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소방 24시] (下) 설 명절 반납한 119구조대, 자살 기도 현장-동물 보호  '종횡무진'
 
정유년의 끝자락, 충북 제천시에서 발생한 화재로 인해 29명이 숨지는 참사가 벌어진데 이어 불과 한 달도 지나지 않은 시점에 경남 밀양시의 한 요양병원을 화마(火魔)가 덮치며 49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큰 충격과 슬픔에 잠긴 대한민국은 후속 대응과 책임자 문책에 나섰고, 공교롭게도 주 타깃은 소방관이었다. 화재 현장에서 그 누구보다 최선을 다했지만, 이로 인해 전 국민적인 지탄을 받게 된 역설을 마주한 것이다. 사기가 바닥에 떨어질만도 하건만 소방관들은 꿋꿋하게 소임을 다했다. <제주의소리>는 설 연휴를 맞아 제주소방서 119구조대와 이틀간 동행 취재하고, 두 차례에 걸쳐 현장의 목소리를 전달한다.
 
2.jpg
제주소방서 119구조대 생활안전팀이 현장에 출동하고 있다. ⓒ제주의소리
민족의 대명절 설을 하루 앞둔 15일 저녁. 다시 찾은 제주소방서 119구조대 야간2팀(팀장 진영호)은 구조 장비를 점검하는데 여념이 없었다. 누군가의 편안한 명절 연휴를 위해, 올해도 어김없이 설날을 반납했다.
 
그간의 경험에 미뤄 휴일은 더욱 고삐를 조여야 했다. 사람과 사람 간의 만남이 잦아지는 시기다보니 예상치 못한 사고가 터져 나오곤 했기에, 대원들은 장비 점검에 철저를 기했다.
 
방화복, 안전벨트, 공기호흡기, 로프 등 일반 구조 장비를 비롯해 평소에 자주 쓰이지 않았던 동력절단기, 유압장비, 스쿠버장비 등에 대한 점검도 꼼꼼하게 이뤄졌다. 
 
실전 투입이라곤 단 한 건 밖에 없었던 대테러 사고현장 대처용 '생화학구조 차량'의 내부 점검도 잊지 않았다. 단 하루도 빼먹지 않고 반복되는 일상이다.
 
귀찮지 않느냐는 어리석은 질문을 던져봤다. "비효율적이라고 생각하실지 모르겠어요. 하지만 아주 만약에라도 현장에서 기기가 작동하지 않는다고 하면 정말 막막해지겠죠. 생명을 다뤄야 하는 입장에서는 결코 소홀히 할 수 없는 일입니다." 우문에 현답이었다.
 
점검을 마치고 사무실로 돌아온 대원들은 이내 깊은 고민에 빠졌다. 설 연휴여서 구내식당이 문을 열지 않았고, 저녁 식사를 스스로 해결해야 하는 처지에 놓인 것이다.
 
촌각을 다투는 사고 현장에서 잠시의 망설임도 없이 빠른 결단을 내렸을 그들도 식사 메뉴 선택은 어려웠던 모양이다. 한참을 고민하더니 결국 인근 편의점을 돌며 도시락을 공수해왔고 당직실에 있던 컵라면에 물을 부었다.
 
4.jpg
구조 장비를 점검하고 있는 제주소방서 119구조대 ⓒ제주의소리
3.jpg
생화학구조 차량 내부를 점검하고 있는 제주소방서 119구조대 김병윤 소방장 ⓒ제주의소리
◇ '별동대' 생활안전팀...문잠김·동물구조·벌집제거 업무 너끈
 
오후 8시쯤 출동 신호가 울렸다. 제주시 연동 인근 골목길에 유기견이 활보하며 시민들을 위협하고 있다는 신고였다.
 
구조대 내부에서도 별도로 구성된 생활안전팀으로 활약하고 있는 좌재철(43) 소방장과 홍남기(31) 소방교는 지체 없이 생활안전 차량에 올라탔다. 여러 구조장비를 싣고 다니는 구조공작 차량과는 달리 생활안전 차량은 일상에서 벌어지는 안전사고를 수습하는데 목적을 둔 차량이다.
 
불필요한 공력 낭비를 최소화하기 위해 운영되는 '별동대'인 셈이다. 다른 대원들에 비해 배 이상을 출동해야 하는 이들의 수고는 결코 가볍지 않았다. 
 
지난 2017년 한 해 동안 발생했던 제주소방서의 구조활동 현황을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총 1680건의 구조활동이 이뤄진 가운데, 잠긴 문 개방의 처리건수가 367건으로 가장 많았고, 화재 318건, 동물구조 215건, 벌집제거 186건, 교통사고 130건, 승강기 사고 92건 등으로 뒤를 이었다.
 
이중 직접적인 인명피해의 우려가 적은 것으로 판단되는 문 잠김 사고나 동물구조, 벌집제거 등의 현장에는 생활안전팀이 주로 출동하게 된다. 큰 사고가 발생하면 그 나름의 임무를 수행하면서 소소한 민생 사고들까지 챙겨야 하는 것이다.
 
신고가 접수된 현장 주위를 둘러보니 지나가는 행인들을 향해 짖어대는 개 한 마리가 발견됐다. 유기견으로 판단하기에는 목에 채워진 목줄이 내심 마음에 걸렸다. 주인이 있는 개를 함부로 건드렸다가는 역으로 된서리를 맞기 십상이다.
 
결국 주변의 건물에 상주하고 있는 시민들을 상대로 탐문수사(?)를 벌였고, 인근 포장마차 주인이 유기된 개를 데려다 키우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주변 상인들의 도움으로 주인과 연락이 닿아 무사히 인계작업을 마쳤다.
 
"번거롭게 해드려 죄송스럽고 감사하다"는 견주의 인사는 작은 보상이었다.
 
6.jpg
유기견 구조 신고를 받고 출동한 제주소방서 119구조대 생활안전팀. ⓒ제주의소리
5.jpg
제주소방서 119구조대 차량들. 사진 우측의 차량이 구조장비를 싣고 다니는 구조공작 차량이고, 중간의 차량이 생활안전차량이다. ⓒ제주의소리
◇ 명절 맞물린 '자살 기도' 사건...씁쓸한 이면
 
소방서로 돌아가는 길. 다급한 무선이 울렸다. 노형동 주택에서 한 남성이 자살을 기도하고 있다는 신고였다. 이미 구조공작 차량과 모든 구조대가 현장으로 출동중인 상황. 생활안전팀도 그대로 핸들을 틀었다.
 
휴일 많은 인파가 모여든 신제주 골목길을 헤집고 도착한 현장에는 경찰과 인근 119센터에서 출동한 선발대원들이 바삐 움직이고 있었다. 구조대도 곧 다세대 주택의 윗층으로 한 달음에 올라갔다.
 
어깨 너머로 훔쳐 본 집안 내부는 홀로 살림을 꾸린 듯 별다른 생활집기 없이 깨끗했다. 방 안에만 두터운 이불이 여러겹 깔려있는 것이 눈에 띄었다. 이 곳에서 40대 남성 A씨는 특정 약물을 과다하게 복용한 것으로 전해졌다. A씨는 곧바로 구급대에 의해 인근 병원으로 후송됐다.
 
구조대가 특별히 나설만한 상황은 없었다. 다만 '자살 기도'라는 내용의 신고만 접수된 상태였기에 A씨가 약물을 과다 복용했는지, 높은 곳에서 뛰어내리려고 마음을 먹은것인지 등의 상황에 대해 알지 못했다. 후자의 경우라면 구조차량에 준비된 에어매트를 설치해야 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사실 설이나 추석 같은 명절이 다가오면 신변을 비관해 극단적인 생각을 하는 사고가 발생하곤 했어요." 구조대 입장에서도 불의의 사고에 대응하는 것과 스스로 목숨을 끊겠다는 사고를 바라보는 시선은 다를 수 밖에 없었기에 씁쓸함을 감추지 못했다.
 
혼을 쏙 뺀 현장의 긴장감으로 잊고 있었지만 이 날은 설 명절이었다. 
 
구조대원들 역시 한 명의 소방관이기 이전에 누군가의 아버지이자 아들이었다. 그간 명절 차례상은 일과가 시작되기 전인 아주 이른 새벽이거나 모든 일과를 마친 늦은 오후여야 했다. 조상은 물론 가족들에게도 미안할 수 밖에.
 
7.jpg
명절을 앞두고 제주시 노형동 주택에서 40대 남성이 자살을 기도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제주의소리
8.jpg
명절을 앞두고 제주시 노형동 주택에서 40대 남성이 자살을 기도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제주의소리
◇ 한밤중 '자살 충동 호소' 소동까지...소임 다하는 119, "오늘도 안전!"
 
오후 11시쯤 지날 무렵, 불청객이 찾아왔다. 40대 초반쯤으로 보여진 남성은 119구조대 사무실로 들어와 대뜸 "자살하고 싶어서 찾아왔다"고 말했다. 스트레스를 너무 많이 받고있어 당장에 죽고싶은 생각을 주체하지 못하겠다는 남성.
 
구조대는 순간적으로 당황한 기색을 보였지만 이내 침착하게 대응했다. 진영호 팀장은 남성을 사무실에 비치된 탁자에 앉혀놓고 그간의 사정에 대해 조근조근 묻기 시작했다.
 
연고도 없이 제주에 내려왔다는 그는 자살예방센터 등에 자신의 증상을 호소했지만 별다른 조치를 받지 못했다고 말했다. 찾아간 병원도 휴일이어서 진료를 받을 수 없다고 답해왔다는 것이다. 그는 자신이 지적장애를 갖고있다는 사실도 스스럼없이 털어놨다.
 
대화 도중에도 연신 얼굴을 찡그리며 거친 숨을 내쉰 남성. 갑자기 "아! 힘들어!"하고 외치는 등 불안한 모습을 보였다. 휴대전화를 빌려 자살예방센터로 전화를 걸더니 "지금 찾아오지 않으면 그냥 죽으라는 것으로 간주하겠다"고 협박을 하기도 했다.
 
1.jpg
야심한 밤 119구조대를 찾아온 남성이 자살 충동을 호소하고 있다. ⓒ제주의소리
어떠한 돌발 상황이 발생할지 모르는 팽팽한 긴장감. 진 팀장과 인근 119센터에서 파견을 온 구급요원은 침착하면서도 집요하게 남성을 설득했고, 결국 인근 병원으로 이송할 수 있게됐다.
 
단순한 해프닝으로 치부할 만한 일은 아니었다. 흔치 않은 사건이었지만 119구조대가 그만큼 누군가의 생사를 넘나드는 곳에서 사투를 벌이고 있음을 보여준 방증이었다.
 
그렇게 구조대는 또 한번의 하루를 무사히 견뎌냈다. 그나마 새벽에는 별다른 사고가 발생하지 않았던 것이 위안이 됐다. 밤 늦게 꺼지고, 이른 아침에 켜진 소방서의 불빛. 이들에겐 명절 또한 치열하게 반복되는 일상의 한 조각이었을 뿐이다.
 
야간2팀은 밤샘근무를 마치고 주간조에게 업무를 인계했다. '국민안전'이라는 소임을 넘겨받은 이들 또한 치열한 하루를 버텨내리라. 
 
함께 모인 이들은 힘찬 구호를 외치며 하루를 끝마치고, 또 시작했다.
 
"오늘도, 안전! 안전! 안전!"
저작권자 © 제주의소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