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점] 영상위 임시이사회 격론 속 종료...道-영화인 간담회서 기능 축소 등 우려 해소 관건

제주문화콘텐츠진흥원(이하 콘텐츠진흥원) 설립을 앞두고 제주 영화인들과 제주도 간의 진통이 극단으로 치닫고 있다.

제주도는 콘텐츠진흥원 설립 조건이 제주영상위원회(이하 영상위) ‘해산 후 흡수 통합’인 만큼 영상위 해산은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영화인들은 이대로라면 로케이션 같은 영상위 고유 기능이 크게 위축된다는 우려다. 영화 단체들의 공동 성명서에 이어 영상위 임시이사회도 격론 속에 해산 여부를 결정짓지 못하는 등 갈등은 커지는 모양새다. 곧 열릴 제주도, 영화인들 간의 간담회가 분깃점이 될 전망이다.

▲ 지난 10일 열린 영상위 제2차 임시이사회 및 총회. 이날 회의에서 영상위 해산 여부를 결정지을 예정이었으나 이사들의 반발로 다음으로 미뤄졌다. ⓒ제주의소리

# 제주콘텐츠진흥원은 무엇?

지난 10일 열린 영상위 제2차 임시이사회 및 총회는 오후 5시에 시작해 예정된 1시간을 넘겨 오후 7시 20분이 돼서야 마쳤다. 이날은 ‘영상위 해산 및 청산 계획(안) 심의’를 처리할 예정이었으나 영상위 이사들의 반발 속에 심의 처리는 무산됐다. 영상위 해산을 반대하는 의견과 이에 맞서는 제주도의 입장이 팽팽했다.

제주도는 내년 콘텐츠진흥원 설립을 목표로 막바지 절차를 밟고 있다. 콘텐츠진흥원은 제주도 출연기관으로 비영리 재단법인이다. 내부 구성은 5개 팀으로 꾸려지는데 영상위원회, 아시아CGI센터, 제주테크노파크 내 문화콘텐츠 분야까지 세 곳을 합친 통합 조직이다. 지난 5월 24일 행정자치부로부터 설립 승인을 받았고, 조례안과 설립 출연금 역시 9~10월 도의회를 통과했다. 

현재 계획된 조직 운영 예산은 출연금 26억 3000만원, 공기관대행사업비 38억 4000만원, 시설비 15억원 등 모두 79억 7000만원에 달한다. 제주도는 콘텐츠진흥원을 지역 내 ‘문화 콘텐츠 산업’을 통합해 이끌 중심 기관으로 키운다는 구상이다.

# 제주영상위원회 해산, 왜 반대할까?

문제는 사단법인으로 운영돼 온 영상위를 해산, 콘텐츠진흥원 산하 조직으로 두는 계획이다. 제주도는 콘텐츠진흥원이 생긴다면, 현재 위탁사업 위주의 영상위 역할에 콘텐츠진흥원 자체 사업과 정부 공모사업까지 더한다는 긍정적인 면을 강조한다. 몸집을 키운 만큼 통합, 효율성을 살린다는 것. 콘텐츠진흥원 설립을 행자부로부터 승인받을 당시, 영상위 해산이 조건으로 포함된 바 있다.

제주 영화인들은 콘텐츠진흥원의 순기능과는 별도로 이대로 영상위가 사라진다면, 지역 영화산업을 위한 영상위 역할이 크게 줄어들 것이라고 우려한다. 특히 콘텐츠진흥원장이 영상위원장을 겸임하게 되는 상황에서, 최종 인사 결정권자인 제주도지사 입맛에 따라 영화 지원 정책이 오락가락 하리라는 우려도 더한다.

10일 임시이사회는 이 같은 걱정이 폭발하는 자리가 됐다. 김홍두 제주도 문화체육대외협력국장은 “콘텐츠진흥원장은 지방공무원 3급에 해당되는 위치다. 이는 영상위원장 위상이 올라간다는 의미다. 앞으로 투입될 국비나 출연금까지 더하면 영상위 역할은 지금보다 3~4배 커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영상위 A 이사는 “왜 정부 조직에서 영화진흥위원회를 따로 두는지 아느냐. 영화 예술 진흥이라는 고유의 특성을 정부 입김에 최대한 얽매이지 말고 독립적으로 하기 위해서”라며 “영상위원장을 겸할 콘텐츠진흥원장으로 도내 여러 공사(公社)처럼 지사 코드와 맞는 분이 올 텐데 영화·영상에 대해 과연 잘 알지 걱정된다. 영상위가 보다 완벽히 관 조직이 되는 셈인데, 지금보다 더 제주도 입김이 세질 것이 당연하다”고 우려했다.

B 이사도 “각 지역 영상위원회 모두 로케이션 서비스 제공과 유치, 관련 인프라 관리라는 작지만 전문적인 영역을 핵심적으로 소화한다. 콘텐츠진흥원에 흡수 통합되는 영상위가 이런 점에서 지금보다 더 나아질 지 회의적”이라고 피력했다.

‘진흥원은 제주영상위원회를 둘 수 있다’는 콘텐츠진흥원 정관 20조 내용도 추후 영상위를 없앨 수 있는 중의적인 의미라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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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주영상위원회 건물 전경.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 효율성-독립성 사이에 제주도·영화인 합의점 찾을까?

영상위 해산 문제는 다양한 이해관계들이 얽혀있다. 평소 영상위 역할에 불만을 표시해온 일부 지역 영화인들은 콘텐츠진흥원이 출범하면, 영상위 기능이 지금보다 더 약화되리라는 우려가 있다. 영상위 직원들은 이번이 조직 구성, 예산, 근무 여건 등 내부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좋은 기회다. 제주도는 평소 도의회 등에서 꾸준히 제기하는 영상위 문제를 콘텐츠진흥원으로 인해 잠재우기 용이하다. 일부 영화인들과 영상위 간의 불편한 감정은 이사회 현장에서도 날카로운 비판과 감정적인 반응으로 표출되기도 했다.

콘텐츠진흥원의 장점에 대해서는 영상위 해산을 반대하는 영화인들도 상당수 인정하는 분위기다. 임시이사회에 참석해 문제를 제기한 이사들도, 영상위 해산은 반대하지만 콘텐츠진흥원은 필요한 부분이 있다고 평가했다. 

지금까지 영상위-CGI센터-테크노파크 등으로 뿔뿔이 나뉜 지역 콘텐츠 분야를 효율적으로 관리할 수 있다는 의견이다. 특히 2008년부터 2016년까지 난타 상설 공연장으로 사용하던 영상미디어센터 예술극장은 이번 기회에 ‘영상’ 중심 극장으로 탈바꿈할 예정이다. 평소 단편·독립·비상업영화 같은 작품을 상영할 전용 공간이 없던 제주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하지만 ‘크기가 커지니 다 잘 될 것’이라는 제주도 설명을 믿을 수 없다는 영화인들의 우려도 무시하기는 곤란하다. 콘텐츠진흥원 설립 과정에서 제주도가 지역 영화인들의 의견을, 진지하게 듣고 고민하거나 반영하지 않았다는 불신의 시선은 이를 뒷받침 한다.

영상위 모 이사는 “영상위가 이대로 콘텐츠진흥원에 흡수돼 사라진다는 사실을 많은 지역 영화인들이 크게 반대하고 있다. 제주도는 영상위 해산 문제에 대해 더 솔직하게 말했어야 했다. 영상위가 콘텐츠진흥원으로 간다는 건 몇 년 전부터 나온 이야기"라며 "이사진 간담회 몇 번이 아니라 제주 영화인들 모두에게 이해를 구하고, 털어놓을 건 털어놓고 미비한 점에 대해 사과 할 건 사과해야 했다. 제주도가 하니까 따라가자고 결정 내려서는 안된다”고 강조했다.

‘이대로 해산에 찬성하면 영화인들에게 오랫동안 욕먹을게 분명하다’, ‘불명예를 얻기 싫다’며 적지 않은 영상위 이사들은 10일 임시이사회에서 공개적으로 해산 계획안 심의에 반대한다는 의사를 밝혔다. 이는 현재 콘텐츠진흥원 추진 과정이 영화·영상 업계 관계자들의 환영을 받지 못한다는 의미다. 

▲ 영상위 해산에 대한 우려 속에 회의가 길어지면서 이사들이 속속 자리를 떠난 모습. ⓒ제주의소리

제주독립영화협회, 제주씨네아일랜드, 제주영화제, 제주픽쳐스, 서귀포예술섬대학은 최근 공동 성명서를 통해 “터무니없는 졸속 통합 논리로 탄생하게 되는 제주문화콘텐츠진흥원 설립 추진 자체를 반대한다”고 밝힌 바 있다. 제주도 입장에서는 나름 노력했다고는 하지만, 공론화 작업이 부족했다고 밖에 볼 수 없는 대목이다.

이번 임시이사회는 ‘의견 수렴 과정을 거쳐 다음 정식 이사회에서 영상위 해산 건을 처리한다’는 결론을 내리고 마무리 지었다. 제주도 관계자는 영상위 해산을 걱정하는 모든 도내 영화인들이 참여하는 간담회를 정식 이사회 전 개최하겠다는 입장이다. 제주도는 영상위 해산 건을 올해 안에 마무리 짓겠다는 계획을 세워 놓은 상태다.

제주도와 영상위 해산을 반대하는 영화인들 사이에 현실적인 간격은 존재한다. 영상위 해산은 필수 조건이라는 제주도, 고유한 영상위 기능을 살려야 한다는 영화인들. 콘텐츠진흥원의 순 기능은 양 쪽 모두가 인정하는 만큼, 제주도는 영화인들이 요구하는 영상위 독립성을 최대한 반영하는 묘수를 '정성있게' 찾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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