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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너지에도 민주주의와 정의가 필요하다

2017년 11월 27일(월) 09:00
제주의소리 news@jejusori.net

[BOOK世通, 제주 읽기] (75) 『시민 참여 에너지 시나리오』 /서영표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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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민 참여 에너지 시나리오』한재각·이보아·이정필·이진우 지음. 이매진. 2017년.
전기가 없는 집과 일터, 물건을 사는 상점, 학교와 거리는 상상할 수가 없다. 우리 몸의 일부처럼 되어 버린 휴대전화, 집에 거의 대부분 시간 켜져 있는 텔레비전, 점점 더 대형화되는 냉장고와 갈수록 기능이 많아지는 세탁기까지 전기가 없이는 정상적인 삶을 살 수가 없게 되었다. 우리가 얼마나 전기에 의존하고 있는지는 정전이 되었을 때 어떤 일들이 벌어지는지 떠올려 보면 된다. 정전은 일상의 거의 모든 것을 멈추게 한다. 화장실조차 사용할 수 없게 만들지 않는가?

현대인의 삶이 전기에너지에 의존하고 있다는 것이 그 자체로 탓할 일은 아니다. 문제는 어떤 에너지를, 어떻게 생산하고 소비하는가에 있다. 삶의 질을 높이고 일상의 편리성을 높이는 에너지는, 에너지원과 생산과 소비의 방식이 어떠하든, 원하지 않는 부수효과를 가져온다. 아직 전기의 시대로 접어들기 전 산업화가 영국의 숲을 급격하게 파괴한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에너지원으로서의 석탄은 지금 인류를 괴롭히고 있는 이산화탄소와 미세먼지를 다량 배출한다. 석탄보다 덜하지만 석유라고 나을 것은 없다. 더구나 석유는 전기에너지 말고도 항공, 육상, 해상 운송수단에 사용되면서 심각한 수준의 오염물질을 배출한다.  

깨끗하고 안전한 에너지라고 선전되었던 원자력은 어떨까? 정부와 한국수력원자력공사는 오랫동안 원자력이 석탄과 석유, 천연가스에 비해 경제적이고 안전하다고 광고해 왔다. 다른 에너지원에 비해 국제 시장의 변동에 영향을 거의 받지 않기에 에너지 안보도 걱정할 것이 없다고 했다. 심지어 이산화탄소 등 온실가스를 배출하지 않기 때문에 깨끗하다고까지 말했다. 하지만 2011년 동일본 대지진의 여파로 발생한 후쿠시마 원전사고는 원전은 안전하다는 생각을 허물어 버렸다. 방사능의 가공할 위협을 생생하게 목격한 사람들은 원자력이 깨끗하다는 생각도 의심하기 시작했다. 일본산 해산물을 기피하는 현상까지 생겨났다. 후쿠시마 원전사고가 원자력 발전에 대한 관심을 높이면서 원전에서 생겨날 수밖에 없는 중·저준위폐기물(용기, 의복과 장갑 등)과 고준위폐기물(폐연료봉)의 처리와 보관문제뿐만 아니라 사용기간이 지난 원자력 발전소의 폐로까지 사회적 쟁점이 되었다. 지금까지 방사능물질의 보관과 처리, 폐로의 비용을 생각해 보지 않았기 때문에 원자력발전이 경제적이라는 신화도 도전받기 시작했다. 

최근 들어 흔히 재생가능에너지원으로 불리는 풍력, 태양광, 지력, 천연바이오 발전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이유는 화석연료(석탄, 석유, 천연가스)와 원자력 발전이 동반할 수밖에 없는 생태계 파괴와 위험에 대한 경각심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재생가능에너지라고 해서 환경적 영향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제주도에서 각광받고 있는 풍력발전만 해도 경관과 소음문제를 발생시킬 수 있다. 태양광은 화석연료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태양광패널을 만드는 과정에서 오염물질을 배출할 수 있으며 패널을 설치하기 위한 부지를 필요로 한다. 하지만 이 정도의 위험은 에너지원의 고갈과 기후변화를 촉진하고 있는 온실가스 배출, 그리고 가공할 방사능의 위험에 비하면 인류가 기술적으로 통제 가능한 수준이라고 할 수 있다. 

논란이 되는 것은 경제성이다. 자본주의 사회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 경제성은 곧 ‘실현가능성’과 동의어로 받아들여진다. 아무리 기술적으로 가능하더라도 화폐적 가치로 계산된 ‘경제적’ 가능성이 없다면 실현 불가능한 것이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복잡한 이해관계들이 얽혀 있다. 신고리 5·6호기 공론화위원회에서 쟁점이 되었던 것 중 하나는 이미 투자된 매몰비용 1조 8천억 원이었다. 문재인 대통령의 공약대로 두 기의 원자로의 건설을 중단한다면 그 돈은 낭비되는 것이라는 것이 건설 재개 측 주장의 핵심 근거였다. 이와 마찬가지로 현행의 화석연료와 원자력 발전체계는 천문학적 액수로 표현되는 축적된 자본을 의미한다. 자본의 집적은 곧 기술력의 독점이이다. 화석연료 산업은 채굴, 정제, 보관, 운반과 이와 관련된 화학 산업까지 포함한 거대한 연쇄 고리를 가진다. 석유산업계는 자동차 산업과도 깊이 연루되어 있으니 자동차제조와 관련된 수많은 부품업체까지 고려한다면 그 규모는 상상을 초월한다. 

이렇게 이미 축적된 거대한 자본의 힘은 막강하다. 만약 관련된 자본가들과 과학기술계가 지금의 지구상태계의 위기상황을 심각하게 받아들여 화석연료체계와 원자력발전을 포기하고 재생에너지 중심의 에너지 체계로 전환하는 ‘정치적 결단’을 받아들인다 해도 전환을 위한 치밀한 계획과 준비가 필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2050년, 더 나아가 2100년을 내다보면서 장기적인 에너지 전환을 준비해야 하는 것이다. 지금 돌아가고 있는 석탄발전소를 점차로 줄여가고, 사용연한이 지난 원자력발전소는 가동중지하고 폐쇄하는 절차에 들어가야 하며, 재생에너지에 대한 전폭적인 지원을 하는 장기적인 에너지 전환 계획이 필요한 것이다. 이러한 전환의 중간단계로 가스발전의 활용에 대해서도 고민해야 한다. 우리가 흔히 에너지믹스라고 부르는 것을 검토해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일이 그렇게 쉽게 풀리지는 않을 것이다. 거대한 규모로 축적된 자본은 강한 이해관계의 동맹체를 만들어 내기 때문이다. ‘석유마피아’와 ‘원자력마피아’라는 표현이 사용되는 데는 다 이유가 있는 것이다. 이 마피아 집단들은 양면 전술을 구사한다. 한편으로 과학적으로 정설이 되어 가는 기후변화를 인정하면서도 딴죽을 건다. 기후변화가 반드시 인간에 의해서 초래된 것은 아니라는 식으로 말이다. 지구의 자연적인 기후패턴에 따른 것이라는 근거를 대기도 한다. 다른 한편으로 기후변화를 기술적으로 극복가능하다고 주장한다. 탄소포집기술 등 신기술로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관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주장들은 과학적 근거가 부족하다. 기후변화의 심각성은 지금 당장 행동에 나서야하는 정도에 이르렀다. 그런데 불확실한 미래의 기술을 내세워 기후변화와 생태계 위기를 초래하는 현행의 에너지 체계를 고수해야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무책임한 태도가 아닐까?  화석연료와 원자력에 기반 한 에너지체계를 고수하겠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주장은 무책임하거나 오만하다. 만약 지금 당장의 이익에 집착하면서 지구상태계의 미래, 다음 세대의 생존조건을 고려하지 않는 것이라면 무책임한 것이다. 기후변화를 부정하거나 기술적으로 극복 가능한, 인류가 직면했던 수많은 도전 중에 하나라고 생각한다면 오만한 것이다. 

기존의 이익집단의 동맹 안에는 산업계와 과학계만 포함되는 것은 아니다. 정부와 전문 관료들도 이해관계를 나누어 가진다. 정부가 발표한 전력수급기본계획과 국가에너지기본계획은 모두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우리의 에너지 소비량은 꾸준히 늘어 날 것이며, 이렇게 늘어나는 에너지 소비 수준을 감당하기 위해서는 기존의 관행을 크게 벗어날 수 없다고 주장한다. 그런 판단의 근거를 제시하는데 지식과 정보를 제공하는 것은 산업계화 학계일 수밖에 없다. 산업계-학계-관료집단의 이해관계가 거의 완벽하게 일치하는 것이다. 

과학 말고 상식적으로 생각해 보자. 직업이 불안정한 한 사람이 집을 구매하는 경우를 생각해 보자. 그런데 이 사람은 자신이 계속해서 일을 할 수 있다고 가정하고, 그것도 매년 연봉이 상승할 것이라고 전제한 후 지금 수준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주택을 사버렸다고 가정해 보자. 상식적으로 이런 행동은 이해되기 어렵다. 파산할 가능성이 너무 높기 때문이다. 물론 모험을 할 수는 있다. 주택 가격이 갑자기 오르고 획기적인 상품아이템을 개발해서 정규직으로 전환되고 높은 연봉을 받게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선택은 투기에 가깝다. 

우리는 이러한 비상식적인 선택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것도 전문가들의 분석에 근거한 과학의 이름으로. 지금 당장 50년 100년을 내다보고 재생에너지로의 전환을 기획하고 에너지 효율을 높이는 동시에 저에너지소비 사회로의 전환을 준비해야 하는데, 지금 당장의 편리함과 미래의 기술발전 가능성에 희망을 걸면서 재난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것은 아닌가?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가 『시민 참여 에너지시나리오』에서 평범한 시민 K의 관점에서 에너지 대안 시나리오를 논의하는 것은 전문가주의와 과학주의적 태도에 의해 굳건히 보호받고 있는 ‘관행대로’의 태도가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 보여주기 위함이다.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이라는 가정아래 ‘지금까지’ 남겨졌던 낭비적 또는 과소비적 생산력주의의 흔적을 과학적 판단의 근거로 삼아 미래를 예측하는 포캐스팅(forecasting)이 아니라 우리가 처한 위기 상황을 고려하고,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우리의 미래는 어떤 방향으로 나가야 하는지에 대한 규범적 판단을 담은 미래의 방향을 구상하는 백캐스팅(backcasting)을 제안하고 있는 것이다. 화석연료체계 안에서 이익을 취하는 산업계-학계-관료집단이 ‘과학’의 이름을 빌어 에너지소비의 계속된 증가를 예측하고, 거기에 따라 대형발전소를 증설하며, 이에 따라 생겨나는 여분의 전력을 처리하기 위해 전력가격을 낮춰 소비를 촉진하는 등의 ‘자기 충족적 예언’을 오류가 계속되도록 더 이상 방치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이제 우리는 낡아버린 협소한 과학 패러다임을 비판해야 한다. 그런 과학은 복잡하게 얽혀 있는 세상을 절단한다. 절단은 복잡한 연관관계를 볼 수 없게 한다. 전문가들은 이렇게 깊이를 상실한 매끈한 평면만을 자신의 연구대상으로 삼는다. 그것만을 과학이라고 말하면서. 미래 에너지에 대한 포캐스팅이 바로 그런 전문가들의 과학인 것이다.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가 백캐스팅을 제안하고 대안에너지 시나리오를 제안하는 것은 산업계-학계-관료집단이 권력, 정보, 지식, 자원을 독점한 상태에서 우리 모두의 미래를 결정한 에너지계획 수립마저도 독점하고 있는 상황에 도전하기 위해서이다. 어쩌면 우리가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민주주의’의 가치를 실현하자는 상식적인 문제제기일 수도 있다. 

『시민 참여 에너지 시나리오』는 이미 세상에 나온 세 개의 대안 에너지 시나리오를 소개하고 있다.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의 시나리오뿐만 아니라 에너지대안포럼과 그린피스가 발표한 ‘에너지 혁명’을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기억해야만 하는 것은 대안 에너지 시나리오는 정부의 에너지계획처럼 위로부터 강요되는, 한 번 결정되면 변경 불가능한 그런 계획이 아니라는 것이다. 평범한 시민들이 에너지 문제에 대해 고민하고 숙고할 수 있는 자료이자 계기로서의 역할을 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충분한 시간과 정보와 지식이 주어져 평범한 시민들의 생각이 모아질 수만 있다면, 세상이 가진 복잡함을 단순화 시키지 않고도, 깊이와 부피를 매끈한 평면으로 만들지 않고도 ‘과학적’인 지식을 만들어 낼 수 있다. 이렇게 보다 참여적인 민주주의의 과정은 신고리 5·6호기 공론화위원회의 시민 참여단에서 실현하고자 하는 숙의민주주의보다 더 깊은, 그리고 더 다양한 민주적 참여의 길을 여는 것이다. 

화석연료체계로부터 재생가능에너지체계로의 전환은 정치적 결단 없이는 이루어질 수 없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거대한 자본과 권력의 결탁은 기존관행에 대한 강한 집착을 보일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정치적 결단은 자본과 권력의 동맹 바깥으로부터의 압박에 달려 있다. 소비주의에 편승하고, 낡은 과학주의적 태도를 추종하고, 정치를 관료집단과 엘리트에게 맡겨 두는 수동적 (에너지) 소비자에서 미래를 고려하고, 자연생태계를 고려하며, 소비주의적 자본주의를 벗어난 지속가능한 삶의 실현가능성을 깨닫는 능동적 (에너지) 시민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여러 사람의 목소리를 모아내 세상의 깊이와 부피를 알게 된 능동적 에너지 시민은 에너지체계의 전환이 우리의 삶의 방식의 변화, 사회 전체의 변화가 없이는 생존이라는 가장 원초적인 필요조차 충족되기 어렵다는 것을 깨닫게 되지 않을까?    

▷ 서영표 교수

사회학박사
사회학이론, 도시사회학, 환경사회학 전공
전 성공회대 민주주의연구소 연구교수
현 제주대학교 인문대학 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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