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김은정 제주여민회 성평등교육센터장

결혼한 남성들에게 물어보았다. “명절을 어떻게 지내시나요?” “두 집에 인사를 드리러 가지요.” “두 집에 인사를 드리러 간다면 차례에 두 번 가나요?” “그건 아니고 명절날 저희 집에서 차례 지내고 처가에 가지요.” 이번 명절이 길어서 즐겁다는 어떤 사람들은 차례를 지내고 난 후 처가에 가는 것이 평등한 명절을 지내는 방법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여성들의 생각은 달랐다. 명절에 대하여 이야기를 꺼내는 것으로 이미 어두운 기색이었다. 여성들은 알고 있었다. 평등한 명절을 간접적으로도 경험한 적이 없다는 것을. 

명절은 행복한 시간이다. 명절에는 사랑하는 부모님이 계신 집에 간다. 오랜만에 왔어도 내가 몇 년이나 살던 곳이라 아늑하고 편안하다. 오랜만에 뵙는 작은아버지가 술을 한 잔 하자고 부르신다. “어이구 너 장가갔으니 술 한 잔 같이 하자.” 아버지가 넣어두셨던 비싼 술을 내어 주신다. 차려주시는 저녁을 먹으려는데 친구 녀석에게 연락이 온다. “야 집에 왔냐? 오랜만에 모였는데 나와라!” 오랜만에 만나는 동네친구들은 왜 이리 반가운지 즐거운 마음으로 편안한 잠자리에 든다. 다음날 일어나서는 옷을 단정하게 하고 차례를 지낸다. 어릴 적부터 보아온 친인척들에게 사람구실 한다는 칭찬도 듣고 조카들에게 용돈도 조금 주니 뿌듯하다. 이것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명절의 서사이다. “풍요롭고 즐거운 명절 보내세요”라는 인사는 이런 서사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오랜만의 친구들과 친척들을 만나고 즐겁게 식사하고 조상에게 감사하는 행복한 시간이다. 

하지만 이 서사를 모두가 경험하는 것은 아니다. 여성은 명절을 어떻게 경험하는가? 명절이 되었다. 부모님이 보고 싶지만 명절 첫날 부모님을 뵈러갈 수는 없다. 명절 전날 그녀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낯선 집의 수증기로 가득 찬 부엌과 일거리들이다. “두부 한모 사와라” 심부름을 하고 들어오는데 대문이 아니라 부엌문으로 다니라고 한다. 드나드는 문에도 차별이 있다. 부엌일은 계속된다. 나물에 산적에 떡에 과일에 허리도 한번 못 펴고 바닥에 주저앉아서 전을 부치니 허리가 부서질 것 같다. 직장에서는 저녁시간에는 쉴 수 있었는데, 명절의 며느리는 저녁시간도 쉬지 못한다. 상을 다 차리고 밥을 먹으려고 하면 무엇을 갖다달라는 요구가 이어진다. “내가 할 테니 밥먹어라” 말해주는 다른 여성의 배려가 있지만 맘이 편치 않다. 온 가족이 먹은 것을 늦게까지 치우고는 낯선 집에서 불편한 잠자리에 든다. 다음날 아침 일찍 일어나 일하기 편한 옷을 입는다. 온통 기름 냄새가 난다. 낯선 집이라 제대로 씻지도 못했다. 아침부터 상을 차려내고 치우고 온전히 앉아있을 시간도 없다. 아침에  생전 처음 보는 친인척들이 왔다. 나를 위아래로 훑어보고는 “예쁘네” 하면서 평가를 한다. 아침을 먹으려는데 먹고 남은 생선을 먹으라고 꺼낸다. 나는 뜯어먹다 남은 생선을 먹고 싶지는 않다.   

해마다 명절이면 고통을 호소하는 가족구성원들이 있다. 명절이 쉬고 즐기는 날이 아닌 고된 노동의 시간인 여성들이 있다. 모두 같이 모여 조상에 감사드리고 가을의 수확에 기뻐하는 추석이라고 하지만 명절을 지낼 생각을 하면 명치가 아픈 사람들이다. 이런 말조차 마음대로 할 수가 없다. 힘들고 고통스러운 명절이라고 말하면 이기적이고 가족을 배려하지 않는다며 비난을 받을 뿐이다. 여성들은 조용히 내키지 않는 발걸음을 내딛는다. 

사실 더 힘든 부분은 마음이다. 낯선 사람들에 둘러싸여 다른 사람들끼리는 다 아는 상황, 나는 모르는 사람들뿐인 상황에서 분위기를 맞추어가며 노동을 한다. 시간을 내어 밥을 먹다가도 저쪽에서 부르면 눈치껏 일어서야한다. 내가 명절에 일하러 가지 않으면 또 다른 여성이 내 일을 대신해야한다. 그 노동의 결과물도 내가 모르는 사람들이 먹고 내가 모르는 조상에게 감사하기 위한 것이다. 집안의 조상에게 감사를 표현하기 위한 음식인데 그 음식을 만드는 것은 모두 다른 성씨를 지닌 사람들이다. 이 상황은 성별을 삭제하면 굉장히 이상하게 보이는데 일하지 않는 집단과 계속해서 일만 하고 있는 집단이 분명히 나뉘어있다. 그 집안의 성씨를 지닌 사람은 즐겁게 웃고 즐기지만 다른 성씨를 지닌 사람은 모두 노동하고 있다. 물론 성별을 넣으면 이상하지 않다. 왜냐하면 여성이 일하고 남성은 일하지 않는 명절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그림이기 때문이다. 
 
두 집에 모두 간다고 한 남성은 잘못 알고 있다. 전날부터 음식을 하고 명절아침 차례를 지내고 온 가족이 모여 조상에게 감사한 인사를 드릴 수 있는 사람은 남성뿐이다. 여성의 조상은 여성이 없는 곳에서 다른 남성에게 감사인사를 받는다. 여성이 있는 곳에서 인사를 받고 있는 조상은 사실 여성과는 혈연적 관계가 없고 사실 여성을 지금 이 모습대로 있게 해준 사람도 아니다. 우리의 남성 중심적 사고는 여성에게 조상이 있음을 인지하지 못한다. 여성은 그저 남성의 조상에게 감사드리기 위해 노동을 제공할 뿐이다. 명절에 일하고 있는 여성들은 의문에 빠진다. 나는 누구인가? 여기는 어디인가? 나는 왜 이 자리에서 전을 부치고 있는가? 여성도 낳아준 부모님과 조상이 있다. 내 조상님이 아닌 다른 조상님을 위해서 허리가 부서져라 전을 부치고 있는 스스로의 모습이 너무나 이상하게 느껴진다. 노동의 강도는 중요하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공평함과 가치이다. 본인이 불편하지 않으면 불평등하다고 생각하기 어렵다.  불편한 것은 불평등의 아래쪽에 있는 자이고, 이런 목소리는 항상 삭제된다. 

사회는 점점 성평등한 사회로 나아가고 있다. 직장과 사회에서 성별고정관념을 강요하지 않고 여성의 남성의 역할을 강요하지 않으며 서로를 동료로, 그리고 직업인으로 보려는 시선은 여성에 대한 폭력을 감소시키며 긍정적 근로환경과 사회 전체적인 효율을 증가시킨다. 하지만 평소에 성평등한 직장과 가정을 위하여 교육받고 노력하는 사람들도 명절이라는 기간 중에는 가부장적이고 불평등한 질서를 전통이라는 이름으로 강요한다. 이런 가부장적 질서의 강요는 성평등을 지향하는 사회 분위기에 맞지 않는 것으로 이러한 모순은 결국 가정의 분열로 이어진다. 법원행정처에 따르면 설날과 추석전후에는 평소보다 2배 이상의 이혼이 접수되며 전체 이혼신청의 20%이상이 설날과 추석의 명절전후에 이루어진다고 한다. 명절에 대한 서로 다른 경험은 여성과 남성이 함께 어울려 사는 즐거운 가정을 불가능하게 한다. 출산율은 낮고 비혼율은 점점 늘어나고 있다. 이에 대해 여성을 비난하는 것은 아무런 효과도 없다. 인간은 스스로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선택한다.  남성이 그런 것처럼 여성도 그렇다. 이런 상태로는 결국 명절도 가족도 점차 붕괴될 것이다. 

사이좋은 남매가 있다. 남매는 서로 결혼을 하고도 서로의 배우자와 함께 어울리며 친하게 지냈다. 오빠의 아내, 여동생의 남편을 서로서로 챙기면서 올케나 매제가 아니라 동성의 친구처럼 애틋하게 지냈다. 다들 바쁜 직장인이지만 그래도 짬을 내어 얼굴을 보았고 가족의 따뜻함을 느꼈는데 음식을 만들고 차리는 일도 모두 함께 하는 이 가족의 제일 큰 아쉬움은 명절이었다. 가족과 함께 보내야 하는 이 명절에 이 남매는 도저히 만날 수가 없었다. 오빠가 부모님께 오는 시간은 명절의 전날 그리고 명절당일이었다. 명절당일 차례를 지내고 오빠와 올케는 처가에 가고 명절당일 차례가 끝나면 여동생과 매제가 도착했다. 다행히도 본인의 딸과 사위를 보고가라며 며느리를 잡아두는 그런 경우 없는 시부모님은 아니었고 사이좋은 남매는 도대체 만날 수가 없었다. 안타깝게 생각하던 이 가족은 결정했다. “우리는 설날만 한다. 설날에 남매가 모두 와라. 그 대신 추석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추석에는 각자가 다른 부모님께 가는 걸로 하자.” 사실 며느리보다 사위에게 어려운 결정이었을 수 있다. 사위로서는 설날에 처가의 차례를 지내러 오는 셈이었다. 하지만 남매의 우애와 가족의 정은 그런 고정관념을 뛰어넘었다. 결국 설날만 만나서 함께 차례를 지내는 이 집은 추석에는 다른 집으로 차례를 지내러 가거나 각자의 집에 있거나 해외여행을 가거나 한다. 부부의 끈끈함은 더해졌고 행복하게 가정을 영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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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은정 제주여민회 성평등교육센터장.
각자의 집마다 각자의 사정들이 있을 것이다. 명절을 지내는 사정과 상황들 우리는 그 상황이 누구의 상황인지를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여성의 입장에서 여성의 상황이 중요한 기준으로 고려되어야 한다. 성평등한 명절을 위한 노력은 이제 시작되어야 한다. 이번 추석은 모두에게 이전보다 함께 즐겁고 함께 행복한 명절이 되었으면 하는 기대를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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