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럼비 도꼬마리는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 도꼬마리 없는 구럼비는 구럼비가 아니다 / 도꼬마리 없는 일강정은 일강정이 아니다’
윤봉택 시인의 <끝나지 않은 이야기 16 - 구럼비 도꼬마리> 구절 중 일부다.
도꼬마리는 강정천에서 끌어온 물을 구럼비에 나눠주는 일종의 수로다. ‘도꼬’는 입구를 의미한다. ‘마리’는 머리처럼 가장 위쪽을 뜻하는 제주어다.
‘강정에 애긴 곤밥 주민 울곡 조팝 주민 안 운다’는 속담이 있을 정도로 강정마을은 예전부터 제주에서는 드물게 쌀이 풍부한 지역이었다.
거친 땅을 일구던 다른 곳과 달리 강정은 1년 내내 풍부한 수량과 비옥한 토질로 유명했다. 소득도 높아 제주에서 제일가는 강정이라는 의미의 ‘일강정’이라는 말까지 생겨났다.
봄이 되면 주민들이 모두 나와 물매기 작업을 했다. 물매기는 논농사를 시작하기 전에 물이 잘 흐를수 있도록 논골을 정리하는 작업이다.
제주해군기지가 들어선 구럼비 해안은 도꼬마리를 통한 마을의 농경유산을 간직하던 곳이다. 땅 위를 콘크리트가 뒤덮고 해안 암반이 폭파되면서 현재는 그 모습을 완전히 잃었다.
강정포구 서쪽 해안에 일부 논농사를 짓던 토지가 남아 있지만 해군기지로 단절된 해안은 옛 모습을 잃은지 오래다.
마을에서 만난 어르신들은 옛 강정의 모습을 생생히 기억하고 있었다. 논농사 얘기가 나오자 쌀과 보리 자랑이 이어졌다.
“해군기지가 들어선 곳은 예전에 곡창지대였어. 쌀 농사가 어찌나 잘 됐는지 밥을 하면 찰떡처럼 기름이 반질반질한 것이 맛도 일품이었지. 보리도 차지기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야”
“어느 군인이 TV에 나와서 구럼비가 쓸모없는 땅이라고 얘기했다던데 천벌 받을 소리야. 이제는 감귤농사를 짓지만 예전에 논농사로 자식들 먹여 살린 삶의 터전이었어”
자리돔과 갈치잡이를 하던 구럼비 앞바다에 초대형 방파제가 설치됐다. 서귀포시민들의 젖줄로, 1급수를 자랑하던 강정천은 은어의 개체수가 줄고 하류도 제 모습을 잃었다.
마을에서 포제를 올리는 제단이 위치한 묏부리해안에는 쇠파이프로 된 망루가 수년째 자리를 지키고 있다. 해군기지 건설로 인한 해양환경 오염을 감시하기 위한 조치였다.
해군기지 정문 앞 삼거리에는 ‘평화! 총칼로 지킬 수 없다’는 팻말과 함께 해군기지를 규탄하는 각종 현수막이 걸려 있다.
이 곳은 과거 쌀농사를 짓던 곳이다. 이후 파인애플 생산을 위한 비닐하우스가 세워졌다. 그리고 바나나를 거쳐 감귤과 화훼농사로 이어졌지만 이마저 강제수용 돼 본 모습을 잃었다.
“내 땅도 잃었어. 감귤농사를 지으며 매해 7000만원 가량의 수익을 얻었는데 국방부가 강제로 땅을 수용했지. 그 돈으로 어느 땅을 사겠나. 물려줄 땅을 잃은거지. 후손들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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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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