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G_5361.JPG
▲ 제주도립미술관은 19일 예술공간 이아에서 <제주비엔날레 2017 컨퍼런스>를 개최했다. ⓒ제주의소리
제주비엔날레 컨퍼런스 19~21일 개최..."제주 역사와 민속, 껍데기 뛰어넘는 가능성 지녀"

로컬리티(locality), 한국어로 풀면 지역, 지역성 정도로 해석한다. 

경계를 허물고 국제적으로 사고하고 행동하자는 일명, 글로벌리즘(Globalism)이 한때 유행처럼 번진 적이 있다. 그러나 우리 주변에 있는 지역적인 것이 알고 보면 어느 것보다 세계적이라는 인식, 일명 글로컬리즘(Glocalism)도 맞서서 대두됐다. 글로컬리즘은 글로벌리즘과 로컬리티를 합친 개념이다.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제주해녀문화는 글로컬리즘을 잘 보여주는 예시다.

제주도와 일본의 사례를 통해 로컬리티를 예술의 눈으로 이해하는 자리가 마련됐다. 제주도립미술관은 19일 제주시 삼도2동 예술공간 이아에서 <제주비엔날레 2017 컨퍼런스>를 개최했다. 19일부터 21일까지 3일 동안 진행하는 이번 컨퍼런스는 제주비엔날레 주제이기도 한 ‘사회예술과 투어리즘’을 지역성, 사회예술, 관광으로 나눠 전문가와 함께 이야기한다. 

첫 날은 지역성을 주제로 정해 ▲제주도와 예술생태(발표자: 박경훈 제주문화예술재단 이사장) ▲글로컬리즘 이후(치히로 미나토 일본 다마미술대 교수) 발표와 서영표 교수, 안태호 제주문화예술재단 팀장이 참여하는 토론 순서로 진행했다.

# 4.3으로 눈뜬 제주다움, 밑바닥에 깔린 정서

박경훈 이사장은 제주4.3이란 끔찍한 역사를 만나면서 보다 깊은 제주다움을 알아갔다고 설명했다. 

그는 “제주에서는 물마루라는 용어가 있다. 수평선이라고 보면 되는데, 물마루를 건너서 권력과 문화가 있는 곳으로 간다고 한다. 즉 출세해서 제주 밖으로 나간다는 것”이라며 “그런 기준에서 보면 오랫동안 제주는 문화적으로 살려면 떠나야 했던 땅이었다”고 말했다.

IMG_5352.JPG
▲ 박경훈 제주문화예술재단 이사장. ⓒ제주의소리ⓒ제주의소리

박 이사장은 “개인적으로 4.3을 만나면서 제주 사람에 주목했고, 그 다음으로 맨 아래 지층에 자리해 있던 무속을 알게 됐다. 역사를 통해 민속을 다시 봤고 나아가 그 안의 사람을 다시 봤다. 무심코 지나가던 신당과 할망들이 의미있게 느껴졌다”며 “이런 흐름 속의 제주 문화는 피상적으로 알려진 '제주 문화'를 뛰어넘을 수 있는 가능성을 봤다. 지금은 다른 존재와 비교하기 보다, 제주가 어느 것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크게 여겨진다”고 설명했다.

제주도 예술 문화에 있어서 중요한 기관인 ‘문화예술재단’을 이끌고 있는 박 이사장은 “원희룡 도정은 문화를 도정 목표에 넣고, 예산도 크게 지원했다. 역대 어느 도지사도 하지 않은 일”이라고 높이 평가했다.

그러나 “원 도정이 내세운 문화예술의 섬이란 가치는 아직 200% 부족하다. 솔직히 말하면 문화예술의 섬이 제주 지역에 적합한 지 궁금증까지 들고 있다”면서 “지역 예술이 한 단계 발전할 수 있기까지는 아직 역부족이다. 기념비적인 사업을 줄었지만 마스터 계획이 없다. 전략만 없이 목표만 세워지면서 문화예술의 섬이 가벼워졌다”고 앞으로의 과제를 남겼다.

# 제주비엔날레보다 먼저 ‘로컬리티’ 선보인 국제 미술행사는?

IMG_5367.JPG
▲ 치히로 미나토 교수. ⓒ제주의소리
치히로 미나토 교수는 제주비엔날레 보다 먼저 로컬리티와 사회예술(소셜아트)을 다룬 일본 <아이치 트리엔날레(aichi triennale)>를 예로 들었다.

2010년부터 3년에 한 번(트리엔날레) 열리는 아이치 트리엔날레는, 일본 중부지역에 위치한 아이치 현에서 열리는 국제 미술행사다. 아이치 현에 속한 3개 도시(나고야, 오카자키, 도요하시)에서 분산해서 열린다. 

가장 최근 행사인 지난해는 8월 11일부터 10월 23일까지 열렸으며 60만명에 달하는 입장객이 찾았다. 일본을 대표하는 국제 미술행사 가운데 하나로 손꼽힌다. 치히로 교수는 아이치 트리엔날레가 지역의 오랜 문화 자원을 예술로 다룬 사례를 들었다.  

번화가였지만 근래 들어 쇠락한 지역의 건물들을 빌려 예술 활동을 벌였고, 전통 축제와 접목해 사람들을 불러 모았다. 지금은 건물 집세가 높아져 다음 트리엔날레를 걱정할 정도로 호응을 얻는다. 100년 넘은 옛 전통 주택을 전시장소로 활용했고, 고유한 전통 방식의 된장을 작품에 접목했다. 된장이 발효하는 현상을 사진으로 찍거나 여러 지역의 조미료를 병에 담아 냄새를 맡는 체험 방식이다. 다른 나라 요리를 새로운 레시피로 만들어 맛보는 시식도 더했다. 

IMG_5391.JPG
▲ 아이치 트리엔날레 자료 사진을 설명하는 치히로 미나토 교수. ⓒ제주의소리

터키부터 일본까지 유라시아 대륙을 잇는 각 나라들의 타일을 전시해 ‘횡단적 지역주의’를 드러내는 독특한 프로젝트도 있었다. 지역과 밀착한 예술성으로, 최대한 많은 사람들이 친근하게 접할 수 있게 고민했다는 인상을 받기 충분했다.

# 지나친 지역성, 극우로 흐른다...삶의 현실 공감하는 예술 필요

토론자로 나선 서영표 교수는 지역성이 경계해야 할 점을 이론적으로 접근했다. 지역성에 매몰된다면 극우(極右)적으로 변질된다고 봤다. 나아가 현대 문화, 사회에 있어 ‘순정’이란 개념이 사실상 사라진 만큼, 제주문화 역시 방어적인 자세를 뛰어넘어야 한다고 제시했다.

서 교수는 “로컬리티는 장소에 대한 애착이 강하다. 마치 제주사람들이 제주섬에 대한 애착이 강한 것처럼 말이다. 애착이 지나치면 순수성, 진정성을 추구하는데 이게 지나치면 문제가 일어난다. 영국의 EU(유럽연합) 탈퇴 현상인 ‘브렉시트’와 세계 각지에서 벌어지는 ‘인종청소’ 대학살이 이런 경우”라고 분석했다.

서 교수는 “오늘 날 현대를 사는 우리는 이미 잡종이자 혼종이다. 인터넷으로 전 세계가 연결되고 각종 성질이 융합되는 하이브리드한 현대 사회 상태를 인정하지 않고, 문제를 해결하겠다며 지역이 가진 진정성으로 돌아간다면 ‘극우’로 흘러간다. 세계 각지에서 왜 극우정당이 득세하는지 이유를 알 수 있다”고 덧붙였다.

IMG_5393.JPG
▲ 왼쪽부터 안태호, 서영표, 통역, 치히로 미나토 씨. ⓒ제주의소리

특히 “제주도의 방어적인 문화는 ‘우리도 인정해달라’는 목소리를 담고 있다. 이런 현상은 현대에 와서도 달라지지 않았고 수동적인 자세로 ‘우리를 인정해줘’라는 주장을 넘어서지 못했다고 본다. 잡종이라는 건 중심이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여전히 중심을 붙잡고 있으면 ‘너희들이 변해야 한다’는 투쟁 일변도로 흐른다”며 “제주비엔날레가 추구하는 로컬리티와 소셜아트는 우리가 공감할 수 있고 상호의존적이라는 것을 증명하면서 삶의 현실을 직시하는 실존 중심적이어야 한다”고 제시했다.

제주비엔날레 컨퍼런스는 20, 21일에도 이어진다. 20일은 오전 10시 30분부터 제주도립미술관에서 진행한다.
저작권자 © 제주의소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