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두연 전 제주4·3희생자유족회장

148374_168200_4753.jpg
▲ 김두연 전 제주4.3유족회장.
제주4·3 70주년을 100일 앞두고 제주4·3 70주년 범국민위원회와 제주위원회가 4·3관련 사업을 성대하게 준비하고 있다.

2017년 7월 25일 3년여 만에 4·3중앙위원회(위원장 국무총리)는 희생자 25명, 유족 210명을 최종 심의 의결하였다.

지금까지 희생자 1만4232명, 유족 5만9426명으로 희생자를 분류하면 사망자 1만245명, 행방불명자 3575명, 후유장애자 164명, 수형자248명으로 심의 의결됐다. 이같은 제주4.3은 한국현대사 제주도사에 전대미문의 사건이다. 아비규환의 유혈참극 상황 속에서도 죽이는 자와 살려는 자 사이에 군·경과 민간인 중에 죽음과 처벌을 감수하며 많은 주민들을 살려낸 사람이 있는데 이들이 “4·3의인”들이다.

제주4·3평화기념관 2층 전시실에 4·3의인이 전시되어 있다. 군인 김익렬 9연대장은 무장대 총책 김달삼과 만나 서로 총부리를 겨누지 않는다는 4·28평화협정 체결, 결국은 무산. 문형순 성산포경찰서장은 1950년 계엄 하 예비검속자를 총살하라는 명령을 불이행, 대량학살을 거부하였다. 

남원 신흥리 김성홍 구장은 주민들의 성향을 묻는 토벌대에 무조건 모른다로 “몰라구장”. 위미리 강계봉 순경은 소개령 후 주민 희생을 막는데 적극 도왔다. 하예리 장성순 경사는 신흥리에 파견대장으로 부임, 산에 갔다 온 사람 불문에 부치겠다. 월남한 외도지서 방경사 지서주임은 총살명령에 총이 고장으로 학살을 피했다. 

그 외 조천읍 함덕리는 4·3 60주년을 맞아 4·3의인 공덕비를 세웠다. 전 함덕리장 한백흥과 유지 송정옥 두 분은 4·3당시 총살 청년을 구하려다 총살당했다. 이와 같이 4·3의인들이 많은 희생자를 막는 노력을 했는데 무관심하고 있다.

화해·상생·평화·인권의 가치를 교육하고 70주년을 맞이하여 유족회, 군·경이 4·3의인 찾기 운동과 선양사업을 추진해 보게 마씸.
저작권자 © 제주의소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