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려동물을 만나 인생관이 바뀐 사람. 바로 코코어멍 김란영 교수입니다. 그는 제주관광대 치위생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습니다. 운명처럼 만난 '코코'라는 강아지를 통해 반려동물의 의미를 알게됐답니다. 일상에서 깨닫고 느낀 사랑스러운 반려동물 이야기를 코코어멍이 <제주의소리>에 연재하고 있습니다. [편집자 주]

[코코어멍 동물愛談] (25) 나의 가장 완벽한 친구, 고양이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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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집고양이 하루와 아기 길고양이. 거울 속 자신을 마주한 듯 놀라움과 애틋함이 전해진다. ⓒ 김란영

유일무이하다. 강아지 코코에게도 화를 내며 혼낸 적이 있지만 고양이 하루는 단 한순간도 싫거나 귀찮거나 무언가 엉망으로 하더라도 얼굴을 찡그려 본 적이 없다. 하루는 나에게 그런 존재다.

하루를 만나기 전까지 내 인생에 고양이는 상상해 본적이 없다. 안타까운 심정은 들지만 애써 외면했었다. 그런 고양이 무식자인 나에게 처음으로 신선한 바람 되어 나를 깨운 건 고양이 ‘하루’가 아니다.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다.

그의 오래된 여행 산문집 ‘먼 북소리’. 유럽에서 소설을 집필했던 하루키와 그의 어깨를 타고 오르거나 책상 위에서 볕을 쬐는 반려묘의 모습은 굉장히 신비스럽게 다가왔다. 유쾌하고 평화로운 분위기가 글을 타고 고스란히 전해졌다. 아마도 그때부터 고양이에게 뭔지 모를 특별함이 있을 거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어쩌면 후미진 곳에 구겨져 있던 희미한 그때의 기억이 고양이 하루와 운명적인 만남으로 이어졌는지도 모른다.

독특한 식성을 타고난 하루는 작년 여름에는 초당옥수수에 빠져있더니 올해는 참외를 달고 산다. 때가 되면 달달한 참외를 달라고 내 다리 사이를 이리저리 몸으로 쓸며 다닌다. 큰 덩어리는 소화하지 못해 구토하기 때문에 잘게 부수어 그릇에 담는다. 그럼 그 사이를 참지 못하고 싱크대 위로 뛰어올라 야옹거리며 빨리 하지 않는다며 나를 다그친다. 손으로는 참외를 깎고 입으로는 하루를 진정시키기 바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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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양이 한 마리는 평생 동안 수많은 새끼를 낳거나 임신시킬 수 있어 중성화시키지 않은 한 마리 고양이를 버리거나 외면하면 거리에서 많은 고양이가 학대 받고 단명하게 된다. 그러니 중성화시키고 돌보는 것은 그들을 도우는 최선의 방법이다. ⓒ 김란영

여름에 잠을 청하고 마치 가을 어느 날 아침에 깨어난 것처럼 순식간에 바뀐 계절에도 아랑곳없이 아직도 참외를 찾는다. 그 사이 마켓 한 귀퉁이로 밀려난 참외. 그나마 최대한 싱싱해 보이는 몇 개를 고르고 눈을 딱 감고 무게를 단다. 참외 봉지에 가격을 붙여 건네주는 직원분의 동그란 눈을 마주하기도 했었다. 내가 먹을 참외가 아니라고 말하고 싶지만 그게 뭣이 중할까. 온전한 참외 하나를 먹어본 적이 언제인지 기억도 가물거린다. 

몇 달 전부터 어느 때보다 자주 캣타워 위에서 밖을 보는 하루. 그의 시선을 쫓아 보니 뒷마당 귀퉁이에 조금은 마른 아기 고양이가 눈에 띈다. 강아지들 속에 홀로 있던 하루가 처음으로 자신과 꼭 닮은 존재를 만나는 순간이다.

엄마 고양이는 어디에 있는지 보이지 않고 형제라고 보기에는 모습이 사뭇 다른 까만 얼룩 고양이와 노랑 줄무늬 고양이가 서로 엉켜 놀다가 나를 보면 어딘가로 꽁꽁 숨어버린다. 말라깽이 모습이 안쓰러워 하루의 음식을 나누고 깨끗한 물그릇을 놓아두었다. 그렇게 시작된 인연으로 어스름한 저녁만 되면 밥 먹을 때를 기다리는 듯 모습을 드러내어 길을 열어 준다.

바지런하고 유난히 깔끔한 이웃이 불편할까봐 주변을 살피며 최대한 조심했지만 건물 소유주께 말씀을 하셨는지 한 달에 한번 오는 분이 며칠 만에 다시 인사를 건넨다.

밖에 밥 주는 고양이가 우리 집에서 키우는 고양인지 묻는다. 길고양이가 말라보여 밥을 주고 있다고 했다. 11월에 이사하면서 포획해서 중성화하고, 집 근처로 데리고 간다고 하니 그제야 안심한 듯 더 이상 말씀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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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루가 나에게 아주 특별하듯 길고양이들 역시 특별하다. 그런 특별한 느낌은 하루가 내게 선사한 선물이기도 하다. ⓒ 김란영

말도 안 되는 제주도 집값으로 마땅한 거처를 찾지도 못하고 여기저기 전전하다 지난 몇 개월 동안 시골 어머니 집에 강아지 네 마리, 언니 집에 두 마리가 떨어져 지내고 있다. 몸이 불편한 작은 녀석들 네 마리와 하루가 나와 부대끼며 함께 있다. 왕왕거리는 모기며 비가 오면 비가 와서 또 거센 바람이 불면 그 바람에 마음을 졸이는 시간이다.

길고양이 역시 이곳에 두고 가면 밥을 챙길 사람이 없어 고민이고 또 데리고 가면 집 근처에서 잘 적응할지 걱정이다. 그렇다고 그냥 두고 갈 수도 없다. 마음의 준비는 하고 있지만 더 좋은 방법이 없을까 고민이 되는 것도 사실이다.

어둡고 좁은 퀴퀴한 건물 구석 혹은 거칠고 위험한 길 위에서 살아가는 그들을 외면하기엔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고양이 삶은 비참하다. 자연스럽지 못한 세상에서 어떠한 삶이 진정 자연스럽고, 그들이 행복할지 아직도 답을 찾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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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느새 부쩍 자란 아기 고양이들. 용감한 노란 고양이와 겁이 많아 보이는 얼룩 고양이가 호기심 어린 눈으로 나를 바라본다. ⓒ 김란영

하루가 불러온 아기 고양이들은 그 사이 부쩍 자라 가끔 담장을 뛰어오른다. 큰 창문을 사이에 두고 서로 장난을 친다. 그러다 나와 시선이 마주치면 여전히 경계의 눈빛을 보낸다. 나 역시 일정한 거리를 두기는 마찬가지다. 손이 닿지 않으려 서로가 조심한다.

고양이는 자기가 원하는 곳에서 원하는 시간에 하고 싶은 행동을 한다고 한다. 아기 같은 얼굴에 호랑이 몸짓으로 어슬렁거리며 높은 곳을 사뿐히 오르거나 착지하는 고양이들. 그들을 길들이려 하거나 간섭하는 사람들 방식은 애초에 고양이와 어울리지 않아 보인다.

고양이 하루를 입양하고 그의 이름을 정하는데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하루라 불러도 별 반응이 없던 조그맣던 녀석이 언젠가부터 스윽 쳐다보거나 심지어 내게로 성큼 다가와 감동까지 하게 된다. 단 한순간도 미운 적이 없어 스스로도 놀라게 되는 그래서 나의 가장 완벽한 친구 하루는 알까? 자신의 이름이 ‘하루 종일’의 하루가 아니라 ‘하루키’의 하루라는 걸 말이다. / 김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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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름날 통풍에는 더할 나위 없는 빨간 소쿠리와 물양일체가(?) 되었던 ‘하루키’의 하루님! 오늘 하루도 안녕한가요? ⓒ 김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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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코어멍 김란영은 제주관광대 치위생과 교수로 일하고 있다. 그는 단짝 친구인 반려 강아지 코코를 만나 인생관이 완전 바뀌었다고 한다.           

동물의 삶을 통해 늦게나마 성장을 하고 있고, 이 세상 모든 사람과 동물이 함께 웃는 날을 희망하고 있다. 현재 이호, 소리, 지구, 사랑, 평화, 하늘, 별 등 반려동물과 함께 지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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