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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주도립무용단 창작공연 <자청비>가 7일을 끝으로 올해 진행한 네 번의 공연을 마쳤다. ⓒ제주의소리
[리뷰] 제주도립무용단 창작공연 <자청비>

손인영 제주도립무용단 상임안무자는 지난해 7월 임명 당시, 지역 무용·예술계에서 적지 않은 주목을 받았다. 서울·미국을 오가며 무용을 공부했고, 동양철학으로 박사과정을 마친 이력과 함께, 인천시립무용단 등 이전에 몸담은 곳에서의 일화까지 더해지면서 그의 행보를 주목했다. 제주에 와서 선보인 작품 <만덕>, <당신이 나의 신데렐라에요>가 폭넓은 호응을 얻지 못했다는 평가가 나오자 도립무용단을 어떻게 이끌어갈지 더더욱 시선이 모아졌다. 그런 점에서 지난 10월 21일부터 12월 7일까지 네 차례에 걸쳐 열린 도립무용단 창작공연 <자청비>는 손 안무자에게 여러모로 뜻 깊은 작품이 됐다.

제주신화 속 '세경 본풀이'의 주인공 격인 자청비 여신을 소재로 한 <자청비>는 결론부터 말하면 ‘볼 만 한 작품’이었다. 특히 의상을 비롯한 소품, 조명, 영상 등 무대 연출적인 면은 올해 제주도나 행정시가 만든 극 공연 가운데 가장 뛰어났다고 본다.

의상은 제주신화라는 미지의 영역을 실체화하기 위해 중국 남방부 혹은 동남아시아 이미지를 상당수 도입했다. 멀리서 보는 관객의 눈으로도 의상 수준은 낮거나 엉성해보이지 않았다. 무대를 비추는 영상은 보다 생동감 있는 기술을 도입했다. 그 결과, 분위기를 환기시키는 단순 역할 이상으로 스토리 진행에까지 개입해 관객들 눈은 휘둥그레졌다.

조명은 시간의 흐름을 보여주고 인물을 주목시키는 기본적인 수준을 넘어, 과감한 연출을 시도했다. 주인공 자청비와 천상옥황 반란군의 전투장면에서 폭을 좁혀 무대 좌우(左右)로 비춘 조명 연출은 박찬욱 감독의 영화 <올드보이>의 명장면, 복도 격투신을 떠올리게 할 만큼 깊은 인상을 남겼다.

배우들의 연기(무용) 역시 각자 제 역할을 멋지게 소화했다. 이번 작품에 주인공 자청비로 새롭게 발탁된 현혜연 씨는 다양한 동작을 처음부터 끝까지 에너지 있게 소화해냈다. 무엇보다 단원들의 나이, 스타일에 맞는 배역과 연기를 적재적소에 배치했다는 인상을 공연 전반에서 느낄 수 있었다. 직전 작품인 <당신이 나의 신데렐라에요>만 해도 상당수 단원들의 연기는 흡사 몸에 맞지 않은 옷을 입고 있다는 느낌이었지만, <자청비>에서 단원들은 배역에 맞게 전통적, 현대적인 느낌을 나름 균형 있게 소화했다. 

<자청비> 공연 전체로 보면 마지막 에필로그를 제외하고 나머지는 사실 제주 느낌이 전혀 없는 동양적 판타지에 가깝다. 그래서 ‘제주다움이 없다’는 흐름의 단절을 우려할 수 있겠지만, 대사 한 마디 없이 빠른 속도의 극 진행과 완성도 높은 안무는 왜 자청비가 ‘농사의 신’이 됐는지 어색하지 않게 보여줬다. 그래서 에필로그 장면에서 갈옷을 입은 배우와 제주민요가 등장해도 뜬금없기보다는 <자청비>가 제주신화를 바탕으로 하는 콘텐츠라는 점을 관객들에게 확실히 심어줬다.  

무대 영상에서 독수리가 날아가거나 곰이 등장하는 건 다소 생뚱맞았고, 극 후반 검무의 합이 보다 촘촘했다면 좋을 것이란 아쉬움이 있지만 크게 문제되지 않은 수준이었다.

<자청비>는 도립무용단 구성원들의 노력뿐만 아니라 상위 기관인 제주도 문화예술진흥원 역시 고심을 더한 작품이다. 올해 취임한 현행복 진흥원장이 감수 작업에 참여해 서우젯소리 등을 조언하는데서 그 심정을 엿볼 수 있다. 결과적으로 그 노력은 성과를 거뒀다. 첫 공연은 빈자리도 제법 보였지만 입소문이 탔는지 마지막 날은 1층 만석, 2층도 거의 꽉 채웠다. 피날레가 끝나고 객석은 너도나도 할 것 없이 박수 갈채를 쏟아냈다. 손 안무자와 현 원장은 관객들 사이에서 만족스러운 미소를 띄고 있었다. 상설 공연이란 취지가 무색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자청비>는 문화예술진흥원, 도립무용단, 손 안무자 등에게 오래 기억될 작품이 되리라 본다.

일각에서는 춤 공연 하나에 3억원이나 되는 막대한 비용을 투입했으니 평가 절하하는 의견이 있다. 다만, 돈을 들여도 만족스러운 결과물을 만들어내지 못한다면 문제가 되겠지만, <자청비>는 그 경우와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앞서 선보인 제주도의 창작 뮤지컬 <호오이 스토리> 사례를 봐도 그렇다. 오늘날, 신화 그 자체만으로는 의미가 없고, 사람들에게 기억되기 위한 2차 가공이 중요하다는 점에서 <자청비>의 시도는 일부분 높이 평가할 만하다. 

제주도 문화예술진흥원과 도립무용단은 내년에도 <자청비>를 무대에 올린다는 계획이다. 제주도가 자신 있게 내보일 수 있는 예술 콘텐츠가 하나 둘 쌓이는 것은 도민의 한 사람으로서 뿌듯한 일이다. 서귀포시의 <이중섭>, 도립무용단의 <자청비>, 제주도의 <호오이 스토리>, 내년으로 예정된 제주시의 (가칭)<김만덕>까지. 행정의 창작 공연 열기가 계속 꺼지지 않고 이어가길 바란다. 덧붙이자면 민간 영역의 창작 공연 시도 역시 활발해지도록 예술당국이 관심을 가진다면 바랄 것이 없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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