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재생이 전국적 화두로 떠오른 가운데 '주민중심'이라는 가치가 단순히 말의 성찬에 그쳐서는 안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지역민들의 자발성을 어떻게 이끌어내고 보장할 지가 관건이라는 얘기다. <제주의소리>는 서울 성북, 세운상가, 목2동, 군산, 나주 속의 공동체들을 찾아 그 실마리를 찾아봤다. 지금까지 그들이 이뤄낸 변화와 남은 고민을 공유하는 일이 제주형 도시재생의 방향성을 찾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 <편집자>

[연속기획-제주형 도시재생, 길을 묻다] (18) 주민 주도 경관협정으로 되찾은 활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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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메라를 향해 활짝 웃고 있는 군산 도란도란 우체통거리의 주민들. 서로 교류하면서 경쟁력 강화 방안을 스스로 모색하는 이들의 움직임은 불과 3년 전만 해도 상상하기 힘든 모습이었다. ⓒ 제주의소리

전북 군산시 개복동과 신창동에 위치한 ‘도란도란 우체통거리’는 꼭 많은 예산을 쏟아붓지 않아도 지역의 건강한 변화가 가능한 지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다. 도시재생의 지향점이 낯선 이들에게 보여줄 좋은 표본이기도 하다.

이 일대는 1980년대까지 군산지역 예술의 중심지이자 문화중심지였지만 그 이후 쇠퇴의 길을 걸었다. 군산은 이명박 정부 시절 근대문화유산 관련 공모사업 대상지로 선정됐고, 2014년부터 진행된 도시재생 사업 예산을 합쳐 940억원 가량이 투입됐지만 정부지원은 늘 이 거리를 빗겨갔다.

이 지역 상인들과 주민들은 직접 살 길을 찾아 나섰따. 2015년 이 거리에 ‘도란도란 모임’이라는 이름의 상가번영회가 출범했다. 예산 투입으로 땅값이 오른 지역으로 이주하기 마땅치 않았던 상인들은 무언가라도 해보자는 뜻을 모았지만 사실 특별한 계기를 찾기 힘들었다.

그 때 이들이 떠올린 게 우체통이다. 이 거리에는 110년이 넘는 긴 역사를 지닌 군산우체국 본점이 위치해있다. 이 역사성을 중심으로 변화를 모색했다. 폐우체통을 아기자기하게 꾸며 거리 양쪽 곳곳에 설치한 것이 시작이었다.

더 큰 변화는 내부에서 일어났다. 이 거리 44명이 뭉쳐 ‘도란도란 우체통거리 경관협정운영회’를 만들었는데 주민들이 직접 주도해 경관협정을 체결했다.

매주 수요일 오후 3시에 거리 청소와 화분 물주기와 공터 등 주변 정비, 세입자라는 단어 대신 운영주로 부르기, 운영주 스스로 불법주정차 하지 않기 등 가벼운 약속부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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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군산 도란도란 우체통거리에서는 우체통을 활용한 아기자기한 상징물들을 만나볼 수 있다. 최근 SNS를 통해 이 곳의 매력이 회자되면서 관광객들의 유입이 부쩍 늘었다. ⓒ 제주의소리

건물주가 동참해 임대료 상승률 제한에 대한 합의도 이뤄냈다. 협정에 따르면 현재 시세를 기준으로 5년간은 무조건 동결해야 한다. 그 이후에도 인상률은 15%를 넘지 못하며, 이 역시 총회에서 전원 동의를 얻어야만 한다.

긴 호흡으로 지속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여기서 창출된 이익이 외부로 빠져나가서는 안된다’는 대전제가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근대문화 명소를 찾아 군산으로 향한 관광객의 유입이라는 이들의 소망은 점차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우체통거리는 입소문과 SNS를 타고 이 거리는 군산에 오면 반드시 들러야 할 명소가 됐다. 소외된 상권으로 여겨졌던 곳에 지역민은 물론 관광객들의 발길이 이어지기 시작했고, 주민주도로 만들어가는 작은 변화의 과정들 보기위해 중앙부처, 타 지자체, 연구기관들의 견학이 이어졌다.

최근 4년 사이 관광객이 5배 증가한 군산시는 도시재생과 근대문화라는 키워드를 내세우고 있는데, 정작 행정지원 없이 스스로 회비를 모아 변화를 이끌어낸 우체통거리가 뜻밖의 효자가 된 셈이다. 이들은 이제 갈 곳이 마땅찮은 밤 시간대 관광객들을 이끌 방안도 구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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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군산 도란도란 우체통거리 한복판에 위치한 군산우체국 본점. ⓒ 제주의소리

우체통거리 사람들이 마주한 가장 큰 변화는 매출 상승을 넘어 공동체 회복에 있다.

가전제품 매장을 운영하는 이혜숙(61)씨는 “문화행사 하나하나 우리가 직접 계획하고 실행하면서 ‘뭔가 제대로 하고 있구나’하는 걸 뼈저리게 느끼게 됐다”면서 “이제 우리끼리 서로 의지하게 되고 함께 웃고 울게 됐다. 여기를 위해서는 이젠 뭘 못하겠냐”며 벅찬 마음을 전했고, 미용실을 운영하는 이미경(66)씨는 “함께 노력하면 앞으로 더 좋은 변화가 찾아올 수 있다는 걸 깨닫게 됐다”고 말했다.

이들은 가장 큰 동력으로 경관협정운영회의 배학서(61) 회장의 헌신적인 리더십을 치켜세웠다. 이 거리에서 안경점을 운영중인 배 회장은 “처음엔 생각 차이와 갈등이 있었지만 소통하고 화합하면서 방법을 찾다보니 기대이상으로 많은 변화가 생겼다”며 “다소 어설프더라도 주민 스스로 하니 보람과 성취감을 느낄 수 있었다. 스스로 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걸 알게 됐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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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학서 도란도란 우체통거리 경관협정운영회 회장. ⓒ 제주의소리

행정이 잡아주는 고기를 기대하는 대신 함께 머리를 맞대 고기 잡는 법을 익힌 셈이다.

이 과정에서 군산시 도시재생지원센터는 관련 교육과정을 제공하는 등 직접 개입 대신 후견인 역할만 수행했다. 이 선택은 자발성을 촉진시켰고 이제 우체통거리는 전국에서 앞다퉈 찾는 도시재생의 모범사례가 됐다. 

이길영 군산시 도시재생지원센터 사무국장은 “의사결정을 행정이나 기관이 하는 게 아니라 이 분들이 스스로 결정권을 가졌다는 게 다른 도시재생 케이스와 큰 차이”라며 “스스로 의사결정을 하다보니 결과적으로는 훌륭한 사례가 됐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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