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이 20대 여성 관광객 살인 용의자 한정민(34)이 성폭력 피의자인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숙소로 돌아온다는 말을 믿고 공항을 통한 도주를 막지 못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에 따르면 한씨는 제주를 빠져나가던 10일 저녁 경찰관과 통화해 “지금 제주시 탑동인데 일을 마치고 곧 숙소로 돌아간다”고 말했다.
당시 경찰은 오전 10시45분 피해여성 이모(26)씨의 가족이 실종신고를 하자 제주시 구좌읍 해당 게스트하우스를 찾아 관련자 조사와 면담을 진행하고 있었다.
이 과정에서 오후 2시쯤 경찰관은 장을 보고 돌아오는 한씨와 게스트하우스에서 처음 만났다. 한씨는 피해 여성에 대한 경찰관의 질문에 잘 모르겠다는 취지의 말을 했다.
면담이 끝난후 한씨는 자신의 차량을 몰아 게스트하우스를 빠져나갔다. 경찰은 한씨의 답변과 다른 스텝과의 대화가 일부 불일치하자 오후에 다시 전화를 걸어 행선지를 파악했다.
경찰 내부 지침상 실종신고가 접수되면 실종팀과 별도로 범죄 가능성에 대비해 형사팀도 함께 대응하도록 하고 있다.
결국 경찰은 한씨에 대한 신원조회에 나섰고 오후 7시30분쯤 용의자가 2017년 7월 해당 게스트하우스에서 여성 투숙객을 성폭행 한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는 사실을 처음 인지했다.
경찰은 곧 돌아온다는 한씨의 말을 믿고 게스트하우스에서 대기했지만 용의자는 자신의 차량을 이용해 공항으로 이동한 후 오후 8시35분 항공편으로 유유히 제주를 빠져나갔다.
김포공항에 도착한 한씨는 전철을 이용해 경기도 안양역으로 이동했다. 곧바로 인근 호텔에 몸을 숨겼다. 오후 11시에는 휴대전화 전원을 끊어 경찰의 위치추적을 막았다.
6시간 후인 11일 낮 12시20분쯤 경찰은 게스트하우스에서 5m 가량 떨어진 폐가에서 이씨의 시신을 발견했다. 당시 이씨는 폐가에 있던 물건 등에 덮여있는 상태였다.
성폭행으로 의심될 만한 정황은 확인됐지만 아직 부검에 따른 체액 검사 결과가 나오지 않아 경찰도 신중한 입장이다.
사인은 경부압박성질식으로 목졸림에 의한 것이었다. 다만 이씨가 사망 전 토를 해 정확한 사망 시간은 특정 짓지 못했다. 통상 부검의는 몸 속 음식물을 통해 사망 시간을 추정한다.
경찰은 7일 밤부터 8일 새벽 사이에 이씨가 살해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한씨가 8일 오전 6시쯤 피해여성의 렌터카를 홀로 타고 이동한 점에 비춰 8일 새벽이 유력한 상황이다.
한씨는 투숙객들의 의심을 피하기 위해 범행 직후 피해여성의 짐을 모두 창고로 옮기고 차량도 게스트하우스에서 500m 떨어진 곳에 숨겼다.
8일 오전 투숙객들이 잠에서 깨자 피해여성이 토를 하고 사라졌다는 취지의 말까지 한 것으로 알려졌다. 실종신고가 이뤄지기 전까지 한씨는 태연하게 게스트하우스에서 일을 했다.
경찰에 따르면 한씨는 2017년 5월 구인광고를 통해 해당 게스트하우스에서 처음 일을 시작했다. 이후 투숙객과 스텝들에게 자신을 사장이라고 소개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씨가 2017년 7월 술에 취한 여성 투숙객을 2층 자신의 방으로 데려가 성폭행했다는 신고가 경찰에 접수됐지만 정작 실제 게스트하우스 주인은 이 사실을 몰랐던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은 한씨가 휴대전화와 신용카드를 사용하지 않아 추적에 애를 먹고 있다. 평소 연락을 취하는 친구도 없고 가족과도 왕래를 하지 않아 주변인 조사도 어려운 상황이다.
한씨는 다른 지역 출신으로 최근 수년간 전국 곳곳을 돌며 짧은 기간씩 일을 하며 생활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제주경찰은 한씨를 찾기 위해 13일 공개수사로 전환하고 전국 경찰서에 공조수사를 요청했다. 동부서와 광역수사대 등 형사 23명을 육지로 보내 검거에 총력전을 펼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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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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