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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장실습 중 안전사고로 숨진 故 이민호 군 빈소 ⓒ제주의소리

故 이민호 군 유가족, 유력 정치인들 경쟁하듯 뒤늦은 방문에 심신 피로 "제도 개선 노력이 중요" 

현장실습 도중 사고로 숨을 거둔 故 이민호 군을 애도하는 조문 행렬이 이어지면서 유명 정치인들의 발걸음도 잦아지고 있다. 다만, 슬픔에 잠긴 유가족의 상황을 세심하게 배려하지 않는 경우도 있어 안타까움을 낳고 있다.

지난 24일 더불어민주당 우원식 원내대표와 이학영 을지로위원장, 오영훈·강병원 의원 등이 이 군의 빈소를 찾았고, 같은날 바른정당 유승민 대표도 직접 유가족을 위로했다. 국민의당에서는 안철수 대표가 SNS 상에 이 군에 대한 애도를 표함과 동시에 김삼화·김수민 의원이 제주 빈소를 찾았다. 

25일에는 정의당 이정미 대표와 자유한국당 나경원·신보라 의원이 잇따라 이 군의 빈소를 방문했다. 여야를 막론하고 5개 정당 유력인사들이 머나먼 제주까지 걸음하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았다. 그만큼 이 군의 죽음은 현장실습 제도 문제와 맞물려 사회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켰다. 

그러나, 그간 평범한 삶을 살아온 유가족에게 이러한 상황은 적지않은 심적 부담을 안겨준 것으로 전해졌다. 

대개 유명 정치인들이 빈소를 방문할 경우 단순히 조문으로만 끝나지 않는다. 참모진과 수행원들이 따르고 수 많은 카메라, 취재기자들이 엉켜 혼잡을 빚기도 한다. 곳곳에서 터지는 플래시 세례는 유가족을 경황없게 만들곤 한다.

이 군의 빈소를 찾은 정치인들은 유족과의 면담에서 너나할 것 없이 비슷비슷한 질문을 던졌다. 아픈 기억을 반복적으로 끄집어내야하는 유족들은 심신이 피로할 수 밖에 없었다.  

결국, 이 군의 유족들은 사진촬영을 비롯한 공식적인 면담 등을 정중히 사양하기에 이르렀다. 빈소에 상주하고 있는 '현장실습 고등학생 사망에 따른 제주지역 공동대책위원회'가 대신 나서 유가족의 입장을 대변하기 시작한 것은 막다른 선택이었다.

유가족을 돌보고 있는 한 관계자는 25일 "정치인들이라면 언론을 의식하기 보다 문제 해결 의지가 중요하지 않나. 또 지역 국회의원이면 이런 사고가 났을 때 제일 먼저 달려와서 상황을 파악해야 하지 않나"라며 "중앙정치권에서 높은 사람들이 온다니까 그제서야 허겁지겁 찾아와 근조기 세워놓고, 꽃(근조화환)을 갖다놓더라"며 혀를 찼다.

이 관계자는 "(이 군이 숨진지)벌써 6일이 지났다. 장례를 치러도 두 번은 치렀을 시간인데 이제 와서 근조기를 보내고 꽃을 보내는게 말이 되나"라고 반문했다. 이 군이 사고를 당한 것은 지난 9일, 숨을 거둔 것은 열흘 후인 19일이다.  

그는 특히 "평소 국회의원들은 지역에서 상(喪)이 났을 때 가까운 편이 아닌데도 어떻게 알았는지 누구보다 앞서 근조기를 보내거나 빈소를 찾는데 이번에는 상황이 너무 다르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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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故 이민호 군의 빈소에 놓인 근조기들.  ⓒ제주의소리
실제로 이 군이 숨진 지 나흘이 지나도록 정치인들의 발길은 뜸했다. 근조기나 근조화환도 거의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중앙 언론에서 이 군의 사망사고를 비중있게 다루기 시작하자 유력 정치인들이 얼굴을 비추기 시작했다는 것이 유족들의 증언이다.

이 군의 영정사진 좌우로는 제주 출신인 더불어민주당 강창일·오영훈·위성곤 국회의원, 국민의당 안철수 대표와 김수민 의원이 보낸 근조기가 세워져 있다. 중앙정치권 유력인사들의 방문이 이어지기 시작한 24일부터 자리를 채운 것들이었다.

빈소 입구에 설치된 더불어민주당 우원식 원내대표, 자유한국당 정우택 원내대표, 정의당 이정미 대표와 노회찬 원내대표 명의의 근조화환도 최근 이틀새 놓였다. 심지어 모 정당에서 보낸 근조화환은 유족들에게 아무런 기별도 없이 누군가가 두고 가버렸다.  

이날 모 중진의원의 빈소 방문도 사전 유족 측에 귀띔조차 없어 유족들을 당황케 했다.

현장에서 만난 한 유족은 "뒤늦게나마 관심을 가져주는 것은 분명 감사한 일이지만, 한편으로는 '보여주기식'이 아닌가 하는 의심도 든다. 조문을 하려면 진작에 오든가 뒤늦게 정치인들끼리 경쟁하는 것 같다"고 씁쓸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그는 "무엇보다 민호의 죽음을 계기로 이러한 어처구니 없는 사고가 재발하지 않도록 정치인들이 나서야 한다"며 "이번 방문이 쇼가 아니었는지 지켜보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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