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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가 궁금해서 소설가에게 묻다

2018년 01월 08일(월) 08:46
노대원 교수 news@jejusori.net
[BOOK世通, 제주 읽기] (79) 석영중 『뇌를 훔친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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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석영중 『뇌를 훔친 소설가』예담. 2011년.

바야흐로 뇌과학의 시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뇌과학 연구는 더 이상 생물학이나 심리학 연구에 국한되지 않는다. 자연과학의 여러 분과 학문을 넘어서 거의 모든 학문의 영역에 걸쳐 지적 발견을 견인하고 있기 때문이다. 전통적인 학문의 명칭에 ‘신경’이라는 단어가 결합된 분야들을 심심치 않게 보게 된다.


어디 그뿐인가. 뇌와 관한 책들이 독서 대중의 눈을 사로잡고 있다. 물론 이제는 지적인 독자들에만 국한 되는 이야기는 아니다. 뇌과학을 연구하는 학자들이 TV 프로그램에 등장해 연예인만큼 인기를 얻고 있다는 소식도 들려온다. 

뇌과학은 인간 이해에 빛을 던져준다는 점에서 몇몇 소수 과학자들만의 관심사는 아니다. 인간의 마음이 또 하나의 우주라면, 그 소우주는 여전히 신비한 탐구 대상이다. 뇌과학은 그 우주를 탐사하는 중요한 프로그램이다. 그러니 뇌과학의 발전 양상이 우리는 반갑다. 또한 그 어려운 학문적 발견들을 대중적으로 설명해주는 신경과학자들에게 무척 고맙다. 

한편, 인문학과 문학을 연구하는 학자로서 뇌과학의 선전과 대중적 파급력은 자기 성찰의 계기가 된다. 우선, 독서 대중들보다도 과학적 지식과 교양에 무지한 상황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나 역시 그런 부끄러움과 멀지 못하다. 많은 인문학자들과 문학자 역시 마찬가지라고 말해도 좋을 것이다. ‘인문학 위기’ 시대에 과학과 구분되는 인문학과 문학의 역할과 의미를 소리 높여 주장하다 보면 세상이 달라지는 것에 무지해지거나 무감각해질 수 있다. 

뇌과학은 뇌에 관한 과학이지만, 동시에 인간 이해를 위한 길이라는 점에서 인간을 탐구하는 인문학과 목적을 공유한다. 그렇기 때문에 방법론과 전공이 달라도 대화의 근거가 성립한다. 어떤 인문학도들은 뇌과학을 미심쩍게 바라보기도 한다. 특히 뇌과학이 인간의 모든 것을 설명해줄 수 있다는 뇌 중심주의적인 태도를 불편하게 여긴다. 하지만 이와 같은 비판적 태도 역시 비판적인 ‘수용’ 과정이 선행되어야 가능한 것이다.

고백하자면, 많은 경우에 나태함과 경계 나누기 때문에 뇌과학이든 자연과학에 대한 인문학의 무지가 발생한다. 그래서 러시아 문학자인 석영중의 『뇌를 훔친 소설가』가 반갑다. 출간된 지는 꽤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문학과 과학’ 분야의 도전적이고 선구적인 시도로 여전히 기억할 만하다고 생각한다. 

저자는 신경과학에 대한 (인)문학의 관심과 호기심, 또는 의심과 회의와 같은 상반된 태도 모두를 가진 채로 이 책을 저술했다. 같은 문학 전공자로서, 책의 본문 내용뿐만 아니라 프롤로그나 주석에서 종종 드러나는 저자의 뇌과학에 대한 양면적인 태도도 흥미로웠다. 

요컨대 현시점에서 다윈주의적이고 인지적이며 신경과학적인 문학 연구 방법은 결국 “그래서 어쨌단 말인가?So What?”로 귀착한다. 그렇기 때문에 신경과학은 신경 장애의 치료나 학습 능력의 개선, 언어 표현 능력의 개선 같은 영역에서라면 몰라도 문학작품 자체의 이해와 분석과 수용에는 이제까지 온갖 종류의 문학 이론이 쌓아놓은 것 이상의 무언가를 제공하지 못하고 있다. (<프롤로그>, 9~10면)
실제로 신경과학만으로 문학의 새로운 분석과 해석을 해내는 것은 어려운 일이고, 신경과학이 없었던 때에도 우리는 문학을 깊이 감상하고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신경과학 덕분에 문학과 문화 연구도 새로운 힘을 얻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시시각각 새로운 뉴스가 들려오는 것처럼 신경과학이 급속도로 새로운 성과를 쏟아내고 있듯이, 저자가 회의하던 신경과학적 문학 연구도 발전하고 있을 것이다. 여전히 저자가 같은 생각일지 궁금하다.

저자는 『뇌를 훔친 소설가』에서 신경과학과 문학의 만남을 선보이되, 문학 텍스트와 독자의 마음이 만나는 결합 양상을 다루기보다는 소설에 등장하는 여러 작중인물들과 작가의 사례를 들어 뇌과학의 지식을 소개하고 있다. 예를 들어, “타인의 행동을 마치 거울처럼 반사하는 신경세포”(19면) ‘거울 뉴런’은 뇌과학 용어 가운데 가장 널리 알려진 한 가지다. 실제 상황이 아닌 허구 상황에 불과한 영화를 보면서 우리가 슬퍼할 수 있는 것도 다 우리 뇌 속에 있는 이 거울 뉴런 덕분이다. 감정이입, 모방, 상호작용과 같은 심리적 현상들이 빈번한 문학이야말로 거울 뉴런이 가장 잘 설명될 수 있는 영역인 셈이다. 

석영중 교수는 러시아 문학 전공자답게 푸슈킨이나 톨스토이, 도스토예프스키와 같은 러시아의 유명한 문인들의 작품과 삶을 끌어와 뇌과학의 지식을 쉽게 설명해준다. 때때로는 영화나 다른 외국 문학도 등장하기도 한다. 뇌과학과 문학의 만남 그 자체도 흥미롭지만 저자의 쉽고 솔직한 문장이 마음에 편하게 스며든다. 문학과 인문학의 애독자라도 ‘뇌’라는 단어에 지레 겁먹을 필요는 없겠다.

『뇌를 훔친 소설가』는 크게 흉내, 몰입, 기억과 망각, 변화를 다루는 네 장으로 이루어졌다. 우리의 뇌가 어떻게 타인을 모방하고, 사랑과 예술에 몰입하고, 기억하거나 망각하고, 습관에 빠지거나 변화하는지 문학과 문인들의 삶 속에 포개어낸다. 특히, 저자는 뇌의 네 가지 메커니즘을 설명하는 방식으로 양면성을 제시한다.

예를 들어, 거울 뉴런의 작용에 의한 모방은 예술적 창조의 원천이지만 동시에 모방 범죄처럼 부정적인 일면을 지닌다. 몰입 역시 마찬가지다. 우리는 사랑에 몰두하고 예술 창작 속에서 구원과도 같은 순간을 맛본다. 그러나 광적인 몰입은 편집증과 광기로 우리를 몰고 가지 않던가. 기억 역시 좋다고만 해서 좋아할 일은 아니다. 기억이 적절한 망각과 균형을 맞출 때 제대로 삶을 이뤄나갈 수 있다. ‘모든 것을 다 기억하는 사람’은 기억의 쓰레기장 속에서 살아야만 한다. 

마지막으로 ‘변화’를 다루는 장에서는 신경가소성(neuroplasticity)을 중요하게 다룬다. 과거의 이론처럼 우리의 뇌의 신경회로는 타고난 그대로 아무런 변화를 겪지 않는 것이 아니다. 우리의 뇌는 얼마든지 변화 가능하다. 또 ‘가소적 역설’이라는 부르는 현상처럼, 변화에 저항하기도 한다. 저자는 습관과 학습의 사례를 통해서 뇌의 변화 가능성, 삶의 변화 가능성에 대해 말한다. 실제로 신경가소성은 대중적 저술에서 ‘긍정적 적응’을 위해 쉽게 동원되곤 한다. 하지만 저자가 숱한 러시아 문학들이 비판했던 ‘범속한 일상성’을 말했던 것처럼, 우리의 뇌는 일상으로의 회귀뿐만 아니라 근본적으로 삶을 변화시킬 수 있는 가능성의 원천이다.

그렇다면, 뇌과학과의 만남은 문학과 인문학을 어떻게 변화시킬 수 있을까? 저자는 신경과학에 일방적으로 열광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배제하지도 않는다. 뇌의 메커니즘들이 단순한 한 가지 작용만을 하지 않는 것처럼, 그리고 그 점을 유난히 강조했던 것처럼, 저자는 균형 잡힌 시각으로 뇌과학을 문학적으로 수용하는 시도를 보여준다. 스스로 다소 겸손하게 이 책이 ‘뇌과학과 문학의 상호 조명’을 위해 쓰였다고 말한다. 상호 조명의 다른 말은 대화이고 소통이다. 뇌도 문학도 서로 대화하고 소통하기 위한 도구이다. 대화는 서로가 서로를 더 잘 알게 해준다. 과학과 예술의 대화도 계속 되길 바란다.

▷ 노대원 제주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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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강대학교 국어국문학·신문방송학 전공, 동대학원 국문학 박사과정 졸업

대산대학문학상(평론 부문) 수상 

2011년 『문화일보』 신춘문예 평론 부문 당선

제주대학교 국어교육과 조교수 재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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