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파사현정, 적폐청산은 ‘현재 진행형’...2018년, 가장 오랜 적폐 끊는 원년 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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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술년(戊戌年)이 밝았다. 2017년, 정유년(丁酉年)은 말그대로 격동의 해였다.

가깝게는 조선 왕조 때 수렴청정(垂簾聽政)을 떠올리게 하는-박근혜 전 대통령이 어린 임금도 아니고, 최순실씨가 왕대비나 대왕대비도 아니지만-초유의 국정 농단을 촛불이 준엄하게 단죄했다. 촛불 민심은 정권 교체에 안주하지 않았다. 우리 사회에 켜켜이 쌓인 온갖 적폐를 도려낼 것을 ‘명령’했다.     

교수들이 잘 지적했다. ‘올해(2017년)의 사자성어’로 '파사현정(破邪顯正)'을 꼽았다. 사악하고 그릇된 것을 깨고 올바른 것을 드러낸다는 뜻이다. 적폐청산이 제대로 이뤄져 파사(破邪)에만 머물지 말고 현정(顯正)으로 나아갔으면 한다는 의미가 담겼다고 한다. 묘사의 절묘함에 무릎을 치게 된다. 지금은 그 명령을 이행해야 할 때다. 적폐청산은 현재 진행형이라는 얘기다.  

새해를 맞아 다시금 적폐를 생각해본다. 제주의 적폐. 적폐(積弊)는 오랫동안 쌓이고 쌓인 관행, 부패, 비리 등의 폐단을 말한다.

개발이 능사인 시절이 있었다. 그땐 정말 어려웠다. 인프라가 빈약하기 그지 없었다. 누구 하나 개발에 토를 달 수 있는 분위기도 아니었다. 선량(選良) 후보들이 하나같이 ‘도로 개설’을 대표 공약으로 내걸던 때였다. 그 위력은 대단했다. 좁디좁은 마을 안길에, 농로에, 중산간에 콘크리트가 깔리고, 없던 길도 생겨나니 눈이 휘둥그레졌을 것이다. 

‘도로 개설’ 구호는 수많은 변종을 잉태하며 오늘날까지 면면히 이어졌으니 끈질긴 생명력을 발휘한 셈이다. 이른바 개발 만능주의다. 

하지만 실상을 보자. 사방 도처에 길이 뚫리니 접근성은 좋아졌을지 몰라도, 자연이 주는 경고를 고스란히 감내해야 했다. 도로만 그런가? 사회기반시설도 모자라 온갖 유희시설까지 들여오지 못해 안달이니 개발 만능주의는 아마도 제주사회 가장 뿌리깊은 적폐 중 하나일 것이다. 개발 만능주의의 외피(外皮)는 난개발이다. 

# 개발 만능주의는 제주사회 뿌리깊은 적폐 
   
바야흐로 상황이 달라졌다. 작은 섬 제주도는 이제 각 분야에서 어디까지 감당할 수 있느냐는 ‘총량’을 고민하기에 이르렀다.  

‘기존공항의 포화’라는 현실과 맞닥뜨려 있어서 정책 집행자들은 부인할지 모르나 제2공항 또한 개발 만능, 개발 지상주의와 무관하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가. 사견이지만, 개발 만능의 반대는 보전이 아니다. 바로 철학이다. 제주 섬과 후대를 생각하는 철학. 자연의 경고를 가볍게 여기지 않는  철학. 자연과 공존하려는 철학. 그래서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철학…. 그러고 보니 원희룡 도정이 제주미래비전의 핵심가치 중 하나로 공존을 내세웠으니, 이름 하나는 기가 차게 지었다.         

원 도정이 출범 초기 ‘중산간 개발 가이드라인’을 설정한 것은 시의적절했다. 과거 도정마다 애써 눈을 감았던, 중산간 난개발 만큼은 막아내려는 의지가 충만해 보였다. 중산간 난개발 방지를 명분으로 행정절차가 상당부분 진행된 상가관광지를 정치력을 발휘해 뒷말없이 주저앉히고, 아예 사업부지를 사들이기로 했을 때는 뭔가 달라도 다르다는 찬사까지 받았다.   

그러나 도통 모르겠다. 헷갈린다. 잘하는 것 같다가도, 못하는 것 같기도 하고. 때에 따라 달라지니 말이다. 오라관광단지만 해도 그렇다. “이미 사업을 추진한지 오래”라는 말로 인허가 부서에 모종의 메시지를 주었다. “산록도로-평화로 위 한라산 방면 개발 가이드라인에 저촉되지 않는다”고도 했다. 가이드라인을 기계적으로 해석한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나중에는 원 지사도 생각이 바뀌었는지, 지금은 자본검증 문제로 숨고르기에 들어간 상황이다.   
  
신화역사공원 내 카지노도 마찬가지다. 원 지사는 한때 ‘카지노 메카 오명’ 운운하며 사실상 반대하는 것처럼 보이더니 지금은 알쏭달쏭하다. 12월22일 <제주의소리>, KCTV제주방송, 제주일보 공동 토론회에 나와선 “도의회 의견을 감안해 종합적으로 판단하겠다”는 원론적 답변만 내놓았다. 때론 직설화법도 마다않는 원 지사의 스타일이 아니다.   

새해엔 이처럼 헷갈리게 하는 행보를 멈추고, ‘철학’의 바탕 위에 가장 오래된 적폐 하나를 끊기 위한 원년으로 삼았으면 한다. 

# ‘절대적’인 공무원이 썩으면 제주사회 ‘절망적’

공무원이 ‘절대적’인 ‘공무원 사회 제주’에서 공무원의 비리는 진짜 ‘절망적’이다. 그것도 구조적인 비리라면 말해서 무엇하랴. 지난 한해 제주를 떠들썩하게 했던 하천 교량 비리, 소방공무원 비리는 얽히고 설킨 비리 사슬을 적나라하게 보여줬다. 고위직부터 하위직까지 줄줄이 경찰, 검찰에 불려나갔다. 특히 소방 비리에 연루된 공무원은 100명이 넘었다. 이들이 4년간 챙긴 금액이 자그마치 1억원에 달한다. 과거 도정 때 일이라지만, 생활체육회 비리는 또 어떤가. 

지난해 국민권익위원회가 측정한 공공기관 청렴도에서 제주도가 전국 17개 광역자치단체 중 4위(2016년 12위)로 수직상승한게 이상할 정도였다.

뭐가 부족한가. 혈세를 축내려고 공복(公僕)이 되었는가. 그들은 관행으로 여겼을지 모르겠으나, 그렇다면 더 큰 문제다. 

온정주의 탓이 컷으리라. 자그마한 비리에도 추상 같은 칼날을 들이댔다면 이 지경까지 오지도 않았을 것이다. 비리가 터질 때마다 고개를 숙이고 일벌백계(一罰百戒)를 부르짖었지만, 그 때 뿐이었다. 매번 고름 짜는 시늉만 하다가 환부를 도려내지 못했다. ‘관용은 없다’거나, ‘원 스크라이크 아웃’이니 ‘페널티 강화’ 등은 귀가 따갑도록 들었다.     

법원도 ‘공무원 감싸기’에 일조를 했는지 되돌아볼 일이다. 이번 소방 비리에 연루된 현직 소방관 8명 중 7명이 1심에서 벌금형을 받고 공무원 신분을 유지하게 됐다. 검찰은 이들에게 각각 징역 6월에서 4년까지 구형했지만, 단 한 명만 실형을 선고받았다. 

# 다가온 지방선거, ‘3김의 잔영들’은 소환하지 말아야

1995년 지방자치 부활 이후 이른바 ‘제주판 3김’ 시대를 거치면서 공무원 줄서기, 줄세우기는 하나의 병폐로 굳어졌다. 도지사 후보들은 선거 때만 되면 그들을 십분 활용했다. 제주사회에서 공무원이 차지하는 비중을 잘 알기 때문이었다. 그들이 스스로 줄을 서기도 했다. 공정한 경쟁 대신 ‘먼저 가려고’ 애를 썼다. 이해가 맞아 떨어졌기에 유혹을 뿌리치기가 여간 힘든게 아니었다. 

2014년 원 지사가 압도적인 승리를 거둔데는 이러한 적폐를 끊으라는 ‘도민의 명령’이 스며들어 있었다. 일찌감치 대세를 굳혔던 4년 전에는 그렇다쳐도 올해 지방선거는 적폐 청산의 시험대가 될 전망이다. 사실상 원 지사의 재선 도전이 확실시되는 상황에서 이번에는 녹록지 않은 대결이 펼쳐질 것이라는 예상 때문이다.    

특히 이번 선거에서는 무덤을 향해가는 3김의 잔영(殘影)들을 다시 소환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공무원 동원, 편가르기, 패거리 문화는 일찌감치 수명을 다했어야 했다. 그럼에도 민선 6기 도정 출범 이후 각종 인사 때마다 원 지사 주변에 그 그림자가 아른거린 것은 우려스런 대목이다. 전우치(田禹治)가 요괴를 잡아 호리병에 가두듯이 다시는 세상 밖으로 나오지 못하게 해야 마땅하다.    

한서(漢書)에 나오는 전거복철(前車覆轍). '앞 수레가 엎어진 바퀴 자국'이란 뜻으로, 앞사람의 실패를 거울삼아 주의하라는 교훈이다. 뒤에 후거지계(後車之戒 : 뒷 수레를 위한 교훈)가 생략됐다. 

민선 6기 도정도 얼마남지 않았지만, 여전히 ‘앞 수레의 바퀴 자국’은 잘 살펴야 할 경계 대상이다.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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