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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래 집단의 폭력’이라는 벽

2018년 02월 20일(화) 13:08
오승주 news@jejusori.net
언제부턴가 입시의 도구로 전락한 10대들의 글쓰기. 결국 그들의 가슴을 울릴 수도, 가슴에 와 닿을 수도 없는 글쓰기다. ‘글은 곧 자기 자신’이다. 자기 생각과 감정 표현에 더 솔직하고, 일상적이고 소박한 삶의 결이 드러나는 10대들의 진짜 글쓰기에는 세상을 향해 던지는 선명하고 묵직한 메시지가 있다. 10대들이 자신의 언어로 세상에 대해 말하는 이야기에 귀 기울여보라. 최근 《인문고전으로 하는 아빠의 아이 공부》를 펴낸 오승주 작가가 지난해 제주도내 중학교에서 글쓰기 수업을 통해 아이들과 교감했던 사례들을 접목시킨 귀 기울일만한 10대들의 목소리를 재구성해 싣는다. <세상을 바꾸는 10대들의 글쓰기> 연재다. 매주 1회, 총 30회 집필을 예정하고 있는 이 코너에 독자 여러분의 관심을 기대한다. [편집자]

[세상을 바꾸는 10대들의 글쓰기] 7. 《1964년 여름》, 《데미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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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데버러 와일즈의 그림책 《1964년 여름》. 사진=교보문고.

초등학교 때부터 중학교 때까지 이어진 폭력에 눌린 아이와 그 친구 이야기

《1964년 여름》은 미국의 인종차별금지법이 통과된 직후의 이야기를 다룬 그림책입니다. 인종차별, 인권은 무엇이지, 법의 한계란 무엇인지 아이의 시선으로 잘 그리고 있는 작품입니다.

아래는 이 책에 대한 청소년 글쓰기 수업 당시 한 학생으로부터 받은 글입니다. 학생의 글과 《1964년 여름》을 함께 읽고 나서 이야기를 이어가겠습니다. (학생의 동의를 받아 실명은 뺐습니다.) 

나와 친했던 친구가 하나 있었다. 우리는 학원에서 만나 가까운 친구 사이가 되었다. 학교에서 만나는 친구들과는 집이 가까워도 다들 바빠 함께 할 수가 없었다. 난 늘 혼자였고, 심심했다. 그 친구는 나의 큰 위안이 되어주었다. 우리는 함께 영화도 보고, 게임도 했다. 또한 코앞으로 다가온 중학교 입학에 대비해 공부도 같이 했다. 입학 첫날, 우리는 같은 반이 되어 좋아라 했다. 즐거운 학교생활이 시작될 것 같았다. 그런데 애석하게도 그 행복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늘 헤프게 웃던 내 친구가, 왕따였던 것이다. 

친구는 초등학교 2학년 때부터 이유 모를 왕따에 시달렸다고 했다. 다른 친구조차도 그 친구한테 미안하지만 조금 멀리 하자고 했다. 그리고 가해 학생들은 중학교까지 그 친구를 따라와, 또 새로운 공포를 안겨주고 있었다. 

존 헨리는 내 친구들 중에서 가장 수영을 잘 합니다. 
메기처럼 바닥을 휩쓸며, 
늪지대의 괴물처럼 보글보글 거품도 만들어요. 
하지만 마을 수영장에는 가지 않아요. 
존 헨리는 거기에 들어갈 수 없거든요. - 《1964년 여름》 가운데 일부

이 책은 인종차별에 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그렇다고 내 친구가 흑인이었다는 말은 아니다. 

나는 ‘차별’이라는 주제에 관해 이야기해보려고 한다. 아이들은 백인이 흑인을 차별한 것 같이 친구를 차별하기 시작했다. 친구는 혼자가 되었다. 때문에 조별과제를 시작할 수조차 없었고, 밥은 같은 학년인데도 5분 늦게 먹어야 했으며, 캠프를 가면 밤에 혼자 구타를 당했다. 그 친구와 친했던 몇몇 아이들과 나는 방관이 나쁜 걸 알면서도 두려움에 가만히 있을 수밖에 없었다. 

하얗고 거친 물보라 속에서 우리는
허리가 아플 때까지 웃음을 멈추지 않아요. - 《1964년 여름》 가운데 일부

부당한 인종차별의 아픔을 겪는 존 헨리도, 그런 친구를 도와줄 수가 없어 미안한 주인공도, 친구이기에 웃을 수 있다. 

마을 수영장에는 못가지만 냇가에 돌과 나뭇가지를 올려 멋진 수영장을 만들었다. 나의 용기 부족으로 우리는 학교에서 함께 할 수 없었지만, 학원이나 집에서는 웃음이 끊이지 않았다. 그것조차 얼마 가지 않고 친구는 학원을 그만두게 되었고, 우리는 더 이상 만날 기회가 없었다. 

내일부터는 피부색에 상관없이 누구나 다 마을 수영장에 들어갈 수 있게 되었단다. (중략)
새로운 법이 만들어졌어. 앞으로는 식당 화장실, 수돗물, 뭐든지 다 함께 사용할 수 있다는구나. (중략)
“먼저 일어날게요!” 부엌으로 달려간 나는 존 헨리에게 이 소식을 전했습니다. - 《1964년 여름》 가운데 일부

지금도 여전히 친구는 혼자였다 .빠르게 지나간 작년에 왕따를 해결하기 위해 나섰지만, 워낙 문제아인 가해학생에게 밀려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했다. 작년 여름, 우리는 오랜만에 다시 만났고, 울면서 서로 미안하다고 했다. 우리는 다시 예전처럼 놀러도 가고 영화도 보고 게임도 했다. 난 늘 지난날을 반성하며 미안해했고, 친구는 못나서 미안했다고 했다. 

선생님의 오랜 노력도 드디어 이루어졌다. 폭력을 행사한 다른 아이들에게 징계가 내려졌고 친구에게 사과하였다. 사과를 받아낸 친구는 주인공처럼 여느 때보다 더 환한 웃음으로 활짝 웃으며 달려왔다. 우리는 남은 학교생활을 행복하게 보냈고 같은 고등학교 진학을 준비하고 있다. 나는 인종차별이 아닌 조금 다른 관점에서 봄으로써 차별의 문턱 앞에 멈추지 않은 주인공의 용기를 본받고 싶다. 

나의 중학교와 고등학교 시절을 지옥으로 만들었던 두 아이

《데미안》(Demian)은 1919년 독일의 소설가·시인 헤르만 헤세가 발표한 소설입니다. 경건한 기독교 중산층 집안에서 따뜻한 보살핌을 받던 남자 아이 싱클레어는 내면의 어두움과 만날 즈음,  불행한 가정의 재단사 아들인 프란츠 크로머를 만나죠. 이를 계기로 싱클레어는 어둠으로 더욱 깊이 발을 담그고, 데미안을 만나 극적인 성장을 이루어냅니다. 이 책은 1차 세계대전이 한창인 가운데 나온 헤르만 헤세 영혼의 자서전이라고 불립니다. 

난 대학 시절 이 책을 처음 읽고 깜짝 놀랐습니다. 내가 경험한 것과 거의 같은 이야기였기 때문입니다. 물론 나는 글을 쓴 학생의 친구처럼 집단적으로 왕따를 당하지도 않았고, 《데미안》의 싱클레어처럼 돈을 바치지도 않았습니다. 《데미안》은 또래집단의 폭력이라는 벽이 아이에게 어떻게 작용하는지 잘 살펴볼 수 있는 작품입니다. 

저금통을 깨뜨려 여는 것은 아주 쉬웠다. 얇은 양은 막대 하나만 두 동강 내면 되었다. 그러나 부서진 자리를 보니 마음이 아팠다. 그것으로 나는 비로소 도둑질을 한 것이었다. 그때까지 나는 다만 사탕이나 과일 같은 주전부리에 입을 댔을 뿐이었다. 그런데 이것은 비록 내 자신의 돈이지만 훔친 것이었다. 나는 크로머와 그의 세계에 다시 한 발자국 더 다가갔으며 이제부터는 일이 그렇게 시시각각 보기 좋게 내리막으로 가리라는 것을 느꼈고, 거기에 저항했다. 그러나 악마가 데려간다 하더라도 이제 되돌아갈 길은 없었다. 나는 걱정스레 돈을 헤아렸다. 저금통 안에서는 그렇게 가득한 소리를 냈는데 손 안에 쥐고 보니 비참하게도 얼마 안 되는 액수였다. 육십오 페니히였다. 
- 《데미안》 가운데 일부

폭력이 만연한 사회에서 아이들이 자라면, 크고 작은 폭력을 피해가기 쉽지 않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폭력은 뿌리가 매우 깊은 잡초와 같습니다. 폭력을 가하는 학생은 자신이 받은 폭력을 퍼뜨린 것에 불과합니다. 

힘 센 아이 그룹과 약한 아이 그룹으로 나뉘면 자연스럽게 계급이 생깁니다. 몇 년 전 사촌동생이 내 고등학교 때 친구 이야기를 꺼내더군요. 날 괴롭혔던 동창, 그와 잘 어울렸던 ‘힘 센 그룹’ 다른 동창이 사촌동생의 선배였던 것이죠. 사촌동생에게 나를 어떻게 소개했을지 생각하니 몹시 불편했습니다. 

학교 폭력을 다룬 문학작품이나 영화는 많지만 그 중에서도 연상호 감독의 애니메이션 영화 <돼지왕>이 유독 기억에 남습니다. 그 이유는 내가 느꼈던 ‘살의’를 잘 표현했기 때문입니다. 만약 우리나라도 미국처럼 총기규제가 심하지 않았다면 어떨까요? 우리 사회는 그런 사고가 벌어지지 않는다고 안심할 수 있을까요? 미국의 아이들과 한국의 아이들이 다른 마음일까요? 그 폭력이 다를까요? 난 그렇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괴롭힘을 당할 때의 비굴한 감정, 살의를 억누를 때의 고통과 인내가 과연 절제인지 비겁함이었는지 난 아주 오랫동안 갈등했습니다. 지금도 쉽게 결론을 내리지 못합니다. 지금까지도 그 동창들과 있었던 순간이 계속 저에게 강제되면서 그들을 끔찍하게 죽이고 싶은 충동이 휘몰아칩니다. 이 고통은 아이들만의 몫일까요? 어른들이 이 고통을 위해서 무엇을 해줄 수 있을까요? 

하지만 나를 괴롭혔던 두 동창 덕분에 중학교 시절과 고등학교 시절이 뚜렷하게 기억나기는 합니다. 그 때의 감정들이 잘 보존돼 있다는 것은 지금 아이들과 대화할 때, 특히 상처에 대해서 대화할 때 큰 도움이 됩니다. 그들의 마음과 하나 되기가 수월하니까요. 나는 어른도 아니고 아이도 아닌 채로 아이들을 만납니다. 이것은 뒤집어 말하면 어른이기도 하고 아이이기도 하다는 것이니까요. 

결국은 ‘폭력의 뿌리’를 향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현재 뜨겁게 타오르고 있는 ‘갑질’에 대한 분노와 ‘미투(me too) 운동’은 폭력의 뿌리를 향하고 있습니다. 약자 중의 가장 약자인 청소년과 어린이들의 폭력을 걷어주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질문을 던져보세요. 그 복잡함과 견고함에 경악할지도 모릅니다. 시간여행이 필요할 겁니다. 

과거의 일기장을 들춰보거나 오랜 친구와 그 시절 이야기를 하면서 아이들 나이 때를 계속 소환하면서 아이들과 감정 교감을 하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혹은 《데미안》이나 《나의 라임오렌지 나무》처럼 유년 시절과 청소년 시절의 은밀한 비밀을 가지고 있는 문학작품을 읽어보는 것도 좋습니다. 그러고 나서 가정폭력과 사회폭력, 그리고 갖가지 폭력의 구조를 살펴보아야 합니다. 아이의 웃는 얼굴을 되찾는다는 것은 너무나도 어렵고 힘겨운 일입니다. 

#  필자 오승주는?

1978년 제주 성산포에서 나고 자랐다. 제주대에서 국문학과 철학을 공부했다. 

2003년부터 10여 년간 서울 강남에서 입시컨설팅, 논구술 특강 등의 일을 하다가 대한민국 입시구조와 사교육 시스템에 환멸감을 느꼈다. 

이후 언론운동과 시민정치운동, 출판문화운동, 도서관 운동 등에 참여했다. 그러나 세상을 바꾸는 가장 큰 변화의 힘은 가정에서 시작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가족의 끈이 이어지게 하는 일에 인생을 걸었다. 소홀했던 가정이 무너지기 직전, 아이의 간절한 외침 소리를 들었기 때문. 

2013년 《책 놀이 책》을 써 아이와 부모를 놀이로 이어 주었고, 3년간의 공부방 운영 경험과 두 아들과 겪은 이야기를 바탕으로 《인문고전으로 하는 아빠의 아이 공부》를 썼다. 아빠 육아, 인문고전으로 아이 깊이 읽기로 가족 소통을 꾀했다. 

현재 《10대와 마주하는 인문고전_공자의 논어》, 《10대와 마주하는 인문고전_사마천의 사기》를 집필 중이며 아주머니와 청소년을 작가로 만드는 꿈을 실현하기 위해 글쓰기·책쓰기 강사로서 지역 도서관과 활발히 사업을 펼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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