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소방 24시] (上) 제주소방서 119구조대 동행, 야심한 밤 계속된 '소방 사이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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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주소방서 119구조대가 근무교대와 함께 화이팅을 외치고 있다. ⓒ제주의소리
정유년의 끝자락, 충북 제천시에서 발생한 화재로 인해 29명이 숨지는 참사가 벌어진데 이어 불과 한 달도 지나지 않은 시점에 경남 밀양시의 한 요양병원을 화마(火魔)가 덮치며 49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큰 충격과 슬픔에 잠긴 대한민국은 후속 대응과 책임자 문책에 나섰고, 공교롭게도 주 타깃은 소방관이었다. 화재 현장에서 그 누구보다 최선을 다했지만, 이로 인해 전 국민적인 지탄을 받게 된 역설을 마주한 것이다. 사기가 바닥에 떨어질만도 하건만 소방관들은 꿋꿋하게 소임을 다했다. <제주의소리>는 설 연휴를 맞아 제주소방서 119구조대와 이틀간 동행 취재하고, 두 차례에 걸쳐 현장의 목소리를 전달한다.
 
늦겨울 맹추위가 채 가시지 않았지만, 민족의 대명절 설 연휴를 앞두고 있어서인지 곳곳에서는 들 뜬 분위기가 감지됐다. 시장에는 명절을 준비하는 손길이 분주하게 오갔고, 공항에는 고향을 찾아 돌아오는 귀성객의 발걸음이 이어졌다.
 
그럴수록 이들은 긴장감을 늦출 수 없었다. 휴일은 커녕 명절날 아침 가족·친척들과의 담소도 사치로 여겨야 하는 이들. 제주소방서 119구조대원들은 올해도 의연한 새해를 맞이하고 있었다.
 
지난 13일 찾아간 제주시 이도동 제주소방서의 입구 옆에는 5평 남짓의 119구조대 사무실을 찾아볼 수 있다. 매일 촌각을 다퉈야 하기에 소방서 내에서도 가장 최일선에 배치돼 있었다.
 
119구조대는 '사람을 구하는' 일을 전문적으로 맡은 이들이다. 가령 화재 현장의 경우 불을 진압하는 것은 다른 소방관들이 맡고, 불 속에 갇혀있는 사람을 구하는 일은 구조대원들이 맡는 구조다. 화재는 물론 교통사고, 수난사고 등을 가리지 않고 인명피해가 예상되는 현장에는 곧장 출동한다.
 
119구조대 야간2팀은 팀장 진영호(50) 소방위를 중심으로 김병윤(44) 소방장, 좌재철(43) 소방장, 문강윤(38) 소방장, 홍남기(31) 소방교 등 5명으로 구성됐다. 현장 경력 17년의 베테랑 대원부터 발령 3개월차의 막내 대원까지 신구 조화를 절묘하게 이뤄낸 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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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간 출동에 나선 제주소방서 119구조대.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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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소방서 전경. ⓒ제주의소리
◇ 갑작스런 사이렌...화재 신고현장 출동했더니?
 
오후 6시 가진 첫 만남. 간단한 저녁 식사 후 통성명을 나누려는 찰나, 갑작스런 사이렌이 요란하게 울렸고, 대원들은 손에 쥐고 있던 담배 한 개비를 급히 내던졌다. 출동 신호였다.
 
별안간 뛰쳐나온 낯선 이의 손에 끌려가다시피 소방차 한켠에 몸을 구겼다.
 
사람 좋은 미소는 온데간데 없이 그 누구도 한 마디 말조차 꺼내지 않는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머리 위로 들리는 사이렌과 소방장구를 차는 요란한 소리만 연신 귓가를 때렸다. 무전기 너머로는 '건입동 현대아파트 인근 화재 추정'이라는 메시지가 불분명하게 들려왔다.
 
아무렇게나 놓여있는듯 했지만 소방차 안의 방화복과 공기호흡기, 방화헬멧 등의 장구는 최단 시간내에 착용할 수 있는, 계산된 범위안에 위치해 있었다.
 
제주소방서에서 건입동까지 다다른 시간은 채 10분도 걸리지 않았다. 혹여 퇴근시간이 맞물려 도로가 막혀있을까 우려가 됐지만, 사이렌 소리를 듣고 멈칫거리며 기꺼이 앞길을 양보해주는 차량들 틈바구니 속을 파고들었다.
 
문제는 골목길이었다. 길 양 옆으로 주차된 차량들로 인해 속도를 낼 수 없었다. 가뜩이나 급한 와중에 반대편 골목길에서 멋 모르고 진입한 승합차량이 갈팡질팡하는 기색을 보였다. 신고 현장이 멀지않다는 것을 인지한 대원들은 차량에서 내려 공기통을 등에 매고 내달리기 시작했다.
 
금세 다다른 현장, 예상 외로 잠잠한 모습이었다. 신고 직후 출동한 선발대에 의해 곧바로 현장이 정리된 것이다. 더 정확하게 표현하면 애초부터 '오인 신고'였다. 한 시민이 주택 앞마당에서 쓰레기를 태웠고, 행인이 연기를 보고 소방서에 신고를 한 것이었다. 잘못된 신고로 인해 동원된 소방차는 5대, 구급차는 1대였고, 출동 인원은 30명 남짓이었다.
 
돌아오는 길은 한결 가벼웠지만, 안도감과 함께 허탈감이 섞인 묘한 감정이 전해졌다. 비일비재하게 벌어지는 일이라고는 해도 매 순간 긴장해야하는 구조대의 특성상 마냥 가벼이 넘길 일만은 아니었다.
 
"요즘에는 시민들의 신고의식이 자리 잡혀있어서 많은 도움이 되고 있어요. 다만, 불이 난 지점이 어디고, 어떻게 불이 붙어있는지, 무엇 때문에 불이 났는지 같은 구체적인 상황을 설명하면 훨씬 큰 도움이 되기도 하거든요. 오늘 같은 경우는 많이 아쉽죠."
 
지난 1월 한달간 구조대가 출동한 건수는 229건에 달했는데, 이중 처리건수는 154건이었고, 75건은 '미처리' 됐다. 대부분 오인 신고였다.
 
지난 2017년 한 해 동안 무려 2527건, 하루 평균 6.9건의 출동이 이뤄졌는데 처리건수는 1680건, 미처리건수는 847건이었다. 전체 신고의 30% 이상이 낭비되고 있는 셈이다.
 
▲ 제주소방서 119구조대 구조 현장. 사진=제주소방서 제공 ⓒ제주의소리
▲ 제주소방서 119구조대 구조 현장. 사진=제주소방서 제공 ⓒ제주의소리
◇ '일당백' 감당해야하는 소방관들..."제천 화재 사건, 안타까워"
 
"그렇다고 소홀히 챙길 수 있겠어요? 그랬다가는 바로 제천처럼 되는거겠죠." 해프닝으로 끝난 오인 신고는 자연스럽게 다소 무거운 주제를 꺼내게 했다. 
 
제천 사건은 이들에게도 남 일 같지 않은 사건이었다. 단순 같은 업종에 종사하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소방관들에 대해 기소까지 했다고 하는데, 그렇게까지 조치했어야 할 일인가 싶어요. 현장에서도 나름 상황파악을 했을 테지만, 인력이 부족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제주지역 소방서의 경우도 넉넉지 못한 인력으로 인해 항상 어려움을 겪어왔던 터였다. 누군가는 불을 꺼야하고, 누군가는 가스통을 진화해야 하고, 누군가는 운전석을 지켜야하고, 또 누군가는 현장을 지휘해야 하는데, 온전한 인력 배치가 사실상 쉽지 않다는 것이다.
 
다른 지역에 비해 제주는 특수성이 있다. 위로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한라산이 있어 '산악구조'에 특화돼 있어야 하고, 아래로는 사면이 바다로 둘러쌓여 있다보니 '수난구조'도 전문성을 지녀야 한다. 광역시도에 할당되는 생화학테러대비도 구조대가 도맡아야 한다.
 
각 분야별로 전문 구조팀이 꾸려져있는 타 지역에 비해, 제주 구조대는 일당십(一當十), 일당백(一當百)을 기꺼이 감내하고 있다.
 
"제천 사고도 곱씹어 볼수록 너무 아쉬운 것은 현장에 인력이 더 있었으면 어땠을까 해요. 초기 대응이 더 수월하게 진행되는 방식으로 구조됐다면, 결과는 조금 달랐을까요?" 정답이 있을 수 없는 질문에 긴 숨을 토해냈다.
 
진영호 팀장도 조심스럽게 소방관으로서의 고충을 전했다. "화재 현장이 일반적으로 상상할 수 있는 곳은 아니거든요. 전기 설비가 다 나가니 암흑 속이기도 하고, 연기로 인해 그야말로 한 치 앞이 보이지 않습니다."
 
무엇보다 요구조자를 구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대원의 안전 역시 중요하다는 점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전했다. 진 팀장 스스로도 현장에서 진두지휘를 해야 할 상황에 처하는 만큼 "어느 현장이든 신중을 기할 수 밖에 없다"고 에둘러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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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주소방서 119구조대 구조 현장. 사진=제주소방서 제공 ⓒ제주의소리
◇ "구하지 못했다"...십수년 곱씹은 초년 시절의 '트라우마'
 
화재 현장에서의 죽음은 그 누구보다도 이들에게 애달팠을 터다. 아직도 대다수의 소방관들이 구조 현장에서의 크고 작은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것이 그 방증이다.
 
17년차 경력의 김병윤 소방장. 제주 소방 전체를 통틀어도 7명밖에 지니고 있지 않은 1급 구조사 요원 자격증을 취득한 베테랑 요원인 그도 마찬가지였다.
 
화제를 돌려보고자 던진 '기억에 남는 현장이 있느냐'는 질문에 그는 꼬박 17년 전인 소방관 초년 시절로 거슬러 올라갔다. "구좌에 있을 때 양돈장의 오폐수 탱크에 사람이 빠졌었어요. 50cm도 안되는 구멍에 사람이 빠졌고, 빠진 사람을 구하려다 또 다른 사람이 빠지는 사고가 발생했었죠."
 
왜 그 사건이 가장 기억에 남는지 묻자 짧은 대답이 돌아왔다. "구하지 못해서요."
 
"사실 상식적으로 생각해보면 그 폐수탱크에 사람이 빠지면 절대 살아날 수가 없죠. 포크레인으로 탱크를 부수고 시신을 인양하는데, 처음 본 광경이었거든요. 충격적이기도 했지만 (마음이)많이 아팠죠."
 
무언가 '기억에 남는 현장'이라고 한다면 규모가 큰 사고라든가, 큰 공을 세웠던 사고를 떠올렸을 법도 하건만, 김 소방장은 초년 시절 '구하지 못했다'는 책임의식을 지니고 있었다. 아직도 밤에 잠을 자려고 누우면 그 때 생각이 날 정도라고.
 
진 팀장은 "구조 현장에 나가다보면 사람을 구했을 때의 뿌듯함도 있지만, 손을 뻗으면 구할 수 있는 사람을 구하지 못했을 때의 충격이 상당히 오래 간다. 화재 현장 특성상 몇 초 차이의 연기 한 모금에도 사람이 쓰러질 수 있다"고 첨언했다.
 
그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화재 현장에서는 몸을 잘못 틀면 입구를 못 찾고 헤맬 수도 있다. 팀원들끼리 무전기도 교신이 안되는 경우가 많고, 목소리가 들리지도 않는다"며 "그래서 더욱 훈련에 매진할 수 밖에 없다. 눈빛만 봐도 '무슨 생각을 하고 있구나'라는 것을 알 수 있게끔 훈련에 임하고 있다. 이런 준비 과정 때문에 용기가 생기고 자신감이 생기는 것 같다"고 말했다.
 
한창 얘기가 이어지고 있는 와중에도 몇몇 대원들은 훈련 동영상을 보며 구조시 로프를 묶는 방법 등을 익히고 있었다. 단순히 보는데 그치지 않고 어떤 방법이 더 효율적인지, 대원들 간 열띤 의견을 교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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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소방서 119구조대가 근무 교대와 함께 화이팅을 외치고 있다.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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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비 점검중인 제주소방서 119구조대.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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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비 점검중인 제주소방서 119구조대. ⓒ제주의소리
◇ 잇따른 오인신고, 야심한 밤 계속된 '소방 사이렌'
 
야심한 시각 휴식을 갖고 있던 차에 또 다시 출동 신호가 울렸다. 오전 3시22분 접수된 신고는 탑동 인근 차 안에서 사람이 쓰러져 있다는 내용이었다.
 
반사적으로 몸을 일으켜 차량 위로 올라탄 대원들. 무거운 침묵이 흐르는 사이에 차량의 문을 강제로 열어야 하는 등의 상황을 대비한 장비를 재차 점검했다.
 
절반쯤 도착했을까. 무전기 너머로 '오인 신고'라는 단어가 선명하게 들려왔다. 차량 내부의 쓰러진 이는 술에 취해 잠이 들었던 것으로 확인됐다는 내용이다.
 
긴장감이 팽팽했던 공기는 다소 멋쩍어졌고, 한동안 이어지던 정적은 "발렌타인 데이는 여자가 남자에게 선물 주는 날이 맞지?"라는 진 팀장의 엉뚱한 질문에 의해 깨졌다. "팀장님 나이쯤 되면 잘 챙겨야 한다"는 면박과 "내 나이나 네 나이나!"라는 응수가 곁들여지면서 화기애애한 미소를 되찾았다.
 
2시간쯤 지나자 또 다시 출동 신호가 울렸다. 목줄이 풀린 개를 잡아달라는 견주의 요청이었다. 이토록 개인의 영역에서 관리됐어야 할 문제들도 소방관에게 떠맡겨지기가 일쑤다. 마취총을 쏘고 팔다리가 축 늘어진 후에야 견주에게 인계됐다.
 
하룻밤 사이에 벌어진 3건의 출동. 2건은 오인 신고였고, 1건은 소소한 생활민원이었다. 사건의 경중을 떠나 소방관으로서의 치열함을 엿볼 수 있는 현장이었다.
 
구조대와는 다음 근무 시간인 이틀 뒤, 설 명절날 다시 만날 것을 기약했다.
 
# 下편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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