사회적 상황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는 점이다. 사람들이 내보이고 있는 정치적 무관심이나 냉소주의는 공공성의 대표자라고 할 유권자가 자신의 투표행위가 정치적 현실을 바꾸지 못할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며, 거대기업이 정당을 배후에서 조종한다고 여기기 때문이라고 말하면서 듀이는 이런 상황을 ‘공공성의 침식’이라고 일컫는다. 듀이는 아무리 공공성이 눈에 보이지 않는 상황이라 하더라도 그것은 허구적인 것이 아니며 국가가 단지 사적인 이해관계와 욕망이 충돌하는 공간일 수는 없다고 주장한다. 공공성은 비록 가려져 있지만 분명하게 존재하는 어떤 것이다.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공공성은 사회적인 개인들의 연합된 행위를 통해서 조직화해야 할 어떤 것이다. 

국가와 정부를 동일시해서는 안 된다고 보는 듀이는 기존의 정치기관들이 공공성의 조직화나 새로운 형태의 국가를 형성하는 데 방해가 된다면 그것들은 깨뜨려야 할 대상이라고 주장한다. 국가란 하나의 실체라기보다는 “구성원들이 공유하는 이해관계의 보호를 위해 공무원을 통해 수행된 공공성의 조직화”이다. 이런 관점에서 듀이는 국가란 끊임없는 실험을 통해 만들어져야 하는 것이며 그런 일은 가능하고 또 지속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듀이는 공공성의 담지자를 공중이라고 부르고 있다. 듀이가 말하는 공중은 공적인 업무에 종사하는 공무원들만을 가리키지는 않는다. 투표에 참여하는 유권자로서의 개인들 역시 공적인 이익의 대표자라는 점에서 공중이라고 부를 수 있다. 그런데 이런 공중은 결국 사적인 개인들로 이루어져 있다는 데에서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공공성과 사적인 이해가 충돌할 때 공무를 맡은 개인은 자신들의 이익을 우선시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양면성이 있는 공중으로 하여금 그들의 능력을 공적인 일에 사용할 수 있게 하기 위한 조건과 기술을 만들어나가는 것이 바로 민주주의의 과제라고 듀이는 말하고 있다. 즉 민주정부의 문제는 “통치자가 피치자를 희생하여 자신의 이익을 취하지 않도록 하려면, 어떤 장치가 필요한가?”라는 물음으로 집약된다는 것이다. 

듀이는 공공성의 침식은 공공성이 존재하지 않아서 나타난 결과라기보다는 너무나도 많은 공적인 문제가 존재하는데 반해 그것을 다룰 공중이 스스로를 확인하고 구별할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이라고 진단한다. 이런 상황에서 공공성의 문제는 공중을 어떻게 민주적으로 조직할 것인가의 문제가 된다. 이것은 통합되지 않은 거대 사회를 하나의 공동체로 통합해내는 실천적인 과제로 이어진다. 듀이는 현존하는 정치 구조를 변화시키는 데 필요한 것은 비정치적인 힘이 스스로를 조직하는 것, 즉 분화된 공중이 통합을 이루어내는 것이라고 말한다.  

듀이의 공공성에 관한 주장을 오늘날 한국에서 벌어지는 정치적 실천 과제와 관련하여 이해한다면 그동안 권력을 사유화하는 것을 가능하게 했던 그릇된 관행, 제도, 법을 바꾸는 일은 뛰어난 리더십을 가진 지도자에게만 맡길 일이 아니라는 점이 분명해진다. 그동안 분열되어 갈등을 겪었던 공동체 구성원들이 다시 공동체를 재건해내는 일을 수행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런 일은 우리 스스로를 공중으로 조직화해내는 민주적 실천의 과정을 통해서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이다.  / 이유선 서울대 기초교육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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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유선 교수

현 서울대학교 기초교육원 강의교수
고려대학교 철학과 및 동대학원 졸, 철학박사
전 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원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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