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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의 기억, 제주 작가들이 듣고 문학으로 옮기다

2018년 01월 05일(금) 11:42
한형진 기자 cooldead@naver.com
작가가 만난 4.3사람들1-돌아보면 그가 있었네 표지.jpg
제주작가회의, 4.3 관계자 사연 재구성한 《작가가 만난 4·3사람들1》 발간

제주 작가들이 제주4.3을 직·간접적으로 겪은 도민과 만나, 그 경험을 바탕으로 문학 작품을 써내려갔다. 제주작가회의(회장 김수열)가 4.3 70주년을 맞아 공들여 작업한 《작가가 만난 4·3사람들1- 돌아보면 그가 있었네》(도서출판 각)이다.

이 책은 역사의 격랑을 겪어온 4.3 피해 당사자와 후손들의 삶을 문학적으로 접근, 이를 통해 4.3의 현재적 의미를 살펴보자는 의도를 담고 있다.

무엇보다 단순한 구술사로서의 접근이 아닌, 작가적 관점을 강조했다는 점이 두드러진 특징이다. 작가들은 4.3 관련 인물들을 직접 만나 취재한 후 문학적인 글로 집필했다.

현택훈(수록 작품: 물 위에 쓴 시), 김영란(70년 만의 외출), 홍임정(바람만이 알고 있네), 김세홍(캐왓밭 서북풍을 걷다), 김경훈(이덕구 가족으로 살아남기), 김동현(이야기 무덤) 등 시인·소설가·평론가 6명이 참여했다.

이들은 4.3 당시 수형인으로 고초를 겪었던 박순석 할머니, 최연소 입산자라고도 할 수 있는 시인 김성주, 이덕구의 가족들, 섯알오름에서 학살당한 문혁하의 가족인 문양일·문순일 자매, 3.1 발포사건 당시 체포됐던 사람들에게 벌금형의 가벼운 형량을 구형했던 양을 검사와 그의 아들 양금석 씨의 삶을 문학으로 재구성했다. 

이 같은 작업을 조명한 고명철 평론가의 해설 <기억, 증언, 그리고 증언문학: 4·3항쟁의 정치윤리의 언어들>도 함께 수록했다.

고 평론가는 "이번 여섯 문인이 보이고 있는 4.3 체험자에 대한 글쓰기는 4.3 문학의 자기갱신을 모색한다는 차원에서 기존 문학 글쓰기의 낯익음에서 벗어나려는 노력을 다하고 있다"면서 "증언으로서 구술과 만나는 각자의 문학적 상상력이 4.3문학뿐만 아니라 4.3에 대한 성찰의 터널을 어떻게 통과하는지 자못 흥미롭다"고 평한다. 

제주작가회의는 “4.3관련 인물들의 삶을 4.3 당시뿐만 아니라 그 후 생애에 미친 영향과 현재까지 어떻게 삶을 관통하고 있는지 작가의 시선으로 들여다 봤다"며 "문학적 접근을 통해 4.3증언사의 역사적, 문학적 가치를 높이려고 시도했다”고 밝혔다.

문의: 070-8844-2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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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개의 의견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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픽션 2018-01-05 17:40:33    
픽션은 어디까지나 픽션이지 그게 무슨 논픽션 작품은 아니지 잖는가 ?

4. 3의 아픔을 핍박으로만 매도하는 자들에게는 구실만 주는 그런 작품은 소설 그 자체임을 알려주는 것이 화합을 위해서도 옳은 일이다.

예를들어 숙직 중인 KBS제주방송국의 방송과장과 18, 19살의 청년을 선흘곳까지 납치 죽창으로 살해한 산폭도들의 만행을 보라

아무리 함목적이라도 그 과정의 순수성이 하나도 없는 산폭도들의 행위 즉 이웃을 살해하고 약탈을 자행하고 학교를 불 지른 산폭도들의 행위는 응징되어야 한다.

심지어 천인공노할 범죄를 저지른 산폭도대장이 희생자묘비에 올려놓은 후손들도 응징되어야 한다.
116.***.***.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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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리점 2018-01-06 00:26:12    
소설은 픽션이지만, 역사는 사실입니다.
한쪽의 면만 부각해서 생각하시는 군요.
이런 식으로 하는 것이 - 응징이라구요? - 무슨 화합을 위해서라는 거죠?
진정 화합을 원한다면 폭도 운운하며 댓글 달 수가 있을까.
힘들게 살아온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읽어보시고 댓글 다세요. 이렇게 무책임하게 말씀하시지 마세요.
슬프고 떨립니다.
2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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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수 2018-01-07 18:36:39    
폭도 맞습니다.
적어도 민주투사들이 관공서를 습격하고 그 일가족을 사살한 건 아니지 않습니까.
그들이 만일 사회주의국가를 만들고 싶어서 한 것이라면 그건 반란군이고요.
아, 그냥 무장대 라고 하겠습니다.
저의 큰 이모는 열 몇살에 파출ㅅ 밥해주러 갔다가 무장대의 습격에 실종 되었습니다.
그 어린소녀를 왜 납치 했을까요. 끌려가서 한라산 중턱에서 무슨 일을 당하다 죽임을 당했을것 같습니까. 제주 언론들의 사삼 기사를 보면 너무 편향적 입니다.
열번에 한번이라도 군경가족이나 그에 관련된 참혹한 희생에 대해서 제대로 써주길 바랍니다.
언론들이 이러니 그에 편승한 지식인들이라는 작자들은 앵무새처럼 교과서적인 칼럼이나 써대고..
화합의 시작은 사실을 사실대로 받아 들이자 입니다.
슬프고 떨린건...
61.***.***.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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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리점 2018-01-11 14:02:54    
그렇게 생각하면 너무 단순한 도식이지요. 왜 관공서를 습격하게 되었나요? 제주도민들을 못 살게 억압한 것이 관공서였고, 사회주의 국가가 아니라 통일국가로 만들려는 의도가 있었습니다.
제 친척 중에도 무장대에 의한 희생자가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무장대를 폭도라고 하면서 이분법으로 가르지 않습니다. 군경에 의한 희생자가 90퍼센트입니다. 저항을 하면 깡끄리 죽여버리는 토벌 행위는 당신들이 생각하는 폭도 그 이상의 잔인한 악행을 했습니다. 자, 이렇게 좌우로 싸우니 속이 시원하시나요? 그렇지 않아야 합니다. 그때의 희생자를 위로하고 그러한 슬픈 역사나 싸움이 재발되지 않아야 하는데 픽션 님과 만수 님은 나와 생각이 다르니 공격하자는 식입니다. 이제 그만 합시다.
12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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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수 2018-01-13 01:31:09    
늦게나마 대리점님에게 글을 다는건 시비가 아니란점을 알아주길 바랍니다.
못살게 억압,내지는 민중의 소리를 듣지않는, 그런 일제군경의 행위를 계속해서 해방이후에도 한건 맞습니다. 통일국가를 염원한것도 맞습니다. 통일과사회주의 국가가 양반들에게 착취당하고 일제에게 더더욱 착취 당하고 난 해방이구에 얼마나 매력적이겠습니까. 하지만 역사를 제대로 볼려면 시대적상황과 더불어 그 어떤 시대에도 변치않는 법치주의를 인정하고 그에 대한평가를 해야지요. 감성적으로 희생자의 수만 논한다면 그 원칙, 법은 어떻게 하실지..님께서는 당시법의 남용을 넘어선 권력의 폭력이라서 그 저항의 당의성을 주장 하시는데, 그건 법치주의가아니죠.
61.***.***.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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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수 2018-01-13 01:33:37    
참고로 3,1절 기념식에 생긴 경찰에 발포에 항의해서 파업을 한건 관공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제가 하고싶었던 말은 희생자들중 90%가 군경에 의한건 맞습니다.
하지만 제주 언론들은 기사분배에 90%가 아니라 100%를 분배하니까 또다른 폭력이라는 겁니다.나머지 죽창에 찔리고 강간 당하고 불에 태워 죽임을 당한 10%에 대해서는 왜 침묵을 하냐 이겁니다.
61.***.***.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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