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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남춘 칼럼] 제주도민과 국민의 세금 제대로 쓰라 / 허남춘 제주대학교 교수  


12월이 다가오는 요즘 도로와 인도가 분주하다. 20년 전 12월의 풍경이 여전히 반복되고 있다. 여기저기 보행도로가 파헤쳐지고 보도블록을 교체하고 있다. 지나가는 행인이 하는 말, “멀쩡한 길을 뒤집어엎는 이유가 뭐야. 제주도에 돈이 남아도나?” 아닌 게 아니라 제주시내 도처에 보도블록을 교체하고 있다. 1년 예산 중 남는 것을 12월이 되면 보도블록 교체에 퍼붓다가 요즘엔 한 달 빨리 11월에 이런 짓을 하고 있다고, 도민들은 따가운 시선을 보낸다.

젊고 새로운 도지사를 만났던 장밋빛 감회가 4년이 지나며 회색빛 어둠으로 저물어 간다. 예전 중앙정치권의 ‘3김 시대’를 빗대어 ‘제주판 3김’(우근민, 김태환, 신구범 전 지사)가 있다고 자조하던 때가  4년 전이다. 급격한 개발과 파괴의 바람이 몰아치던 그 우울한 시대를 끝내주길 기대했고 우리 도민들의 희망은 득표율 60%라는 엄청난 지지도로 환호했다. 낡고 병든 행정이 치유되길 바랐다. 그런데 원희룡 지사 때에 들어서도 여전히 개발과 파괴로 몸살을 앓는 체감은 변함이 없고, 보도블록을 교체하는 이 몹쓸 관행은 여전하다. 

도민이 원하는 곳에, 공사가 필요한 곳에 교체를 진행하고 있다고 변명할 것이다. 언제 도정이 도민의 정서와 부합된 적이 있던가. 며칠 전 도지사가 도로를 파헤치고 중앙차로를 마련함과 동시에 교통체제 개편을 하는 데 600억원을 쓰면서도 도의회의 승인을 받지 않은 사건에 대해 도의원들의 질타가 있었다. 도지사는 행정안전부에 질의하고 도의회의 승인이 필요치 않다는 답을 얻었다고 했고, 도의원들은 변호사 여럿에게 질의하고 도의회의 승인이 필요한 사항이라고 맞섰다. 도의원들은 ‘감사원 감사’를 받아야 하는 사항이라 했고, 도지사는 도민들에게 물어 평가를 받자고 당당하게 말했다. 도지사가 도의원들에게 윽박지르는 모습을 보면 마치 도민들을 혼내는 모습과 같아 무섭다.

도지사의 말처럼 도민에게 물어 보자. 600억원을 쓰는 데 여론을 듣고 의견을 물은 후 써야 하는 것이 아닐까. 항간에는 부대비용까지 840억이 들었다고도 한다. 600억원이면 어떤 돈인지 환산해 보았을까. 요즘 젊은 청년 실업자 문제로 나라가 걱정하고 대통령까지 일자리 창출에 나서는 시대다. 제주대학교에서는 한 해 2,000명 정도의 젊은 청년이 사회로 나가는데, 한 사람 연봉을 3,000만원으로 잡으면 2,000명이 취업하고, 2,000만원으로 잡으면 3,000명이 취업하는 예산이 바로 600억원이다. MB 시절에는 김태환 전 지사가 당시 대통령의 토목 관행을 닮아, 별 소용없던 저류지를 만든다고 한 해 600억원을 쓰더니 그 관행은 고쳐지질 않고 있다. 제발 큰소리만 치지 말고 ‘도민에게 물어 보자’. 600억원이 하찮은 돈인가. 보도블록 교체비용이 하찮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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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허남춘 제주대 국문학과 교수
내년 지방선거가 다가오고 있다. 교통체제 개편 논란, 최근 카지노 개발이 다시 꿈틀대는 일, 제주의 정체성을 훼손할 대단위 관광개발 사업에 대한 어정쩡한 입장, 부실용역이 드러나고 있는 제2공항에 대한 강행 입장 등 도민의 지탄을 받을 사항이 많을 것이다. 지금이라도 멀쩡한 보도블록이 뜯겨나가고 교체되는 일이 남의 일이 아님을 알아야 할 것이다. / 허남춘 제주대 국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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