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레. 한동안 쓰이지 않던 이 제주어가 지금은 제주를 대표하는 단어로 자리매김했다. 올해 9월 7일로 제주올레가 세상에 나온 지 10년이 됐다. 제주가 좋아, 걷는 게 좋아 몇몇이 뜻 모아 시작한 제주올레는 어느새 일본 숲속과 몽골 벌판에 마스코트 ‘간세’를 새길 정도로 명성이 높아졌다. 제주 관광의 패러다임을 바꿨다는 혁신적인 평가 뒤에는 지역주민 소득과의 연계 미흡 등 과제도 공존한다. <제주의소리>가 제주올레 10주년을 맞아 올레의 과거, 현재, 미래를 세 차례에 걸쳐 짚어본다. [편집자 주]

[제주올레 10년] 서명숙 사단법인 제주올레 이사장...“올레, 개발 만능주의 인식 막는데 노력”

제주올레 10주년을 앞둔 8월말부터 9월초까지, 서명숙 사단법인 제주올레 이사장은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일정을 소화했다. 제주와 서울을 수시로 오가고, 밀려드는 언론 인터뷰까지 소화했다. “도저히 인터뷰할 몸 상태가 아니”라는 (사)제주올레 홍보실 직원의 간곡한 당부가 애처롭게 느껴질 정도였다.

지난 9일 제주올레 여행자센터에서 열린 ‘10주년 가문잔치’는 제주올레 생일을 축하하는 사람들로 발길이 끊이질 않았다. 어린 시절부터 서 이사장과 인연이 깊은 오경수 제주도개발공사 사장, 허영선 제주4.3연구소장을 비롯해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 제주올레의 지난 10년을 축하하며 앞으로의 발전을 진심으로 기원했다.

그래서일까. 안쪽에서 마이크를 잡고 사람들을 소개하는 서명숙 이사장의 표정은 생기가 가득했다. 몸은 지칠 때로 지쳤겠지만 제주올레를 응원하는 기운에 얼굴은 미소가 가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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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9일 열린 제주올레 10주년 기념 행사에서 10년 후원 회원 김차선 씨(오른쪽)에게 기념패를 전달하는 서명숙 사단법인 제주올레 이사장.ⓒ제주의소리

서 이사장은 제주올레는 10년 간 이어오면서 가장 인상 깊은 점으로 많은 이들의 인생을 바꾸고, 개발 열풍에 맞선 가치를 꼽았다. 

아쉽게도 여전히 적지 않은 오해를 사고 있지만, 길을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들이 남아있는 한 제주올레는 백년, 천년 이어질 것이란 부푼 희망을 안고 있었다.

다음은 9일 서명숙 이사장과의 인터뷰 전문.

- 최근에 힘든 일정을 소화했다고 접했다. 근황은?

: 물론 괜찮다. 7일 서울시청 다목적홀에서 열린 10주년 행사를 감동적으로 끝냈다. 제주올레와 결연을 맺은 일본 규슈올레뿐만 아니라 세계 여러 트레일에서도 축하해주기 위해 찾아왔다. 제주올레를 아끼는 올레꾼들도 함께했다. 최근 올레로 인해 삶이 바뀐 분들의 사연을 모은 책을 (사)제주올레 이름으로 냈다. 《나의 제주올레 놀멍 쉬멍 걸으멍》이다. 올레를 만나면서 인생이 달라지고 세상을 보는 창이 바뀐 분들의 고백을 모았다. 이분들도 10주년 행사에 함께해 큰 힘이 됐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토크 콘서트에서 축하 영상을 보냈는데 “올레꾼, 박원순입니다”라고 소개하더라. 올레가 제주의 가치를 얼마나 높였는지 기대 이상으로 찬사를 보냈다. 

- 여러 언론과 인터뷰를 하면서 비슷비슷한 질문을 많이 받았으리라고 본다. 그래서 조금 다른 질문을 던져 보겠다. 제주올레 길이 열린지 10년이 됐지만 후원회원에서 도민 비중은 낮은 편이다. 

: 이 문제는 점차 나아지고 있다. 우리가 재원을 어떻게 조달하고 어떤 어려움이 있는지, 제주올레의 속사정을 적극적으로 알리지 못한 이유도 있다. 돈 이야기는 나부터 쑥스러워서 제주도 분들에게 이야기 하지 못했다. 제주올레 소식을 알리거나 후원자를 모집할 때 주로 인터넷으로 한다. 오늘 같은 행사를 열어도 받는 오해 중에 하나가 ‘초청장도 안 보낸다’는 건데, 인력 문제도 있고 해서 대부분 인터넷에 정보를 올린다. 젊은 사람들이나 다른 지역 사람들은 인터넷으로 정보를 듣고 움직이는데, 그에 반해 제주에서는 모르는 분들도 있다. 아마 제주도 분들은 후원하는 마음이 없어서가 아니라 제주올레 사정을 잘 몰라서 함께하지 못한 게 아닐까 싶다. 

- 많은 순기능에도 불구하고 제주올레가 그동안 받은 가장 큰 오해는 무엇인가?

: 크게 보면 두 가지이다. 돈에 대한 오해, 그리고 문화에 대한 오해다.

제주올레는 처음에 서명숙 한 명으로 시작해 지금은 직원 20명과 자원봉사자 600명을 둔 조직이 됐다. 일이 많아질수록 사람은 필요한데, 최소한의 생계를 꾸리면서 올레길을 지키겠다고 나서니 이렇게 됐다. 돈을 벌어보겠다는 생각은 아예 해본 적도 없다. 근근하게 자생하는 정도에 불과하다. NGO치고는 관심 가지는 후원자들과 기업이 있어서 그나마 사정이 나은 편이나 그래도 남기는 것은 없다. 개인적으로는 직원들이 고생하는 만큼 봉급을 주지 못한다고 생각한다. 착취까지는 아니어도 열정페이나 다름없다. 좋아서 하는 것도 잠깐이지, 나이 들고 결혼하고 아이를 키우면 문제는 현실로 다가온다. 열심히 일하는 직원들에게 대우를 못 해주는 게 일을 저지른 사람의 고민이다. 

가장 큰 오해 가운데 하나가 올레 이름값을 받는다는 것이다. 정말 이름값을 받았다면 엄청난 부자가 돼지 않았을까. 올레라는 명칭은 올레라는 제주어를 사람들이 많이 알고 많이 사용하라는 의미에서 지었다. 아름다운 제주말을 전 국민이 따라 쓴다면 자연스레 제주 문화가 확산되는 기쁜 일이 아닌가. 상표등록은 했지만 상업적 목적이 아니라 혹시나 잘못 사용되는 일이 없도록 최소한의 방어적 목적으로 했을 뿐이다. 이런 점을 사람들이 알아만 줘도 고맙다.

- 제주올레가 '로열티'를 받지 않는다는 것은 이미 왠만큼 알려진 것 같다. 그렇다면 문화적인 오해는 무엇인가?

: 오히려 돈에 대한 오해보다 더 속상하고 억울하다. 10년이 지났는데도 아직까지 우리가 쓰는 올레라는 단어 대해 문제 삼는 분들이 있다. 올레가 집으로 들고 나는 길에만 사용해야지 여행길에 왜 올레를 쓰냐는 말이다. 그런 분들에 대해 이제는 ‘한라산 소주에 한라산이 들어있냐’고 되묻는다.(웃음) 제주올레는 제주어 올레라는 단어에 들어있는 상징성을 표현한 일종의 브랜드 네이밍(Brand naming)이다. 거의 사라져가는 생활 속 단어를 끄집어내서, 누군가는 올레를 나서야 제주 한 바퀴를 돌 수 있다는 상징성을 부여해 환기시켰다. 제주어를 전국적인 단어로 만들었는데 그렇게 해서 알려지면 제주를 위해 더 좋은 것 아닌가? 언어는 살아있다. 새로운 올레는 소통하고 만나고 치유하는 길이다. 현대적으로 의미를 확장했다고 과연 올레를 훼손한다고 볼 수 있을까.

- 제주올레가 개발을 부추기고, 굳이 드러내지 않아도 되는 속살까지 드러냈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 10년 전 고향 제주에 내려왔을 때 정말 거센 개발 바람을 실감했다. 입만 떼면 어디 건물을 몇 층까지 높이고, 어디를 개발하고, 카지노를 만들고, 여기저기서 랜드마크를 세워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제주 관광이 몇 년째 정체기를 겪다보니 나온 주장이기도 했다. 정말 어마어마한 규모와 속도로 자연이 파헤쳐지고 개발되는 계획이 논의됐고 실제 이뤄졌다. 그렇게 파괴된 자연이 지금 어떻게 됐나.

제주올레는 결코 난개발을 원하지 않는다. 길을 걷고, 여행을 하면서 작은 카페나 가게 정도면 충분하다는 생각이었다. 물론 그 이상의 큰 개발이 여기저기 벌어졌다. 제주올레가 역세권처럼 여겨지고 있다. 나도 깜짝 놀란다. 정말 바라지 않았던 방향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다만, 그 마저도 이미 집행됐거나 이뤄졌을 대형 개발에 비하면 감히 작다고 말하고 싶다. 중산간까지 밀려든 자본의 무차별 침투와 전혀 본질이 다른 것이다. 제주올레가 가져온 의미있는 변화에 대해서 유독 예민하게 반응하는 건 아닌지 싶다. 

몇 년 전만 해도, 마을에 리조트나 큰 건물이 생기면 잘 산다고 했다. 지역발전이란 이름으로 행정이 나서서 자연을 파괴했다. 그런데 지금은 어떤가. 이제는 도로를 넓히고 건물 올리는 개발 일변도의 인식에서 도민들도 많이 바뀌지 않았나. 제주올레는 그동안 귀한지 몰랐던 시골 집, 돌담, 옛 올레 같은 제주다움이 충분히 가치 있는 것이라는 걸 사람들에게 알려줬다. 인식을 바꾸는 게 정말 어렵고 중요하다. 제주올레가 등장하면서, 있는 그대로의 자연이 중요하고 지켜야 한다는 메시지를 줬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제주올레를 내면서 사람들의 발길이 닿아서는 안 될 곳은 최대한 피하려고 노력했다. 바닷가는 이미 해녀, 할망, 마을주민, 낚시꾼들이 다녔던 삶의 길이었다. 몇몇 길은 생활의 변화로 다니지 않아 잊혀졌던 길을 다시 열어준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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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주올레 길 풍경.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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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주올레 길 표시.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 느리게 걷고 천천히 사는 삶이 친숙하게 느껴지게 된 건 제주올레의 영향이 컸다고 본다. 막연한 질문 같지만 이런 지향점을 잃지 않고 앞으로도 제주올레가 100년, 1000년 이어질 수 있나? 

: 길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는 한 제주올레길은 계속될 것이다. “원래 지상에는 길이 없었다. 지나다니는 사람들이 많아지면 그것이 곧 길이 된다”는 중국 문학가 루쉰(魯迅)의 말처럼 어려워도 누군가가 걷기 시작하고 그 뒤를 사람들이 따라가면 길은 이어진다. 없으면 닫히고. 보장할 순 없지만, 제주올레를 계속 사랑하고 걷는 사람이 있다면 산티아고처럼 1000년 이상 갈 수 있다. 길은 길과 만난다. 

- 사람들에게 제주올레가 어떻게 기억되길 바라나.

: 길은 가장 행복한 종합병원라고 생각한다. 나도 정말 힘든 시기에 길에서 정신적, 육체적으로 행복을 얻었다. 헬스클럽 같은 실내에서 뛰는 게 아니라 푸른 바다와 하늘, 들꽃을 보고 파도소리를 들으면서 걷는 행위는 내 안의 정신을 치유해준다. 단순하게 다리 근육을 움직이는 것과는 다른 차원이다. 제주올레는 가장 아름답고 평화로운 길로 기억되길 바란다. 한 가지 더하자면 종합병원에서도 약발이 센 병원으로 말이다.

- 기억하는지 모르지만, 제주올레가 10여년이 지나면 서명숙은 (사)제주올레 이사장이 아닌 작은 식당 주인으로 살아가겠다는 이야기를 예전에 들려줬다. 지금도 그 생각은 변함없나?

: 당연히 기억난다.(웃음) 사단법인 제주올레를 자연스럽게 후배들에게 물려주는 날이 온다. 지금은 후배들이 일을 배우고 있고, 무엇보다 오랜 숙원이었던 여행자센터를 마련하면서 큰 빚을 졌다. 내 이름으로 빚을 냈기 때문에, 빚을 청산 하는 날이 내가 마음 놓고 놀 수 있는 날이다.(웃음) 언제라도 떠날 준비는 돼 있다. 큰 짐으로부터 해방되기 위해서라도 지금은 현재에 충실할 수 밖에 없다. 

- 제주올레가 앞으로도 제주의 가치를 잘 지켜내고 전승하는데 더욱 노력해달라. 바쁜 일정에 인터뷰 응해줘서 감사 드린다. 

: 제주올레가 모두의 길이 되도록 많은 관심과 격려 부탁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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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명숙 사단법인 제주올레 이사장.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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